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홍보 담당자로 입사해서 첫 공연을 올리는 날, 무대에서 큰불이 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세상의 비난이 불똥처럼 쏟아질 때 홍보 담당자로서 단체의 입장과 상황을 발표하는 일을 도맡았고, 3년을 버텼다. 작곡과 출신으로 보도 자료 쓰는 법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홍보계에서 음악 전공자라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음악적 전문성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으니까.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몇 년간 단 한 번도 아침 수영을 빠지지 않았다는 자기 관리의 달인, 김도연 대표를 만났다.

절대음감의 실력을 믿고 작곡과에 들어가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홍보를 하느라 땡볕에 있었더니 피부가 새까맣게 탔어요.”
며칠간의 야외 축제 행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출근했으니 피곤할 만도 한데, 반기는 목소리가 쾌활하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홍보 주관사인 아이디어랩은 문화, 공연, 축제, 음반 분야를 전문적으로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회사이다. 음악을 바탕에 두고 문화를 세일즈하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아이디어랩의 모태는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도연 대표는 음을 척척 알아내서 부모님이 “우리 딸 천재 아닐까” 하는 근거 있는 확신에 빠지게 만든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과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안고 작곡과에 입학했는데, 동기들 대부분이 절대음감이었다. 아뿔싸.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대학교 입학 후에는 밀실에서 곡을 만드는 일보다, 친구들이 작곡을 잘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는 일이 더 즐거웠다. 4년 내내 과 대표를 맡으면서 대외 활동에는 모두 얼굴을 내비쳤다. 더욱이 그때 아버지의 사업도 힘들어져서 4년 내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는데,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보다 더 벌었다. 학비를 내고도 풍족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 고민이 찾아왔다. 유학을 갈 형편은 안 되고 작곡자로 유명해질 가능성도 낮은 상황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사교육 시장에 나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용감하게 뛰어들어 뭐든 배우면서 하겠다는 의욕은 있었지만 작곡과 출신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때였다.

UP: 작곡과를 졸업한 후, 왜 축제기획국에 취직을 하게 됐나요 김도연: 사교육 시장의 강사로 계속 남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첫 번째로 취업한 곳은 ‘과천 한마당 축제’였는데 그때는 축제 쪽에 취업하는 것이 트렌드였어요. 역동적이고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다들 생각했죠. 매일 12시까지 일하는 회사에서 6개월을 다니고 신우염에 걸려서 입원했어요. 퇴원하고 다시 다니다가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는데 마침 홍보를 담당하던 직원이 퇴사를 해서, 어영부영으로 홍보라는 것을 맡게 되었어요.

UP: 작곡을 전공했으니 홍보 문구와 보도 자료를 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익혔나요 김도연: 평생 악보밖에 본 적이 없는데, 당장 보도 자료를 쓰라고 하니 참 막막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시키니까 하기는 해야겠고,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남이 쓴 것을 보면서 배웠어요. 나중에는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 다녔어요. 거기에는 현직 기자들도 있으니 인맥도 쌓고 언론 보도와 홍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웠죠. 음악 전공자라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고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답을 찾게 되더라고요.

첫 공연을 올리는 날 무대가 불에 타다

작곡에서 홍보로 전향한 듯 보이지만 음악이라는 큰 줄기는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 관련 행사를 홍보하며 역량을 키워가던 중, 솔깃한 공고를 보게 됐다. “국립오페라단 홍보 담당자 모집.” 지원서를 넣고 무사히 취업을 했다. 작곡과 출신으로 홍보 전문가이니 가장 적확한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긴긴 방황을 마치고 드디어 안정적인 직장을 잡았으므로 뿌듯함과 열의가 넘쳤고 입사 후 첫 공연이 올라가는 날, 긴장된 마음으로 무대를 지켜보며 보도 자료를 쓸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불이야”, “무대에서 불이 났다!” 아비규환, 아수라장.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고 관객들은 겁에 질려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배우가 종이에 불을 붙여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장면을 연기하다가 불이 난 것이다. “홀랑 다 탔어요.” 국가의 재산이 잿더미가 된 것이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 좋은 이슈였다. 여기저기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여기 홍보 담당자는 어딨어요?”, “전데요….”

UP: 불이 난 이후, 그 상황을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 갔나요 김도연: 매일매일 기자들, 공 기관과 씨름을 했어요. 입사해서 잘 모르고 어리둥절할 때 불이 난 것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기자들은 계속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고, 저기서는 왜 그걸 줬냐고 하고, 스트레스가 극한이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어요.

