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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크리에이터를 넘어 로컬 벤처로
칠성조선소 최윤성 대표문화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기업이 지역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공지원과 민간투자의 효율적인 활용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개인이 치열하게 고군분투 할 때 지자체와 지역은 과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밖에서 보이는 성공의 모습과는 달리, 안에서 남몰래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꼬리를 무는 궁금함에 의연하게 답을 주는 곳이 바로 속초의 칠성조선소이다. 가업의 유산을 효과적으로 보존하면서도 디자인, 공연, 축제, 출판, 영상 등 높은 수준의 새로운 콘텐츠 개발은 대표의 안목과 소신의 산물이며 투자의 결실이다. 속초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칠성조선소를 이번 호 예술×기업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칠성조선소는 2017년 예술경영 웹진에서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이름의 기업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5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칠성조선소의 시작부터 현재의 사업모델이 구축되기까지의 변화 과정이 궁금하다.
칠성조선소의 시작은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실향민이신 할아버지께서 조선소를 세우셨고, 주로 목선 어선을 만드셨다. 그 이후에 아버지께서 가업을 이어받으셨는데 배를 만드는 재료가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점점 배를 만드는 주문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수리를 주로 하는 조선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영이 어려워져 철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천, 양구, 인제 등지에 댐이 생겨서 마을로 사람이나 차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주로 철선이다.
저는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후 유학을 다녀와서 대대로 내려오는 조선소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한쪽에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레저 선박 사업을 하면서 카누와 카약, 써프보드 등을 제작했다. 그러던 중 무리해서 투자했다가 잘 안 돼서 운영이 힘든 상황이 생겼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레저 선박 지원을 받아 ‘이제는 잘 되겠구나’하고 희망을 품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았다. 국내 레저 선박 시장이 생각보다 작았고,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소를 운영해오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정리하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이제는 진짜 조선소를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이 공간에서 수십 년간 가족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온 추억을 지키고 싶었다. 계속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소를 운영해오시던 부모님과 마찰도 있었지만, 여러 방향으로 설득한 끝에 현재의 칠성조선소가 되었다. 칠성조선소는 현재 카페 공간과 조선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 공간, 전시·공연 등이 진행되는 문화공간, 서점 등으로 운영 중이다.
칠성조선소 초기에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강원지역 창업 활동가들에게 활동비를 주는 지원사업이 있었다. 이 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지역의 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기업 지원사업을 통해 현재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금액을 지원받았다.
이후 칠성조선소 내의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의 테마여행10선이라는 지원사업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칠성조선소만의 브랜드 가치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것이 투자로 연결되었다. 지나고 보니 일련의 과정들이 착착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노력을 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칠성조선소를 알릴 수 있었고, 한국관광공사 지원사업이 없었다면 음악 페스티벌 등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마다 지원사업을 십분 활용했고, 기업이 성장하는데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예술로 시작하여 투자까지 이끌어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 기업 비즈니스 모델은 일반 기업과는 달리 해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칠성조선소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칠성조선소의 주 수입원은 카페다. 이 매출을 기반으로 칠성조선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속초의 조선소 이야기 등)을 계속 정리하고 있다. 영상을 제작하거나, 자료를 정리해서 전시를 진행한다. 예술가들에게 장소를 대관하여 공연이나,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10월에는 무소속 연구소라는 단체와 함께 아트페어를 준비하고 있다. 칠성조선소를 대표하는 아트상품들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활동들이 칠성조선소의 브랜드 파워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칠성조선소만이 가지는 독특한 브랜드가 있으니 관광객들이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닐까 커피만 마시고 싶다면 커피를 잘하는 카페는 넘치도록 많다고 생각한다.
칠성조선소는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봐야 할 명소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홍보나 마케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케팅이나 홍보만을 위해서 돈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문화예술 행사나 공연들을 지속하는 것이 칠성조선소만의 성격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 문화예술 행사가 없었다면 관광객들이 오다가 어느 순간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또 어떤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성격을 계속 부여하면서 칠성조선소만의 브랜드 가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홍보나 마케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속초에 계시는 배 목수님 두 분에 대한 일상 이야기 사진집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도 출판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이 주위 사람들이나 방문해주시는 관광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서 저절로 바이럴 마케팅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투자자나 지원, 후원자는 드문 것 같다. 우리의 사업모델을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은 카페이고 나머지 활동은 매출로 이어지지 않으니 카페에 집중하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 기업은 그렇게 해서는 본질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최근 임팩트 투자사인 소풍 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소풍 벤처스에서 칠성조선소에 투자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투자를 통해 변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투자를 유치하게 된 배경은 투자사의 철학과 의지가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스토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소풍 자체가 소셜 밸류를 가지고 있거나 문화적인 일에 관심이 많은 투자사라 과감히 투자를 결정한 것 같기도 하다.
