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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나라들은 가깝고도 멀다. 최근 한류 현상을 매개로 아시아의 초국적 문화(특히 대중문화) 수용과 생산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띄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서로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문화정책을 이야기할 때 흔히 우리는 영국, 프랑스나 미국 등의 경험에 주목한다. 이들 나라의 문화정책은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우리의 문화정책과 맥락을 달리하기 때문에 모방은 물론이고 비교조차도 결코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은 늘 유럽과 북미를 향해왔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정책 논의에서 아시아는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주변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동아시아 문화정책에 대한 토론과 연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에 있어 공유점을 갖는 동아시아 이웃들의 경험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문화정책을 새롭게 인식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궤적에 근거한 ‘문화’, ‘예술’, ‘문화정책’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1월 10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숙명여대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국가의 문화정책, 현재 그리고 미래 전망’ 토론회는 작은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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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미나에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문화정책 연구자 5인이 참여해 네 나라의 문화정책에 대해 소개했다. 참여자는 안소니 펑(Anthony Fung) 홍콩중문대학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학 교수, 노부코 카와시마(Nobuko Kawashima) 일본 도시샤대학 경제학과 교수, 제리 류(Jerry Liu) 국립대만예술대학 예술경영문화정책대학원 교수, 이혜경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문화미디어창조산업과 교수와 홍기원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였다. 발표자들은 각 나라 문화정책의 특성을 일반론적으로 또는 사례 중심으로 설명했다.
먼저 안소니 펑(Anthony Fung)은 현재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통역사나 무협을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을 통해 나타난 민족주의 현상에 주목했다. 중국정부는 외국 게임에 대한 시장접근 규제 및 국내외 게임 전반에 대한 강력한 검열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재정지원 등을 통해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권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게임업체들도 적극적으로 민족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추세이다. 즉 전통을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의 생산은 중국 문화산업의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인 논리가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대만의 제리 류(Jerry Liu)는 대만의 문화정책 발달의 궤적에 있어 한국과 대만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특히 전후 문화정책이 민족문화 계발에 초점을 맞추어졌으며, 1960년대 말 문예부흥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졌고, 1980년대에 들어 규제완화 경향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문화정책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하였다. 대만 문화정책의 최근 변화로는, 2012년에 문화정책 총괄부서인 문화부가 탄생했다는 것과 문화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 커졌다는 것, 그리고 시민의 문화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문화기본법(cultural basic law)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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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 중인 노부코 카와시마
(Nobuko Kawashima) 도시샤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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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안소니 펑(Anthony Fung) 홍콩중문대학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제리 류(Jerry Liu) 국립대만예술대학 예술경영문화정책대학원 교수,
이혜경 킹스칼리지런던 문화미디어창조산업과 교수, 홍기원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 |
한편 노부코 카와시마(Nobuko Kawashima)는 일본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 대한 발제를 통해, 일본의 경우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함께 메세나 활동이 문화정책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통한 예술지원과 경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현실은 국가주도형 문화정책을 발전시켜온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많이 달라 보였다. 카와시마는 90년대 이후 불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메세나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의 예를 들며 메세나 활동의 지속성, 기업내부의 노하우 축적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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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가 경제개발, 사회발전의 기본 동력으로, 국가주도형 문화정책이 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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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혜경과 홍기원은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근본적인 특성에 대해 역사적, 제도적 시각에서 설명했다. 먼저 이혜경은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보이듯이 예술의 독자성과 자율성 획득이 아직도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 이유로 개발국가의 유산1), 예술의 정당성 문제와 예술계 내부의 갈등구조를 지적하며, 이 세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기원은 1980년대까지 국가주도, 관료주도로 이루어져온 문화정책이 1990년대 이후, 특히 1997년 이후에 시장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밝히고 향후의 과제로 문화복지의 문제와 더불어 경제성(상업성)과 공공성간의 균형 잡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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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미나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문화정책 간의 유사성과 이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일본의 민간, 시장위주의 문화정책은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의 국가주도형 모델과 뚜렷하게 구분되었으며, 역사적 요인 외에도 사회적 요인-기업의 문화자본 축적, 기업과 중산층 간 예술에 대한 합의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중국의 경우 문화산업의 상업적인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의 통제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상업적 논리와 통제의 논리의 충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소재 온라인 게임의 경우 이 두 가지 논리가 서로 조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사회의 민주화, 시장화의 진전은 두 논리 사이의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대만의 문화정책은 비슷한 역사적, 정치적 궤적을 보이고 있으며 민주화, 시민사회, 문화의 자율성, 문화권, 문화복지 등에 대한 문화정책의 주요 의제를 공유하고 있어, 이 두 나라 문화정책에 대한 다면적인 비교연구가 제안된다.
세미나 발제자들의 논문은 2014년 영국에서 출판되는 「Cultural Policies in East Asia: Dynamics between the State, Arts and Cultural Industries」(편집: 이혜경과 로레인 림, Palgrave Macmillan 출판사)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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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혜경의 연구분야는 문화정책, 창조산업, 문화소비, 문화 마케팅, 온라인 팬덤 (fandom)이다. 현재 로레인 림(Lorraine Lim)과 함께 「Cultural Policies in East Asia: Dynamics between the State, Arts and Cultural Industries」(2014, Palgrave Macmillan)을 편집하고 있으며, 최근 [Creative Industries Journal]의 ‘애니메이션 산업’ 특집호 (2010)와 [Arts Marketing: An International Journal]의 ‘문화소비자와 저작권’ 특집호 (2012)를 편집했다. 지금 진행 중인 연구로는 1970년대 한국의 예술정책, 한류, 창조산업 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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