UP: 당장 그만두지 않고 3년이나 계속 다녔는데,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김도연: 홍보는 연계성이 생명이라 내가 힘들다고 후임자도 없이 당장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책임감도 있어서 수습될 때까지 3년을 다녔어요. 사업을 하면서 돌아보니 가장 극한의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리스크 매니지먼트 능력이 좋아졌다고 할까요. 그러고선 힘들어서 외국으로 잠시 도피를 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왔을 때 홍보 회사를 차리라고 권유받았으니 실력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 감사하죠.

공연 분야의 홍보전문 회사를 설립하다

화염 속에서 “I'll be back”을 외치면서 사라졌던 터미네이터가 속편에서 살아오듯, 김도연 대표는 홍보 전문가로 돌아왔다. 5년 전 아이디어랩을 창업했고, 지금은 음악・공연・축제 분야의 전문 홍보대행사로 입지를 다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가 있는 날’부터 외국 유명 가수들의 내한 공연, ‘펜타포트 락 페스트벌’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김도연 대표를 통해 이슈가 됐다. 특히 페스티벌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음악 페스티벌은 큰 흐름입니다. 음악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 시장을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어요.” 김도연 대표는 음악 산업 쪽에서는 페스티벌을 음악 소비의 마지막 단계로, LP에서 CD, MP3로 이후 흐름이 공연으로 넘어왔고 해외에서도 페스티벌이 앨범 판매보다 더 잘나가는 추세라고 의미를 되짚었다. 아이디어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 갔다.

UP: 아이디어랩에서 음반 작업도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김도연: 2015년에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경기민요 소리꾼 전영랑 씨가 같이 라는 타이틀로 음반 작업을 했고 공연을 했습니다. 오리지널 미국 음악과 한국 민요를 도대체 어떻게 섞나 고민했는데 두 개를 섞을 접점을 잘 찾았던 거 같아요. 이 프로젝트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어요. 특히 외국인에게는 국악이 낯설고 듣기 힘들 수도 있는데 즐겁게 들어 주시고 음반은 어디서 구매하느냐, 음원으로는 어떤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았습니다.

UP: 작곡을 전공한 것이 홍보와 마케팅 일을 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김도연: 음악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요. 음악을 전공했으니 여러모로 유리하죠. 또한 홍보대행사는 기자들과의 네트워크가 절대적인데 오페라나, 콘서트에 갈 일이 있으면 기자들이 저를 꼭 불러요. “어때? 오늘 잘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제가 답을 해 주죠. 기자들은, 음악적 재능을 가진 제가 필요하니 급하면 저를 찾아요.

홍보담당자로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홍보는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통할지, 기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던져야 기사로 실릴 수 있을지 이슈를 찾아내는 눈이 필요해요.” 또한 급박하게 변해가는 상황에 대처하려면 업무가 한꺼번에 쏟아질 때가 있어서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므로 체력은 필수적이다.

“홍보 담당자들은 야근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저는 일찍 자고 아침 5시에 일어나요. 그때 일어나서 메일도 보내고 보도 자료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침 수영을 갑니다. 홍보는 체력이 없으면 못해요.” 김도연 대표는 근 몇 년간 아침 수영을 한 번도 빠져 본 적이 없단다. 몸을 잘 조율된 악기로 만들어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는다. “여기 있는 나를 봐 주시오!”라고 당당하게 외쳐야 하는 홍보 담당자라면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으로 자신의 존재부터 탄탄히 세워야 남 앞에서 소리칠 수 있다는 걸 김도연 대표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저도 어릴 적부터 음악을 했기 때문에 해 본 적 없는 홍보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음악적 능력을 베이스에 놓고, 공연을 보고 음악을 즐기면서 직업의 전문성도 쌓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예술 활동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예술 시장을 키우는 일을 하는 것도 매우 재미있고 멋진 일입니다. 음악적 능력과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직장은 너무나 많으니,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다가서 보세요.

김도연 대표 프로필 - 한양대학교 작곡과
- 고려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 前 국립오페라단 홍보실 근무
- 現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과 출강
- 現 아이디어랩 대표

홍보 프로젝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제3회 서울레코트페어
-2014 장애아동 창작지원 프로젝트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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