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5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축제의 도시 대구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울산(‘13년 5월) - 인천 (‘13년 7월)
일시 ㅣ 2012년 11월 7일 오전 11시 장소 ㅣ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

“예술가가 많다고 문화예술도시인가? 예술을 즐기는 시민이 많아야 문화예술도시이지.”

대구예총 문무학(61) 회장의 말이다. 이번 ‘문답’의 주인공인 그는 영남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낸 대구 문화예술계의 마당발이다. 일각에서 아직도 ‘관변단체’ 정도로 보고 있는 예총의 지회장을 이 코너에 초대한 것은, 이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신망이 높아 대표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나보니 역시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문화예술, 특히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그의 철학과 관점은 명쾌했으며 실천력도 있었다. 대구가 여타의 광역 지자체보다 문화예술 시장이 활성화한 데에는 문 회장 같은 이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라 생각했다. 과연 대구는 그가 자부하는 ‘예술 소비 시민이 많은 문화예술도시';일까? 이것부터 물었다.

정재왈 잘 알다시피, 서울의 공연예술 단체가 지방 투어를 할 때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대구다. 현실적으로 ‘장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대구의 이런 저력은 무엇인가?

문무학 잘 갖춰진 공연장 인프라와 인식도가 높은 탄탄한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있어서다. 내 사무실이 있는 이곳 대구문화예술회관 콤플렉스와 대구오페라극장, 수성아트피아, 그리고 적잖은 소극장이 산재해 있다. 또한 음악과 무용 등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애호가들의 폭이 넓은 편이다.

문무학 사진 문무학 사진

정재왈 서울 외에 ‘오페라’ 극장이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음악(성악)이 그만큼 강하단 이야기 아닌가?

문무학 음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말하겠다. 한국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곳이 어딘지 아는가? 바로 대구다. 정확히 1900년 3월 26일 달성군의 사문진 나루터로 선교사 에피의 피아노가 들어왔다. 나루터에 내린 피아노는 31명의 짐꾼들에 의해 짚으로 꼰 밧줄에 묶여 3일 동안 16㎞를 이동해 대구로 옮겨졌다. 기록에 남아 있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 역사다.

정재왈 흥미 있는 사실이다. 서양음악의 기본이 피아노라면, 이런 역사 속의 대구가 음악의 도시란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를 드러낼 또 다른 옛 이야기는 없나?

문무학 물론 또 있다. 잘 알고 있듯이 대구는 6.25전쟁 당시 피난도시였다. 각 분야,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신, 이중섭, 구상 등 기라성 같은 예인들이었다. 혼란기에 이들의 안식처 가운데 하나가 ‘녹향(綠香)’이라는 클래식 감상실이었다. 작고한 이창수씨가 해방 직후 몇몇 지인들과 음악동호회를 만들어 SP레코드를 감상하던 곳으로 출발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대구의 문화적 상징 구실을 하고 있다.
문무학 사진

‘예술시민’의 행동강령을 기획하다

문 회장은 원래 공연예술보다 문학 분야 사람이다. 조직 결성에 수완이 있어, 대구 시조시인협회와 문인협회 등을 만들어 9년 동안 장을 맡았다. 그 다음 행보가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대구예총) 회장이다. 2010년 당선돼 3년 째 하고 있다. 예총회장은 ‘글쟁이’에 머물던 문화예술에 대한 좁은 식견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문화예술 전반을 두루 보게 된 것.

정재왈 앞서 ‘예술시민’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하는 예총회장으로서 이를 실현 하는 당신만의 기획이 있는가?

문무학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예술소비운동’이 있다. 예총 산하 ‘예술소비운동본부’를 통해 지금까지 시민 2천 3백여 명에게 ‘무료’ 공연과 전시 관람, 도서 보급 등의 기회를 주었다. 재원은 독지가의 기부로 충당했다.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연간 5천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이런 소비운동이 결과적으로 대구를 문화예술의 도시로 격상시킬 것이다.

정재왈 의도는 좋지만, ‘무료’ 제공은 결국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꺾는 일 아닌가?

문무학 정확히 말하면 예총이 단체로부터 티켓을 사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단체에겐 티켓 판매로 도움을 주고, 소비자에겐 문화예술에 대한 기호 형성을 돕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결국 능동적 소비로 이어질 것이다.

정재왈 이른바 ‘운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할 텐데.

문무학 맞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 하는 예술소비, 내일 위한 행복투자’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 슬로건 아래 ‘머리맡 책 갖기’, ‘월 1회 공연(영화)보기’, ‘월 1회 전시장 찾기’ 등의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운동에 동의한 회원 2천3백여 명이 혜택을 보았고, 더 늘어나는 추세다.

문 회장의 극성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바람직한 예술 소비운동을 가이드 하기 위한, 공연 및 전시 관람 에티켓을 사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통(通)하자 예술아>라는 1백 쪽 분량의 책자를 만들어 관람객은 물론 학교와 도서관 등에 보급하고 있다. &ldquo;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연 수준 못지않게 관람객의 수준도 같이 높아져야 한다&rdquo;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무를 품는 숲의 시각으로

정재왈 해방 이후 영남의 대표 도시이긴 하지만, 대구는 유서 깊은 역사와 전통의 토대가 약한 편이다. 조선시대 충청도 &lsquo;기호학파&rsquo;와 쌍벽을 이루던 &lsquo;영남학파&rsquo;의 본거지는 안동 등 내륙지방이었다. 그러다보니 대구는 지자체 차원에서 음악이나 오페라, 사진, 심지어 뮤지컬 등 &lsquo;현대예술&rsquo;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 같다. 앞으로 문화예술과 관련한 대구의 비전은 어떤 것인가?

문무학 대구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가 취약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비산동의 &lsquo;날뫼북춤&rsquo;과 욱수농악 등 전승 예술이 없지 않지만, 현대예술 장르에 비하면 많이 약하다. 그런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점이 있는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대구오페라페스티벌 등은 이런 특장점을 살린 시도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대구는 경주와 김천, 울산, 구미 등을 포괄하는 문화예술의 광역 구심적 역할을 자임하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문화예술 지방분권을 위한 중앙정부의 전향적인 지원 자세도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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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사회, 정치적으로 대구는 보수주의 본거지로 통한다. 대구와 경북을 뜻하는 &lsquo;TK = 보수&rsquo;의 등식이 성립됐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구예총은 보수를 대변한다 하겠다. 대구에서 소위 &lsquo;진보예술계&rsquo;와의 관계는 어떤가?

문무학 예총의 그것에 비해 활발하다 할 수는 없지만, 문화예술 창작 활성화와 시민들의 향유기회 확대 등 지향하는 목표는 예총의 활동과 같다고 본다. 서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과 협력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대립은 거의 없다.

선입견이긴 하지만, 한 장르를 대변하는 입장에 오래 있던 사람을 만나면 보이지 않게 &lsquo;장르이기주의&rsquo;에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럴 때는 두루두루 주제를 바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데, 문 회장은 그런 벽이 없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무학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대학교를 졸업하고 영남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대구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대구문인협회 회장, 대구시민예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2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시조)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낱말』(2009)등 7권의 시집을 발간하고 ‘윤동주 문학상’, ‘대구시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제9대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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