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부산이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울산(‘13년 5월) - 인천 (‘13년 7월)
일  시 l 2013년 3월 14일(목) 오전 11시 장  소 l 부산문화재단

요즘 부산에서 가장 ‘핫(hot)’한 곳이라면 해운대, 그것도 ‘센텀지역’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2년 전인가 부산에 휴가를 간 나는 그 곳에서도 가장 ‘핫’한 곳인 어느 백화점 안의 ‘고급목욕탕(사우나)’엘 가족들과 함께 ‘즐기러’ 갔는데, 문전에서 퇴짜를 맡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행세깨나 하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한 곳인 모양인데,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우리 꼬마가 문제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탕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징징댈 우려가 있는 꼬마들은 ‘고위험군’에 속해서 폼 나는 탕 내 분위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사절이란다. 영업 방침이니 수긍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얼마 전 그 지역엘 다시 들렀다. 문제의 그 공간 근처에 있는 부산문화재단이 목적지였다. 재단은 센텀벤처타운 4층에 있었는데, 대낮인데도 사무실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재단의 분위기가 그래서? 전혀, 전혀 아니다. 이 일대는 최근 몇 년 새 홍콩이나 뉴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마천루들이 인물 자랑하듯 빽빽이 들어서 ‘햇볕가리개’ 역할을 했던 것. 그 덕에 여름은 즐길 만 할 것 같은데, 겨울은 왠지 을씨년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심적으로)밝아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부산문화재단 로고 사진

그런데, 이곳에 나는 뜻밖에 성자(聖者) 같은 분을 만났다. 재단의 남송우(60) 대표가 그 분이다. 부산에 있는 국립 부경대의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이 분은 본업을 떠나 잠시 ‘공익근무’ 중이다. 말과 언어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조리 있는 이야기 법이야 당연히 갖춘 덕목이겠으나, 공익 근무 요원으로서 엄정한 자세는 귀감이었다. 짧은 만남에서도 나는 그것을 읽었다. 그 품성의 배경에 종교인으로서의 신심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터뷰 말미에 알았다. 젊은 시절 목사가 되려던 꿈과 우연히 접게 된 사연을 남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거제도가 고향인데, 대학(부산대)에 입학하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대학 졸업 후 모교의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할 때, 신학대학원에도 동시에 입학했다. 목사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목사가 될 팔자는 아니었나보다. 등록을 앞둔 그 무렵 대구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에 큰 손상을 입어 4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휴학계를 부탁한 친구가 그만 까마귀 고기를 먹는 바람에 ‘자동제적’. 신학대학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문학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 대표는 지금 목사는 안됐지만, 성직자 같은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있다’라는 단정은 전적으로 내 판단은 아니다. 인터뷰 자리에 합석했던 조정윤 기획홍보팀장 왈. “대표님은 빨리 대학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더 오래 대표 하시다간 사모님으로부터 이혼 당하실지도 몰라요. 모든 직원들 생일 때마다 사비를 내 케이크 파티를 해주시고요, 공사 구분이 너∼무 엄격하세요.” 와우, 이걸 직원의 노골적인 아부(?)라고 해야 할 지, 순간 판단키 어려웠으나 이내 남대표의 진정성과 함께 이 직원의 진심도 알게 됐다.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사진 2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사진 3

남 대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비평의 해부>란 책으로 유명한 노드롭 프라이(Nothrop Frye)를 전공했다고 한다. 책 제목에서 보듯이, 프라이는 문학연구에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캐나다 출신의 지성이다. 그런 영향 때문인가, 2011년 부산문화재단의 2대 대표로 취임한 남 대표는 재단 운영면에서도 &lsquo;과학적 엄정성&rsquo;이 엿보였다. 매우 과학적인 논리 체계로 목표 설정이 돼 있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곧 인터뷰에서 확인됐다.

정재왈 부산문화재단이 하는 일을 듣고 싶다.

남송우 우선 문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두 가지 토대 위에 있다. &lsquo;문화는 다양성이 생명&rsquo;이라는 것이 첫째요, 이런 점에서 &lsquo;지역문화는 지역 정체성이 바탕&rsquo;이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당연히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곳이어야 한다.

