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울산이다. / 연재순서 광주(‘12년 9월) - 대구(’12년 11월) - 대전(‘13년 1월) - 부산(’13년 3월) - 제주(‘13년 5월) - 울산(’13년 5월) - 인천(‘13년 7월)

‘사회공헌’과 ‘사원복지’ 사이의 선은 그을 수 없다. 계열사와 범 현대 직원까지 포함한다면 지역민과 직원이 매우 혼재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직원 할인가 정도는 정해져 있지만 사원복지가 결국 지역 주민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측면이 있다.
▲ 현대예술관 전경▲ 현대예술관 전경

▲ 현대예술관 전경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사회공헌

1970~80년대 한국이 고도산업화의 성장곡선을 그리는 동안 울산은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8%를 담당하고, 울산시민의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니 ‘한국의 산업수도’라는 울산의 자부심도 이해가 갈 만하다.

현대자동차, SK에너지 등 울산에 자리한 글로벌 기업은 많지만 본사를 울산에 둔 대규모 제조업체는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현대중공업이 울산에 내는 지방세가 연 9백억 원에 달한다는 수치만으로도 ‘기업도시 울산’과 ‘현대중공업’의 관계는 짐작 가능하다. ‘기업도시’는 이처럼 한 기업이 그 도시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더불어 사회적·문화적으로도 지역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도시를 말한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많은 노동인력을 외부에서 유입하여 울산을 팽창시켰고, 근로자의 복지 뿐 아니라 지역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정적 산물이 바로 1998년 문을 연 ‘현대예술관’이다. 현대중공업은 1991년 한마음회관을 시작으로 현대예술관까지 총 7개의 문화예술회관을 완공했다. 이 가운데 고품격 공연장과 미술관, 레저와 스포츠시설을 갖춘 복합문화센터로 문을 연 현대예술관은 개관 이후 150만여 명이 다녀갔다. 지난 7년간 공연·전시 기획을 맡아온 이경우 현대예술관 공연전시과 부장의 목소리를 빌려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문화적 사회공헌 모델’로 역할 해 온 현대예술관의 지난 15년을 되짚어보았다.

김수정 지역도시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기관이 통상적이다. 기업도시 울산의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한 기업이 전적으로 운영을 책임지는 예술센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이경우 현대예술관은 시설을 구축해서 위탁하거나 지자체에 기부 채납하는 형태가 아니라, 건립 초기부터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인력도 모두 현대중공업 직원이다. 기업보다 지자체의 예산상황이 열악한 것은 사실 아닌가. 돈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좋은 콘텐츠로 아트센터를 채울 수 없을 가능성도 있고, 위탁할 경우 위탁회사가 이윤만을 좇을 수도 있다. 직영을 하면 건립비보다 운영비가 수십 배 더 들어가지만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건립 취지를 생각하면 직영이 옳은 방향이다.

김수정 현대중공업은 현대예술관을 제외하고도 6개의 문예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경우 한마음회관·동부회관·서부회관·미포회관·대송회관·동부2관·현대예술관 등 총 7개의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하고 매년 75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지역의 문화 인프라를 조성해왔다. 지금은 현대예술관이 나머지 6개 예술회관의 운영을 관할하고 있다. 6개 센터는 각 지역에 맞는 특성화 전략으로 스포츠·청소년·시니어·강좌 등으로 세분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가장 나중에 문을 연 현대예술관은 공연·전시 예술분야로 특화되어 있다.

▲ 현대예술관의 주요시설에는 대공연장(962석)과 소공연장(212석)이 있으며, 2개의 시네마관과 미술관, 스포츠시설, 부대시설(식당,커피숍) 등이 있다. ▲ 현대예술관의 주요시설에는 대공연장(962석)과 소공연장(212석)이 있으며, 2개의 시네마관과 미술관, 스포츠시설, 부대시설(식당,커피숍) 등이 있다.

▲ 현대예술관의 주요시설에는 대공연장(962석)과 소공연장(212석)이 있으며, 2개의 시네마관과 미술관, 스포츠시설, 부대시설(식당,커피숍) 등이 있다.

▲ 현대예술관이 기획한 ‘현장콘서트’ 공연

▲ 현대예술관이 기획한 ‘현장콘서트’ 공연

▲ 현대예술관의 센터인 1층에는 250평의 미술관이 마련되어 있다

▲ 현대예술관의 센터인 1층에는 250평의 미술관이 마련되어 있다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하다

김수정 누적관람객수 150만여 명, 2012년 한 해 관람객 수 7만 8천명을 놓고 보자면 적은 수는 아닌 것 같다. 한해 준비하는 공연·전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가.

