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l 2012년 12월 18일 오후 5시 장 소 l 대학로 타셴

2012년, 임진년 마지막 달 ‘문답’ 코너의 초대 손님은 두 사람이다. 송승환(55) 회장과 이자람씨(33). 22년 터울의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weekly@예술경영] 독자들 덕분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weekly@예술경영]은 얼마 전 온라인으로 ‘2012년 국내 문화예술계 파워인물’을 묻는 설문조사를 예술행정과 예술창작 분야로 나눠 실시했다. 두 사람이 각각의 분야에서 낙점을 받았다. 이 코너에 등장한 이유다.

송승환은 누구인가? 50대 &lsquo;꽃중년&rsquo;의 표상인 송씨는 <난타> 신화를 일군 공연예술계의 오랜 스타다. 개인적으로는 15년 전 호암아트홀에서 <난타>가 처음 선보였을 때, 공연 담당 기자로서 눈곱만한 조력자가 됐던 인연이 있다. 이후 이 한 작품으로 송씨는 일약 공연예술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최근엔 모 종편TV에서 방영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서 시샘 많고 까칠한 둘째 아들로 나온다. 이걸 통해 나는 &lsquo;연기자 송승환&rsquo;을 재발견했다.

이자람은 누구인가? 놀라운 천재성을 가진 이 아티스트에 대해서 나는 늦깎이나 다름없다. 올해 열린 서울아트마켓(PAMS)에 이씨의 <억척가>가 쇼케이스에 참가하게 돼 처음 만났고, 작품도 알게 됐다. 물론 28년 전, 5세 무렵에 낸 노래 <내 이름 예솔아>를 통해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 비범한 인물이 이제 판소리를 새로운 개념과 형식으로 접근한 작품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정부 포탈 <공감>의 기고문에 나는 이씨를 일러 &lsquo;공연계의 싸이&rsquo;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럼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고수들끼리야 안 봐도 비디오일 터이지만, 둘의 만남도 &lsquo;사실상&rsquo; 처음이었다. 어떤 식으로 마련됐든 첫 만남은 어색한 법인데, 송씨와 이씨는 이미 오랜 인연처럼 서로 다정다감했다. 따라서 진행의 어색함으로 전혀 없었지만, 둘의 이야기를 각자의 위치에서 충분히, 밸런스 있게 끌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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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바쁜 연말 시간 내주어 고맙다. 각자 올해를 마무리하면?

송승환 공적인 일로 이야기 하면,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으로서의 활동이 의미 있었다. 전임자의 잔여임기 1년과 올해 1년을 더해 2년을 일 했는데 성과가 좋았다. 충무아트홀과 함께 지난 8월 &lsquo;서울뮤지컬페스티벌&rsquo;을 개최해 뮤지컬 붐을 확산시켰고, 창작뮤지컬 활성화를 목표로 한 &lsquo;창작뮤지컬 업그레이드 사업&rsquo;도 탈 없이 마무리 했다. 이를 위해 30억 원의 정부 예산을 확보한 것. 성과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이자람 나는 한마디로 말하면 <억척가>의 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5월 &lsquo;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rsquo;에 초청 받은데 이어 &lsquo;꿈의 무대&rsquo;로 여겼던 LG아트센터에도 오르면서 <억척가>는 우리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올해 서울아트마켓 쇼케이스에 참여하면서 이젠 세계무대로 도약할 기회가 마련됐다. 내년까지 이런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는 성장의 토대가 된 해였다.

정재왈 나이도, 서 있는 위치도, 가는 길도 다른 두 사람을 함께 모시고 인터뷰 하려니 기술상 어렵다. 공통의 관심 영역을 제외하고 따로 질문하는 것으로 하겠다. 먼저 송 회장께 묻겠다. <난타>의 오늘을 만든 PMC프로덕션의 현황은 어떤가?

송승환 경영현황으로 보면 &lsquo;꾸준한 성장세&rsquo;다. <난타>는 주류 관객인 일본인 관광객에다 차츰 중국 관광객이 추가되면서 여전히 흥행하고 있다. 올해 해외 관광객 1천만 명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이 가운데 1백20만 명 정도가 한국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간다. 이 관람객 중 80만 명 정도가 <난타>를 본다. 이 중 10만 명 정도가 중국인 관광객이다.

정재왈 그동안 PMC프로덕션은 <난타>외에 꾸준히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선보였다. 어떤 레퍼토리가 있으며, 성적은 어땠나?

