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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민간과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의 영국 정부의 문화정책에 최근 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영국예술위원회는 지난 9월, 맨체스터에서 디아스포라 예술인 중심의 아트마켓인 데시벨(decibel Performing Arts Showcase)본지 127호 해외동향 참조 학술행사의 일환으로 크리에이티브 케이스 포럼을 주최하고, 10년 간 영국예술위원회의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비전보고서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예술을」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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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파나이투 영국예술위원회 다양성문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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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주의에서 문화복지로
앞으로 영국 문화정책의 중심축이 될 영국예술위원회사이트가기의 정책 비전은 예술 창작과 향유에서 다양성과 평등을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오랫동안 시장방임주의 중심의 문화정책을 지켜오던 영국이 북유럽과 같은 문화복지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신호로 비춰진다. 영국예술위원회의 다양성 문화 국장인 토니 파나이투(Tony Panayiotou)는 2011년 8월호 [아츠 프로페셔널]에 기고한 글에서 간략하게 이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그는 기고문에서 ‘오늘날 영국이 자랑하는 수준 높은 예술과 풍부한 문화 생태계는 동시대의 일상에서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와 이들이 영국에서 보여준 활동과 성과에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제대로 인지할 때가 되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그는 다양성과 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빼 놓고 앞으로 영국의 현대예술과 인접 분야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영감이라는 자양분을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예술의 속성 상 다양성은 과감한 도전 정신을 자극해 새로운 창작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영국의 문화예술계가 지금까지처럼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예술은 전통과 관습 안에서 정체되어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대 영국 사회와 현대예술에 대한 위와 같은 진단에서 출발한 영국예술위원회의 새로운 정책비전보고서는 영국과 유럽의 예술경영인과 문화정책 관계자들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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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문화 생태계를 위한 약속
영국예술위원회가 조직한 크리에이티프 케이스 포럼에서는 다양성이라는 큰 화두 안에서 예술이 인종, 장애인, 성적 소수자의 평등과 예술 창작과 향유라는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제안과 의견이 오갔다. 지난 9월의 포럼에서는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창의적인 다양성을 활용하고, 그 역동성과 혁신을 다듬을 지에 대한 논의로 예술단체와 공연장, 기관 중심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또 다른 질문은 다양성을 다룬 작품들이 과거에 어떤 문화적 혁신을 일구어냈는지를 분석해 봤을 때, 동시대에 가능한 이상적인 모델은 어떤 형태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협력 작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등이 정부의 과제로 도출되었다. 이는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영국의 주류 예술계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예술가와 단체, 기관 간의 협력 작업은 경제적 수익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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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데시벨 쇼케이스 |
이 날 포럼에는 영국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을 비롯해 BBC방송국 다양성 국장, 새들러 웰스의 예술감독,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협력 연출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특히, 영국예술위원회의 수장인 알란 데비(Alan Davey)는 다양성과 평등을 골자로 하는 영국 정부의 새로운 문화 정책에서 우수 예술경영인 및 행정 인력에 대한 지원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도 시사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아프리카, 아시아계 혈통을 가진 소수 민족과 장애인 공동체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예술가들과 미래의 리더들에게 새로운 지원이 있을 것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영국의 문화예술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지고, 풍성해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변화를 예고하는 영국의 문화정책은 제국주의 시대의 강제이주와 최근의 경제이민을 통해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에 대한 동화나 배려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문화 생태계에 끼친 이들의 영향력과 성과를 인정하고, 이들을 미래 영국의 새로운 문화발전 동력으로 판단한 영국 정부의 선진적인 사고방식은 다문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감안했을 때 더욱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본다. 2012년 4월, 영국예술위원회는 이와 같은 연구와 그간의 포럼 결과를 반영해 향후 3년간의 실행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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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민경은 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리서처이자 독립기획자로 <단편소설 극장전> <트래블링 홈타운> (Travelling Hometown, 가제), 극단 청년단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현대소설, 이주예술가, 도시와 인간, 아시아 동시대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워릭대학교/암스테르담대학 공연예술 석사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예술경영지원센터,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일했다.
weeminmi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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