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극장에서 진행중인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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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는 문화공간 숨도는 2011년 2월에 오픈했으며 서강대학교 근처 신수동에 자리 잡고 있다. 문화공간 숨도의 겉모습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북카페와 그리 다르지 않다. 1층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 너머로 외국의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큰 책장과 카페 그리고 작은 전시공간이 보인다. 일견 스타일 좋은 카페를 연상시키지만 안으로 쑥 들어가 보면 그 공간을 채우는 프로그램이나 운영진의 철학은 그보다 훨씬 진지하면서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 공간을 방문하고 나서 훨씬 나중에야 대한불교진흥원에서 문화공간 숨도를 만들었고 1층이 전부가 아니라 건물 곳곳에서 영화제나 아카데미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대부분의 문화공간들이 지자체의 문화재단이나 기업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반면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이런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에서 불교적인 색채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와 예술로 인연을 맺다
실제로 문화공간 숨도는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희망의 자연 네트워크’에서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다. 제인 구달의 저서인 『희망의 자연』에서 이름을 딴 이 조직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실생활에서 문화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공간이 설립된 배경에 대해 숨도 기획팀장 박고은 씨의 말을 들어본다.
“숨도를 운영하는 운영진도 불교도는 아니나, 불교철학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 사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과 불교를 알고 싶은데 기존의 불교는 거부감이 있고 재미없어 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불교의 사상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대한불교진흥원도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젊은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길 원했고 그것이 ‘희망의 자연’ 그룹과 인연이 되어 이렇게 숨도가 설립되었다.”
일방적으로 종교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본질을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곳,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의 뜻이 전달되는 과정은 이상적인 것으로 들린다. 물론 이 목적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 공간이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지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숨도의 프로그램과 공간 구성은 그 어떤 문화공간들 보다 새롭고 참신하다. 이제 그것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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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과 7층을 잇는 유기적 공간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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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페와 7층 아카데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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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숨도는 책 극장, 카페 싯따, 작은 전시관, 아카데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극장은 책과 관련된 연극, 퍼포먼스 등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숨도 1층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대부분은 운영진의 취향에 따라 그들이 직접 선정한 것들이다. 대부분 인문, 철학 서적이지만 중간 중간 디자인이나 예술 관련 책들도 눈에 뛴다. 매달 운영진들이 직접 손으로 쓴 책에 대한 코멘트도 함께 전시되는데 책에 대한 각자의 애정과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작은 전시관은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두 개의 티셔츠≫라는 이름의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디자인,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티셔츠를 만들고 이를 전시했다.
아카데미 공간은 작은 세미나를 진행하는 나눔채, 큰 규모의 행사를 위한 작은 강당 그리고 구름도원으로 이뤄져 있다. 구름도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 구조로 다도나 명상, 요가와 같은 종류의 강좌를 위한 공간이다.
숨도 운영진은 스스로를 소규모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1층과 7층의 공간을 합친 숨도의 공간은 그리 작지 않다. 숨도를 구성하고 있는 전시관, 카페, 책장, 세미나나 강연을 위한 공간은 실질적인 목적과 가능 하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공간들은 독립적으로 떨어져서 운영되기보다는 신체의 여러 기관들이 자기의 고유한 역할을 가지면서 우리 몸의 일부로 연결되는 것처럼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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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가 좋은 이유
문화공간 숨도의 달력은 바쁘게 돌아간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진행되고 있던 ‘선풍기영화제’는 화려한 것만을 쫓는 지금의 문화행사들을 살짝 비트는 숨도의 기획의도가 잘 살아 있는 행사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어놓고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자유롭게 영화를 즐기는 영화제이다. 영화제라는 것이 원래 영화를 즐기기 위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선풍기영화제는 영화 자체를 즐기자는 목적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신청한 20명의 관객들이 신발을 벗고 작은 강당에 들어가면, 그곳에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거나 누워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선풍기 바람을 느끼면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환경과 우리를 함께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영화제이다.
‘환승학교’는 올해 5월과 6월에 진행된 행사로 기존의 아카데미나 진로상담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참여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는 분야별 입문 강좌이다. 문화정책, 문화이론, 문화인류학, 다큐멘터리, 미디어아트, 잡지, 전시 기획 등 전부 9개의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로를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 2기 프로그램이 있을 예정이다.
올해 가을에 있을 ‘역행여행’은 운영진이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젝트이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역행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무조건 앞으로 달려갈 것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역행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역행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운영진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행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다고 한다. 참여자들은 1층과 7층, 계단 곳곳과 옥상까지 전부 11개의 트래킹 코스를 경험하게 된다. 건물을 하나의 산으로 설정했다는 사실도 신선하지만 그 안에서 트래킹을 한다는 상상은 진실로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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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영화제 |
선풍기영화제 관람 매뉴얼 |
숨도에는 불교적인 색채의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대부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기획팀장 박고은 씨에 의하면 외국에는 붓다바Buddha Bar와 같이 불교적인 것을 트렌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을 봐도 불교에 대한 관심에서 아시아를 방문하고 체류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젠 렉쳐Zen Lecture 시리즈가 대표적인 불교프로그램일 것인데, 영어로 진행되는 강좌식 프로그램이다.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참여한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예술강좌도 있다. 첫 번째 강좌는 불교미술에 대한 것이었는데, 역시 불교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숨도의 프로그램들의 근본에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으며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론도 심각하지 않다. 기존의 시선과 사고방식을 약간씩 비틀고 그 안에 유머와 재미있는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숨도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또한 머리로만 사고하거나 감각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쓰고 신체를 통해 무언가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숨도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느슨하지만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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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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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간의 협업이나 간섭이 심해지는 지금 상황에서 문화공간 자체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소위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말도 이런 추세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하나의 공간 안에 배치한다고 해서 복합성이나 복잡성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발하는 일이다.
문화공간 숨도는 대한불교진흥원이라는 종교적 배경 안에서 느슨하지만 확실한 목적을 세워놓고 운영되고 있다. 운영진은 지금 우리사회 안에서 소규모 문화공간이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인지하고 있으며, 진흥원 측은 자율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운영될 수 있도록 운영진을 신뢰하고 있다.
물론 숨도가 우리사회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을 열고 프로그램을 운영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기획하고 풀어놓는 프로그램들의 느낌이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운영진이 밝히고 있는 숨도의 여러 목적 가운데 하나인 ‘도심 속의 생태적 라이프스타일을 복원한다’는 말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슬로우라이프나 웰빙문화와는 또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바쁜 일상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여유를 찾자는 목적은 유사하지만,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 목적이 공허한 수사를 넘어 실질적인 효력을 가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서점을 가장한 프로젝트 공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숨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공간에 대해서 누군가 설명을 요청할 때 우리는 그 공간의 쓰임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쓰임새가 남다른 공간들도 있다. 혹은 쓰임새라는 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공간도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운영하는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기획한다기보다 ‘지금’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그 안에 풀어놓고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도출되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이 쓰임새는 중요하지 않다. 책이 있기 때문에 판매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점의 외형을 띠고 있을 뿐이다.
필자에게 문화공간 숨도에 대한 인상은 이와 비슷했다.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구성은 치밀하지만 그 계기들은 느슨하고 자율적인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찾아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참여자의 몫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과시하기를 강요한다. 그것을 통해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혹은 열등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공간 숨도는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그 감춰진 것들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그 계기가 더 자주 찾아오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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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경용은 1975년 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이론과 프로듀싱을 공부했다. 독립출판사인 미디어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마포구 상수동에서 서점이자 프로젝트 스페이스인 더북소사이어티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 출판을 비롯해 소규모로 만들어지고 뿌려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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