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대구벌’ 대구다.

기획자라면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고집부리고, 바로 ‘때로’를 캐치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 본다. 하지만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내 자신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로’를 잘 해석하고 자기 스타일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 시 l 2012년 11월 24일(금) 저녁 장 소 l 대구의 한 소박한 가게

방천시장 건물의 2층, 과연 이런 곳에 사무실이 있을까 싶은 곳에 ‘인디053’ 사무실이 위치한다. 인디뮤직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 겸 사무실로 사용한다는데 음반, 각종 축제 포스터 및 홍보물,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소품들까지,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생소한 느낌을 준다.

‘인디’와 대구의 지역번호 ‘053’을 조합한 ‘인디053’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2007년 설립하여 김광석 거리 조성, ‘아트팔트(아트+아스팔트)’ 거리 프로젝트, ‘아!!!트랜스파머(ArTransFarmer)’, 방천시장 문화기획 등 대구의 친근하고 익숙한 것들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기획들로 현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창원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춘 인디뮤직 페스타 청춘 인디뮤직 페스타 청춘 인디뮤직 페스타

▲ 청춘 인디뮤직 페스타

인디053의 시작

최윤정 지금의 활동들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첫 번째 화두는 무엇이었나?

이창원 대학교 때 락 음악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브라스, 펑키, 재즈 등 영역을 확대해갔다. 그리고 배경적으로 보았을 때 대학시절 전공은 불문학이었고, 복수전공으로 예술학, 부전공으로서는 언론정보학을 공부하였다. 음악에만 국한하지 않고 문학이나 미술, 방송미디어 등 관심도를 다양하게 펼쳐 보이려고 했던 듯하다. 이 시기 부전공 수업에서 영상제작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이때 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는데, 그 주제는 ‘동네에서 음악하는 애들 왜 못 먹고 살까’였다. 나의 화두는 항상 아마추어에 대한 고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 인디씬, 아마추어/프로, 지역이라는 세 부분이 항상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아마도 제대 후, 학교에서는 순수 이론을 공부하고, 졸업하면 오케스트라 연주활동이나 밴드를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아마추어리즘, 보니까 스태프가 없다! 중간이 없었던 것이다. 매개자로서 나는 기획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금 기초적인 것부터 해보자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나는 버스킹이나 거리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다큐멘터리에는 이와 같은 고민들을 담고자 했었다. 이때 거리문화시민연대를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그곳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최윤정 인디053은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나?

이창원 고등학교 때 ‘나도 홍대로 진출 하겠어’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음악을 내가 많이 만들어서 내가 뭔가를 하면 되는 것이지, 우리 동네에서 안 되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늘 사건 만들고 일 꾸미고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인디053은 2006년 말부터 친구들과 뮤지션의 활동 폭을 넓혀주는 상징적인 지붕으로 색깔을 잡았고 이후 2007년에 오픈하면서 활동을 하였는데 중요한 특징은 뮤지션들의 활동적 성과를 인디053으로 집중시키는 일이었다. 이때, 인디053은 시스템을 확고히 연장하는 그런 단체는 아니었다. 2007년 스튜디오가 있었지만 1년 만에 사라졌으며, 이후 2년간은 공간 없이 이름만 있었고 프로젝트처럼 일이 있으면 모였다가 해체하는 구조였다. 이때 생계를 위해 각종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팔공산 올레길 등 기획 사업에도 몸을 담갔는데 지인이 ‘방천시장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인디053은 방천시장에서 사무실 공간을 갖추어 2010년부터 전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흔적과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최윤정 이 동네 저 동네 어찌어찌 살다보니 지역의 인디씬 대표기획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하면 남유진(클럽네버마인드), 부산하면 류성효(안녕광안리/재미난복수), 그리고 대구하면 이창원(인디053)이 떠오른다. 각 지역의 인디씬의 양상은 지역적인 특색은 물론 각 기획자간 차이에서도 달라 보일 때가 있다. 더군다나 이대표는 이중 가장 어린데, 인디053은 짧은 시간 내에 제법 빠른 인지도를 획득했다. 더불어 급여를 받는 직원을 둘이나 둠으로써 안정적이며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기획자로서 자신의 차별성과 태도를 밝혀 달라.

이창원 기획자라면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고집부리고, 바로 ‘때로’를 캐치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 본다. 하지만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내 자신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로’를 잘 해석하고 자기 스타일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원래 ‘매미(매개공간미나里)’가 최윤정이었다 치자. 당신의 색깔이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반영되고 공간의 특성과 일체가 될 수 있었지만 대구미술관은 매미가 아니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자는 모든 악조건을 넘어서 자기가 머무는 곳에 자기의 흔적과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자기 존재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최윤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보자.

