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여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Ⅱ”를 마련했다. 이번호는 6대 광역시 특집 연재와 아울러 대한민국 남쪽 바다에 위치한 특별자치행정구역 제주도의 문화예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순서 광주(‘12년 9월) - 대구(’12년 11월) - 대전(‘13년 1월) - 부산(’13년 3월) - 제주(‘13년 5월) - 울산(’13년 5월) - 인천(‘13년 7월)

올해도 어김없이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제주는 나팔소리로 가득할 예정이다. 국제관악콩쿠르는 트럼펫, 호른, 테너트롬본, 금관5중주 부문에서 열띤 경연이 펼쳐진다. 올 여름 최고의 여름 휴가장소는 바로 제주다. 제주의 자연과 음악축제가 함께하는 시간은 세계에서 몰려온 관악연주자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가꾸고 사랑해야할 우리의 놀이마당이 되어야 한다.
▲ 2012제주국제관악제 공연 모습▲ 2012제주국제관악제 공연 모습

▲ 2012제주국제관악제 공연 모습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로 발돋움할 때까지

제주의 표상은 한라산이다. 그리고 한라산은 수많은 아들, 딸들을 낳아 이름하여 ‘오름‘이라는 크고 작은 분화구를 제주 곳곳에 흩어놓았다. 이른 새벽 고근산 오름에 올라 서귀포를 바라보라. 태고의 전설이 온 몸을 휘감아오는 열락과 함께 띠로 이어진 구름을 여는 바람이 귓가를 울리기 시작한다. 억새풀을 제치고 오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제주 삼다(三多) 가운데 으뜸인 바람! 이 바람이야말로 오름의 정수이자 소리로 화해 음악으로 재탄생한다. 뮤즈를 실은 페가수스가 피에리아의 산기슭에서 날개를 퍼덕여 음악의 샘물이 솟구쳤다면, 8월 제주의 오름은 온통 음악의 바람으로 뒤덮인다. 바람은 그대로 관악기로 화한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있기 때문이다.

6.25 이후 제주에서는 전국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관악 밴드가 활성화되었다. 제주관악은 60년 전 전쟁을 전후한 어려웠던 시절부터 금빛 나팔소리와 둥둥 울리는 북소리로 제주사람들의 애환을 달래며 그들에게 천진스런 동경과 꿈을 심어주었다. 이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제주관악은 이제 중고등학교 밴드, 군악대, 경찰악대, 서귀포시립관악단, 제주페스티벌밴드 등 20여개의 크고 작은 관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제주의 자연과 특별한 음악적인 환경이 이제 제주를 명실상부한 한국 관악계의 메카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1994년 8월 일본 하마마쓰에서는 제8회 아시아태평양 국제관악제가 열렸다. 제주고교 연합관악대가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이때 지휘를 맡았던 이상철(오현고 교사, 현 제주국제관악제 집행위원장)은 그곳의 열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휴양인파가 몰리는 ‘바람의 섬‘ 제주에서 축제가 열리면 어떨까? 그는 꿈에 부풀었다. 당시 제주도와 기업의 후원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제주시내 한 건물 지하에 초라한 사무실이 차려졌다. 직원이라고 해야 이상철과 뜻을 같이 하는 몇 몇 제주토박이 관악인이 전부였고, 월급은커녕 사재를 털어가며 전원 자원봉사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리고 1년 뒤인 1995년 여름 제1회 제주국제관악제가 실현되기에 이른다. 대관령국제음악제, 통영국제음악제 등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의 첫 시작이 관련 기관의 예산 지원으로 화려하게 문을 연 것과는 그 근본부터가 달랐다.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제주시와 제주은행이 두 팔을 걷어붙였고 몇 해 전부터는 제주도까지 나섰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세계 관악계 최고의 연주자들이 여름이면 제주를 찾아 축제에 얼굴을 알렸다. 알프레드 리드, 아르민 로진 등 전설적인 거장들이 8월에 어김없이 제주에 나타났다.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아담스 등 세계 굴지의 음악기업이 협찬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음악인, 애호가, 기업의 외면과 무관심과는 정반대로 세계가 먼저 이 기막힌 축제의 진가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부터는 6개 부문의 국제관악콩쿠르를 신설했다. 세계 젊은 관악인들의 의욕을 높이고 우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 마련한 국내 최초의 관악콩쿠르였다. 콩쿠르 기간 중 세계 정상의 연주자로부터 받는 마스터클래스는 한국 학생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관악도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축제와 교육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남자의 경우 1, 2위 수상자는 군 면제 혜택이 부여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수준의 경연이다.

필자와 제주국제관악제와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이상철 집행위원장을 만나면서부터다. 2007년 그는 암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1년 만에 재기해 관악제로 돌아왔다. 세계 관악계에서 그는 ‘미스터 리‘로 통한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뼛속까지 제주인인 그는 영어를 못하지만 해외에서 찾아온 수많은 음악인들은 이상철 위원장과 눈과 가슴으로 대화한다. 최고의 거장들도 고작 체재비 정도의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간미에 먼저 감동돼 제주 땅을 밟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투는 언제나 그랬듯이 어눌하고 촌스럽다. 하지만 극히 인간적이며 따뜻하다. 올해 축제를 앞둔 그의 다짐은 어떤 것일까?

제주에서 꿈을 나누다

유혁준 제주국제관악제와 세계 유수의 관악제가 차별화된 점은?

