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공연의 배후에는 ‘예술경영인’들은 물론 ‘무대의 그림자’로 불리며 존재하는 공연·전시계 스태프들이 있다. 시각예술계 ‘아키비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의 박상애 아키비스트를 만나 전시계 배후 이야기를 들어봤다. / 특집 ① [좌담] 무대의 배후, 그들의 이야기, ② [현장+人] 김영신 블루스퀘어 공연장 운영팀장, ③ [현장+人] 박상애 백남준아트센터 아키비스트
일 시 : 2013년 6월 4일 오후 3시 / 장 소 :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도서관과 아카이브, 박물관과의 협력을 도모하는 라키비움(Larchiveum)을 꿈꾸는 현재, 국내 시각예술 분야에서 아카이브는 구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활용이 선행되고 구축의 필요성이 이후 논의되는 본말전도(本末顚倒)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모래성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흩어져 있는 정보를 견고한 성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키비스트이다. 박상애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구축 활동을 하고 있는 미디어 전문 아키비스트다. 필자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업무 차 백남준아트센터의 미디어 아카이브 구축과 활용에 대한 자문을 구하러 갔을 때였다. 국내 시각예술 분야에서 국제지침에 맞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곳이 별로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방대한 작업으로 분주할 텐데, 그녀는 일련의 아카이브 과정과 미디어 아카이브의 확장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필자도 ‘과연 저렇게 열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계기로 그녀가 아트 아카이브 애호가가 되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아키비스트를 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와 활동,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아트 아카이브, 작품을 뺀 모든 것

이지은 아트 아키비스트로 입문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박상애 학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서 그 분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도 문헌정보학이 아닌 국제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외국계 금융권 기업에서 일했다. 그러던 찰나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에서 김철효 선생님이 쓴 「미술 아카이브, 작품을 뺀 모든 것」을 읽게 되었다. 그때 아트 아카이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미술 쪽에서도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과연 미술계에서 아카이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많이 고민했다. 한국에서 하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005년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 입학했다. 프랫은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학교다 보니 뉴욕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학교 과정을 마칠 즈음,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인턴을 마치고 프로젝트 아키비스트로 1년 정도 일하면서 구겐하임미술관 개관 당시 컬렉션의 형성과 자문을 맡던 초대관장 힐라 르베이(Hilla von Rebay)의 컬렉션을 맡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서 아트 아카이브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백남준아트센터와 연이 닿아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일하게 되었다.

역사적ㆍ보존 가치가 있는 영구 기록물

이지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아트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낯설다. 아트 아카이브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박상애 아카이브는 이른바 기록물이다. 아트 아카이브란 미술계 전체를 포괄하는 기록물이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아카이브를 통해 다양한 작업을 한다. 그래서 아카이브 하는 과정, 아카이빙 자체를 아카이브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기록 관리 측면에서 기록물로 한정 지었으면 좋겠다.

이지은 최근 들어 아트 아카이브에 관한 세미나와 논의, 전시가 활발하다. 아카이브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박상애 단어가 주는 어감이 좋다(웃음). 이상하게도 본질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은 아카이브를 전시에, 작가들은 작업에, 아카이빙, 프로세스를 녹여내려고 한다. 우선적으로 아카이브의 사료적ㆍ증빙적 가치에 중점을 둔다는 기본 개념을 가지고 확장되면 좋겠다. 미술계에서는 기본 개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응용 버전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아카이브의 기본 개념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이해와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출판물과 원 자료를 구분할 수 있는 이용자 교육과 어떤 기록관에 어떤 기록물이 소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 아키비스트라는 전문 직종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백남준아트센터 도서관 내부. 관람객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백남준아트센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소장 자료 및 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다 (사진제공_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도서관 내부. 관람객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백남준아트센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소장 자료 및 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다 (사진제공_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도서관 내부. 관람객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백남준아트센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소장 자료 및 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다
(사진제공_백남준아트센터)

지식과 객관성의 균형 맞추기

이지은 아카이브는 수집부터 관리까지 여러 과정들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아키비스트가 가장 주목해야 할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상애 내용에 대한 이해와 객관성이라고 생각한다. 분류(classification)와 기술(description)은 어느 정도 원칙이 있으면 유동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에는 프로세싱하기 전에 많은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이후에는 분류, 기술 과정에서 개인의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아키비스트가 아카이브만 할 수 있는 실정이 아니다. 아카이브 구축, 아카이브 프로그램 지원, 이용자들의 열람에도 관여해야 한다. 이 작업들을 아우르기 위해서는 아키비스트가 자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객관성을 놓치기 쉽다. 아키비스트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얼마만큼 내용에 대한 이해와 객관성을 균형 있게 맞추는가이다.

