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빌렘이 처음 발견한 라익스 운영의 실마리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했다.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아카데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으로, 일광이 좋은 공간, 작업하기 좋은 공간, 독서하고 사색하기 좋은 공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왕립시각예술아카데미, 이하 라익스)는 독일의 쿤스트할레나 보스턴의 MIT리서치센터와 비견될 정도로 아티스트 레지던시 기관으로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 40여 개국의 600여개 레지던시 기관의 국제적 연합체인 레즈아티스(Res Artis, 본지 52호 ‘2009 레즈 아티스 컨퍼런스’ 리뷰 참조)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조직사회학자였던 얀빌렘 쉬로퍼(Janwillem schrofer, 66세)는 네덜란드의 복합문화기관을 조성하는 활동을 하다가 1982년부터 2010년까지 28년간 라익스의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이곳을 성장시킨 사람이다.

경기창작센터의 국제운영자문위원이기도 한 그가 지난 2월 26일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멘토프로그램과 레지던시 운영에 관한 특별강연을 가졌다. 이번 특강은 두 개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몇 차례의 한국방문을 통해 한국의 여건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얀빌렘은 라익스의 사례가 ‘따라하기’가 아니라 ‘반추해보기’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직하게 상황을 인정하고, 필요를 탐지하라

제공 경기창작센터

제공 경기창작센터

첫 번째 강의는 라익스가 성장한 30년을 되짚어보는 ‘현재와 과거의 재해석, 미래를 모색하다’라는 주제였다. 라익스는 1870년대에 네덜란드의 미술가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나 미국과 영국 등이 미술의 주도권을 쥐면서 경쟁력을 잃자 네덜란드 정부는 1980년대에 기관의 폐지를 검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얀빌렘은 조직개편을 위한 임시관장으로 취임했고, 예술계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너무 긴 역사에 파묻혀 죽어가고 있었던 라익스를 재생시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얀빌렘이 선택한 방법은 밑그림을 없이 밤낮을 작가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작가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막막한 상황임에도 정직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변화의 조급함으로 자신을 내몰지 않으려는 방편이었다. 처음 그가 발견한 운영의 실마리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했다.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아카데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으로, 일광이 좋은 공간, 작업하기 좋은 공간, 독서하고 사색하기 좋은 공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러한 확신과 함께 첫 2년 정도의 유예기간동안 자연스럽게 운영방침과 목적을 마련했다. 즉, 라익스의 프로그램은 전문예술가들이 오는 곳이고, 엄선된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의 공간이며, 국제적으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는 것.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특성에 맞게 지원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요가 역할을 만들다

이는 규제적인 연역적 결정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귀납적 방식이다. 작가들에게 정해진 규칙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규칙들이 감지되면 전문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른 유연한 운영이라는 기본적인 방침이 마련된 후 라익스는 여러 단계를 거쳐 변화해왔다고 한다. 얀빌렘은 이러한 기본적이고 당연한 방법을 원칙으로 삼고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을 강조했다. 변화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1984년부터 2년간 방향전환과 조직개편을 하고, 86년부터 4년간은 100년 전의 국제적 지명도를 획득하겠다는 목표 아래 회복기로 잡았다. 다양한 지역에서 작가를 초청해 국제화를 지향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레지던시 기관이라는 타이틀이 생겨났고, 교육기관에서 육성기관으로 역할이 변화했다. 자국 작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감각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얀빌렘의 생각은 아카데미의 역할변화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활동을 위한 창작지원과 체류지원의 필요성을 느껴 천천히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얀빌렘은 10여년의 기간을 거쳐 작가에 대한 지원방식을 체재비, 여행경비, 작업비용으로 나누고 규정화 했고, 비로소 라익스는 공식적인 레지던시 시설로 마름질이 되었다.

이후에도 상황은 급변한다. 라익스를 거쳐 간 작가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 자국에 레지던시 기관을 설립하였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그 결과 1995년부터 라익스는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인 조직으로 변모했고 2000년 이후에는 네트워크의 조직력이 강해졌다. 그는 이러한 진전을 위해서는 기본, 즉 초기 비전의 구축 과정과 이 과정을 추적하여 반성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장기적인 인력운용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라익스아카데미 외관

라익스아카데미 외관

참여작가 토론 스튜디오
참여작가 토론 스튜디오
출처 라익스아카데미 홈페이지

독립적인 비전과 목표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과 평가

두 번째 강연은 레지던시 기관의 핵심기능인 작가선정과 운영에 관한 내용으로 ‘예술적 재능을 찾아서 : 기관과 작가의 결합을 위한 아홉 가지 절차’였다. 라익스는 현재 50여개의 스튜디오와 10여개의 공방시설, 10명의 전문기술지원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체재는 2년이 기본이고 연간 2천만원 상당의 체재비와 작업비가 지원된다.

제공 경기창작센터

제공 경기창작센터

인상적인 것은 라익스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얻고자 하는 ‘부가가치’였다. 그들은 이 부가가치라는 측면을 다음과 같이 설정해 정부를 설득했다. 2년간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질 높은 논의와 작품의 장을 구성한다는 점, 작가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작가로서의 사회적 포지션을 재정립하여 예술가의 ‘사회적 배출’을 촉진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곳을 거친 작가들과 계속 교류하면서 관계를 유지하여 다음 작가선정에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는 좋은 작가들의 선순환구조로 이어지고 이들 간의 시장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라익스아카데미의 위상제고로 귀결된다. 국내 레지던시 기관이 평가에 있어 늘상 듣기 마련인 경제적 부가가치, 재정자립도라는 측면을 여기에서는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는 이곳이 왕립기관이어서, 혹은 정치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예외적인 기관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예술기관이 어떻게 독립적인 비전과 목표를 가져야 하며, 평가에서 역시 그러한 근본취지가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은 라익스아카데미가 결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독일, 미국이 새로운 미술관을 짓고 약진하는 사이 네덜란드에는 현대미술의 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뉴욕, 런던의 시장의 위력은 막강했고 라익스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외부의 상황을 쫒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네덜란드의 임대료는 저렴했고 지역의 풍광은 고요했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은 조용히 머물 곳을 필요로 했고, 조용한 환경의 라익스에 머물면서 세심한 배려 속에 예술적인 발견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라익스의 차분한 역할 찾기는 오늘날 600여개 기관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모태가 되었다.


관련사이트
라익스아카데미 사이트(영문)

오세형 필자소개
오세형은 연극연출, 기획, 제작에 참여하였고,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역문화정책, 커뮤니티아트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고, 다원예술의 담론 활성화 및 예술가 육성에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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