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스테이션(Penn Station)의 오늘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시의 내부모습(사진제공_글린트)

▲ 뉴욕의 상징인 옐로우 캡과
펜스테이션의 입구

뉴욕엔 두 개의 기차역이 있다. 한 곳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Grand Central Terminal)이고, 다른 한 곳은 재빨리 사람들을 토해내는 펜실베이니아 스테이션(Pennsylvania Station, 이하 펜 스테이션)이다. 펜 스테이션(Penn Station)은 맨해튼 미드타운 웨스트(Midtown West)에 자리 잡아 뉴욕, 뉴저지를 비롯한 인근 도시에서의 통근자들을 하루 64만 명 넘게 수용하고 있다. 게다가 연방 철도국(Federal Railroad Administration)의 2013년 리포트에 따르면,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DC를 거쳐 리치먼드를 잇는 북동부 교통축(Northeast Corridor)의 연간 승객은 2010년 1천3백만 명에서 2030년 2천3백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업그레이드가 계획된, 미국 내 유일한 고속철 앰트랙(Amtrak)의 연간 승객이 2030년 2천6백만 명을 넘어설 거라는 예상을 더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의 유동인구이다. 이러한 유동인구와 우월한 지리적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2013년 1분기 부동산 개발 업체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 C&W)의 리포트에 따르면,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가장 싼 사무실 임대료를 내는 곳이 바로 펜 스테이션 지역이라고 한다.

왜 부동산 개발 업체에서조차 펜 스테이션을 저평가할까? 과장은 좀 있지만, 뉴욕 내 펜 스테이션의 환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기차역으로서 기본 역할을 못 한다느니, 지나치게 붐빈다느니, 더럽고 역겨워서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대형 병원 같다느니, 천장이 너무 낮다느니…… 즉, 펜 스테이션은 이동을 위해 별수 없이 가는 곳, 들어가면 조속히 빠져나오고 싶은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모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머물고자 하지 않으니, 그 가치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펜스테이션 (Penn Station)의 어제

사진1_하늘에서 바라본 펜스테이션(1910년~1920년에 촬영) ⓒ Library of Congress & Images via cbsnews.com

▲ 사진1_하늘에서 바라본 펜스테이션
(1910년~1920년에 촬영)
ⓒ Library of Congress &
Images via cbsnews.com

사실, 1910년의 펜 스테이션은 그렇지 않았다. 브루클린 미술관(The Brooklyn Museum), 모건 도서관 및 박물관(The Morgan Library & Museum) 등을 지은 맥킴, 미드 앤 화이트(McKim, Mead & White)의 예전 건물은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고전미를 갖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 미국 프로 농구장, 하키장으로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의 네 번째 위치가 현재 펜 스테이션으로 결정되면서, 그와 공존하기 위해 아름다운 역사를 허물고 지금의 모습으로 50년 넘게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얼핏 공적 자산으로 보이지만, 실은 돌란(Dolan) 가족의 사유 자산이다. 그들은 2012년, 50년간 특별 운영권이 만료되자 영구 갱신 신청을 했고, 뉴욕 도시계획위원회는 15년 동안 더 그 자리에서 운영해도 좋다는 허가를 주었었다. 그러나 행정상의 허점(허가된 15년 동안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펜 스테이션을 지나는 각 철도회사, 즉, 앰트랙(Amtrak), 롱아일랜드 레일로드(MTA LIRR), 뉴저지 철도(New Jersey Transit), 뉴욕 메트로 노쓰(NY Metro North) 등과 협상하여 재계약을 맺을 수 있고, 이런 종류의 계약은 복잡한 동의 절차 없이 기획부서의 허가만 받아 진행 가능함)으로 인해 15년은 곧 영구 갱신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펜 스테이션(Penn Station)은 또 다시 뉴욕커들의 스트레스로 남아있어야 했다.

