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예술인들과 함께 하던 공연기획도 즐거웠고, 한국의 Danny Newman을 꿈꾸며 학문과 공연장 운영에 정진하던 시절도 보람 있었다. 지금은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론을 결합하는 연구를 통해 보다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서고자 한다. 바로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경영혁신을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로 튼튼한 관객기반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공연예술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공연장들도 이를 통해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평가와 조사 연구를 위한 전문가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예술단체나 공연장, 축제들은 어떻게 평가를 해야 왜곡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떤 분석을 통한 전략과 접근이 있어야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할 파트너가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전문연구소는 최적의 파트너일 수 있다. 올해 새롭게 출발한 (사)한국예술경영연구소 이용관 소장을 만나 민간연구소의 역할과 의미를 들어보았다.

관객개발, 경영혁신은 관심의 제일 선상에

민정아 공연기획부터 문화재단 근무, 공연장 경영, 대학 예술경영 강의에 현재의 연구소 운영까지 어떻게 보면 예술경영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간단하게 본인과 (사)한국예술경영연구소의 소개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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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사)한국예술경영연구소는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경영분야를 핵심 대상으로 연구 및 조사, 평가, 컨설팅 등을 하고 있는 민간연구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극장이나 예술단체, 축제 등 주로 공연예술 경영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운영과 연계되는 관객개발을 위한 예술교육 역시 주 관심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공극장의 운영시스템 혁신에 관심이 많은데,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공공극장들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80% 이상의 유료관객으로 채워지는 날을 기대하고 그런 환경을 만드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경험하고 또 공부도 해온 분야이니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연구소는 고정 인력 중심이 아니라 연구 성격과 프로젝트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연구진으로 참여시켜 해당 주제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분석과 완성도 있는 성과를 내 놓는 방식을 지향하는데, 이것은 우리 연구소의 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장 기획, 운영, 정책분야도 함께 경험하면서 현장에서 20여년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자를 지원하여 필기시험 합격 후 면접만을 남겨둔 상황이라 당연히 합격할 줄 알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최종 통과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다른 파트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권유가 있었고, 판매와 광고 분야를 거쳐 공연 뿐 아니라 전시, 이벤트, 콩쿠르 등 다양한 문화 사업을 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분야에 집중한 것은 호암아트홀에 근무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곳에서 공연의 기획 실무를 익혔고 그 후에는 부천문화재단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정책이나 문화재단 전반에 대한 경험도 쌓고, 안양문예회관에서는 관장으로 공연장 경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예술경영에서 관객기반이 취약한 문제에 대하여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해외의 예술경영 사례들도 궁금했고, 현장에 적용 시킬 수 있는 체계적 이론에 대한 필요성도 절감하게 되면서 예술경영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민정아 그간의 많은 현장경험 속에서 특별히 인상에 남거나 소장님께 어떤 계기가 되었던 경우가 있다면 들려주었으면 한다.

이용관 공연기획 입문을 발레공연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 영향인지 그 후로도 프랑스의 롤랑쁘띠(Roland Petit) 발레단이나 볼쇼이 발레단 등 굵직한 발레단 공연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 1990년 당시 첫 내한공연으로 굉장한 화제였던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당시 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유리 그리가로비치(Yuri Grigorovich)가 단원 한명 한명을 일일이 챙기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든 생각이 ‘아, 저 모습이 수십 년간 한 예술단체를 이끌어가는 예술적 리더십의 모습이구나. 저 모습을 바탕으로 앙상블이 쌓아져 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의 모습에서 이상적 예술 감독의 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 몇 년 뒤에 초청했던 볼쇼이의 프리마돈나였던 니나 아나니아쉬빌리(Nina Ananiashivilli)와도 에피소드가 있다. 백조의 호수 공연 중에 그녀가 발목을 삐어 급하게 병원을 같이 가게 되었는데, 세계적인 발레스타 곁에서 얼음찜질을 해주면서 같이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은 내한 당일에도 우리를 애타게 했던 기억이 있다. 오전 일찍 도착 예정이던 러시아 전세기가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라 통역을 시켜 한나절을 수소문 했는데, 중간에 예정에 없던 블라디보스톡에 기착했다는 거였다. 결국 그날 오후 늦게 들어 왔는데 근 열 두 시간을 노심초사 했었다. 그 외에도 소프라노 홍혜경씨의 국내 첫 데뷔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공연기획 일선에 있으면서 예술가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하고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했던 경험들이 공연예술계에 지속적 머무르게 하는 근원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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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전환기라면 공연장에서 일하면서 석사과정 공부를 병행하던 시절이다. 당시만 해도 예술경영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 부족했던 때이다 보니 체계적인 업무수행이라기 보다는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역시 지금처럼 ‘관객’은 공연장의 숙제였고,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가 늘 고민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외국 원서의 일부를 갖고 토론을 하게 되었다. Danny Newman의「Subscribe Now!」였다. 지금은 낯설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시즌공연이라든지, 시즌티켓과 같은 개념은 굉장히 새로웠고 놀라웠다. 더군다나 그런 시스템이 미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우리의 공연장과의 괴리감과 겹쳐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로도 극장에서의 관객개발, 경영혁신은 내 관심의 제일 선상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의 연구소 운영에 대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당시 안양문예회관의 3년 임기를 마칠 무렵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에서 연구제의가 들어 왔는데, 바로 ‘아시아 예술극장 운영방안 연구’였다. 주제도 흥미로웠고 연구 규모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것이 (사)한국예술경영인협회 산하에 예술경영연구소를 설립한 계기가 되었다.

