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ㅇ ㅇ

▲홍대 복합문화공간인 ‘무대륙’에서 열린 독립잡지들의 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

소규모출판(‘독립출판’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므로, 이보다는 소규모 출판이란 표현을 쓰겠다)은 대규모 기획과 자본이 집약된 상업적 출판과 달리, 개인 혹은 소규모 집단이 스스로 출판물을 기획, 편집, 디자인, 제작해서 내놓는 간행물을 말한다.

소규모 출판이 하나의 ‘현상’을 넘어 진지하게 조명 받고 있다. 그 까닭은 소규모 출판이 단순한 외적 성장을 넘어 내적 도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소규모 출판은 다양한 생산자들은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계층과 이런 출판물을 유통하는 서점, 그리고 북페어까지 아우르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올해로 5회째 열린 독립잡지들의 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에서는 이틀 동안 무려 5,100개 팀이 참여해 1만 1천 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규모출판이 성장한 데는 첫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책 만드는 과정을 쉽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쇄 및 편집 공정의 단순화는 저비용으로도 출판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둘째, 다양한 생산자들의 등장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독립서점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가 운영하는 뉴욕의 아트북 페어(THE NY ART BOOK FAIR)같은 북페어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런 북페어에 참여했거나 혹은 체험해본 예술가들(스튜디오 수작, 미디어버스 등)이 국내로 돌아와 생산자로 합류하거나, 이런 잡지를 보며 자신의 시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잡지에 담아보고자 하는 이들의 실행이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유통망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책을 만들어 놓고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그 의미가 퇴색하기 쉬울 터. 200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소규모출판 전문 서점들은 단지 판매처뿐만 아니라 소규모출판 생산자와 독자들을 매개하는 공간으로서 하나의 ‘거점’이 되어 주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개최하고 있는 서교동 유어마인드나 현재 통인동으로 이전한 더 북 소사이어티를 비롯해 헬로 인디북스 등 다양한 유통채널이 생겼고, 심지어 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문예지적인 성격을 띤 잡지 [보일라]는 부산을 대표하는 소규모출판물이며, 부산 거제동에는 또한 프롬더북스라는 독립서점도 생겨났다)



소규모출판과 다양한 유통채널로 공생


미술이나 패션, 건축, 디자인부터 음악비평, 생태와 환경, 그리고 사회적 이슈와 문화적 현상에 대한 잡지에 이르기까지 소규모 출판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전방위적으로 문화와 사회현상을 다루는 [도미노]와 같은 잡지가 있는가 하면, [칠진], [SSE-zine]과 같이 아티스트 중심적인 잡지도 있다. 해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사진잡지 [Blink], 20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낸 [Headache], 패션에 대한 ‘잉여’적 시선을 담아낸 [록셔리]나 런어웨이 이면의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는 [디어 매거진], 음악신에서 나온 [칼방귀] 등 다루는 영역도 다채롭다. 이런 소규모출판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은 [싱클레어]다. 독자로부터 한 페이지의 원고를 받아 게재해온 이 잡지는 척박한 풍토에서도 13주년을 맞이했다.


▲ 대표적인 소규모 출판물 [Blink],[Headache],[칼방귀],[싱클레어]
(시계방향으로)



소규모 출판은 특히 잡지 형식이 많은데, 그것은 잡지가 가진 자유로운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기적 발행은 잘 이뤄지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비용이다. 지속적인 발행을 위한 물적, 인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서 출판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그렇다 해도 잡지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든다. 현존하는 대다수 소규모출판물들이 시각 디자인 전공 학생이거나 아티스트인데는 이런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디자인 비용의 절감).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 지속가능한 발간을 위해 제작자들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판매로 제작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이나 적극적 광고 유치를 택한다. 아예 [가짜잡지]는 독자를 후원회원으로 모집해 받은 후원금으로 그들에게만 잡지를 배포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또 부산의 로컬 매거진 [안녕, 광안리]는 협동조합을 꾸려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잡지 발행을 하고 있다. 어느 방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의 여건에 맞는 상황으로 즐겁게 꾸준히 발간하는 게 답이다. 동네잡지를 꾸려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오래 버텨 브랜드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면 다양한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소규모출판은 이른바 주류잡지나 간행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다. 그들의 다양성은 획일화된 취향에 균열을 내고, 출판문화의 저변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잡지 하나하나 놓고 보면 불완전하지만, 소규모출판이 매력적인 이유이다. 더 작고 더 변방으로 치우치고 더 참신한 다양한 소규모출판이 많이 나와 주길 기대한다.

정지연 필자소개
정지연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15년 이상 잡지와 책을 만들고 있다. [여성동아]와 [with]의 기자였으며,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해외소설 팀장으로 일했다. 2009년 6월 홍대앞 로컬매거진 [스트리트 H]를 창간했으며, 매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동네인 홍대앞 소식을 전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