송승환 우선 내년 초 선보일 신작부터 공개하겠다. <난타> 이후 야심작으로 내년 3월 <웨딩>을 &lsquo;정동난타극장&rsquo;에서 오픈런(open-run)으로 개막한다. 기존 <난타>는 충정로 구세군빌딩에 있는 극장으로 옮겨 간다. 제목처럼 <웨딩>은 결혼식장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노래에서 춤으로 엮은 뮤지컬쇼다. <난타>처럼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 또다른 뮤지컬 <루팡>도 2월부터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한다. 이미 공연했거나 공연 중인 작품으로는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달고나>, <젊음의 행진>, <밀당의 탄생> 그리고 어린이용 <난타>와 <로보캅 폴리> 등도 꼽을 수 있겠다. 레퍼토리를 합치면 총 20개 정도인데 모두 성공이랄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만족할 수준의 성적이었다.

송승환 송승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PMC프로덕션의 매출액은 3백78억 원, 경상이익은 71억 원, 순이익은 56억 원이다. 공연계의 건실한 대표주자로 손색없는 규모와 실적을 자랑한다. 이런 성장을 기반으로 PMC프로덕션은 2014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코스닥시장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송 회장은 올해 초 <난타>의 초창기 멤버로 마케팅을 총괄했던 후배에게 대표이사를 넘겼다. 자신은 회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다. 한편 공동대표로 <난타> 신화를 함께 일군 이광호씨는 PMC프로덕션의 지주회사인 PMC네트웍스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재왈 최근 뮤지컬 성장 덕에 난나긴다는 제작사는 많지만 경영의 안정성에 대해서 늘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앞서 제시했듯이, 건전한 성장을 유지하는 회사(단체)의 책임자로서, 일반적인 공연예술 단체가 PMC의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한다고 보는가.

송승환 &lsquo;4단계 순환론&rsquo;이랄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첫 단계로 (1)좋은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 이후 모든 게 다 잘될 걸로 알면 착각이다. 다음 단계로 요구되는 게 (2)수익창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어 세 번째 단계로 (3)콘텐츠의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관리, 즉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로 (4)이 성공한 &lsquo;킬러콘텐츠(killer contents)&rsquo;의 수익을 다음 작품을 위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선순환으로 이어질 때 공연회사(단체)로서 성공적이라 할 있다. 이런 점에서는 공연예술이라고 해도, 일반 제조업의 성공 과정과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각 단계별 역할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PMC의 &lsquo;얼굴마담&rsquo;으로 성공의 과실을 전부 얻은 것 같아 미안하긴 한데, 경영분야의 책임자로서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한 이광호라는 친구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 대목에서 시선을 이자람씨로 옮겼다. 수익의 정도와 성공 과정을 이야기하는 PMC의 사례와는 &lsquo;멀어도 너&sim;무 먼&rsquo; 기초예술 분야의 유아급 단체의 리더이기도 한 이자람씨에게 PMC의 성공사례는 생소할 터이다. 전혀 딴 나라 이야기 일 수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이자람씨는 <억척가>와 <사천가>를 &lsquo;판소리 만들기 자&rsquo;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자&rsquo;는 &lsquo;잘 해보자&rsquo;의 &lsquo;자&rsquo;라고 한다. 온전히 작품만 잘 해보자는 게 아닐 것 같아서 넌지시 배경을 물었다.

정재왈 그동안 이자람씨는 &lsquo;국악인 이자람&rsquo;으로서 이미 충분히 알려진 &lsquo;스타&rsquo;였다. 굳이 &lsquo;판소리 만들기 자&rsquo;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자람 단기적으로 보면 나 개인, 혹은 함께 모인 개개인이 각자 활동할 때 물리적인 이익은 훨씬 크다. 그런 상태에서 가끔 먹고 사는 문제가 닥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면 &ldquo;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rdquo; 하는 회의가 찾아온다. 뭔가 더 큰 부귀영화가 있을 것만 같은 인간의 마음 같은 것. 이런 회의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멋진 아티스트들과 서로 자극을 주면서, 배고플 때 같이 배고프고, 먹을 수 있을 때 같이 먹고, 그렇게 사는 것. 이 행복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lsquo;작은 공동체(commune)&rsquo;을 일구고 싶어서 &lsquo;판소리 만들기 자&rsquo;를 결성했다.
이자람 이자람

정재왈 좋다. 서로 행복해지기 위한 단원들의 작품 활동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분명 행복감을 선사할 것이다. 그 행복감을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는 고민으로 국내 공연도, 해외 공연도 하는 것이다. 5년 전에 나온 <사천가>나, 이제 두 살이 된 <억척가>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떻다고 보는가?