공공, 민간연구소 상호보완적 역할 수행해야

민정아 최근 연구소를 한국예술경영인협회로부터 독립해서 새롭게 출발했는데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 또 민간 연구소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용관 사실 그 동안 협회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연구소가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산하기관으로 있으면서 상당히 많은 연구, 조사, 평가 사업들을 진행했고, 자화자찬 같지만 나름 연구 성과물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작년부터 올 초에 걸쳐 진행된 ‘국립공연장 재배치 연구(문화체육관광부)’는 연구소의 성장에 크게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서 연구소의 홀로서기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협회의 임원진도 교체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연구소의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고민을 좀 했다. 일반 회사가 아닌 사단법인 형태를 취한 것은 공익성과 대외적 신뢰성에 대한 부분을 고려한 것이고, 회원이 중심이 되는 연구소로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자칫 개인의 사적 관심이나 이익을 중심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을 경계하고, 책임감도 더 가지자는 의미도 있다. 독립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참여가 있었고, 그 만큼 연구소가 앞으로 역할분담이 되건 연구 성과물로의 환원이 되건 회원들에게 돌려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기초 단계로 예술경영 포럼 같은 것을 운영한다든지,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분야에 대한 재교육도 진행할 생각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진 연구 인력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고 한다. 국공립 극장이나 예술단체 등의 프로그래밍을 통한 경영혁신이나 컨설팅도 구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가가 없는 공연장의 경우 컨설팅을 통해 예술단체와 네트워킹을 구축해준다든지, 시즌 프로그래밍이나 마케팅을 함께 고민한다든지 다각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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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소나 대규모의 여타 연구소도 강점이 있겠지만, 민간연구소의 역할이라면 어느 특정 분야의 전문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을 수 있겠다. 말하자면 모든 분야에 다 발을 걸치는 것보다는 연구소마다 어떤 색깔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전체 연구 생태계의 진정한 다양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 하에서 국책, 공공연구소와 민간연구소가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장에 보다 양질의 분석과 성과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민정아 예술경영을 대학에서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상당수는 기획이나 공공기관으로의 취업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 인력으로서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이용관 여러 곳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특히 석박사 급 인력은 연구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유도하면서, 다소 비체계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름의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거나 다른 기관에서 우수한 인력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다만 민간 연구소를 통한 이런 인력배출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다른 국책연구기관에서 적절한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 인력으로 전문성을 갖추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겠지만 그와 더불어 연구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겸비되었을 때 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다. 즉, 단순히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론적 틀을 가지고 자료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선행 연구들을 많이 탐독해야 할 것이고, 이들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자료의 최신성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논의의 흐름과 전개를 보다 꼼꼼하고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객관적 시각, 논리적 글쓰기 능력이 겸비된다면 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연구 인력이 된다고 본다.

우리사회의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실하게 노력하는 인력에 대한 주목이 있다는 점이다. 연구 분야에서도 성실하게 몰두하다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주목하는 눈이 있고 참여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공연예술의 본래 성격이 개인적이기보다 협업의 성격을 많이 띠는 것처럼, 연구 역시 공동의 작업이고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좋은 멘토를 만나고 자신의 전문분야를 연마하다보면 반드시 필요한 연구 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용관 이용관은 중앙일보/호암아트홀 문화사업부장, 부천문화재단 전문위원, 안양문화예술회관 관장을 역임했다. 부천과 안양에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공연시즌제를 도입하여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사)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speed2653@naver.com

사진설명 필자소개
민정아는 서울대학교 기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Univ. of Wisconsin- Madison에서 Journalism & Mass Communication으로 석사를,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 출강하면서 예술단체나 공연, 각종 기금의 평가, 공연장 운영 연구 등을 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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