정재왈 어느 지역문화재단의 대표이든, 누구나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lsquo;부산의 문화적 정체성&rsquo;은 무엇인가?

남송우 그걸 드러내는 일이 &lsquo;부산문화재단 2020 비전&rsquo;이었다. 취임 이후 부산 지역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골몰한 끝에 3가지 가치를 찾아냈다. 첫째는 해양(海洋), 둘째는 미래(未來), 셋째는 순환(循環)이다.

정재왈 신선하지만 감은 잘 안 온다. 각각의 의미를 좀 더 듣고 싶다.

남송우 먼저 해양부터 말하면 이렇다. 부산은 잘 알다시피 항구도시이다. 바다는 &lsquo;개방&rsquo;과 &lsquo;해방&rsquo;을 의미한다. 지금 인류는 땅 중심의 사유에 갇혀 생존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국가 간, 인종 간 갈등과 부작용, 지구온난화 문제 등 죄다 땅 중심의 사유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지구 70%가 바다이다. 잊고 있지만 놀라운 사실이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바다 중심으로 사유체계가 바뀌어야 지금의 문제가 해결된다.

정재왈 바다도 인류의 전쟁터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남송우 일부 그렇지만, 바다는 여전히 드넓은 공해(公海)를 가지고 있다. 공존(共存)의 원리를 제공하며 교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생명이 바다로부터 시작했듯이, 지금 인류가 직면한 죽음의 요소를 치유해 복원하는 힘을 바다는 갖고 있다. 부산은 단순히 &lsquo;항구도시&rsquo;를 넘어 해양 중심 사유의 출발지여야 한다.

정재왈 이제 이해하겠다. 부산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 해결의 해결사여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해서 너무 거창하다 생각했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란 걸 알았다. 땅 중심에서 해양 중심으로, 사유체계의 변화를 이끄는 발신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정도로 받아들이겠다. 그럼 미래는 무엇인가?

남송우 현재도 과거도 물론 다 중요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현재와 과거도 &lsquo;미래를 현재화(現在化)&rsquo;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라는 점에서, 누구나 &lsquo;공유(公有)&rsquo;할 수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생산력으로 채워가야 할 시간으로, 해양(공간)과 같이 작동할 때 힘을 발휘한다. 시간과 공간이 그렇게 만나야 생산력이 나온다.

정재왈 세 번째 가치인 &lsquo;순환&rsquo;을 들어보기에 앞서, &lsquo;해양&rsquo;과 &lsquo;미래&rsquo;의 가치들이 재단의 사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듣고 싶다. 결국 모든 이상적인 가치도 &lsquo;실체화&rsquo;해서 보여주지 못하면 공염불이라는 돌팔매를 맡게 되는 게 냉혹한 현실 아닌가?!

남송우 좋은 지적이다. 먼저 미래 가치부터 이야기하면 &lsquo;미래는 교육&rsquo;이다. 아까 말한 사유의 체계를 바꿔 미래를 공유할 힘을 키우는 것은 교육의 힘이다. 그 중 문화야 말로 얼마나 힘이 센가? 재단 내에 &lsquo;문화예술교육센터&rsquo;를 두어, 부산시내 16개 군(기장군)‧구에 지역 특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또한 지역의 정체성이 사업 판단의 기준이다.

정재왈 &lsquo;해양&rsquo; 프로젝트로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남송우 &lsquo;조선통신사사업&rsquo;을 으뜸으로 꼽겠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막부(幕府)에 파견하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양국의 문화가 오고갔다. 해양 개념으로 말하면, 물길이 오고가는 찬란한 교류(交流)의 역사이다. 부산은 그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했다.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대마도 등 일본의 여러 지역과 이미 오래 전부터 하던 사업이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더욱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재단이 발족하면서 &lsquo;21세기 신(新) 조선통신사&rsquo;라는 타이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데 &lsquo;레지던시사업&rsquo;의 성과가 매우 좋다. 일본 외에 중국, 대만, 네팔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 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 직원이 &ldquo;한강 이남에서 하는 지역문화재단 최초의 문화예술 국제교류사업&rdquo;이라고 하더라.

