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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중부지역인 달라르나(Dalarna)는 스웨덴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격인 곳이다. 울창한 숲과 함께 이 지역 최대 호수인 실란 호수 주변으로 고유의 농가와 공예품, 민속음악 등이 지역축제와 연계되어 전승되고 있다. 올해로 22회째를 맞이한 에쓰노 스웨덴(Ethno Sweden, 7월1일~10일)사이트가기은 달라르나 내 리조트 지역인 레트비크(Rattvik)에서 진행되는 음악캠프다. 십대서부터 이십대까지 세계 전통음악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 열흘 동안 온종일 음악에만 파묻혀 지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노래하는 베짱이들이다. 그래서 어둠이 증발된 북구의 백야를 이백프로 이상 만끽하는 이들의 보폭을 일하는 개미들이 좇기에는 체력적으로 상당한 피로도가 쌓이는 일이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정신적 치유를 받기에 가능했다.
뜨겁게, 자유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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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비크 내 초등학교를 캠프장으로 이용한
에쓰노 스웨덴, 그룹별 연습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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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노 스웨덴의 프로그램은 각국의 참가자들이 자국의 민속음악을 가르치고 배우고 이를 연습해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6명의 리더들이 있지만 참가자들의 수업에서는 같은 입장에서 음악을 배우고, 공연을 위한 연주편곡과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을 도와준다. 카리스마형의 리더이기보다는 이들은 참가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친구처럼 지낸다. 올해 14개국 96명이 참가(규모는 매년 비슷하다)해 이들의 연주목록은 14곡이 되었다. 캠프 초반 4일 동안 그룹별로 배정된 1시간 가량의 수업과 3~4번의 리허설을 가진 후 이들은 달라르나 내 축제인 빙쇼스타만(Bingsjöstämman)과 국제음악축제 뮤직비드실란(Musik vid Siljan), 스톡홀름의 야외민속박물관 스칸센(Skansen)에서 공연을 한다.
참가자들의 기량은 각양각색으로, 한 번의 수업만으로도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는 프로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일반인들도 캠프에 참가한다.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 하물며 기량의 격차도 있지만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들이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평화롭고,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이, 개인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 처음 참가하는 에쓰노 스웨덴에 키네틱국악그룹 옌 소속의 해금 연주자인 강둘이 씨와 별樂의 가수 공미연 씨가 합숙이라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각국의 음악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또한 한국전통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런던대학 박사과정에서 민족음악을 연구하는 대금연주자 김혜림 씨가 학술발제를 위해 캠프에 합류했다. 전통음악인으로서 다양한 민속음악 음악가들을 스스럼없이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라마다 다른 음정과 연주법, 음악적 교육방식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음악이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교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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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들을 연주하는 바이킹의 후예들
과거 척박한 기후의 농업빈국을 탈피해 ‘스웨덴 복지모델’로도 유명한 스웨덴의 7월은 풍요롭고 나른하다. 잉그리드 베르히만 감독이 보여준 사색적이며 우울한 이미지는 이 시기 만큼은 예외로 두는 편이 좋다. 한 달여의 바캉스 기간 동안 이들은 태양 아래의 열기를 소박하게 즐긴다. 요트와 캠핑의 나라 스웨덴, 아바와 카디건즈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밝고 맑은 분위기가 이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스웨덴인들의 민속악기인 피들fiddle, 바이올린 류의 현악기이 있다. 스웨덴인들은 프로 연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음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악기를 다룬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이면 가족 밴드가 되고 악기 하나 둘러매고 여행을 하다 다른 여행자들과 만나 캠핑장에서 밴드를 결성하기도 한다. 엘리트 위주의 교육정책이 아닌 그야말로 일반화된 국민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음악애호가 층이 두터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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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피들러축제 빙쇼스타만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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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쇼스타만에서 진행된 한국음악 미니콘서트 |
캠프 기간 레트비크 내 인근 마을에서 벌어지는 빙쇼스타만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민속음악 축제로 7~80년대는 6만 명 정도의 피들러가 참가했다. 올해는 단 하루에만도 5천 명 가량이 모여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온종일 피들과 민속악기를 연주한다. 캠프 참가자들 중 스웨덴 참가자가 절반가량이며 이들 대부분이 피들러인 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사실 에쓰노 스웨덴은 자국의 젊은 음악인들에게 다양한 세계민속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환기시켜준다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에쓰노 스웨덴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이 ‘에쓰노 월드’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에쓰노 영국, 에쓰노 체코, 에쓰노 크로아티아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중국 등이 에쓰노 월드에 가입해 자국에서 이러한 음악캠프를 개최하려고 준비 중이다.
다름을 알 수 있는 만남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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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쓰노 스웨덴 참가자
▲ 스칸센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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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노르웨이 우퇴위아섬에서 벌어진 극악한 총격테러는 노동당청년회 여름캠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감행된 일이다. 매년 여름이면 캠프 참가자들은 이 섬에 모여 다양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토론하고 논의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배웠다. 민주시민의 일원이 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듣고 경험하는 것이다. 획일화나 집단화를 양성시키는 군대문화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의 미덕을 실천하고 미래를 위한 꿈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에쓰노 스웨덴 역시 참가자들의 동기는 다르지만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음악적 열정과 긍지를 가지고 이곳에 참가한다. 캠프 기간 동안 겪게 되는 다름과 차이를 통해 자신이 앞으로 선택해야 할 음악적 비전을 스스로 확인하고 인정하게 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격려와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쓰노 스웨덴은 정부지원과 EU기금이 내년부터는 전액 삭감되어 22년간 운영되어 온 캠프의 운영이 아직 불투명하다.(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재정악화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예산을 줄이고 있다.)
비단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이렇게 전 세계를 감싸고 있는 위기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음악을 통한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포용의 언어임을 확인시켜 준 에쓰노 스웨덴의 철학만큼, 삶의 오류를 음악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현듯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음악이 생각난다.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찾아, 신념을 찾아 오랫동안 항거해 온 이 위대한 음악가를 잉태시킨 그리스는 존중받을 만하다. 또한 이곳에 모인 젊은 음악가들 중에서도 장차 자국의 음악적 토양에서 보편적 감수성을 탄생시킬 그런 음악가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한편, 우리의 전통음악가들이 세계 음악인들 사이에서 한국음악과 음악가로서 인정받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음악과의 만남을 자유롭게 포용할 수 있는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싶다. 도제식 수업방식과 엘리트 위주의 교육환경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문제시한다는 건 너무 원론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적 만남과 경험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는 퓨전이나 혼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료하게 자신의 음악 좌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다름을 알 수 있는 만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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