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서비스 시장이 과열 경쟁에 들어서면서 최근 일종의 블루오션 영역으로서 변호사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방법론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수익을 따라가기보다는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분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법과 제도의 본래적 기능은 일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즉,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규제적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가능한 영역과 방법'에 대해 알려 준다는 점에서, 성가신 대상이라기보다는 같은 편 친구로 삼아야 할 존재다. 법과 제도에 대해 문화예술계에 존재하는 껄끄러움 내지 불편한 영역을 해소하기 위해 1분 1초의 시간도 흘려보내기 아깝다는 사람이 있다. ‘피아노 치는 변호사’로 알려진 박지영 변호사(법무법인 정진)는 그렇게, ‘공익적 유전자’를 일찌감치 인정해 버린 사람이다. 15년간 피아노를 쳐 음악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법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으며, 이제 행복한 예술경영 컨설턴트로서 문화예술 관련 자문과 소송대리를 하고 있는 그녀는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고, 예술경영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예술경영인들의 동료임을 자처한다. 박지영 변호사를 만나 예술경영과 예술경영인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수익보다는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일

강은경 예술경영 커뮤니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됐나?

박지영 전공을 바꿔 뒤늦게 변호사 일을 시작했고, 제대로 해 내고 싶었다. 7-8년 정도 실전에서 다양한 업무를 익혔고 송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어떠한 분야라도 수행할 수 있는 자신감이 형성될 무렵, 재직하던 법무법인(법무법인 (유)로고스)에서 예술분야 센터장으로서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기관연계형 컨설팅을 통해 무료상담 업무를 진행하게 됐다. 1년 여 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전임 컨설턴트로서 자문 업무를 시작했고, 이후로 문화예술계 관련 업무가 점차 확장됐다. 낮에 이혼소송을 처리하면서 밤에 예술단체 자문에 회신을 하는 식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예술 분야의 업무는 전체 업무에서 보면 아직도 매우 적은 비중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연이 인연을 낳으면서 단순 컨설팅이나 무료 변론을 넘어 예술단체들이 권리를 찾겠다고 소송을 의뢰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강은경 그렇다면 본인을 문화예술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해도 좋을까?

박지영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람이 크니 내게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법률서비스 시장이 과열 경쟁에 들어서면서 최근 일종의 블루오션 영역으로서 변호사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영역의 법률 서비스는 문화예술을 뼛속까지 사랑하고, 문화예술계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부동산 전문 법조인이니 나는 문화예술에 특화하겠다”라는 식의 대체재 같은 개념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방법론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수익을 따라가기보다는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분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시적인 무엇인가가 당장 생기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은 고객이 먼저 느끼는 것 같다.

자문변호사 연계지원사업 중 강의하는 박지영 변호사의 모습1 자문변호사 연계지원사업 중 강의하는 박지영 변호사의 모습2
▲ 자문변호사 연계지원사업 중 강의하는 박지영 변호사

강은경 예술경영인들을 위한 컨설팅과 송무를 진행해오면서 특별히 힘이 들었거나 보람이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박지영 언젠가 시각장애인의 고용을 창출하고 비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특별한 전시를 하는 회사를 자문하고 소송대리를 한 적이 있었다. 진정으로 법률자문이 필요한 곳이 바로 이런 사업을 하는 곳이라 생각되었고, 소송에서 큰 도움이 못 되어 드렸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었던 사례였다. 흔하게 발생하는 사례를 하나 들자면, 공연예술단체가 업무를 진행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먼저 일이 추진되는 경우가 있는데,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무산되었을 경우 계약상 의무 내용을 주장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계약 체결 전 계약 교섭 단계에서 이를 부당파기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도 배상받을 수 있다는 법리를 적용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강은경 법조계와 문화예술계의 문법이 다른 것을 조율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박지영 한번은 재판 중 클래식 공연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재판부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 법리를 아는 것과 특정 분야에서 통용되는 기준과 상식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임을 확인했고, 문화예술계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 문화예술에 대한 법과 제도를 제대로 옷 입히는 과정이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는 기회였다(업체와 구체적 소송내용을 밝힐 수가 없어 다소 추상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강은경 두 분야의 생태계랄까 업무처리 구조가 달라서 오는 실무상 애로도 있었을 것 같다.

박지영 변호사 업무는 착수금-성공보수 구조 내지 시간당 청구(time charge) 구조이다. 수익이 나든 안 나든 노동 투입시간 당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방식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자 우리가 업무에 들어가니까 당신은 착수금을 주셔야 합니다. 계약사항 이외의 일들은 알아서 하시고요”라는 식으로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문화예술을 뼛속까지 좋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종 인맥에 기반해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마주친 법조인들에게 방어적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끙끙대시다가 결국 해결이 안 되시니 자문을 하러 오신 분들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자문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결국 상호간에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법과 예술경영이 함께 하는 미래

강은경 그렇다면 향후 법과 예술경영을 매개로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박지영 아직 구체화해서 이야기하기는 이르지만, 얼마 전부터 지인들과 이야기하고 꿈꾸는 일이 생겼다. 어떤 플랫폼을 만드는 일인데, 예술단체․기관과 법무법인이 하나의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있어 일종의 지식기부형 조인트 벤처 같은 형태를 만들어서 처음부터 해당 프로젝트의 위험도 수익도 함께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영화제작이라면 크랭크 인 이전 단계부터 법률적 위험을 함께 예측하고 해결해 나가도록 하고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때만 변호사 비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즉,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제작단계 전반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예술계 쪽은 대다수가 공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내 쪽의 의지였다.