아!!!트랜스파머(ArTransFarmer)
아!!!트랜스파머(ArTransFarmer) 아!!!트랜스파머(ArTransFarmer)
▲ 아!!!트랜스파머(ArTransFarmer)

이창원 대구의 것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갑갑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말해 내가 내 맘대로 하면 난리가 나는 것 즉 이슈가 되지 않는가? 인디053에 대해서도 다들 그리 생각하시는 것 같다. 성공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데 지장 없으면 되고, 대구이기 때문에 인디053이 보다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역기반의 기획자들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 그리고 예술가와는 분리되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나는 인디053을 책임지면서 보다 경영적인 마인드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 바닥에 오면 네가 꿈을 펼칠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 다 헛바람이다. 자기반성의 균형을 가지고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환타지랄까.
마인드, 열정 등도 중요한 것이지만 이미 예술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건 다 가지고 있다. 그러한 ‘마인드’는 그냥 현실로 본격화되기 이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최윤정 이것저것 경험하다보니 충분히 공감한다. 인디053의 대표로서 조직시스템의 방향성이 따로 있는가?

이창원 이상하게도 문화계 또는 NGO세계에서는 처음 붙은 명칭이 그대로 쭉 간다. 처음 국장이면 다 국장인데, 국장도 대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름다운 조직이다. 현재는 이창원이 대표이지만, 어느 순간 신동우(인디053기획팀장)가 대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수하고, 내가 또 40대, 50대가 되면 다른 꿈을 꿀 수 있다. 꿈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100만원을 받으면 90만원은 급여고 10만원은 세금이니 따로 모았다가 연말에 세금을 내야한다’가 대표로서 나의 역할이다. 나는 경영자로서 이창원으로 거듭나야 하며, 인디053에 이창원같은 친구가 나왔을 때 그/그녀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다.

최윤정 인디053의 대표로서 대구에 대한 아쉬운 점이라든지 혹은 어떤 비전을 지니고 있는가?

이창원 부산을 이야기해보자. 부산 청년문화수도를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지자체의 공허한 외침이기보다는 난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나 부산은 서울이 아닌 도시로서 그들만의 독특한 시장을 만들었고, 아젠다나 이슈가 던져지면 부산의 문화예술활동가들은 이를 토스하고 리시브하면서 흐름을 확대재생산해내는 기획들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 현장기획자, 기관의 움직임이 대단히 유기적이다. 그들은 지금 현대 30대 후반 40대초중반에 서있는 부산의 새로운 문화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시스템을 구조해내고 있다. 아직은 톱니바퀴처럼 원활하다고만 볼 순 없겠지만, 부산에서는 적어도 던져주면 이슈가 확대재생산된다. 15년 후면 우리 세대가 대구의 건강한 문화권력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힘을 키워나가고 시스템을 구조할 것인지, 지금의 20대 청년들에게 어떤 위치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한다.

최윤정 본인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 이것은 인디053의 목표가 아닌 이창원의 목표를 말한다.

이창원 내가 그리는 40대 초반의 내 모습은 농촌산촌어촌문화기획자로 사는 것이다.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여 문화적 행위들을 그 장소에서 주민들과 실천하는 것이 나의 미래다. 더불어 ‘저런 애들도 먹고 살 수 있다’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운영하는 단체가 잘 굴러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직원이 할 수 있는 것을 실현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한 기본을 만들어내는 것. 나는 계속 후배를 키울 것이다. 그것이 또한 나를 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농촌’과 ‘대구’라는 지역성을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시대적 가치를 지역에서 찾아내고, 인프라가 잘 구축되지 않은 곳에서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 어느 자리건 자기의 존재이유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김광석길’이 방천시장에서는 나에게 그런 이유와 동일하다.

이창원
최윤정 필자소개
최윤정은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 석사를 마쳤다.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양성프로그램3기(2006)를 거쳐, 공공예술 담론과 현장예술 기반 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프로젝트(2007)>와 <아트인대구:분지의바람(2007)> 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고, &lsquo;매개공간미나里&rsquo;(2008~2010) 개관멤버로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래머를 맡으며 2008광주비엔날레 제안 &lsquo;복덕방프로젝트&rsquo; 코디네이터를 함께 겸하였다. 2009블루닷아시아 총괄큐레이터와 2009아시아문화특구 조성사업 &lsquo;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rsquo;(PAAD)의 레지던스팀장, 2010아시아문화특구 조성사업 &lsquo;아트로드 프로젝트&rsquo;의 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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