이지은 아트 아카이브에서 백남준 아카이브가 차지하는 위치는.

박상애 일반적인 미술계의 아카이브 스펙트럼보다 백남준 아카이브는 한 작가와 관련한 자료들을 구축하기 때문에 범위가 한정적이고 백남준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백남준 아카이브 컬렉션을 구축할 당시 대표 컬렉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미디엄을 프로세싱하고 활용해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컬렉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국내에서 아트 아카이브의 표준기준처럼 사용되길 바라며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지은 아카이브를 프로세싱하면서 혹은 수집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박상애 내가 백남준아트센터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다량의 자료가 수집되어 있어 수집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없다. 작업 공간이 열악해서 프로세싱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혼자 일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원본들을 하나하나 보며 아이템별로 자료들을 기술할 때는 작가의 인생과 활동 등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박상애 사진 박상애 사진

이지은 최근 작업한 컬렉션 중 기억에 남는 컬렉션이 있다면.

박상애 백남준은 1960년대 초반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에서도 잠깐 작업했다. 그때 일본 실험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백남준을 기억하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측에서 인터뷰 프로젝트로 일본에 있는 백남준 지인을 대상으로 구술채록 작업을 진행했는데, 2010년에 일본 음악평론가인 카즈시 이시다에게 자료를 기증받게 되었다. 카즈시 이시다는 백남준과 함께 소게츠(Sogetsu) 홀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자료들은 대개 1960년대 일본 소게츠 아트센터(Sogetsu Art Center)의 공연 자료 및 출판물들이다. 일본의 실험미술과 연관된 이 자료들은 백남준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지은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박상애 최근 카즈시 이시다 컬렉션을 구축하였고, 하반기에는 연구자들과 함께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를 중점적으로 프로세싱하고 싶다. 백남준 아카이브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곳은 독일, 미국, 일본(구축만 되어 있으며 공개하지 않음), 한국이다. 지류는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미술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이고, 독일 좀 아카이브(Sohm Archiv)에도 자료가 상당히 많으나 한국에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만 비디오 아카이브와 브룸 스트리트에 위치했던 스튜디오를 재현해놓은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의 오브제, 서류 등이 있다. 한국의 백남준아트센터만이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웃음). 외부 연구자들이 왔을 때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버전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면 좋겠고, 백남준아트센터 측면에서는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예산이 확충되면 홈페이지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싶은 요원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향후 계획은 확실하지 않지만, 박사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강의도 하고 싶다.

이지은 현재 국공립미술관에서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한국 실정에 맞는 바람직한 아카이브의 방향은.

박상애 자료의 수집과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게티미술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처럼 독립형 아카이브로 진행된다면 모 기관과 어떤 방식으로 연계를 가져야 할지가 중요한 고려점이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단기, 중기, 장기 정책을 수립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할 것이다. 간혹 기관장의 임기에 따라 정책이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정책에 필요한 예산, 인력 확보의 원칙도 중요하겠지만 현장 운영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예산과 인력 부분에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면, 현장에서 운용의 묘가 무엇인지, 아래에서 위로의 정책도 귀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의 기관자료 같은 경우, 행정문서를 제외하면 남는 자료는 영상이나 사진자료뿐이다. 지금은 현장에 관련 큐레이터나 작가들이 상주하고 있어 사진이나 영상에 관한 메타데이터를 설명해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련 메타데이터는 사라진다. 미술관에서는 기관자료를 수집할 때 이러한 상황들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박상애 / 박상애는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아카이브를 공부하였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로젝트 아키비스트로 재직하면서 미술관 초대 관장 아카이브를 다루었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 아키비스트로서 비디오 아카이브와 백남준 아카이브 컬렉션을 관리하고 있다. 미술관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및 관리, 미디어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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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필자소개
이지은은 학부 때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아키비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기록관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연계된 아카이브 《미디어 소장품 특별전: 조용한 행성의 바깥》(2010~2011), 《향(鄕): 이인성 탄생 100주년》(2012),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2011), 《2012 올해의 작가상》(2012)을 담당하였으며, 현재 최근 미술관에 기증된 컬렉션(최열, 김복기)을 중심으로 프로세싱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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