강은경 현실적으로 영화나 대형 공연같이 제작비 규모가 크고 어느 정도 수익구조가 예측될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가능한 것 아닌가?

박지영 아무래도 영화나 뮤지컬 분야에서 현실화가 쉬울 것이고 예컨대 정극을 만드는 극단이라면 시작이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업이 협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원관계라는 것이 반드시 대가성이 없다고 할 수 없고 기업의 방향이라든지 하는 것이 개입하면서 다시 순수성이 희석될테니 그것도 문제가 있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강은경 구체적 현실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박지영 프로젝트 초기부터 콘텐츠 제작 자체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문화예술 관련 시장에서 수요 측면에 선행하는 공급 측면부터 함께 고민하는 거다. 앞서 제안한 아이디어에 다들 공감하는데 ‘단지 영세하기 때문에’ 안 된다면, 일단 공급자 측 덩어리를 키워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순수예술계에서 ‘고용창출’이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지 체험해 본 사람은 안다. 당사자는 아니면서 수요자와 공급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위치이기에 지난 3년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이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됐다. 이 일을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시드 머니(seed money)가 필요하기에 재원 확보를 위해 개인적으로 더 노력하려고 한다. 아직은 뭔가를 한다고 이야기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한 바퀴만 돌아보면 감이 생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계를 속속들이 더 알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예술교육이나 운영 현장의 일도 체험해보고 싶다.

2012 서울아트마켓 부스에서 1:1로 예술경영 컨설팅을 하는 박지영 변호사 모습

▲ 2012 서울아트마켓 부스에서
예술경영 컨설팅을 하는 박지영 변호사

강은경 예술경영 컨설팅을 하면서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원칙이 있다면?

박지영 질문을 접수하고 선별하여 전달하는 담당자에게 컨설팅에 적합한 질문이 형성되지 않은 단체라고 해서 걸러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질문조차 정리하기 어려운, 시작하는 단계의 단체들이야말로 상담을 통해 방향성을 잡아주어야 한다. 오히려 질문을 정리해서 뽑아낼 수 있는 단계라면 스스로 정보를 취합해서 어느 정도 자기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간혹 고객들과 인연을 길게 가져가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런 것이 있다면 잘 들어주는 것뿐이다. 치료해달라고 온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만큼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위로가 되신다니 도리어 감사할 뿐이다.

강은경 박지영 변호사에게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박지영 만약에 문화예술이 없다면 지구상에 이만큼의 인구가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 문화예술이 공기가 되어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해 주었는데 우리는 너무 당연한 존재이기에 눈에 보이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를 살렸다고들 믿는다. 풍족해졌을 때 하는 것이 문화예술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법률 서비스 분야 이외에도 예술경영 각 분야에 아무런 과실 없이도 참여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조금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문화예술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내용의 입법화 같은 것이라도 이루어졌으면 싶은 마음이다.

박지영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예술경영 커뮤니티는 속성상 그 어느 곳보다도 우연과 필연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사담이지만, 오래전 예술학교 재학시절 예비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필자는 당시 예비 피아니스트 박지영에게 마지막 공개무대의 반주를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지나, 법대 캠퍼스를 떠나 다시 예술계를 좇아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녀가 음대를 떠나 법대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동료 컨설턴트로서 박지영 변호사를 만났다. 이제 그녀와 건반과 지판을 통해 호흡을 나누는 대신, 법과 제도라는 도구로 예술경영 커뮤니티를 돕기 위한 궁리와 걱정을 나눈다. 이번엔 그 인연의 끈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소망해 본다.

박지영
박지영 변호사는 중고등학교 시절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서울대 음대에 진학하여 작곡과 이론을 전공하였다. 이후 동 대학교에서 법학, 동 대학원에서 민법 석사과정을 수료하였고 사법연수를 마친 후부터 법무법인(유)로고스의 소속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3년 2월부터 법무법인 정진에서 활동 중이다. '피아노 치는 변호사'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관련기사 링크
[핫&이슈] 예술현장의 든든한 서포터즈 (2011.03.31)

관련정보 링크
예술경영 컨설팅 사업 자세히 보기
강은경 필자소개
강은경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 전문사를, 뉴욕의 벤자민 카도조 로스쿨에서 지적재산권법(예술법) 전문석사를 받았다. 공연기획사와 문화재단 등에서의 공연실무자로서의 경험에 바탕해 국제교류와 법과 공연예술 영역에 관한 이론과 사례를 통섭화한 <공연계약의 이해>의 저자이며 <공연예술분야 표준계약서 제도 연구> 등을 집필했다.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컨설턴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