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한 시간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네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사람들이 널 생각하게 만들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건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뮤지컬하면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프랑스뮤지컬 열풍이 불더니 최근에는 유럽 동구권뮤지컬이 그 자리를 꿰찼다. 체코뮤지컬 <햄릿>, <클레오파트라>, <삼총사>, <잭더리퍼>나 오스트리아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 스위스뮤지컬 <몬테크리스토>등이 연이어 한국무대에 올랐다. 이들 뮤지컬은 높은 흥행기록을 세우며 대중성을 확인했고,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모든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한 이가 바로 떼아뜨로 대표이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인 김지원이다. 공연계에 발들이기 이전 유일하게 뮤지컬을 본 게 고등학교 시절일 만큼 뮤지컬과 무관한 길을 걸어온 이가 이뤄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성과다. 신념을 품고 투신한 것도 아니다. 빚더미에도 올라앉아봤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연달아 화제작을 터트리게 되었을까?

김지원 사진1

청첩장이 나와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식장

김일송 먼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지원 30대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고, 멋모르고 <드라큘라>라는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공연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드라큘라>는 지인의 추천으로 쉽게 계약해 추진한 공연이었다. 원래 나는 인터넷쇼핑이나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을 정도로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아야만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작품을 보지도 않고 공연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준비 과정에서 무대에 올리면 안 된다는 판단이 들더라. 하지만 어떻게 진행을 멈춰야 할지 몰랐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청첩장이 나와 어쩔 수 없이 식장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작품을 올렸고, 결국 15억 원을 빚졌다. 중간에 그만두었으면 몇 억 손해보고 말 일이었는데.

김일송 만만치 않은 돈인데, 빚은 다 갚았나?

김지원 아직도 갚고 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탕감했다.(웃음) 그렇게 실패를 하니, 오기가 생기더라. 이제 겨우 알 것 같은데 그만두려니 억울한 생각도 들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내가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올리자고, 정확하게 시장을 파악하고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공연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엄홍현 대표와 차린 게 EMK뮤지컬컴퍼니였다. 그때 대표로부터 일단은 한 회사로 시작하지만,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공연배급과 홍보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분리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그게 떼아뜨로다. 결국 떼아뜨로에서 하는 일은 좋은 작품을 찾아 적절한 공연 시기를 결정하고 거기 맞는 홍보마케팅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그런데 4-5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배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더라. 결국 배우가 잘해야 작품도 살고 회사도 잘되니까. 좋은 배우에게 좋은 작품을 연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배우의 부탁으로 매니지먼트까지 맡게 되었다.


김일송 언급했듯 떼아뜨로는 공연배급, 매니지먼트, 홍보마케팅 등 세 가지 사업을 진행하는데, 그중 가장 역점을 두고 있거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어떤 사업인가?

김지원 똑같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와서, 좋은 배우를 섭외하고, 그걸 잘 마케팅하고 PR을 해야 작품이 성공하니,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없다.

김지원 사진2

김일송 떼아뜨로가 대한민국 최초의 공연 콘텐츠 배급 전문회사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정말인가?

김지원 이전에는 개인 에이전트 한두 분이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들었다. 개인 에이전트는 부동산 중개인이랑 비슷하다. 복비 받고 집 팔면 끝이듯, 그들은 커미션을 받고 작품을 팔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그들이 작품이 시장상황이랑 맞는지 제작자가 제작능력이 있는지, 고민을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 회사를 최초의 공연 콘텐츠 배급 전문회사라고 말하는 건 시장상황을 고려해 좋은 작품을 제대로 맞는 회사와 연결해준다는 의미에서다.

김일송 수입도 배급이지만, 수출도 배급이다.

김지원 그렇다. <햄릿>을 일본에 라이선스 계약, 수출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요즘 일본에 진출한 공연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투어공연이다. 투어공연과 라이선스공연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시장도 다르고 관객층도 다르다. 국내에서도 투어공연은 이벤트 회사들이 주로 제작하고, 라이선스 공연은 제대로 된 공연제작사가 제작하지 않나. 콘텐츠 자체를 팔았다는 건 드문 일이다. 국내에서는 <사랑은 비를 타고>나 <햄릿>, <빨래> 정도가 있을 것이다.

김일송 그런가 하면 배급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관여하던데.