이자람 잘 됐다고들 하는 쪽이 많으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예술적인 충족도와 대중의 코드가 어느 지점에서 만날 것인가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다. <사천가>와 <억척가>가 송 회장님께서 앞서 말한, 성공과정의 첫 단계인 &lsquo;좋은 콘텐츠&rsquo;로 여길 만한 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해외 공연이 잦아지면서 현실적으로 콘텐츠로써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인식을 하는 정도다. &lsquo;판소리가 이 정도로 될 수 있다&rsquo;는 수준에서 말이다. 콘텐츠로써 성장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lsquo;투어매니저&rsquo;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정재왈 이쯤에서 이자람씨에게 &lsquo;예술경영의 고수&rsquo; 송 회장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다. 혹시 전도유망한 후배 아티스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송승환 이자람씨가 작창하고 출연한 뮤지컬 <서편제>(2010)는 창작 뮤지컬에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맛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점은 대중성 부족이다. 소위 &lsquo;작가주의&rsquo;와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상업극을 지향한다면 좀 더 대중적인 스토리와 노래 등을 가미해야 한다. 한마디로 &lsquo;먹물을 빼라&rsquo;는 것이다. 장르와 형식이 어떻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천가>든 <억척가>든 브랜드는 많아도 상관없다. 만약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전문적인 프로듀서와 연출자, 에이전시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라. PMC도 맨땅에 헤딩하듯, 4명으로 시작해 1백50명 규모로 성장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빵 하고 터지더라.

사실 예술경영자로서 송 회장과 아티스트인 이자람씨가 주고받는 대화가 지금의 단계와 위치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사람은 이미 뚜렷한 주관으로 완성된 위치에 있고, 한 사람은 아티스트로서 예술적 성취를 떠나 아직 배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상업예술과 기초예술이라는 지향점의 차이도 아직은 크다. 하지만 아무리 기초예술이라도 단체를 배경으로 하는 한, 합리적인 예술경영의 노하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PMC의 성공 사례는 여전히 유효한 참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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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송 회장께 일반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다. 한국의 뮤지컬 산업이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건가?

송승환 성장세는 분명하다고 본다. 시장 규모도 약 2천 5백억 원 대라고 하고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하나 우려되는 점은, 라이센스나 수입 뮤지컬에 비해 창작 뮤지컬의 부진이다. 가요와 TV드라마, 영화 등에 비해 좋은 작가와 작곡가, 배우, 연출 등 창작 인프라가 턱없이 취약하다. 한국영화가 &lsquo;한국영화아카데미&rsquo;라고 하는 전문학교 출신의 인재들 덕에 오늘의 발전을 이룬 것처럼, 뮤지컬도 그런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 풍부한 전문 인력들이 한국의 정서를 깊이 파고든다면, 지금의 뮤지컬 시장도 곧 창작 뮤지컬 시장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확신한다.

정재왈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그 에너지에 놀랐다. 기획제작사의 리더이자 한 분야를 대표하는 협회장으로서, 대학교 교수로서, 또한 연기자로서 &lsquo;1인 다역&rsquo;을 소화하기 벅차지 않나.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송승환 여덟 살이던 1965년 KBS 아역성우로 데뷔한 후, 멀티(multi)하게 일하는 데는 이력이 났다. 한 달을 90일이라 생각하고 살면 다 되더라. 내겐 오전과 오후, 저녁이 각각 하루씩인 셈이다. 대충 오전은 학교, 오후는 촬영, 저녁은 공연 연습 등으로 쪼개어 산다. 술은 전혀 안하고, 자식이 없으니 가능한 일인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지하게 일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학교 안식년인 내년은 무조건 쉴 생각이다. 그래서 뮤지컬협회장도 올해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연예인으로 한창 활동하던 1985&sim;88년, 뉴욕에서 3년 재충전하며 보낸 적인 있는데, 그런 여유로운 상황에서 이후 <난타>의 신화가 그려질 수 있었다. 그런 쉼이 없었으면 <난타>는 없었다.

정재왈 이자람씨와는 <사천가>와 <억척가>에 얽힌 작품 이야기를 주로 했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가 못돼 안타깝다. 다음 그런 기회를 만들기로 하고, 앞으로 계획을 말해 달라.

이자람 배움의 과정(서울대 박사과정)도 아직 끝나지 않아서 이를 마치는 것도 나에겐 중요하다. 판소리는 평생 공연할 것이고, 꿈이 있다면 후속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능력을 쏟아내는 것만큼,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연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재능들, 이를 테면 현대무용이라든가 연기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단체와 함께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판소리 장르의 대중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를 다르게 인식시키는 일이다. 그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체계화해서 &lsquo;양식화&rsquo;하는 일도 중요한데, 전략적인 사람이 못돼서 고민이다.

올해 서울아트마켓에 왔던 해외의 프로듀서와 프로모터, 축제기획자 가운데 작품으로서 <억척가>는 물론, 아티스트로서 이자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초청하고픈 1순위로 자주 거명됐다. 소리와 발림이 보여주는 판소리의 독특함이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특히 서구인들이 두루 인식하고 있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원리를 지혜롭게 차용한 보편성이 크게 어필한 측면도 컸다. 세계시장이 손짓하는 그 유력한 콘텐츠가 송승환 식의 &lsquo;킬러콘텐츠&rsquo; 성공 문법과 조화롭게 만난다면, 기초예술의 토양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작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래저래 두 사람의 활약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종횡무진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송승환 이자람 설명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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