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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예술계를 긴장하게 만드는 축제와 공간들
[해외동향] 동유럽 현대예술 거점 탐방
지난 11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센터스테이지코리아(Center Stage Korea),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한국문학번역원의 후원으로 루마니아 클루지(Cluj),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플젠(Plzeň) 및 프라하에서 <모두를 위한 피자>(김황 연출) 동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고작 20일 동안이었지만 직접 보고 경험한 동유럽의 축제와 투어 짬짬이 방문했던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시대를 바라보는 냉철한 무대굳이 번역하자면 시간예술축제 정도의 의미를 지닌 페스티벌 탕 디마지(Festival Temps D’Images)는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설립한 유럽 문화 예술 공영 채널 아르테(ARET)가 2002년 창설한 페스티벌로 프랑스, 독일, 루마니아, 헝가리, 포르투갈, 캐나다에서 각각 개최되는 페스티벌 네트워크이다. 각 국가별로 주최 기관의 성격이나 연간 테마는 상이하나 기본적으로는 영상이나 미디어 기술을 예술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가진 파급력과 효과성을 공연예술과 결합시켜 긴 생명력을 가진 예술, 사회와의 연결이라는 미션을 실현한다. 있는 그대로의 시선을 무대로, 악센트페스티벌체코의 ‘악센트 페스티벌’(Akcent Festival)은 프라하에 소재한 현대 공연예술 극장인 아르하 시어터(Archa Theatre)가 2010년부터 개최해 온 페스티벌이다. ‘아르카’는 ‘노아의 방주’라는 의미로 ‘홍수로 물에 잠긴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다’, ‘다양한 예술로서 사회를 지탱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아르하 시어터는 체코에서 처음으로 1991년 공모를 통해 예술감독을 선임하여 프로그램과 경영 전권을 맡긴 극장(국내에는 아르하 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글 맨 아래에서 관련 기사 링크를 확인할 수 있다)으로 현대 공연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미션으로 내걸고 있다. 악센트 페스티벌은 이러한 극장의 지향과 뜻을 함께하는 독일의 쉬쉬팝(She She Pop), 중국의 리빙 댄스 스튜디오(Living Dance Studio), 뉴욕 팔리시모 컴퍼니(Palissimo Company), 벨기에 헷 킵(Het Kip) 등 해외 유수의 컨템퍼러리 공연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온 플랫폼이다.
▲ 아르하 시어터 입구
올해 다섯 번째를 맞은 악센트 페스티벌은 ‘다큐멘터리 연극(documentary theatre) 페스티벌’의 표방이라는 큰 변화를 자처했다. 연출가이자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야나 스보보코바(Jana Svobocova)는 이러한 변화를 “예술과 사회 간 역할을 끊임없이 탐색해 온 페스티벌의 자연스러운 귀착”이라고 이야기한다. 올해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전쟁 전? 전쟁 후?(Before the war or After the war?)’를 테마로 여러 작품들을 선보였다. 어머니들과 딸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일상과 역사를 회고한 쉬쉬팝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아르헨티나의 비전문 배우들이 무대에서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76년 아르헨티나 군사 쿠데타의 피해자와 가해자 자녀로 연결된 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롤라 아리아스(Lola Arias) 연출의 <이후의 삶(My Life After)>, 체코의 한 마을에서 독일인 집단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펍(pub)을 무대로 옮긴 체코 연출 이리 하벨카(Jiri Havelka)의 <브라스밴드(Brass Band)>, 중국 밀수 루트를 통해 남북 젊은이들의 소통을 꾀한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 등이 소개되는 한편, 현재 진행형인 다양한 형태의 동시대 ’전쟁’과 예술의 개입 방식에 대한 토론, 다큐멘터리 영화/공연과 현실 간의 관계를 묻는 라운드 테이블 등이 열렸다.
▲ 악센트 페스티벌에서 김황의 기자 간담회 모습(왼쪽)과 롤라 아리아스의 <이후의 삶>공연 중(사진 출처: 악센트 페스티벌 홈페이지) 연대를 조장하는 공간들 | |||||||
![]() ▲ 뮈시 내부 |
<모두를 위한 피자>가 공연된 곳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뮈시(MÜSZI)’라고 하는 복합 문화 공간의 한 칸이었다. 뮈시는 우리말로 ‘문화, 커뮤니티 층(floor)’이라는 의미인데, 오래된 백화점의 한 층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쇠락 일로에 있는 옛날식 백화점이 한 층을 통째로 폐쇄했는데, 현재는 그 공간을 한 예술가가 임대하여 ‘문화/커뮤니티 층’으로 재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옛날 백화점’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상당히 넓은 공간에 셰어 오피스(share Office), 예술 단체나 시민 단체의 사무실 및 작업실, 공연장, 전시장, 카페 등이 있다. 기존 백화점 물품이나 가구를 재활용했기 때문에 ‘통일감 없이’ 꾸며진 이 공간은 늘 개방되어 있어 언제고 무언가를 ‘도모’하는 헝가리의 젊은 작업자, 액티비스트(Activist)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이다.
▲ 파브리카 드 펜수라의 내부와 외관
프라하에도 젊은 예술가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공간이 있다. 프라하 북역 근처, 한적하고 으슥한 철로 변에 그래피티(graffiti)로 건물 전체가 덮여진 미트 팩토리(Meet Factory)가 바로 그러하다. 음악 공연, 연극, 미술 등 장르 불문한 현대 예술을 발산하는 곳으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공용 공간(바, 자전거 수리점 등)이 함께 들어있다. 공간 자체는 한 예술가가 만들었지만 공간 운영과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 비영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레지던시와 교육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 미트 팩토리 외관(사진 출처: 미트 팩토리 홈페이지)과 내부
나라별로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합류’하면서 꿈꿨던 미래와 그 후 25년에 걸쳐 그들이 몸으로 체감한 현실의 차이는 동유럽 예술계를 오히려 냉철하게 자각, 혹은 긴장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겨우 보름에 걸친 경험이었지만, 그들이 구현하고 있는 세련되고 감각적이되 가장 ‘정치적인’ 현대 예술은 형식과 미학적 실험을 앞세우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직시와 이를 전하고자 하는 사명에서 모색되고 파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혼돈스러운 정치와 사회, 절망적인 경제적 상황에서 예술가이자 젊은 사회 구성원인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세우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었다.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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