이상철 관악은 축제적 성격이 강한 분야이다. 하지만 관악만으로 특화된 축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계관악제(WASBE), 아태관악제(APBDA)는 올림픽처럼 개최지를 달리하며 회원국끼리 총회형식으로 진행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바이로이트 음악축제(Bayreuth Festival), 아스펜 음악축제(Aspen Music Festival) 등 세계적 여름음악축제처럼, 개최지가 고정된 축제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관악축제는 흔치 않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콩쿠르와 함께 세계 음악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제주국제관악제는 콩쿠르와 더불어 서로 시너지효과가 있는 생산력이 높은 축제다.

유혁준 대관령, 통영국제음악제와 같은 국내 축제와 제주국제관악제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상철 위 축제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비롯한 전문오케스트라를 초청한다. 제주는 관악만으로 특화된 축제다. 관악단들은 대부분 학교나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문악단이 흔치않다. 제주는 관악 개인연주자와 소규모 전문앙상블 초청으로 이를 보강한다. 관악의 특성을 고려치 않고 국내외의 전문음악축제와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유혁준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상철 초창기 축제를 진행하면서 좀 더 생산적인 관악제를 만들고 싶었다. 전문앙상블과 함께 관악의 전문성을 살리려면 콩쿠르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음악에서 관악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관현악곡의 클라이맥스에 관악이 없다고 상상할 수가 있을까. 조사를 해보니 세계적으로 관악콩쿠르가 흔치 않았다.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금관악기 전부문과 타악기를 포함해 8개 부문이 2개로 나눠 해마다 교차 개최된다. 관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사실 제주의 형편으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관악을 위해 인생의 목표를 건 젊은이들과 함께 제주의 꿈을 나누고 싶었다.

유혁준 그동안 제주를 다녀간 세계 관악계의 거장 10명만 꼽는다면?

이상철 작곡가로는 알프레드 리드(Alfred Reed)가 으뜸이다. 250곡이 넘는 관악작품을 남긴 세계 최고의 관악거장으로 3회 방문했다. 야곱 드 한(Jacob de Haan)과 얀 반 데 루스트(Jan Van der Roost)도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전설적인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밑에서 10년 이상 트롬본 수석을 역임했던 아르민 로진(Armin Rosin)과 유포니움의 스티븐 미드(Steven Mead), 아담 프레이(Adam Frey)도 단골손님이다. 프랑스 트롬본협회장 자크 모저(Jacque Mauger)와 대만이 낳은 최고의 스타 예 수-한(Yeh Shu-han), 막스 좀머할더(Max Sommerhalder), 에릭 오비에(Erik Aubier)는 트럼펫의 장인이다. 튜바 연주자로는 음반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이스텐 바드스비크(Oystein Baadsvik)가 떠오른다.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음악의 정신

유혁준 마케팅이야말로 요즘 축제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기업의 후원현황은?

이상철 2012년 제주국제관악콩쿠르에 세계적인 악기업체가 협찬했다. 벨기에의 아담스, 프랑스의 베슨, 일본의 야마하, 대만의 주피터 등이다. 그동안 제주은행이 꾸준히 지원해왔으나 2011년부터 중단되었다. 제주도는 지역적 여건으로 기업협찬을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대기업의 지역본부나 지사 등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사이기 때문에 결정권이 없다는 대답을 듣곤 한다.

유혁준 올해 축제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상철 ‘동호인관악단의 날‘을 정해 아마추어관악단들의 무대를 마련했다. 음악을 즐기며 주위와 조화를 이뤄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음악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동호인들의 무대는 가장 축제다운 기획이 될 것이다. 또한 ‘오름관악제‘를 계획하고 있다. 제주 오름은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만든다. 오름을 올라보면 분화구이다. 마치 나팔주둥이를 닮았다. 태고에 굉음과 함께 불을 토했던 흔적이다. 관악제 참가자들은 제주의 속살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유혁준 개인적으로 축제 전반에 걸쳐 개선할 점과 미진한 부분은?

이상철 홍보는 축제의 큰 축으로 작용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인해 홍보 관련 업무가 미흡하다. 또한 공연 대부분이 야외공연이기 때문에 유료화하기가 어렵다. 기업 협찬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해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유혁준 외지에서 축제에 오는 분들에게 축제와 연관돼 제주에서 꼭 가야 할 곳을 추천한다면?

이상철 제주제관악제 공연장 순례를 권하고 싶다. 제주문예회관, 제주해변공연장, 서귀포천지연폭포야외공연장 등이다. 각기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이 되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일이 곧 관광을 겸하는 것이다.

사진제공_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

이상철
이상철은 경남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의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한국관악협회제주도지부 사무국장을 거쳐 부지부장,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로 재직했다. 6인비평가그룹이 제정한 ‘오늘의 음악가상’(1999)과 2013 한국음악협회 ‘한국음악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과 2014아시아태평양관악제사무총장, 오현고등학교 교사를 겸임하고 있다.
유혁준 필자소개
유혁준은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경인방송(클래식전문PD)과 고양문화재단 공연기획팀에 몸을 담았다. 일간지와 주간지, 음악전문지에 기고하며 학교와 공연장, 전문음악감상실에서 정기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각지의 공연장에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진행하며 유럽 음악현장을 누볐고, 러시아 현지를 20회 이상 다녀온 러시아음악광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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