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한밭(大田)이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울산(‘13년 5월) - 인천 (‘13년 7월)
일  시 l 2013년 1월 17일(금) 오전 10시 반 장  소 l 대전문화재단

이 분은 달변이면서 과시욕(?)도 좀 있다. 이를 그의 장점으로 읽는다면, 붙임성이 매우 좋다는 이야기이다. 대전문화재단 박상언(54) 대표. 그는 2011년부터 대전문화재단 제2대 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17개월 일을 했다.

그는 대전이 무연고인 사람이다. 연고주의가 재단 대표를 맡게 된 이유가 아니란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는 부임 직전까지 서울에서, 그것도 문화예술계에서, 지체 높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간부로 있었다. 그는 “예술위 출신 중 지자체 문화재단 대표가 된 첫 케이스 임”을 또한 자랑스럽게 여긴다.

정재왈 살아보니 대전은 어떤 곳인가?

박상언 40대 이후 가장 살기 좋은 곳. 한 마디로 여유가 있다는 얘기인데,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대전의 신호등은 다른 도시의 신호등 보다 점멸시간이 5∼10초 길다. 대전 사람들은 못 느낄 거다. 난 분명 느낀다(* 필자는 그게 느끼는 자의 ‘마음의 시간차’인지, 사실이 그런지 실측 해보지는 않았으므로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반면 젊은 층의 활기가 부족한 면이 좀 있는 것 같다.

정재왈 무연고라는 대전에서 정착이 힘들지 않나?

박상언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다. 다 아시다시피 나이 50이 넘어 새 직장에 도전하고, 새 터전을 마련하는 건 모험 중의 모험이다. 앞에서 말한 ‘대전의 여유’를 느끼지 못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문화예술적인 마인드를 갖춘 시장님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정재왈 문화예술과 관련해 대전은 시장(염홍철) 덕은 있는 것 같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관장을 역임한 조석준씨도 전에 염 시장과 일하면서 ‘문화마인드’ 덕에 편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상언 시장님은 정치학 전공이면서도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다. 시인인 정치, 행정가. 매력 있다. 대전도 그런 마인드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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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아무튼 재단은 시와 시장의 문화예술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손발이 되어야 하는 역할도 있다. 일제 강점기 계획도시로 성립된 이후, 대전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란 이미지로 고착됐다. 문화예술은 오랜 동안 정주민(시민)들의 숨결이 ‘고이고 쌓이고 응축돼야’ 그 도시 고유의 꼴이 생기는 법. 먼 밖의 사람인 나에게 대전은 마냥 넘나드는 ‘유랑자들의 도시’ 같다는 인상인데, 문화예술적인 자산이 있기는 한 건가?

박상언 사실 대전의 특징을 집약한 수식어는 엄청 많다. 정 대표가 말한 ‘교통도시’부터, 행정도시, 과학도시, 교육도시, 하천도시 등. 대전이 품고 있는 자산은 다양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문화와 접목한 ‘플러스(+)의 가치’를 추가할 것은 없을까?등에서 나온 발상이 기존 ‘과학도시’의 이미지에 ‘문화예술도시’(혹은 창조도시)의 가치를 더하는 거다.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적인 시도를 통해 대전의 강점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 말이다.

정재왈 그래서 시도되는 구체적인 사업이 있거나, 아니면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박상언 근사한 일이 있다. 바로 ‘아티언스(Artience) 프로젝트’다. 2011년 재단 대표를 맡은 후 이 단어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개발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모두 5개의 프로그램으로 짜여 실행됐다. 첫째(1)는 융복합예술포럼. 아티언스에 대한 개념 정립 및 사업 설계 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의 장이다. 다음(2)은 아티언스캠프. 아동청소년들의 융복합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한 자리로, 로봇 제작에서부터 공연 연출 등 다양한 걸 시도했다. 이어(3) 아티언스 공모전과 (4)아티언스 레지던시라는 이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5)아티언스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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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Art)와 사이언스(Science)의 합성어인 ‘아티언스’는 실행 사업 내용의 우수성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어감이 좋다. 입에 잘 달라붙어 외우기 쉽고, 뭔가 있어 보이는 강점도 있다.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에서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과 경계할 바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인용하면 이렇다.

