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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춘천의 축제극장 몸짓과 라데나 리조트에서 전국 지역문화재단 지식공유포럼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의 기초지자체 문화재단 관계자들과 담당 공무원 100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현재 광역단위를 제외한 기초 지역문화재단은 설립준비 중인 문화재단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40여개를 헤아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영중인 재단의 숫자가 절반도 채 안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가히 우후죽순 격으로 문화재단이 생겨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포럼은 지역문화재단의 현 주소를 확인하고, 상호간의 사례공유와 향후 정책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지역문화재단간 네트워크의 공식화 혹은 전국화의 필요성 확인
포럼은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다른 재단의 사례를 주의 깊게 듣고 각 재단이 처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나누며 지역문화재단의 정책방향을 다각도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이번 지식공유포럼의 성과는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필요들을 현장 실무자들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지금껏 지역문화재단 간 네트워크가 개인단위의 친소관계에 주로 기대고 있었다면, 그것이 공식화/전국화 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협력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은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경영정보를 비롯한 사업아이디어와 활동 사례들을 공유하고 서로 참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사업 분야가 제한되어있거나 새로 만들어진 재단일수록 더 큰 필요를 느끼게 되는 부분인데, 선행사례들을 참조하면 시행착오를 줄이며 경험치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두 번째는 문화재단들의 네트워크가 단단해지면 새로운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기존 재단들이 각각 소속 지자체의 틀 안에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면, 재단들의 연합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지역문화재단들이 가진 고충을 집약해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각 재단이 해당 지역의 광역문화재단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부분이고, 국가단위의 문화정책을 제안하는 데 있어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세 번째는 문화기획자로서의 자기확인이다. 적지 않은 문화재단 실무자들이 한정된 예산과 각종 행정적 제약 등을 떠안은 채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기획자로서의 자부심이나 자긍심보다는 체념이나 자포자기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다른 재단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면,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국단위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좌표와 위상을 확인하고, 목표와 비전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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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문화재단
‘술잔, 스카프 그리고 컬러링’ 발표
▲ 익산문화재단 발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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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프로그램은 첫째 날의 사례발표와 둘째 날의 개방형 집단 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사례발표는 전국 문화재단의 우수/참고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로 모두 9개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먼저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민족문화과의 김진엽 사무관이 발표자로 나서 2013년도 문화부의 지역문화정책의 추진 방향을 소개해 주었다. 이어 경주문화재단에서는 ‘술잔, 스카프 그리고 컬러링’이라는 발표를 통해 술 축제에서 진행되는 시음행사를 위해 만든 술잔, 테이프 커팅을 대신하는 각종 축제에서 사용된 천을 재활용해 만든 스카프, 재단의 사업내용을 소개하는 컬러링 제작을 소개해 주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화성시문화재단은 ‘Dream UP! 어린이 아트 인큐베이터’라는 발표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으로 지역과 아이들에게 생긴 변화를 전해주었다. 문화부의 브랜드 대상을 받은 성남문화재단의 ‘사랑방문화클럽’과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 사례는 앞서가는 문화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부천문화재단은 지역문화재단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위탁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중심으로 지역활성화와 문화예술분야 청년 사회적기업의 만남을 소개해 주었다. 사회적경제가 여러 모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과 사회적경제, 청년이 빚어내는 지역활성화 과정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표했다.
익산문화재단과 춘천시문화재단은 각각 민관 파트너십 구축과 거버넌스에 대한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익산문화재단은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일구어낸 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어떻게 협력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인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주었다. 개별사업에서 출발하여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안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은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유용한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춘천시문화재단은 춘천시가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재단에 모두 이관하고 공무원을 대거 파견한 특별한 경우다. 이에 따라 춘천시문화재단은 문화예술지원사업 뿐 아니라 시립예술단 운영, 10여개의 지역축제 지원, 문화예술회관과 인형극장 박물관을 비롯한 시설운영, 예총 민예총으로 대표되는 예술단체 지원 등을 모두 도맡고 있다. 춘천의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지역문화예술진흥 지원기관’, ‘지역문화정책 싱크탱크’, ‘지역공동체/지역문화경제 인큐베이터’(2011 서울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정책연구 보고서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과제> 인용)라는 기초문화재단의 위상과 역할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마지막 발표를 진행한 성북문화재단은 신생재단으로서 지역문화재단의 3하 4말을 제안했다. 지역문화재단이 해야 할 3가지로 ‘법제를 찾아 만들어 하자’, ‘예산을 찾아 만들어 하자’, ‘사례를 찾고 만들어 하자’를, 하지 말아야 할 4가지로 ‘옥상옥이 되지 말자’, ‘옥내옥이 되지 말자’, ‘소모품이 되지 말자’, ‘규격품이 되지 말자’를 꼽았다.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이 제안은 청중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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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개방형 집단토론(Open Space Technology) 방식으로 순서가 진행되었다. 개방형 집단토론이란 참가자들이 저마다 원하는 주제들을 선정해 몇 가지 갈래를 잡고 그룹별 토의를 진행하는 토론 형식이다. 전체 참가자들의 발표와 조정을 통해 문화정책 분야, 지역문화콘텐츠 개발 분야, 신설문화재단 분야, 지원사업 분야 등 4개 파트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각각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된 토론을 통해 참가자들은 개별 재단의 현황을 공유하고 다양한 시사점을 얻어갈 수 있었다.
문화정책분야에는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 몰려, 문화정책에 대한 재단 종사자들의 관심을 알 수 있게 했다. 정책분야에서는 생활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동호회 활동, 조례 제정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또,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에 관해서도 예총과 문화원 등 사업관계자·담당부서 공무원·젊은 세대 등과의 소통, 시장 등 거점과의 연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토론되었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성남의 남한산성 뮤지컬이나 원주의 메나리 공연, 안동의 무용지애, 경주의 무녀도 등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자산을 활용한 지역 브랜드 공연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신설문화재단 분야는 문화재단 전환을 준비 중인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광명시를 비롯해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천안문화재단 관계자 등이 함께 했다. 참가자들은 신설된 조직 구성원들의 역량문제, 공무원 파견의 문제를 비롯해 재단설립과 초기운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다. 마지막으로 지원사업 분야에서는 지원사업의 공정성 확보 방안, 모니터링 요원 운영방안 등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지역문화재단들의 연대와 활약을 기대하며
이틀간의 포럼을 통해 확인한 것은 인프라와 예산을 포함한 각종 여건의 격차, 지역별 경험의 다양성, 역사의 길고 짧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과제들을 설정하고 서로 참조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이번 포럼과 같은 포맷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면 전국단위 문화재단 사업들의 표준모델을 서로 참조하는 것이 용이해지고, 새로운 시도나 사례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내용이 대동소이해지는 부작용을 우려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껏 부분적으로만 작동되었던 재단 간 네트워크가 큰 폭으로 확장되며 지역문화재단 정책의 새로운 판이 짜일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껏 많은 기초지자체 문화재단들은 여전히 시설관리에서 출발하고 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서서히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중개하고 결집하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또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한 조직으로 전국 지역문화재단 연합회가 올해 출범했다면, 실질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지식공유포럼이 스타트를 끊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식공유포럼은 2013년도에도 계속될 예정인 만큼, 지역문화재단들의 연대와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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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역문화재단의 새로운 역할과 방향을 위한 정책 컨퍼런스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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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태호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정책기획팀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문화정책과 연을 맺었다. 이후 문화예술전문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정책연구자를 오가며 활동하다 2010년부터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예술가가 못되면 예술가 근처에서라도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만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분주한 일상에 파묻혀 희미해질까 초조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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