펜 스테이션(Penn Station)의 더 나은 내일

이에 질세라 허가를 10년으로 바꿔야 한다는 시민 단체 주도의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3년 7월 초 뉴욕시로부터 10년으로 운영 기간을 단축하는 허가를 받아냈다. 필자는 지난봄부터 본 시민 단체의 캠페인을 지켜보면서, 그 방법이 세련되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기차역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펜 스테이션을 효율적으로 업그레이드함은 물론, 역 인근 맨해튼 미드타운 웨스트를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있는 장소가 아닌 ‘가고 싶고, 일하고 싶고, 머물고 싶은 장소’로 만들기 위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고려가 담긴 ‘창의적인 장소 만들기(creative placemaking)’를 위한 진정성 있는 캠페인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캠페인의 리더십을 보자. 엠에이에스(The Municipal Art Society of New York, MAS)와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인근 세 개주(Tri-State)의 도시계획정책지원기관 알피에이(Regional Plan Association, RPA)가 주체이다. 특히, 엠에이에스는 1970년대,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와 당시 뉴욕시장 로버트 와그너(Robert Wagner), 에이티엔티(AT&T) 건물(현재 소니빌딩)을 지은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 등과 뜻을 같이하여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지금의 모습으로 100년 넘게 지켜 낸 바로 그 예술문화정책지원기관이기 때문에 현재 펜 스테이션에 들이는 노고가 각별하다. 이들은 공히, 지금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펜 스테이션의 신규 디자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 이전 등과 관련한 도시 계획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둘째,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가 나섰다. 2013년 3월 20일, 『우연한 걸작(The Accidental Masterpiece)』의 저자이자 [뉴욕타임스]의 건축 비평가인 마이클 키멜만(Michael Kimmelman)은 칼럼을 통해 런던의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railway station)을 선례로 들어, 범죄의 온상이었던 역을 창의적으로 재건하면 구글(Google)의 유럽 본사가 자리 잡을 만큼 경제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숍 아키텍츠(SHoP Architects)의 어반 보울(Urban Bowl) 아이디어(왼쪽부터)
ⓒ SHoP Architects PC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의 동선에 따른 시간 개념을 적용한 ‘도시 속 도시 (A city within a city)’ ⓒ Courtesy of Diller Scofidio + Renfro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시의 내부모습(사진제공_글린트)

셋째, 직접 보여준다. 2013년 5월 29일은, 건축 사무소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 샵(SHoP Architects), 에이치 쓰리 하디(H3 Hardy Collaboration Architecture)와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 메릴(Skidmore, Owings & Merrill(SOM))이 새로운 펜 스테이션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이들은 각각 시간, 사람, 예술 그리고 자연을 담은 다양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발표했으며, 모두 장소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마이클 키멜만은 디자인 경쟁 입찰에 이어 4개 건축 사무소 파트너들의 토론을 직접 이끌기도 했다.

넷째, 시정부가 개입한다. 6월 19일에는 시청에서 열린 공청회(Public Hearing)를 통해 엠에이에스와 알피에이는 1960년대의 실수를 번복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고,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R. Bloomberg) 전 뉴욕시장 휘하 뉴욕시의회 대변인인 크리스틴 퀸(Christine Quinn) 등은 10년 제한에 공식적인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다섯째, 10월 17일 열린 엠에이에스의 토론회에서는 5월의 선수들과 함께 확대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2023년의 펜 스테이션을 두고 향후 10년간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틀간 세미나 중 하루를 꼬박 할애하여 학계, 언론, 금융, 시정부, 공공, 디자인, 시민, 자선 재단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공공 이익부터 실물 경제까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진단과 의견을 내놓았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한 매니저 디렉터는 줄곧 선투자에 대한 자금 회수 대책이 있는지 질문했으나, 공공 및 디자인 분야에서 온 사람들은 철학 및 물리적 기반 구조(infrastructure)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여 끝까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등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의견 충돌은 보였다. 하지만, ‘창의적인 장소 만들기’를 위한 의지만큼은 하나였다.

1) [Journal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Planners] Vol. 35, No. 4., 1969

셰리 아른스타인(Sherry Arnstein)은 자신의 저술 「시민 참여의 단계(A Ladder Of Citizen Participation)」1)에서 ‘시민 참여’는 권력의 재분배 없이는 공허하며, 비참여 단계의 조작(manipulation)과 치유(therapy), 형식적 참여 단계(tokenism)에서의 통보(informing), 자문(consultation), 회유(placation) 그리고 마지막 시민력 형성 단계(citizen power)에서의 파트너십(partnership), 권력 이양(delegated power), 시민 통제(citizen control)의 8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는 도시 계획을 할 때, 시민의 성숙도를 역으로 따져보는 척도로써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서울 곳곳에 문화 공간이 조성됐거나 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대학교 때 친구들 면회 가던 기무사에 지금은 서도호 작가의 집이 전시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결국은 뿌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 서울역 인근 용산구 서계동에도 극장, 스튜디오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노파심이 드는 것은, 그 공간을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소수의 엘리트가 즐기는 것이 돼서는 안 될뿐더러 지금 동시대의 예술은 시민 전문가(Civic Practitioner)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추세이다. 새로운 서울의 문화 공간들이 성숙한 시민의 참여로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담아 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통 큰 장소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해 본다. 그것이 다음 서울 방문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필자사진_장선문 필자소개
장선문은 서강대를 졸업하고, 금강기획, 미국 광고 대행업체(Leo Burnett), LG전자 서울 및 미국 지사 글로벌 마케팅 전략부서에서 근무했다. 현재 뉴욕 프랫(Pratt) 대학원에서 예술문화경영(Arts and Cultural Management)을 전공하고 있으며, 뉴욕 시공원재단(City Parks Foundation) 예술문화프로그램(Arts and Cultural Program)팀에서 근무 중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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