김지원 적당한 호칭을 붙이자면 기획프로듀서 쯤이 될 거다. 보통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음악을 천 번은 넘게 듣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크리에이티브팀을 구성하거나 캐스팅을 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캐스팅에도 관여하다 보니, 좋은 작품이 있으면 배우들에게 미리 운을 떼어놓기도 하는데, 반대로 어떤 때는 배우에게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할 때도 생겼다.

김일송 그런 혜택 때문에 떼아뜨로에 들어가고픈 배우들이 많을 텐데, 소속 배우가 6명밖에 없다.

김지원 누군가를 매니지먼트 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돈 벌려고 함부로 대충할 수는 없다. 배우와 인생을 설계하는 일인데,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겠나. 내가 다 신경 써야 하는데, 최대치는 5-6명인 것 같더라. 그 이상의 배우를 관리하자면, 대형화&middot;기업화 돼야 하는데, 떼아뜨로는 기업형 매니지먼트를 지향하지 않는다.

김일송 여타의 뮤지컬배우들은 수긍이 되는데, 분야가 전혀 다른 김주원씨의 매니지먼트는 의외다.

김지원 물론 고민은 있었다. 발레를 모르니까. 하지만 주원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계약하고, 발레를 잘 아는 직원을 고용했다. 중요한 것은 분야가 아니라, 그 아티스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주고 도와줄 수 있느냐 아닐까.
김지원 사진3

비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김일송 이제 정상에 섰는데, 단시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느낌이다

김지원 수면에 떠오른 게 2010년 <모차르트>부터라 짧게 여기시는 것 같지만, 이 일을 시작한지가 벌써 8-9년이라 단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린 시절도 많았고. 어려웠을 때는 작품 찾으러 20시간씩 비행기 타고 다니기도 했다.

김일송 사람들은 성공 후의 이야기만 아니까. 아무튼 롤 모델로 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김지원 &lsquo;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rsquo; 성공비결을 묻는 메일을 하루에 두세 통 정도 받는다. 그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lsquo;감(感)을 키우라&rsquo;는 거다. 나는 어렸을 때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다녔는데,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김일송 감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작품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김지원 작품을 결정하기 전에 음악을 천 번 이상 듣는데, 오래 듣다보면 질리는 음악이 있고, 반면에 아침에 듣든 저녁에 듣든, 맑은 날 듣든 비오는 날 듣든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이 있다. 내가 선택하는 뮤지컬은 그런 음악이 있는 뮤지컬이다. 또 한 가지, 난 독일어를 잘하지도 못한다. 언어를 모르니 작품 전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감수성이라는 건 다 비슷해서 언어를 몰라도 내용이 이해되는 작품이 있다. 더구나 뮤지컬은 음악이 근본인데, 언어를 알아야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게 뮤지컬일까? 음악으로 기쁨과 슬픔, 분노 등을 전할 수 없다면 그건 뮤지컬이 아니다. 음악만 듣고도 슬프고 기쁜 게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선택하게 된다.

김일송 작품을 보는 안목 외에 다른 요인도 있었을 것 같다. 정상에 서는데 가장 중요한 건 뭐였다고 생각하나?

김지원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ldquo;한 시간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네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사람들이 널 생각하게 만들어라&rdquo;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건 열심히 했다. 특1급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서비스 마인드를 배웠다. 그 후에 대기업 회장님의 개인 여행비서로 일을 하면서는 기후와 음식,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고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는 3-4개월의 여행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꼼꼼함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거기서 배운 서비스 마인드와 꼼꼼함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의 일이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국내 날고 기는 제작사를 제치고 <모차르트>를 계약한 것도 결국은 극작가 미하엘 쿤체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공연을 제작할 때도 스태프들에게 편하고 즐거운 작업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건 진심으로 대할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김지원은 현재 떼아뜨로 대표와 EMK 뮤지컬 컴퍼니의 부대표로 일하고 있다. 떼아뜨로는 한국 최초의 공연 컨텐츠 배급 전문 회사로 유명 유럽 뮤지컬들을 배급했으며, 공연산업 전문 인력 에이전시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뮤지컬 <레베카>, <황태자 루돌프>,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을 프로듀싱 했으며 <잭더리퍼>, <클레오파트라>, <삼총사> 등을 배급했다.
고영란 필자소개
김일송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프랑스 희곡으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씬플레이빌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씬플레이빌은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공연문화월간지로, 뮤지컬, 연극, 음악, 무용 등 모든 장르의 무대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