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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가정의 안락함과 사회의 낯설음이 일차적으로 만나는 매개공간이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 치사한 공간이기도 하다. 꼬마들, 연인들, 부동산업자들, 할머니, 할아버지, 예술가, 관광객, 경찰들… 거리는 이렇게 경험, 정서와 욕망이 담기는 공간이다.
헌책방 가가린은 자하문로 10길에 있다. 가가린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거리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공간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이며, 특정 공간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일상과 비일상 속에서 인간의 시야와 움직임을 제약한다. 공간은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자 동시에 사회적 과정과 끊임없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하는 역동적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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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 휘둘리지 않은 거리
기술을 매개로 한 접촉과 접속의 공간은 증대되고 확장되고 있다. 반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자연-사물이 직접적으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살아있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망각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내비게이션 상의 좌표로 인식하게끔 만들다. 공간의 상실은 의미의 상실이며, 의미의 상실은 결국 사라짐조차 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하문로 10길에 모인 사람들은 이러한 망각을 물리치기 위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의해 가가린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장소가 정체성을 가져오는 관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이해를 공유한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또한, 자본에 의해 기능성을 부여받고 그러한 기능으로 정체성이 확립되는 공간에 대한 저항이자 깜찍한 항의인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과 정보화는 따박따박 발맞춰 이루어지고 모든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압축시키고 자본의 흐름을 가속화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공간은 기술적, 조직적으로 변화된다. 결국 공간은 기능성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우리가 기억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 것은 이제 더는 기억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피에르 노라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물리적인 외형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 담긴 삶과 가치 그리고 그것들과 만났던 시간 속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이다. 가가린은 아직 개발에 휘둘리지 않은 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재생(또는 유발) 장치들과 그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나눈 대화의 과정 그 자체이자 결과물이다. 그래서 헌책방 가가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년의 기억을 낯설게 늘어놓고 있는 거리와 헌책방에 느슨하게 안기고 싶어진다. 한편 워크룸, 갤러리 팩토리, 카페 mk2, 그리고 건축가 서승모가 모여 쑥덕거리다 가가린을 함께 만들었다. 창성동의 디자이너와 예술가들, 이 현물자본가가 아닌 상징자본가들이 작당해 본업을 잠시 미룬 채 ‘헌책방’을 만들었다. 책은 일종의 방편이었고 실은 작지만 넉넉히 만져지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타인들과 단절되고 고립되는 위험에 대비하고자 했던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고 본다.
2008년 6월 27일, 가가린이 문을 열던 그날 저녁, 워크룸에서는 김학량 선생이 기획한 전시가 열렸고, 팩토리에선 디자이너 최병일의 전시가 오픈했다. 워크룸, 팩토리, 카페 mk2의 친구들이 창성동의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차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고 천천히 달렸고 우리들은 거리에 나와 앉아 초여름 저녁의 습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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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테지만 괜찮아
가가린은 회원들이 자기들의 책을 내다 파는 위탁 헌책방이다. 디자인, 미술, 사진, 건축 분여의 책들이 많지만 만화책과 잡동사니들도 가득하다. 누구나 탐낼만한 책들도 있지만 폐지와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것들도 수북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독립출판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책을 가져다 놓기 시작해 가장 좋은 매대를 차지했다. 기타리스트였던 점원 덕분에 저녁시간엔 늘 기타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점원이 그만 둔 것이 내내 아쉽다. 이렇게 저렇게 가가린은 자하문로 10길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가가린의 장소성은 인근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소속감과 동시에 ‘책방에 있음’이라는 존재론적 안정감을 준다. 또한 실천, 즉 자발적 지원으로 창조된 사회적, 예술적 고안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가가린은 문화가 일상화된 공간이다. 주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문화는 상품이 되고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공간의 정체성을 바꾸고 있다. 예술을 파는 구멍가게. 다행이 주인들은 잡화류의 판매를 줄인단다. ‘책방’이니까. 잡화매출이 짭짤하다면서 잡화를 줄인단다. 잘 팔리는 것을 줄이고 안 팔리는 것을 늘리겠다는 멋진 주인들이다. 가가린은 헌‘책방’이니까. 가가린 회원 가입은 1년에 2만원, 평생 5만원이다. 회원가입 후 자신의 책이나 물건을 위탁판매를 할 수 있다.
가가린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동네 꼬마 죽돌이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러다 ‘동네 꼬마들이 죄다 어디 갔나’를 궁금해 하는 부모들이 따라오고. 그 부모들은 예술에 연연하는 분위기가 싫어 꼬마 죽돌이들을 철수시켜버린다. ‘보이지 않는 입장권’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점차 시간이 흐르고 인근의 주민들은 더 이상 가가린을 찾지 않고, 예외나 독특한 것들을 찾는 ‘외지’ 사람들과 버스에서 쏟아대는 일본이나 중국의 관광객이 바글대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상적인 공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연대적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대적 삶을 유지하는 것은 무지 힘들다는 것도 함께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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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은 헌책방이란 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고 거리와 그 거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자생적 커뮤니티를 위한 구체적 실천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젠 ‘공간상품’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헌책과 수제 잡화를 파는 가게로 결국엔 또 하나의 이미지 소비 공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랑처럼, 가가린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아니, 망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책 살 돈은 늘 부족하니까, 휴대폰 요금도 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고, 애플의 신제품도 사야 하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비정규직 말고는 일자리가 없는 젊은 세대에게 책은 그리 절실한 구매품이 아니다. 늙은이보다는 젊은이들에게 기대야 하는 가가린의 앞날은, 그래서 밝지 않다. 그래도 분명히 다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책방이 만들어질 테니 걱정은 없다. 그 책방 또한 가가린처럼 좁고 가난할 테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망할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뒤를 이을 (가난한) 젊은 친구들은 분명 또 있을 테니까. 그들이 가가린을, 그리고 아직 이름 지어지지 않은 가가린의 친구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자기들처럼 가난했고, 낙관적이었던 이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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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윤한솔은 공연을 만들고 있으며 학습과 노동의 결과로 공연을 하는 그린피그를 운영하고 있다. 나이질이나 학벌질을 혐오하며, 아직은 혁명을 꿈꾸며 사는 1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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