-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디지털 공유재로서의 저작권
[특집] 디지털 환경과 저작권Ⅰ얼마 전 생일 파티를 할 때마다 흔히 부르는 ‘생일 축하곡’의 저작권 소송 판결 기사를 접하였다.1 생일 축하곡의 저작권은 ‘워너채플’에서 가지고 있는데, 저작권료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생일 축하곡을 부르지 않고 박수만 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영화 <7급 공무원>에서도 생일 축하곡을 부르는 장면을 넣기 위해 제작자가 저작권료로 12,000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이러한 생일 축하곡의 저작권은 재미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멜로디는 1800년대 말에 만들어졌는데, 가사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등교하면 선생님들이 부르던 환영의 노래라고 한다.
유치원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바뀌어서 완성된 생일축하곡의 저작권은 여러 단계를 거친 후 1990년 워너채플 회사가 1,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워너채플은 생일축하곡의 저작권을 구입한 후 사용료를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매년 2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한 다큐멘터리 영화사는 다큐멘터리 영화인 <Happy birthday to you>를 제작하며 생일축하곡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워너채플로부터 위약금 1,500달러 청구 소송을 받게 된다. 이에 다큐멘터리 영화사는 생일축하곡은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음악의 저작권이 만료된 누구나 사용을 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으로서 워너채플 측에 저작권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복잡한 스토리의 재판 결과는 “워너채플 측에는 생일축하곡의 저작권이 없다”였다. 생일축하곡의 저작권은 이미 만료되어 워너채플에서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은 이제 마음껏 생일축하곡을 부르게 되었고 앞으로 드라마, 영화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웃지 못한 이러한 사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저작권법은 1800년대 말 생일축하 노래의 원곡을 만든 유치원 교사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가? 생일축하곡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에 대한 대중의 공정한 이용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만약 생일축하곡의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고 살아 있다면 공정이용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개인이 가정에서 자녀가 태어난 날 생일축하곡을 부르는 것은 공정이용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 노래를 아마추어 가수가 멋지게 부른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는데 인기가 많아져 광고 수익이 몇백만 원 나온다고 하면 공정이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저작물을 만드는 저작자의 범위는 ‘모든 사람’이 되었고 저작물을 담는 그릇의 형태인 매체도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경우 작가 협회에 등록되어 있었고 글은 종이로 인쇄되어서 책으로 만들어져 배포되었다. 즉, 이러한 때에는 저작물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글을 쓰고 종이로 인쇄된 책을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고 디지털 파일들은 누구나 만들어진 책을 복사하고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작물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저작물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오늘날의 환경과는 달리 오히려 저작권법은 더욱더 강화되고 있다. 300년 전 책의 유통 때문에 영국의 앤 여왕이 만든 저작권법이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도 그 골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된 사회에 맞지 않는 저작권법은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어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할 저작권법은 베른 국제 협약으로 전 세계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바꿀 수 있기에 현실적으로 저작권법은 앞으로 크게 바뀌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저작권법은 김중만 사진작가의 작품과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맛집에서 찍은 사진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식당에서 찍은 사진도 사후 70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고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배타적 권리가 자동으로 부여된다. 창작자인 저작자들의 권리인 저작권 제도의 특성상 내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내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인지도 저작권자의 권리이다.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지키기보다는 타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행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만드는 개발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프로그래밍 소스를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공개된 소스를 수정하면 수정된 소스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는 개념을 내세웠고, 그 결과 프로그래밍 개발자들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 개발 소스를 공유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료로 판매하던 서버 OS인 ‘유닉스’ 대신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만들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서버 OS ‘리눅스’이다.
![]() ▲ 전 세계 공유 운동을 주도하는 |
![]() ▲ 2014년 서울디지털포럼에서의 잭 안드라카 |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사전’도 이와 비슷하다. 집단 지성으로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든 온라인 백과사전은 이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전 지구적 백과사전이 되었다. 이런 공유의 운동은 교육, 데이터, 논문, 건축, 예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첫 번째 케이스는 연구자들의 오픈액세스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논문을 저널에 기고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에 저작권을 양도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논문에 대한 저작권은 논문 저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저자들마저도 자신의 논문을 보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학술저작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출판사는 학술저작물의 이용료를 과도하게 인상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되고, 이에 따라 예산이 부족한 도서관에서는 학술저작물을 구독하지 못하게 된다. 학술저작물의 저자인 연구자들은 학술저작물의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널의 출판 비용을 저자들이 부담하고 논문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오픈액세스 운동을 펼치게 된다. 대학 역시 대학의 교육 자료들을 공개해서 등록금을 내지 않는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공부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다.
공공데이터의 공유 운동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만드는 공공데이터를 공개해서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건축에서는 건축에 사용되어지는 기자재들의 도면, 설계 도면을 공개하고 있고, 3D프린터의 보급에 따라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각종 도면들이 공개되어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뮤지션들 역시 자신의 음원과 음원 샘플들을 공개하면서 다른 뮤지션이 리믹스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사용할 수 디지털 공유재가 영역별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물들은 사회적 자본으로 고스란히 축적되고 있으며 공유의 바람은 디지털 시대의 창조적 자원이 되고 있다.
2014년, SBS에서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에는 유독 눈에 띄는 연사가 있었다. 쟁쟁한 강연자들 사이에서 앳된 얼굴로 무대 위로 올라왔던 소년은 당시 18살인 잭 안드라카(Jack Andracka)였다. 그는 2011년 췌장암 진단에 필요한 단백질 검출 종이 센서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98%에 이르는 높은 정확도를 자랑할 뿐 아니라 검사 비용을 무려 2만6000분의 1로 줄이는 혁신을 이뤄냈다. 잭은 위키피디아와 공개된 학술논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췌장암 진단 센서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학술 논문의 공유 운동이 10대가 위대한 발명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함께 만들고 함께 사용하는 디지털 공유재는 제2의 잭 안드라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에서 새로운 혁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필자소개
강현숙은 ‘Creative Commons Korea’의 사무국장이다. 디지털 콘텐츠를 전공하였으며 오랫동안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였다. 주된 관심사는 기술이 사회에 가져오는 변화와 혁신이다.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