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마리의 정가음악회-풍류애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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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월드뮤직 전문가 교류지원 사업’참여 후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로부터 ‘세계 무대 속 국악의 미래’를 주제로 한 원고를 청탁받았다. ‘글로벌 관객(Global Audience)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안 및 국악이 지속해야 할 것과 새로이 시도해야 할 것’에 대한 제언 요청이었다. 20년째 ‘월드뮤직 비즈니스(World music Business)’ 업계에서 일하며 상당 기간 네덜란드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소개해왔기에 ‘국악의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어 영광스러운 한편, 우려도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며, 절대적인 해결책이나 대안이 아님을 밝혀둔다.
서양인에겐 여전히 낯선 국악
약 7년 전부터 한국 앙상블은 다양한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고, 유럽 전역에서 한국 음악을 만날 기회도 많아졌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음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분명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시선으로 볼 때 국악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종교 음악이건, 궁중 음악, 또는 민속/샤머니즘 음악이건 국악은 대부분 서양인의 귀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피리나 태평소, 시끄러운 심벌즈나 꽹과리, 지나치게 느린 리듬, 비브라토(vibrato)를 강조하는 특성 등을 가진 국악은 피치(pitch․음높이)가 높고 찌르는 듯한 소리를 연출해 서양인에게는 일종의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따라서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국악에 익숙해질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음악과 달리 국악을 감상하려면 국악에 익숙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외국에도 국악을 향유하는 관객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물론 국악 안에도 풍물이나 사물놀이처럼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가 있다. 그렇다고 센터가 그런 특정 장르만을 지원할까? 한국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관객의 호응을 얻기 위해 ‘서구화’된 음악을 연주해야 할까? 오히려 그 반대에 해법이 있을 수 있다. ‘서구화된 음악’에 대해 먼저 논해보자. 일부 한국 아티스트들로부터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차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 좋은 음악은 마음에서, 영혼에서 나온다. 음악인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여다보고 그 음악에 충실한 연주를 해야 한다. 관객의 취향에 맞춰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면 곤란하다. 음악은 그런 방법으로 관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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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마리의 정가음악회-풍류애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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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 지닌 고유의 색채와 본질로부터 출발
필자부터도 서양 스타일의 음악을 듣고자 한국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양 음악은 네덜란드에서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고, 서양 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 더 쉽고 경제적이다. 그렇기에 한국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관객을 감안해 서양 음악이나 서구화된 음악을 연주하려 한다면, 그것은 전 세계의 반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도 시도할 수 없는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국악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채와 본질에 더 밀접한 음악을 권하고 싶다. 외국에서 한국 국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이는 없다. 따라서 국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개성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경쟁력이 있다. 복잡한 리듬, 깊은 비브라토, 산조(散調), 시나위, 궁중음악에서 나타나는 음과 음 사이의 포즈(pause) 등 국악은 진정 차별화된 음악이다. 그러한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 서양 음악과의 융합을 시도하면 한국 음악만의 고유성이 희석될 뿐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우는 대게 국악을 평범하게 만든다고 본다. 서양인들의 색다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국악이 바로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특히,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느린 리듬, 산조 및 궁중음악의 독특한 구성이 일부 관객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서구에서 슬로우 푸드(Slow Food) 바람이 분 것처럼 언젠가는 ‘슬로우 뮤직(Slow Music)’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로써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된 것 같다. 현재 센터는 보편적인 장르와 다소 생소한 장르 모두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다양한 마켓과 관객 접근 방식 모색해야
물론 콘텐츠 이외에 음악시장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관객에게 다가서려면 일단, 다양한 마켓에 접근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월드뮤직의 공연 양상을 보면 한국 국악은 주로 야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최근 들어 많은 한국의 국악 팀들이 다양한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으며, 풍물과 사물놀이 팀이 이중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방식이 바로 국악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실 (야외) 페스티벌을 찾는 관객들은 국악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층은 아닌 듯하다. 공연 자체를 즐기기는 하지만, 국악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굳이 티켓을 살 정도의 열정은 없는 것이다. 둘째, 한국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일부 전문적인 월드뮤직 공연계를 제외하고는 국악을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곳이 많지 않으며, 정기 공연을 하는 곳에서도 국악을 감상하는 관객이 많지 않아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차례 국악 공연을 기획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내 공연을 찾는 사람들은 음악 애호가들로 국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국악 콘서트는 대부분 적자로 운영된다. 최근 들어 국악을 실내 페스티벌에 초청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악이 정기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관객 확보가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서구의 공연 기획자나 기획사들, 한국의 뮤지션들, 매니저들, 기관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인도의 힌두스타니(Hindustani) 고전음악을 협력의 예로 들겠다. 최근 그 열기가 좀 사그라지긴 했으나, 힌두스타니 고전음악은 서구 세계에서 인정받았던 최초의 아시아 음악 스타일 중 하나다. 힌두스타니 클래식도 결코 쉬운 음악은 아니다. 분명히 학습을 통해 감상법을 익혀야 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시타르(sitār) 연주가인 라비 샹카르(Ravi Shankar)가 서양음악의 거장들이 공연하는 서구 팝&록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고, 비틀스(The Beatles)나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같은 유명 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시타르를 접목시키기 시작하면서 인도 음악의 전통적인 선율 양식인 ‘라가(Raga)’가 글로벌 관객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당시에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던 시대였다. 유럽과 미국을 순례한 인도의 철학자들과 인도 철학이 시대를 풍미하며 인도의 고전음악에도 힘을 실어 주었다. 지금도 국악과 같은 새로운 장르가 당시의 인도 음악처럼 서구 세계를 공명하리라 장담할 순 없다. 또 거문고나 해금, 아쟁을 자신의 음악에 한 요소로 접목시켜 향후 5년 이내에 국악의 시대를 열어줄 유명 뮤지션이나 작곡가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래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국악의 세계화는 힌두스타니와는 달리 좀 더 천천히 개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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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쇼케이스 거문고팩토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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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에 우호적인 오피니언 리더, 매체 운영자들 발굴해야