투자를 통해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가업을 물려받은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부모님 명의로 계속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나 집기 등도 모두 부모님 소유였는데, 실상은 아내와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니 이런 활동들이 인정이 안 됐다. 이런 상황에서 소풍 벤처스를 만났고 ‘이런 상태에서는 투자를 해 줄 수 없다’라는 등의 얘기가 오가며 법인설립 준비를 하게 되었다. 소풍의 투자를 통해 많은 부분이 부모님 소유에서 법인으로 넘어오게 됐고, 운영에 있어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칠성조선소는 대외적으로 성공적인 로컬벤처 사례로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도 운영상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나?
현재 15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인구가 7만 정도 되는 소도시이다 보니 직원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지역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없다. 있더라도 재주가 있거나 기술이 있는 친구들은 자기 사업을 하려고 하지 어딘가에 고용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외지에 있는 직원을 고용하려면 숙소도 제공해줘야 하고 서울에서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이 주어야 한다.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 4일 근무제나 휴가 등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직원들이 자주 바뀌는 등 노무관리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지역사회와의 협업이다. 대도시와는 다르게 지역은 매우 좁은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오해로 인한 시기와 비난이 날아들기도 한다. 칠성조선소를 운영하며 고민을 많이 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며 공간을 만들었다. 속초에서 자라온 사람으로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그래피티 아트 같은 전시도 하고, 회의 공간 대여도 하는 등 지역과의 협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배려 없이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때는 지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로컬 창업을 낭만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속초에 가서 바다를 보며 맛있는 빵을 구워서 아침마다 먹는 삶을 꿈꾼다든지 말이다. 결국, 부딪치는 것은 현실인데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들이 많다.
사업과 동시에 지역의 잠재력과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칠성조선소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있어 정책이나 제도 측면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거나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칠성조선소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 데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의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초반에 창업진흥원이나 중소기업청을 통한 지원을 알아보기도 했었는데, 갖춰야 할 서류가 많아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역의 지원사업은 다소 접근이 쉬웠던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원받았던 테마여행10선 사업은 칠성조선소의 문화공간을 조성할 때 실질적으로 인프라 조성을 위한 공사비용도 일부분 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뮤직 페스티벌이나 영화제, 전시, 서체 개발 등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추가로 필요한 지원은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같은 로컬 창업 기업의 경우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노무, 법무, 세무, 회계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든지, 전문가 일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전문 분야는 창업가가 익혀가야 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과정 가운데에서 공백을 메꿔줄 수 있는 전문가가 절실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대출 이자 지원 사업처럼 고정비용에 대한 지원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저희는 직원이 10인 이상이라 소상공인이 아닌 소기업으로 분류가 되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올해로 70년이 되었지만 백년기업이나 백년가게 같은 기업으로 선정되기에는 제조업과 일반음식업 기준이 다르다. 조선소를 할 때도 그리고 현재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칠성조선소가 조선소, 일반음식점, 문화공간처럼 다양한 성격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런 성격이 정작 여러 분야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칠성조선소 대표로서 꿈꾸고 계신 게 무엇인지, 칠성조선소는 어떤 장소로 남고 싶은지 말씀 부탁드린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주변 공간의 오래된 건물들을 헐고 도로를 만들어 들어오기 편하게 만들고, 한 6층짜리 건물을 크게 지어서 호텔을 여는 것이 돈을 투자해서 회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을 공부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공간을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놀이터 같은 것들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재미난 일들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고 싶다.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이신 할아버지께서 1952년 원산조선소로 문을 열었고 그 후 아버지께서 2017년까지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했다. 2018년부터 저와 제 아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꿔서 운영하고 있다.
이선철 대표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런던대(City) 예술정책&경영 대학원을 졸업한 후 김덕수패사물놀이 사무국장과 벤처기업 폴리미디어 대표이사 및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 강원도 평창으로 이주 폐교 활용 복합문화공간 <감자꽃스튜디오>를 2021년까지 운영했다. 현재는 문화관광 기획, 교육, 자문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연세대, 국민대, 경희사이버대, 북동연방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히 예술경영,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개발 등과 관련하여 청년창업가와 예술기획자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