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몹은 정보를 공유한 자들이 눈에 띄지 않게 군중 속에서 교감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관객들은 특정장소에 모여서 미리 녹음된 음원을 휴대전화, MP3 등 이동 통신기기에 다운 받고 이 음원의 지시에 따라 정처 없이 걷기도 하고 타인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스스로 영화와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내며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지난 6월 30일 ‘예술의 새로운 창작적 접근과 능동적 관객의 소통’(New Approaches, New Audiences)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국립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국제 컨퍼런스가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아시아예술극장 공연예술 작품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공간, 사운드,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여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해외 예술가들의 작품과 창작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패널로 참석한 국내 예술가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였다. 지루한 장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미술, 연극, 거리예술, 축제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참석이 눈에 띠었다.

자유로운 즉흥성 강조

트리스탄 샵스

트리스탄 샵스

영국 극단 드림씽크스피크(Dreamthinkspeak)의 예술감독 트리스탄 샵스(Tristan Sharps)는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공공건물, 백화점 등 특정 공간을 주요 작업 장소로 선택하여 영상,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장르가 혼합된 공연들을 선보여 왔다. 그는 아시아예술극장이 제작하고 있는 한국, 일본, 영국이 참여하는 공동제작공연 <시작과 끝>(In the Beginning Was the End, 가제)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컨퍼런스에서 트리스탄 샵스는 안톤 체호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벚꽃 동산>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 <잠들기 전>(Before I sleep)의 전 공연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마치 공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이 작품은 극장이 아닌 백화점이란 특정 공간의 구조와 환경을 밀도 있게 활용했으며 동시에 세밀한 디자인 작업과 첨단 영상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실제 공연에서 관객들은 백화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정교한 공간 구성과 그와 동일한 미니어처와의 대비 등 다양한 이미지와 설치물, 퍼포먼스를 만나는 일련의 여정을 겪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을 창작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여기며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작품이 매우 유연하게 변화한다는 부분이었다. 연기자들은 공연 첫 주를 마치 리허설의 마지막 주처럼 생각하며 관객 각각의 다양한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기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즉, 연출자가 상황적 구조만을 만들어 놓으면 연기자들이 그 구조를 중심으로 관객과 상호 소통하며 즉흥적으로 연기하기 때문에 공연은 계속 신선하고 역동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동시대 테크놀로지의 수용

또 다른 예술가 던컨 스피크먼(Duncan Speakman)은 영국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모바일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는 플래시몹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서틀몹(Subtlemob)이란 작업방식 등을 통해 관객이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공간과 소리를 경험하게 만든다. 플래시몹이 불특정 다수가 미리 정한 약속대로 일정한 시간에 공공장소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사라지는 집단행동이라면, 서틀몹은 정보를 공유한 자들이 눈에 띄지 않게 군중 속에서 교감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작품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As if it were the last time)에서 관객들은 특정장소에 모여서 미리 녹음된 음원을 휴대전화, MP3 등 이동 통신기기에 다운 받고 이 음원의 지시에 따라 정처 없이 걷기도 하고 타인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스스로 영화와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내며 &lsquo;영화적 경험&rsquo;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관객들은 그룹으로 나뉘어서 각기 다른 음원의 지시에 따라 배우와 관객의 역할을 서로 번갈아 맡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타자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새로운 공연제작의 플랫폼

<예술의 새로운 창작적 접근과 능동적 관객의 소통> 국립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국제 컨퍼런스 현장
<예술의 새로운 창작적 접근과 능동적 관객의 소통> 국립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국제 컨퍼런스 현장

벨기에 브뤼셀을 중심으로 무용,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활용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딥블루(Deep blue)의 예술감독 하이네 아브달(Heine Avdal)은 공연 공간과 공연에서의 관객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연 공간은 관객과 연기자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공간이 이들의 상호소통이 가능하도록 인터페이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최근작 <당신의 현 위치>(You are here)에서 공연 초반부에 관객들은 객석에 앉아 동일한 관점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획일화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각기 다른 상자를 받게 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자의 정보를 다른 관객에게 전달하면서 공연의 핵심은 무대에서 객석으로 옮겨진다. 이후 영상기법을 통해 무대와 객석은 계속 변모하고 마지막에 관객은 자신들이 받았던 상자가 자신들이 앉아 있던 블랙박스 극장의 미니어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 극장 모형 안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관객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직접 보게 되는 것이다.

