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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지난 11월 23일 중국 베이징 통조우구에 위치한 송주앙미술관(Songzhuang Art Center)에서 한중 국제교류전 <관계의 근원(Roots of Relations)>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를 위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5명과 함께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송주앙을 방문하게 되었다. 최근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송주앙예술구와 그곳에서 머물렀던 사흘간 느꼈던 중국 현대예술의 현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외적 발전과 함께 내적 콘텐츠를 풍부히 지닌 송주앙예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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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앙미술관 외관
▲▲송주앙예술구의 전경
▲▲▲송주앙미술관에 열린 한중 국제교류전인 <관계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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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앙은 베이징의 중심인 천안문에서 동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베이징수도국제공항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798예술구(798 Space)와 함께 중국정부가 인정한 2개의 합법적 예술구 중 하나인 송주앙예술구는 중국정부에서 주도하는 ‘문화조현’ 정책과 송주앙의 ‘십일오’라는 발전계획을 통해 예술특화 구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연간 180억 원 정도의 정부 자금을 받아 미술관, 갤러리, 작가 작업실을 비롯한 문화예술 시설은 물론 호텔, 쇼핑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아직 대부분의 가정들이 석탄을 난방의 주연료로 사용해 밤이면 매캐한 연기가 도시 전체를 에워쌀 만큼 현대화가 더딘 곳이지만, 도시 곳곳에 다양한 시설들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향후 2~3년 내 798예술구만큼 성장할 수 있는 외적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송주앙예술구에는 이미 1백여 개가 넘는 갤러리 및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송주앙에 위치한 갤러리 및 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매년 ‘중국송주앙 문화 예술제(Cultural & Arts Festival of Songzhuang China)’가 성공리에 개최되어왔고, 올해로 9회를 맞이하면서 제법 예술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2016년에는 비엔날레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하니, 송주앙예술구는 앞으로 중국 현대예술계가 주목해야 할 지역으로 차근차근 성장해갈 듯하다.
이러한 외적 기반의 성장과 교통의 편리함 덕분에 2013년 현재 많은 예술가들이 송주앙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2009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송주앙 내 작업실을 둔 예술가가 5천여 명으로 추산되었지만 그 수가 빠르게 늘어 현재는 7천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밀집해 있다는 것은 송주앙예술구가 단지 허울 좋은 발전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음을 방증한다.
예술시장 키워낸 중국의 컬렉팅 문화
이러한 정부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국과 달리 국공립 주도에 의한 예술 성장보다 민간 주도에 의한 예술 성장이 두드러진다. 앞서 언급한 송주앙예술구에 대한 정부지원은 전시 및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이라기보다 도로 정비, 건축 등 토목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되고 있을 따름이다. 지방정부에 의해 건립된 송주앙미술관 역시 초기 약 5년 정도만 정부에 의해 운영되었고, 현재는 정부가 미술관 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예술이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큐레이터, 기획자, 작가, 그리고 컬렉터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컬렉터들이 예술시장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본을 투입하여 예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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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컬렉터들은 어떤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개인 작업실에 방문하여 작품을 보고, 개인 작업실에 있는 작품 전체를 구입할 만큼 통이 큰 투자를 한다고 한다. 또한 꾸준히 작가와 관계를 유지시켜나가면서 컬렉션을 추가한다. 여기에 더해 작가가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면, ― 중국에서는 개인전을 치를 때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초대받는 사람들의 교통비, 숙박비는 물론 개막식 당일 거나한 만찬을 치르기 때문에 일인당 2~3억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 작가는 평소 친분이 있던 컬렉터 및 큐레이터를 만찬에 초대해 자신의 개인전 소식을 알린다. 컬렉터는 이때 작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개인전 비용을 마련해준다. 게다가 이러한 대형 컬렉터 외에 일반인들도 쌈짓돈을 모아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이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중국 식당에서 발견하는 작품들은 대개 식당 주인의 예술 취향을 반영한 진품이니 중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작품을 눈여겨보길!).
이러한 대형 컬렉터들의 수집 씀씀이에 혹해 행여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갤러리 및 예술가들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국 문화에 대한 대단한 애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예술작품은 고대 중국 예술이고, 다음이 중국 현대예술과 해외로 반출된 중국 예술작품이며, 마지막이 해외 예술작품이다. 해외 예술작품 중에서도 선호되는 것은 유럽과 미국이라고 하니, 한국 예술이 중국에 자리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국의 문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풍토 덕분에 중국의 현대예술은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예술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송주앙예술구에 위치한 허원재(何汶玦) 작가의 작업실(왼쪽부터)
▲▲허원재 작가의 작업실 옆에는 다른 작가의 작업실이 한창 공사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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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예술가들의 성향
필자가 중국에서 느낀 두 번째 차이점은 대다수 중국 예술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센징동(沈敬东)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회화와 조각을 병행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회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컬렉터들이 회화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한 중국 예술가들 대부분은 예술가를 전업으로 삼기보다 사업 혹은 교수직과 병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 자체로 수입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일종의 부업을 통해 작업비를 충당한다. 그리고 이 부업은 대개 문화예술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은 사업 분야가 예술에 한정되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798예술구의 초기 창립자 중 한 명이자 사진작가인 쉬용(徐勇)의 경우 중국 최대의 인력거 회사 사장을 겸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그것을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업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예술가들 대부분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통해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중국 작가들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그만큼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단기간에 뛰어난 양적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질적 향상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컬렉터들의 취향에 따라 회화 분야만이 집중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에 의해 거대 규모의 자본이 문화예술계에 투입되고, 지속적인 자본의 순환이 이루어지다 보면 문화예술의 질적 성장도 함께 수반될 것이다. 반면 한국은 단시간 만에 높은 성장을 이룬 데 반해 여전히 양적 성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중국과 한국의 예술시장의 규모 차이도 한몫을 하지만 문화예술발전의 동력을 정부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문화예술분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좋은 문화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사회 전반적인 동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생산자인 예술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더 좋은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라도 예술가에 대한 폭넓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제공_유은순, 백정기, 이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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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weekly@예술경영] 독자모니터링위원. 유은순은 회화과와 예술학과를 전공한 뒤, 우연히 접한 니체의 사상에 매료되어 미학과로 진학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니체의 예술생리학과 예술비평’을 석사논문으로 제출하고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일상적 삶에서의 미적 경험의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남들이 다 어렵다고 말하는 시각예술을 어떻게 하면 보다 편하고 쉽게 다가가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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