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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
이어서 발표한 인도네시아의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했던 루앙그루파를 비롯한 인도네시아의 몇몇 대안공간들이 지난 10년간 어떠한 예술 형태를 갖추며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대안공간들과 작가들이 직면한 환경의 변화, 즉 수하르토의 독재 종식으로 인한 정치적 환경 변화와 상업성과 비상업성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새로운 컬렉터층의 형성으로 인한 미술시장의 환경 변화를 경험하며 레지던스를 설립하거나 상업화랑과의 작업을 모색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히트에 소재한 현대미술기관인 BAK의 설립디렉터 마리아 흘라바요바(Maria Hlavajova)는 1980년대 후반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목도하던 구 체코슬로바키아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자기조직화 활동들을 회고했다. 그는 일시적으로나마 예술과 대중이 능동적으로 결합했던 열린 공간의 출현을 설명함과 동시에 문화예산 삭감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BAK가 지향하는 분명한 정치적 방향성과 타협에 대한 경계에 대해 발표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기반으로 결성된 큐레이터그룹 WHW의 창립 멤버인 나타샤 일리치(Natasa Ilic)는 크로아티아의 유럽연합 편입 이후 발생한 사회문화적 문제들과 포스트 포디즘으로의 구조적 이행이 야기한 압력들에 대응하는 WHW의 시도들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 방문이 무산되어 불가피하게 스카이프를 통해 연결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엇을 할 것인가’ 창립자 드미트리 빌렌스키(Dmitry Vilensky)는 ‘아트 소비에트’의 창조를 통해 실현 가능한 자기조직의 주도권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정치적 본능의 계발과 계급의식 고양, 정치와 노동, 미학에서 해방적인 행위들을 선동하는 조직의 목표를 언급했고 세계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경계하는 예술 조직들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했다. 대안공간 풀의 디렉터 김희진은 1999년 대안공간 풀의 설립과 활동의 변화상들을 고찰하며 전시공간이나 사업기관으로서의 조직보다 정신적 공감대가 강한 사람들의 공존의 양태로서의 측면이 강한 풀을 DIY 콜렉티브의 사례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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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커스 미에젠,
헤라르도 모스퀴에라, 낸시 아다자냐 |
스카이프로 연결된 바쌈 엘 바로니 |
예술적 조직, 윤리적 가치규범이 먼저
이튿날 장소를 서울로 옮겨 진행된 세션에서는 먼저 하바나비엔날레의 공동설립자인 헤라르도 모스퀴에라(Gerardo Mosquera)가 북미와 서유럽 중심으로 형성된 1980년대 국제미술계의 질서에 최초로 글로벌 담론을 표방했던 하바나비엔날레의 설립과정을 발표했다. 그는 많은 학자들이 수평적 관점에서 탈식민지 시대의 현대미술에 관해 논의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그러한 탈중심적 태도가 제도적으로 유지,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음을 언급했다.
알렉산드리아 현대미술포럼의 설립자 바쌈 엘 바로니(Bassam 디 Baroni)는 스카이프를 통해 이집트에서 거주하며 목도한 아랍 민중들의 항쟁 행위들을 소개하며 순교와 경쟁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아무리 혁명적인 제스추어를 취한다 하더라도 의미의 중심이 비어 있는 예술행위가 혁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예술의 공허함을 자각할 때 진정한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미디어아티스트인 임민욱은 ‘테이크아웃’과 ‘퍼포먼스’라는 단어의 결합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침투과정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소개하고 한강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김진숙의 크레인 시위가 발산하는 퍼포먼스적 미학과 희망버스에 올랐던 많은 사람들이 취했던 달라진 시위의 방법론과 정서적 토대에 대해 언급했다. 반면 문화비평가인 이택광은 지도자 집단의 선동과 참가자들의 동조로 이루어진 조직화가 아닌 소셜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자기조직화의 사례로서 희망버스가 가진 메커니즘에 대해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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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모습 |
(왼쪽부터) 이택광, 임민욱, 낸시 아다자냐 |
자기조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주류질서에 대한 대안적 가치와 신념을 발현시키는 자기조직의 본질뿐만 아니라 발달된 매체환경에서 스스로를 매체화시킨 자기조직들이 가진 강력한 파괴력 때문일 것이다. 워크스테이션은 자기조직의 규범적 가치로서 ‘윤리’를 언급하며 예술적 동기에 의해 성취된 자기조직들이 점유를 지양하고 제도화를 회피하기 위한 정신적 태도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자기조직에 대한 개념적 매핑이 없는 상태에서 사례 중심의 발표들로 구성된 이번 워크스테이션은 비엔날레를 통해 전지구적 관심확장을 위한 담론의 통로 생성이라는 목표의 성취에 대한 확신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다양한 사례들의 발표는 자기조직의 주요한 저변으로서 로컬리티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졌던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로컬리티와 결합한 자기조직화의 미시적이고 국부적인 면모를 이해하고 그 안에 내재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종합적이고 집체적인 선언의 토양에 기대고 있는 비엔날레가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자기조직화의 국부적, 자발적 측면들을 전시로 용해시켜내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올 가을 광주비엔날레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진 _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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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원석은 전시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경영을 전공, 대안공간 풀, ㈜로렌스 제프리스, 공간화랑 등을 거쳐 현재 아르코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과 뉴욕 등지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 문화관광체육부 국고지원사업 심의평가위원, 뉴욕 에이펙스아트(Apexart) 국제전시기획공모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 다양한 매체에 현대미술에 관한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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