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문화예술회관은 공연장 상주예술단체 지원 사업에서 2년 연속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은 공연장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연간 공연장 가동률이 무려 80%에 가깝다. 자동차나 조선소 등 산업의 이미지가 강한 울산은 타 지역에 비해 문화 예술적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울산 북구는 더욱 더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곳이었기에 울산 북구문화예술회관의 이 같은 실적은 놀라움을 넘어 가히 경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그 중심에 이미정 울산 북구문화예술회관 기획팀장이 있다. 울산에서 연극을 하면서 그녀를 알고 지낸지가 햇수로 십 수 년이 되었지만, 5년째 기획팀장이란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그녀가 아직도 낯설다. 그녀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춤추는 사람이었다. 춤꾼으로서 그녀의 삶과 열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했던 지를 옆에서 보았기에 기획자로서의 변신이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었고 지금도 그 실력과 재주가 아깝다. 나름 공식적인(?) 인터뷰를 핑계 삼아 그녀의 속내를 들어보고 기획자로서 5년여의 삶과 상주예술단체, 그리고 그녀의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연을 기획하는 삶을 택한 춤꾼

박태환　왜 무용을 관두고 기획자가 되었는지?

이미정 한글보다 무용을 먼저 배우게 되면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무언가 마음껏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많이 달랐고, 결국 대학생활 내내 한국을 떠날 궁리만 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언제나 무용만 하던 나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의 삶이 절실했다. 대학졸업식 바로 다음날 한국을 떠나면서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야말로 내가 꿈꾸는 새로운 삶을 살리라 결심했지만, 독일에서의 5년 몇 개월의 시간은 오히려 처절하게 한국이 그리웠고 춤이 간절했다. 결국 그곳에서도 온통 춤추는 삶이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쏟아 많은 작업을 했다. 항상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부둥켜안고 힘들기도 하였던 나는 무용을 짝사랑하였던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결국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그 마음이 문제였다. 그때는 내가 의도한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의 소통 방법을 온 몸으로 부딪쳐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서른에 다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마흔에 공연장 기획자가 됐다. 그 이유는 오직 ‘소통’이다.

박태환 공연장의 기획자로서 왜 상주예술단체를 선택했나?

이미정 독일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서 6년 동안 가장 의미 있게 받아들인 것은 독일의 예술가를 위한 ‘기다림’이었다. 독일의 축제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배려 또한 너무도 부러웠다.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삶 전체가 축제인 듯 한 그들이 부러웠다. 사회가 예술가에게, 예술가가 사회에, 서로를 의지하고 기다려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의 경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듣고 싶은 말만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예술계는 의외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지독하게 엄격하게 자란다. 그래서인지 듣기는 잘 하지만 잘 말할 줄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우선 무엇을 원하는지를 설명해야하는데 그저 상대가 알아서 잘 해주길 기다리는, 잘못된 기다림이 많고 그로 인한 오해와 상처도 많다. 그렇게 천착되어진 예술계의 상황을 내 고향에서나마 개선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상주예술단체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예술가들에게 우리 공연장이 특별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박태환 상주예술단체 공연 외에 자체 기획공연은 어떻게 하나?

이미정 각 지역 문화예술행위의 활성화와 효과적인 노출 및 성장을 위하여 초청공연도 전국의 공연장 상주예술단체를 우선한다. 다수의 지지를 받은 명작 혹은 예술단체를 검토한다. 단체의 예술적 역량과 지역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를 많이 참고한다. 또 우리 공연장의 상주예술단체에 무용분야가 없어 초청공연을 준비한다. 서울 노원구문화예술회관의 이원국발레단, 경기도 과천시민회관의 서울발레시어터 등을 초청했고 열광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박태환 자체 기획공연은 유료인데도 객석이 대부분 매진인 걸로 안다. 500석 가까이 되는 공연장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 노하우가 무엇인지?

이미정 유료 회원제는 아니지만 관극회원들이 있다. 회원지를 만들어서 공연장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면서 받고 있다. 지금까지 1,700장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베이스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작품을 초청한다. 열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를 없애기 위한 선택이 기획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이미정 울산 북구문화예술회관 기획팀장(왼)과 박태환 극단 세소래 대표(오)

박태환 다시 상주예술단체 얘기로 돌아가자. 연간 몇 차례나 공연하는가?

이미정 2010년부터 시작했는데 대략 연극, 국악, 오페라가 해마다 각각 네 작품씩 총 열두 작품 정도 정기공연 된다. 연극 같은 것은 일주일씩 하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상주예술단체의 공연도 100% 유료공연으로 전환했는데 전석 매진 공연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역민들이 우리 예술단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너무 좋아한다. 처음에는 전통공연 지겹다고 하던 관객이었는데, 얼마 전에는 공연이 끝나고 30분 동안 로비에서 출연자들과 함께 어울려 심야의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주민들이 뭘 좀 안다.

