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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문화가 만드는 극장의 존재 방식
[해외동향] 일본의 소극장 분포와 운영 현황
▲ ‘더 스즈나리’ 소극장 전경(사진제공: 혼다극장 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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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화려한 대극장, 으리으리한 규모의 국공립 홀, 매달 공연을 올리는 대형 극단이 보유한 전국의 전용극장. 이런 것들을 보면 일본의 관극 문화는 매우 대중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도쿄에서 소극장 연극을 보러 다니다 보면 저절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이 소극장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주택가나 인적이 드문 도로에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극장이 하나씩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극장 문화거꾸로 보면, ‘대학로’라는 연극촌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가 더 신기한 사례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도쿄에도 연극촌이라고 불리는 시모키타자와(下北沢)라는 동네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극장의 개수를 세려면 열 손가락으로 충분하다. | |||||||
▲ 게키 소극장(사진제공: 혼다극장 그룹) |
시모키타자와는 시부야(渋谷)에서 전철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곳으로,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에 맛집과 옷 가게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 곳곳에 소극장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1982년에 개관한 혼다 극장(本多劇場)이 가장 유명한데, 386석 규모라 소극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극장이다. 그리고 더 스즈나리(ザ・スズナリ, 1981년 개관, 이하 개관 생략), 시모키타자와 역 바로 앞에 있는 에키마에 극장(駅前劇場, 1984년), 그 옆의 OFF·OFF 시어터(OFF·OFFシアター, 1993년), 게키 소극장(「劇」小劇場, 1984년), 소극장 라쿠엔(小劇場楽園, 2007년), 소극장B1(小劇場B1, 2014년), 시어터711(シアター711, 2009년) 등, 연극촌 시모키타자와를 상징하는 이 소극장들은 모두 혼다극장그룹(本多劇場グループ) 한 곳이 민영으로 경영하는 극장들이다. 1934년생인 혼다 가즈오(本多一夫)가 젊은 연극인들이 하고 싶은 연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개인적 바람과 함께, 1980년대의 소극장 연극 붐의 결실로 도쿄의 연극 중심지가 형성된 것이다. 혼다 그룹은 이 외에도 연습실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순으로, ‘혼다 극장’, ‘에키마에 극장’, ‘OFF·OFF 시어터’, ‘시어터 711’ (사진제공: 혼다극장 그룹)
그렇다면 이 연극촌 밖에 있는 수많은 소극장들의 사정은 어떨까?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생존이 가능한 일본의 극장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본의 관객들 성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마니아 문화는 일본의 소극장 연극계에서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연극학과 혹은 연극 관련 교육기관이 우리나라에 비해 지극히 적은 일본에서는, 주로 극단 내의 양성소나 워크숍 및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 연극인을 배출한다. 그래서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극단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팬들 역시 취향에 따라 ‘보는 연극’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는 극장’도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봤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지만, 혼자 오는 관객이 많고, 당일 티켓을 사기보다 주로 예매를 하는 문화라 제작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타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살려 시스템화한 극장의 사례가 하나 있다. 고마바 아고라 극장의 “극장지원회원”제도시모키타자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고마바 아고라 극장(こまばアゴラ劇場)이 그곳이다.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 근처에 있는 이 극장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 예술감독으로 있으며 극단 세이넨단(青年団)의 거점이 되고 있는 극장이다. 좌석 수는 110석이며, 고마바 아고라는 이곳뿐 아니라 이타바시(板橋) 구 무카이하라(向原)에 있는 아틀리에 슌푸샤(アトリエ春風舎)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틀리에 슌푸샤는 일반 맨션의 지하에 있는, 6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 아틀리에 슌푸샤 입구(사진제공: 극장 홈페이지)
기본적으로 이 시스템은 젊은 극단을 양성하고 후원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극장지원회원(劇場支援会員)’을 모집하는데, 이 극장을 후원하는 것이 곧 신인 예술가를 발굴하고 더 나아가 일본의 극장 문화를 생성하여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펼쳐 회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 고마바 아고라 극장(사진제공: 극장 홈페이지) 기획력으로 승부하는 ‘아틀리에 헬리콥터’고마바 아고라 극장과 같은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른 단계에 연간 프로그램을 관객에게 상세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관객들 사이에서 극장이 제작하는 공연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대중의 관심사나 유행을 통해 잡은 콘셉트로는 관객들을 낯선 골목까지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일지라도 자신들만이 누린다는 특권 의식을 줄 수 있는 아지트. 소극장이 그런 은밀한 매력을 갖는 것이다.
▲ 아틀리에 헬리콥터 극장에서 공연된 <언더스탠더블?(Understandable?)> 모습(사진제공: 극단 코탄다단)
결국, 극장은 관객에게 원하는 콘텐츠를 만나게 해주는 공간으로서 자기 역할은 한다. 기호가 분명하고, 취미에 한해서는 무한히 적극적인 마니아들에게, 오히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소극장은 대단히 매혹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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