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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연예술 네트워크인 현대공연예술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for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이하 IETM)의 봄 정기총회가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600여 명의 공연기획자와 아티스트들이 참가한 이번 총회에서는 각종 토론회와 소규모 미팅, 콘텐츠 회의, 그리고 각종 공연들이 부대행사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소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예술창작 및 경영 전반에 관한 실제적인 토론들과 더불어 현 공연예술계의 각종 이슈들이 논의되었다. 특히 환경문제, 경제위기, 민주주의, 정치계와의 관계 등 예술 밖의 사회와 예술을 연결하는 토론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화제를 모았다.
예술, 사회적 이슈와 만나다
최근 몇 년간, 경제위기와 환경문제는 유럽의 공연예술계에서도 주요관심사로 대두해 왔다. 특히 공연지원금의 대폭 삭감을 야기한 심각한 경제위기는 많은 예술관계자들에게 경제와 문화정책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불러왔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 또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문제로서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공연예술계에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도 있어왔다. 런던의 로열코트극장에서 공연된 <이설 주창자>(The Heretic)와 같이 기후 변화 및 오존층 파괴를 주제로 한 연극이 올려 지기도 했고, 공연계에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무대장치의 간소화 및 재활용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탄소배출량의 감소 차원에서 해외공연시 비행기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을 고려하자는 제의도 있었고, 관객 캠페인 차원에서 대중교통수단 사용의 장려, 심지어 자전거 사용을 권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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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ETM 행사장 로비
▲ IETM 총회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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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IETM 총회에서는 ‘석유 고갈, 생태계 파괴, 경제위기, 이들과 예술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워크숍이 첫날 열렸다. 50명 남짓의 참관자가 모인 가운데 ‘굿 트라이브’(The Good Tribe)라고 하는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주도한 이 워크숍은, ‘사회’ ‘경제’ ‘환경’이라는 세 키워드를 활동의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루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저소득층을 위해 창설한 소액대출전문 그라민은행(Gremeen Bank), 80년대에 창설된 사회적기업 연합인 아쇼카(Ashoka)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예술계의 사회적기업들에 대한 소개로 넘어가서 현재 경제 위기 상황에서 예술지원금 삭감에 대한 돌파구를 어떻게 찾아낼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론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 길어지면서 정작 환경오염과 관련된 논의는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다만,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문화예술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전제의 확인, 그리고 환경문제를 지역 커뮤니티와 공유해 사회적 책임을 가진 예술단체 및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예술가, 정치적 변화에 적응하다
최근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의 각종 정치적 사태와 경제위기로 인한 문화정책의 방향 전환을 지켜보면서 유럽의 예술계는 정치계와 새로운 관계 모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IETM 총회는 정치계와 연관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예술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워킹그룹의 토론에서는 정치적으로 첨예한 분쟁을 경험한 예술가들의 경험을 들어보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심각한 정치적인 내전을 겪었던 세르비아의 예술가, 밀란 루칙과 돔 옴라딘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했고, 토론자로는 카이로 소재의 공연예술 스튜디오 에마드 에딘의 창시자인 아메드 엘 아타르가 참여했다.
또한 최근 무라바크 전 대통령의 사퇴 후, 이집트의 공연예술인들이 자체 평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헌과 갑작스런 자유를 맞이한 이집트 예술가들이 느끼는 일종의 공황상태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캄보디아의 NGO 예술기관인 암리타(Amrita)의 창시자인 프레드 프룸버그의 경우는 전후 문화유산과 전통의 재수립 차원에서 전통무용 장르를 집중 지원하는 예술기관으로서 암리타를 창설하게 된 배경과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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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TM 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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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 개최된 세션에서는 ‘예술을 위한 정치적 로비’라는 제목으로 지난 2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정치계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연극놀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지원금이나 문화예술정책과 관련해 여러모로 정치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예술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인들과 대화의 기회를 마련하고, 일종의 로비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해까지의 논의였다.
올해는 이를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다 발전시켜 정치인과의 대화를 실제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연습해 보는, 가상의 정치인과의 대화가 마련되었다. 10명 남짓의 소인원이 모인 자리에서 정계의 대변자 한 명이 책상에 앉아 있고 나머지 참가자들이 예술지원금 삭감을 주제로 각 15여 분간의 논쟁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화의 방향은 국가적인 예산 삭감 차원에서 예술계의 지원금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정치인의 한결 같은 주장에 예술가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쪽으로 흘렀다. 때로 감정적으로 발전된 뜨거운 논쟁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의 사고와 언어가 예술계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자리로 그쳤다.
현실을 고민하는 예술, 여전히 문제는 남았지만
이외에도 둘째 날 오전에 댄서스후스메인홀에서 개최된 총회 토론에서는 ‘누구의 이야기리인가’라는 주제로 400여 명이 모여 사회와 문화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사회학 관련학자 및 전문가들이 사회적 정의, 사회적 행동과 무의식 등을 주제로 발제토론을 벌였다. 예를 들어 유태인 학살이나 최근의 정치혁명, 사회적 진화, 이민의 급증, 글로벌화 같은 주요 사회적 행동들이 실은 무의식의 발현과 많은 관련을 있다는 흥미 있는 논의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IETM의 토론들은 환경, 경제, 정치, 사회 분야에서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예술가 및 기획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의도인 듯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론이 시간과 사전준비의 부족으로 자리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그친 것이 아쉬웠다.
외부 전문가들의 경우 지나치게 자기 분야에 한정된 얘기를 자세히 하는 경우가 있었고, 예술관계자들의 경우에는 현장인들이 대다수인 탓이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국한된 사례를 소개하는 차원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토론의 시간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현장 작업에 바쁜 프로듀서나 예술가들이 사회의 각종 현상 및 문제들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동안이라도 예술계 밖 사회의 이슈들을 되짚어 본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듯 했다.
관련사이트
현대공연예술네트워크(IETM) 2011 봄 정기총회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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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명주는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콜리지 예술경영 석사를 마쳤다. 제1회 베세토연극제, 세계연극제97 서울-경기, 제1회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축제경영을 한 바 있으며, 서울예술단 제작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면서 프리랜서로 연극 및 뮤지컬 공연기획을 하고 있고, 번역가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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