이경우 80~90%가 기획 공연·전시다. 작년 기준으로 대 공연장에는 34편, 소극장엔 2주에서 한 달 간 진행되는 장기공연을 위주로 14편이 무대에 올랐다. 전시는 10건 남짓이다. 공연의 경우 서울에서 하고 있는 작품을 그대로 유치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에겐 ‘가동률’보다 공연·전시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가동률만 따진다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아트센터가 더 높을 것이다. 그곳은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별화를 꾀해야 했고, 지방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공연·전시를 유치한다는 것을 전략으로 삼았다. 대신 공연장이 비어있을 경우에는 영화관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작품을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예술관이 아니면 못 보는 공연’이 검토 대상이다. 또한 주부, 어린이, 학생, 시니어 등 주요 타깃 층을 고려하여 지역 시민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작품을 준비하는 것도 기준이 된다.

김수정 지역의 문화예술 토양을 다지기 위해서는 지역예술단체의 활동도 중요하다. 현대예술관이 지원하는 상주예술단체가 있는가.

이경우 ‘울산남성합창단’, ‘울산동구여성합창단’, ‘현대소년소녀합창단’, ‘현대청소년오케스트라’ 등 지역의 아마추어 음악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원활동은 2007년 창단부터 함께한 ‘USP 챔버 오케스트라’다. USP, 즉 울산 스트링 플레이어스는 울산대학교와 협력하여 음대 졸업생을 중심으로 멤버를 구성하고 창단 이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김수정 지역민과 소통하는 메세나 활동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이경우 크게 보면 ‘찾아가는 음악회’, ‘현장 콘서트’, ‘금요 로비음악회’ 등으로 볼 수 있다. 현대예술관은 2002년부터 문화 소외계층을 위해 시장, 병원, 양로원과 같은 복지시설 등을 찾아 지금까지 39회에 걸쳐 ‘찾아가는 음악회’를 개최했다. 또 산업도시다 보니 생산직 근로자가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밤 시간대에는 공연장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생산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현장 콘서트’도 이제까지 58회 진행했다. 프로 연주자가 아니라 일반인이나 학생, 동호인 등을 대상으로 로비 공간을 개방해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이것이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금요 로비음악회’이다. 10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는데 고정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부터 격주로 정례화하고 시간도 고정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예술관은 2007년 ‘메세나대상’(한국메세나협회 주최)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수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아트센터에서 공연·전시를 기획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경우 공연·전시를 기획하는 것보다 마케팅하고 홍보하는 것이 힘들다. 최근 들어 KTX나 항공편 등이 발달, 수도권과의 물리적 거리가 줄어들면서 역외유출이 일어난다. 안정된 소득을 갖춘 문화향유계층이 문화적 소비를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관객을 만들어나가자는 측면에서 초·중·고교와 MOU를 맺고 학생들이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할인이나 초대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김수정 서울 등 문화예술 중심지에서 열리는 공연·전시를 유치하는 것에 비해 지역 예술가와의 교류 프로그램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 또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아트센터의 역할 아닌가.

이경우 울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 초대전을 열고 있다. 오는 6월에 《아트파워 인 울산》이라는 제목으로 9여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전시를 개최한다. 종합대학교인 울산대학교에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이 있는데, 졸업 전이나 작품발표회를 지원하며 교류하고 있다. 울산의 지역예술가들이 중앙으로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지역 작가층이 두텁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은 앞으로 더 보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김수정 현대예술관은 운영 목적을 ‘사회공헌’과 ‘사원복지’로 규정짓고 있다.

이경우 ‘사회공헌’과 ‘사원복지’ 사이의 선은 그을 수 없다. 계열사와 범 현대 직원까지 포함한다면 지역민과 직원이 매우 혼재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직원 할인가 정도는 정해져 있지만 사원복지가 결국 지역 주민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측면이 있다.

김수정 현대예술관이 울산에 기여한 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경우 울산은 부자 도시다. 2010년 말 기준으로 1년간 지역내총생산, 즉 GRDP가 서울의 두 배를 웃돌았다. 통계청 수치로 말하자면 서울은 2만 5천 달러, 울산은 5만 6천 달러다. 부산보다는 세 배가 넘는다. 급속하게 발전한 우리나라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 했지만 상대적으로 정서적, 문화적으로는 수도권에 비해서 많이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고급 문화예술 소개에 현대예술관이 주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이뤘다고 본다. 지난 15년간 문화적 황무지를 옥토로 가꿔나갔다고 자평한다.


사진제공_현대예술관

이경우 / 이경우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현대중공업에 입사, 16년 동안 홍보맨으로 일했다. 7년 전 현대예술관으로 옮겨온 후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했다. 그는 성공적인 기획으로 2007년 《이탈리아 판화 400년 展》을 꼽는데, 유료관객 2만 7천명을 돌파하며 지방도시에서 한 전시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이후 《유럽미술특별전》, 《세계미술거장전》 등 유럽미술관 소장전을 시리즈로 선보였다. 현재 울산 현대예술관 공연전시과 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김수정 필자소개
김수정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예술의전당에 입사, 음악당운영팀을 거쳐 홍보부에서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에디터로 5년 간 독자들과 만났다. 현재는 ‘SAC on Screen’이란 모토로 콘텐츠영상화사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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