“아티언스 프로젝트라면 아트와 사이언스를 합치는 새로운 아이디어 프로젝트 같으나 그것만은 아니다. 대전문화재단이 지난해(2011년) 11월 이 단어를 만들기 이전에도 아트와 사이언스는 과거에도 언제나 결합해 왔다. 그러므로 아티언스가 아트와 사이언스를 합한 새로운 단어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물리적인 경합에만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일단 이런 시도는 융복합이 대세인 시대에 적절하게 찾아낸 화두임은 틀림없다. 이에 대한 마땅한 보상인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지역협력형 우수 성과사업’ 경쟁에서 16개 시도 지역 브랜드 개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정재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셈이다. 축하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대전의 변화가 궁금하다. 이유는 이렇다. 대전은 광역시가 되기 전, 한참 오래 전부터 충청남도의 (행정)중심이었다. 지리적으로는 전혀 중심이 될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으나, 도청 소재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 그런데 지난해 도청이 내포지역인 예산과 홍성 일대로 이전해 대전의 ‘공동화현상(空洞化現象)’이 예상된다. 서구의 예에서도 보듯이, 흔히 이럴 때 공동화를 메우는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에는 ‘문화’가 빠지질 않는다. 대전은 어떤가?

박상언 좋은 말이다. 정 대표가 지적하고 염려한 대로, 대전의 도심 공동화 현상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어서, 대전시에서는 원(元)도심 중심의 문화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정재왈 타 지역 사람들이 많은 우리 독자에게 그림을 보듯 그 계획을 설명해 달라.

박상언 우선 근대문화유산으로 선화동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충남도청’의 활용 방안이 현안 중의 현안이다. 대전시는 충청남도로부터 이 건물을 임대 받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여기에 아까 말한 아티언스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될 ‘아트 & 사이언스센터’가 입주할 예정이다. 우리 재단은 지금의 유성구 도룡동에서 원도심인 문화동의 ‘연정국악문화회관(옛 대전시민회관)’으로 자리를 옮길 계획인데, 그러면 공연장과 전시실 운영도 맡게 된다. 또한 역시 원도심에 있는 대흥동 ‘테미도서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창작예술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세 공간이 지리적인 근접성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이라는 공동분모로 연결돼 자연스럽게 내년 쯤 ‘예술의 거리’가 완성된다. ‘문화도시 대전’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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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아무리 시장의 마인드가 좋고 신개념(아티언스)에 대한 시민의 동의도 있고, 마침 적당한 지역과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일. 실탄(시의 재정)은 충분한가?

박상언 시 재정은 내 몫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으나, 시의 ‘재정건정성’은 전국 시도 가운데 으뜸이라고 들었다. 또한 현재 1백50만 명인 대전의 인구도 소폭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문화도시의 가능성은 낙관적이라고 본다. 재단은 이런 ‘고품격 문화 창조도시’의 일선에 있다고 자부한다.

대전은 이미 지역 공연장 가운데 성공적인 운영사례로 꼽히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의 예에서 보듯이, 적당한 계기와 자극이 있으면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선례는 문화예술로 원도심을 재생하려는 대전의 미래 비전에 믿음직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문화재단이 감당할 몫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박 대표의 돌파력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어느 프랑스 극장의 예술감독(Alain Herzog)이 한 말을 자신의 각오처럼 대신 나에게 소개했다. “예술가는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는 사람이고 행정가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다.” 캬! 삼삼한 말이다.
박상언 중앙대 문예창작 학사, 동대학원 예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대학원 행정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 수료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였다. 아르코미술관 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영전략본부 본부장을 거쳐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2011년 9월부터 제2대 대전문화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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