박태환 그러면 지역주민들의 호응 때문에 상주예술단체를 선호하는 것인가?

이미정 그렇지 않다. 나는 88학번이다. 우리 또래는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일단 서울로 갔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지는 않았다. 지역에 내려오면 발 하나 걸칠 데도 없으니까. 중앙집권적인 예술계에서 지방에 있는 비명문대를 졸업한, 혹은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이 심지어 고향에서까지 외면당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상황들을 겪으며 예술행위 자체를 그만두는 인재를 많이 보았다. 평생 예술만을 한 사람이 시장논리 때문에 예술을 그만두는 구조를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에게 포기하지 않을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피나 바우쉬를 보내지 않았다. 많은 시간 그녀의 삶에 꽂혀있는 있었다. 그녀가 졸업직후 지역의 작은 극장으로 들어가서 계속 거기에 머물면서 예술가로 성장해갈 때 그 지역사회가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 나를 더욱 포기하지 않게 한다. 결국 그 결과로 무용사에 한 획을 긋고, 전 세계의 무용관객이 그 작은 부퍼탈극장에 끊임없이 모이게 되지 않았나. 우리지역 예술가들에게 나는 그런 꿈이 있는 것이다. 공연장 상주예술단체를 통해서 미래의 피나 바우쉬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땅에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불빛들을 위해

박태환 상주예술단체를 운영하면서 보람은?

이미정 10년간 기획공부를 하고 마흔 살에 들어온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 사업으로 공연장 상주예술단체를 시작했다. 울산에 있는 많은 예술단체에 협약을 위한 프러포즈를 했으나 대부분 우리 공연장의 여건과 제도 자체의 신뢰문제, 예산이 적은 문제 등으로 거절당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다섯 군데와 협약하였다. 예술단체와 첫 프레젠테이션을 하러가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많은 이견이 있었다. 내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우리 지역의 예술단체들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역설해야 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 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눈에 불을 켰다. 결론은 3개 분야 3개 단체와 사업비 각 사천만원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을 하면서 작품 수도 늘리고 입장권도 유료화 하며, 장기공연도 시도하게 이르렀다. 좋은 사업성과로 사업비도 두 배로 뛰었고 우리 예술단체의 자존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작년부터는 매표 금액의 30%를 공연장이, 70%를 예술단체가 가져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문화예술회관의 당초 건립미션을 건강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태환 기획자로서 상주예술단체란?

이미정 상주예술단체는 지역의 자생적인 예술단체다. 아직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희망이다. 하늘에 있는 별은 그냥 감상하면 된다, 이 땅에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불빛들은 지켜주어야 한다. 결국 지금 ‘정주’ 개념의 상주예술단체와 더불어 ‘무형’의 상주까지 그 기회가 다양해져야 한다. 그들에게 ‘상주’ 타이틀을 주고, 후원회를 모집할 수 있게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무형의 상주란 프로그램의 상주, 작품의 상주, 혹은 어느 작품에 끼지도 못하고 어떤 프로그램에 역할도 못했던 개인 예술가들에게 정신적 상주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전국의 예술회관은 거대한 매니지먼트 회사가 되는 것이다. 예술회관의 기획자를 중심으로 멘토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획자들이 연대를 하여 예술가들과 지역의 특별한 프로그램운영을 위한 새로운 상주의 개념을 창조해야한다. 상주예술단체는 우리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박태환 지금 북구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목표는?

이미정 울산에는 명장이 많은데 산업명장이 많다. 그러나 사랑 받아야 할 예술가도 많다. 그러나 산업역군에 비해 예술가는 그렇지 못하여 상대적 박탈감이 유독 크다. 울산을 떠나 타지에서 방황하는 젊은 예술가들도 많다. 돌아오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고향에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고향에는 희망이 없어서 못 돌아온다는 상황은 재현되지 않게 하고 싶다. 안 만들고 싶다. 예술가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목표로 한다.

박태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미정 2013년은 ‘공연장 상주예술단체 페스티벌’로 개관 10주년을 맞는 북구 문화예술회관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또한 특성화 및 전문화되고 있는 공연장 상주예술단체의 공연을 통하여, 주민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 향유기회 확대와 우리 지역의 가치 상승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연장 상주예술단 교류 프로그램’ 발굴과 활성화로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과 문화예술애호가 저변 확대에 지속적으로 기여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더 많은 문화예술 공모사업이 발굴되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문화로 소통하고 화합하여 건강하게 공존하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사진촬영_조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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