정재왈 다음은 &lsquo;순환&rsquo;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남송우 인간의 신체도 순환이 잘 돼야 건강체이듯이, 문화예술도 건강하려면 이 순환이 원활해야 한다. 한마디로 문화예술 생태계가 건강해야 한다. 이전에는 그 순환의 주체가 창작자, 혹은 예술가로 일방적이었다. 다시 말해 수직적이었다. 이래서는 순환이라 할 수 없다. 또 다른 주체, 즉 수용자인 시민이 문화예술의 가치를 공유 ‧ 향유할 때 순환의 고리가 제대로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영역이 서로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한데 이 또한 두 주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일. 그 사이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 복지 서비스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lsquo;매개자&rsquo;는 인문학과 예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등 좀 더 넓은 영역까지도 포괄한다. 매개자 육성 사업으로 지난해 &lsquo;부산 청년 문화수도 프로젝트&rsquo;란 걸 시작했는데, 지역특화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개발하는 공모사업이었다. 선정단체인 &lsquo;광안리사람들&rsquo;은 지역 성격에 맞는 축제와 거리예술제, 학술 행사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 반응이 뜨거웠다. 세계적 수준으로 주요 대회를 석권하는 &lsquo;비보이&rsquo;가 원래 부산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아는가? 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숨은 지역 인재들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인터뷰하는 사진

정재왈 지역문화재단이라 얕봤다간 큰 코 다치겠다. 종횡무진이다. 예산 압박은 없는가?

남송우 연 2백억 원 정도로 재단과 사업을 운영한다. 규모는 서울 등 다른 광역 문화재단에 비해 적은 편이 아니다. 현재 2백23억원의 적립금이 있고, 매년 부산시로부터 40억 원의 적립금으로 추가도 받고 있다. 곧 부산시 자체로도 &lsquo;문화비전&rsquo;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

정재왈 지역 문화재단들이 정책사업 외에 문화예술 공간 운영도 떠맡는 경우가 많은데, 부산은 어떤가?

남송우 사업의 내실을 위해 공간 확보는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재단 자체 사무실을 남구 동촌초등학교를 개조해 쓰기로 하고, 상반기 거기로 이전한다. 사무공간과 일부는 창작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사하구 &lsquo;홍티&rsquo;란 포구에 창작공간이 들어서고, 부산의 지하철 빈 공간은 인디문화 연습장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사상구에는 &lsquo;사상 인디 스테이션&rsquo;이라는 이름의 인디 공연장도 마련한다. 아까 말한, 비보이 탄생지로서의 자존심이 좀 살아나지 않을까?

정재왈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업 설계와 내용이 탄탄하다는 걸 느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답게 예산 규모도 만만찮고. 지역문화재단 후발주자나, 타 지역의 기존 문화재단에도 자극이 될 것 같다.

남송우 해양 도시 문화의 거점으로서 부산의 장점은 매우 개방적이며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도시의 문화가 그렇고, 그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외부 문화나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포용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부산문화재단이 한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장점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lsquo;시도 문화재단 대표자 회의&rsquo;를 처음 개최하면서 타 지역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정재왈 끝으로 묻겠다. 교수에서 문화행정가로 변신해보니 어떤가?

남송우 몸 담고 있는 곳이 국립대라 행정에 문외한이었던 건 아니지만, 길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적 후광으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hellip;.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해 &lsquo;문화행정&rsquo;이란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은 하는데,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서울의 일터에서 조직의 미션이니 비전이니, 추진전략이니 하는 말을 나 스스로 수없이 하거나 듣고, 고민하던 터라 멀리 부산에 와서 그런 말을 다시 들으니 &lsquo;방과 후 수업&rsquo; 같기도 했다. 한데 이 부산문화재단의 그것, 그리고 대표의 생각은 정말 매력 있고 알찼으며, 신선했다. 남 대표를 통해 &lsquo;개인의 윤리가 사회를 움직이는 근원적 동력이 되어야 한다&rsquo;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서구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를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 찾았던 막스 베버의 예리한 분석을 되새기게 됐다는 것.

남송우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하여 문학평론가로 활동 하였으며 『오늘의 문예비평』편집인을 역임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동북아시아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1년 2월부터는 재직하던 부경대학교를 잠시 휴직하고 제2대 부산문화재단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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