우선 유럽에서 국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중파 방송이나 라디오를 통해 국악이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며, 레코드숍에서도 아주 전문화된 형태의 싱글 앨범을 제외하고 국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국악에 심취한 기자들과 매체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라디오나 TV, 인터넷, 잡지, 신문 등 전국 채널의 기자들을 확보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국악을 알려야 한다. 이런 기자들은 이른바 ‘미디어 대사’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국악이 국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유통사들을 발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매된 음악의 가사와 내용 설명을 영어로 번역해 유통시킬 필요가 있다. 언론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티스트와 매니저들을 비롯해 한국인 국악 관계자들이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해외 아티스트나 관계 기관들과 협업을 하고 교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 한국에 갔을 때 판소리와 플라멩코(Flamenco) 협업 프로젝트 <처용, 판소리와 플라멩코를 만나다>(제47회 처용문화제 개막공연)를 본 적이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국악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혹은 페스티벌에서 공연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국악은 다양한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외국인들도 국악의 악기와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다. 물론 음악의 질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수한 판소리단을 선별해야 함은 물론 이에 필적할 만한 우수한 플라멩코 팀을 찾아야 한다. 보다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다른 형태의 협업에서도 이 원칙은 변함없이 적용된다. 또 협업 때문에 국악이 본질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협업이 본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당장 중단하는 편이 낫다. 음악적으로 충분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공연은 차라리 무대에 올리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국악을 정기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믿을 만한 공연 기획사와 적극적인 기획자들과 지속적인 교류 네트워크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미디어 대사’와 마찬가지로 기획자들 역시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 유럽시장에 대해서는 이 부분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며, 센터 가 ‘유럽월드뮤직축제포럼(European Forum of Worldwide Music Festivals, EFWMF)’ 같은 국제 음악 축제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럽재즈네트워크(European Jazz Network, EJN)와 같은 여타 다른 네트워크들도 있으며, 그 밖에도 국가적 차원이나 지역적 차원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들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세계음악을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레몬(Lemon)’이라는 네트워크이다. 미국이나 아시아에도 이런 새로운 흐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이미 형성된 신생 네트워크를 찾기 힘들다면, 월드뮤직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스스로 이러한 네트워크를 아시아에서 만들어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젠 유럽이나 미국보다 아시아의 자금 동원력이 더 좋은 편이며, 아시아에서도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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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영의 한국음악intro-렉쳐콘서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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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전문가 교류 필요
이러한 기획자나 기획사들 역시 팝&록 페스티벌과 같은 규모 있는 페스티벌 혹은 다른 여러 형태의 페스티벌에 국악을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악이 현대 음악 페스티벌이나 재즈 즉흥연주 페스티벌, 미니멀 뮤직 페스티벌, 심지어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관객층이 기존과는 아주 다르다. 또 각국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한인 커뮤니티에 접촉해보는 것도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밖에 삼성, LG, 현대, 기아와 같은 대기업들 역시 국악의 대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대만과 같은 나라들을 보면 파리에 대만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등 유럽에 사무소를 개소해 대만의 음악이 글로벌 관객을 만나는 플랫폼을 마련해왔다. 그 밖에 독일 문화원(Goethe Institute)과 프랑스 문화원(Institut Français) 등도 자국의 음악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일조해왔다. 다만 실제 운영 비용이 수익을 초과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선 콘텐츠의 경우 서구화된 국악이 아닌 국악 고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음악 생산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또 양질의 음악 창작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 국가 및 지역별로 지속 가능하고 믿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기획사나 기획자들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레코드 유통사들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이들이 국악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이들을 통해 다양한 음악시장과 공연 무대에 국악을 선보일 수 있다. 양질의 국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 한국 음악의 색채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 대사관과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글로벌 관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두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국악을 위한 무대와 세계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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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프란시스 드 수자(Francis de Souza)는 1992년부터 월드뮤직 관련 일을 해왔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트루펜극장(Tropentheater, Royal Tropical Institute)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2013년 5월부터 네덜란드 라사세계문화센터(RASA Centre for World Cultures)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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