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비용을 감안해 훌륭한 작품을 많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관객의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은 고작 서너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주의적 경향을 파악한다면 예술가들은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내용 전달을 '자제'하고 이보다는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비전을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 4월 5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페스티벌 봄이 공동주최한 ‘다원예술의 수용과 공간활용 방안’이라는 국제심포지엄이 진행되었다. 주최 측은 이번 심포지엄이 예술장르 간의 상호교류로서 동시대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다원예술’의 개념과 수용과정, 기획자의 태도와 입장, 관련 공간의 특성과 최신 경향 등을 짚어본다는 취지를 밝혔다. 덧붙여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가칭) 설립에 있어 새로운 예술 수용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했다고 한다.

심포지엄에서는 1994년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Kunsten Festival Des Arts더아프로 참조)을 창설하고 독일 2010세계연극제(2010 Theater der Welt더아프로 참조)의 큐레이터를 역임한 프리 라이젠(Frie Leysen더아프로 인터뷰 참조)이 &lsquo;다원예술의 수용과정과 사례&rsquo;에 대해서,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예술감독은 &lsquo;다원예술: 삶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탐구방식과 태도&rsquo;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또한 한스-페터 리처(Hans Peter Litscher)의 렉처 퍼포먼스 <세헤라자드가 말했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웃으면서 죽는다>가 진행되었고, 작가 정연두의 &lsquo;다원예술 작품 및 경향&rsquo;에 대한 발제 이후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창작의 의미, 그리고 매개자의 태도

프리 라이젠

프리 라이젠

프리 라이젠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술가나 큐레이터로서의 출발점이며,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공유하는지 또는 공유하지 못하는지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적 맥락과 동시에 지역적인 사고방식이 공존해야 함을 피력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절박함을 가지고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려는 시도 자체가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시작이며, 이러한 예술가의 도전은 사회적 비전인 동시에 &lsquo;전 세계를 위한 비전&rsquo;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예술에 대한 &lsquo;소비주의&rsquo;적 측면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관객이 미술관에 입장할 때 티켓을 구입하고 이에 대한 지불비용을 감안해 훌륭한 작품을 많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관객의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은 고작 서너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주의적 경향을 파악한다면 예술가들은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내용 전달을 &lsquo;자제&rsquo;하고 이보다는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비전을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관객들은 예술가의 미완성, 부족함, 실패의 과정조차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이 다루고 싶은 주제를 알고 있어야 하며, 큐레이터와 같은 매개자는 예술과 사회의 구조와 특성을 알고 이를 유연하게 하여 예술가의 요구가 충족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매개자는 이러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공간, 일정, 계획 등을 확정하는 와중에 예술가의 창작범위를 제한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를 가지고 예술가와 같이, 예술가를 중심으로 이를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어떤 경우든 멀리 있는 외국작가, 신진작가, 무명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프리 라이젠의 발제내용은 매우 쉽고 명료했다. 예술의 공급-매개-수요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 누구보다 신뢰감 있고 충만하게 이야기했으며 때론 따끔한 충고를 덧붙였다.

현대예술을 수용하려면 관점의 변화가 중요

김성희

김성희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예술감독은 그간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lsquo;다원&rsquo;이라는 용어를 둘러 싼 관점의 차이를 이야기했으며 발제 내내 &lsquo;멀티디스플리너리&rsquo;(multidisciplinary
, 여러분야에 걸친, 종합적인의 의미)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녀는 국제현대무용제(Modern Dance Festival, MODAFE)에서 경험한 장르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향의 축제를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lsquo;무용&rsquo;을 &lsquo;신체를 중심으로 한 모든 예술영역의 만남&rsquo;이라는 재정의를 통해 페스티벌 봄을 기획했고 연극이나 미술 분야에서 유입된 다양한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주류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행사로 페스티벌 봄이 자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배경으로 그녀는 장르와 장르 경계지점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발굴, 프로듀싱, 프리젠팅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여러 가지 예술형식을 소개하게 되면서 현대공연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축제의 의미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페스티벌 봄을 중심으로 소개된 여러 공연들에 대한 설명과 관련 상황들을 통해 &lsquo;현대예술의 문법과 태도&rsquo;에 대한 발제자의 의도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7년 페스티벌 봄에서 초청한 윌리암 포사이스의 <흩어진 군중들> 경우, 그를 안무가로서 주목해 온 한국 관객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만남이었다고 한다. 공연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무용수를 대신해 공간을 떠다니는 풍선의 움직임을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백남준아트센터 개관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설치 퍼포먼스로 로메오 카스텔루치 <천국>(2008)이나 페스티벌 봄에서 소개된 리미니 프로토콜 <자본론>, 크리스 콘덱 <죽은 고양이 반등> 등이 소개되었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방법론

한스-페터 리처

한스-페터 리처

이 외에도 한스-페터 리처는 렉처 퍼포먼스 <세헤라자드가 말했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웃으면서 죽는다>를 통해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중 &lsquo;스토리텔러&rsquo;(the storyteller)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21세기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살펴보자고 했다. 올해 페스티벌 봄에서 <웃는 소를 기다리며>라는 공연으로 국내 관객들을 만난 후 심포지엄에서 마련된 그의 강의식 퍼포먼스는 &lsquo;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rsquo;에 대한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맛보기의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라는 구조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기는 또 다른 형태의 독특한 예술표현으로 예술가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연두

정연두

작가 정연두는 자신의 작업들을 배경으로 다양한 장르와의 혼합과 새로운 표현형식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보라매 댄스홀>, <도큐멘트 노스텔지어>, <시네매지션> 등에서 작가로서 스스로 어떤 구조에서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길 찾기를 모색하고자 했던 사례들을 전달했다.

사람마다 개성이 모두 다르듯이, 예술작업 또한 그 개인이 하는 일인지라 표현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술가가 몰입하고자 하는 삶의 경험을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데 있어 관객은 예술가의 작업들을 두루두루 살펴봐 주면 어떨까. 물론 이러한 만남은 생소함에서 오는 불편함이나 묘한 갈등마저 일으킬 수 있겠지만 프리 라이젠이 말하는 매개자를 통해서라면 예술가와 관객 사이는 어느 정도 완충지대가 성립될 수 있으리라 본다.



사진_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경숙 필자소개
백경숙은 독립프로듀서이자 기획자로서 공연예술분야 예술가와 단체,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시대를 음미하며, 존경(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baekslife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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