2004년 창립된 다원예술 공연 플랫폼 더플레이그라운드 엔즈 엘티디(The Playground NZ Ltd)의 예술감독인 샘 트루브리쥐(Sam Trubridge)는 디자인이 공연 구상 및 창조 방법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lsquo;공연 디자인&rsquo;(Performance Design) 개념을 중심으로 대본, 오브제, 빛, 공간, 미디어 테크놀로지, 연기자의 신체, 관객을 조화롭게 연계시키는 작업들을 시도해왔다. 컨퍼런스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 설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lsquo;퍼포먼스 아케이드&rsquo;(Performance Arcade)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퍼포먼스 아케이드는 &lsquo;블랙박스&rsquo; 공연장과 &lsquo;화이트 큐브&rsquo; 미술관을 거부하고 공공장소에 컨테이너를 설치하여 그 안에서 설치와 공연 등을 제작해 선보이는 새로운 공연제작 플랫폼을 제시하고 있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역동적인 환경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공간과 관객과의 새로운 역학관계

패널과 플로어 토론에서는 주로 창작 과정에 있어서 참여자들의 관계 구조, 공연자와 관객과의 관계성에 대한 것이 쟁점이 되었다. 특정 공간 연극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 수용하는 공연들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공동작업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극본, 연출, 배우, 스태프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공연 제작의 위계구조와는 달리, 참여자 모두가 자신의 작업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트리스탄 샵스는 지적하였다. 더불어 관객과의 소통이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특정 공간 공연의 특성을 언급하며, 관객은 소비자(consumer)인 동시에 제작자(producer)의 역할을 겸하는 작품의 일부라고 주장하였다.

하이네 아브달은 공연 제작 과정에 있어서 수평적 역학 관계를 강조하며 사운드 아티스트의 역할을 예로 들었다. 사운드 아티스트가 단지 공연 작품에 음악을 입히는 제공자가 되기보다는 공연 자체를 창작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모든 공연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직적 시스템에 근거한 사고를 지양하고 공연과 관련된 모든 기존의 요소들을 동등한 위치로 재평가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습적인 공연들의 일방향 소통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샘 트루브리쥐는 자신의 작품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예로 들어 대답하였다. 레스토랑처럼 꾸며진 공연 공간에 들어선 관객들은 레스토랑이란 공간과 자신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웨이터로 분한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 공연 안에서 자신이 식당에 온 손님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즉 공간, 테크놀로지의 적절한 활용, 오브제, 연기자들의 유기적 조합이 관객들의 능동적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새로운 창작적 접근과 능동적 관객의 소통> 국립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국제 컨퍼런스 현장 <예술의 새로운 창작적 접근과 능동적 관객의 소통> 국립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국제 컨퍼런스 현장

우리 공연계의 과제

비관습적 공연제작 과정, 공간 개념의 변주, 관객이 관람자인 동시에 행위자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과 관객의 관계 맺기 등 정확한 방법론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운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컨퍼런스 기간 내내 우리 공연계의 현실에 대입시켜 보느라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과연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인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면 작품을 끝까지 완성시킬 수 있을까?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번 컨퍼런스가 새로운 기술 결합을 통한 공연제작의 사례를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것에 많은 참여 예술가들이 공감했다. 하지만 새로운 제작 방식과 공연 형태를 지향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눈에 띠기 시작한 우리 공연예술계의 현 시점을 감안할 때, 컨퍼런스에서 제기된 이야기들을 우리의 상황에 맞는 언어와 방법론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다고 본다.



사진제공 아시아 나우



황혜신 필자소개
황혜신은 영국 리버풀 공연예술 인스티튜트(The Liverpool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에서 무대기술 및 제작을 전공하고 베세토연극제, 한전아트센터,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과천한마당축제 등에서 일하였으며, 현재는 독립기획자이자 한국거리예술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hwangfunky4@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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