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변화와 진화의 과정

2009년 말, 국립극장 소속 단체의 국립극단을 독립시키고, 수십 년간 이어졌던 단원제를 폐지한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극단 개선 방향이 발표됐다. 이후 연극계는 적잖이 당황했다. 국립극단의 적체 현상을 탈피하고, 국내 대표적인 예술단체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고자 하는 개선 방향의 취지와 목적을 모르는 바 아니나, 60년의 역사를 지닌 국립극단의 존립에 대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진행되던 과정이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사태를 파악하기 분주하던 사이, 2010년 4월 30일 단원들의 해촉이 이뤄졌고, 이후부터 성명서가 줄이어 발표됐다. 재단법인으로 독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예산 확보, 단원 확충, 전용 극장 마련 등의 굵직한 이슈와 함께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외국인 예술감독 내정설에 대한 철회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를 둘러싼 분분한 의견은 연극계를 양분화 시켰다. 뜨거웠던 논란은 진통 끝에 2010년 7월 15일 재단법인 국립극단이 공식출범하면서 수그러들었고, 2010년 11월 8일 손진책 예술감독이 임명되면서 일단락됐다. 그렇게 국립극단은 초기 3년의 시간을 보냈다.

2014년 2월, 국립극단은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11월, 손진책 예술감독이 3년의 임기를 마친 후 3개월간 공석으로 비어있던 예술감독 자리가 채워진 직후였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여전히 예술감독의 역할과 기능, 국립극단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데자뷰 현상처럼 연극계의 성명서가 줄이어 발표됐고, 이전보다 치열하고 날 선 대립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비판의 논리와 근거가 부족했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문제이든, 국립극단을 둘러싼 내홍은 그것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처를 남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서로를 지켜보는 것으로 논란이 일단락됐다는 데 있다. 이제 앞선 대립과 우려를 반면교사로 국립극단이 좋은 에너지를 갖고 올곧게 설 수 있도록 힘을 합해야 하는 수순이 남은 것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이즈음에서 국립극단이 갖고 있는 위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국립극단은 개인의 사유공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고민과 책임이 따른다. 제도와 시스템이 어떻든 그 중심에 예술감독이 있다. 결국 국립극단의 존재가치를 세우는 일은 일선에서 그곳을 책임지는 예술감독의 철학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읽고, 보고, 생각하는 준거가 국립극단의 한 시즌을 예상케 하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신임 김윤철 예술감독 역시 이 부분에서만큼은 더 많은 고민의 지점이 필요할 터. 그래서 김윤철 예술감독이 활동해오면서 느껴온 연극, 예술에 대한 기준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평생 그가 지녀왔던 예술의 기준이 개인이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서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사진_김윤철 감독

최윤우 최근 많은 질문을 받았을 텐데, 이런 질문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연극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나?

김윤철 예술은 특히 연극은 인간에 대한 연구이고, 삶에 대한 질문이고, 성찰이고, 정의다. 고전을 하든, 현대극을 하든, 근대극을 하든, 이 시대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새로움과 다름의 관점에서 삶을 진단하고 시대를 진단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해 왔다.

최윤우 40여 년간 연극을 보면서 세웠던 연극에 대한 기준이었나?

김윤철 그렇다. 이 시대의 시의성 있는 주제를 이 시대의 소통 미학에 의거해서 개념이 있는 연극을 했느냐 안 했느냐, 그것이 판단 기준이었다. 예컨대, 아주 좋은 공연인 것 같은데 박물관용 연극이 있고, 많은 것이 부족한 데도 감흥을 주는 연극이 있다. 지금 우리 연극에는 박물관 연극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피터 브룩(Peter Brook)이 얘기한 ‘죽은 연극’이다. 살아있는 체험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같은 작품이라도 기존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고 어떤 미학으로 제공했는가, 삶의 개념을 갖고 이 연극에 임했는가 하는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윤우 연극에서 시의성이라는 것은 분명 중요한 지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작품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김윤철 시의성이 강하느냐, 약하나 하는 차이일 것이다. 연극은 보는 사람이 공연을 완성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얼마나 널리 공유되는가 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시의성 있는 작품이 보이지 않는 것, 우리 시대가 공통분모의 이데아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누구나 공통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진 포스트모더니즘시대, 나에게는 시의적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것은 시대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시의성 있는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언어가 중심이 돼 있다. 문제는 그런 언어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것이 마치 현대적인 양 착각하는 데 있다. 실험적인 것은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시대마다 연극이라는 개념이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성찰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문턱이 낮아진 국립극단, 시간과 깊이를 더할 것

1) 월간 [한국연극] 2011년 1월호

사진_2012년 삼국유사 프로젝트 <꽃이다> 사진_2011년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연출작 <보이체크>

▲▲2012년 삼국유사 프로젝트 <꽃이다>

▲2011년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연출작
<보이체크>

공교롭게도(?) 3년 전 손진책 예술감독의 취임 직후 인터뷰1)를 진행했었다. 손진책 감독의 운영 방향은 &lsquo;국립극단을 국민에게 돌려주자&rsquo;는 데 있었다. &ldquo;예술은 기본적으로 틀을 넘는 것&rdquo;이라는 손진책 예술감독의 지향점은 왕성한 공연으로 이어졌다. 물론 너무 많은 공연을 올리다 보니 작품의 완성도와 성과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다양한 작품으로 국립극단에 사람이 찾아오게끔 만들었다는 것은 서계동으로 둥지를 옮긴 국립극단에 가장 필요한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윤철 신임 감독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국립극단, 김윤철 감독은 여기에 조금 더 깊은 시간을 더할 생각이다.

최윤우 국립극단의 지난 3년간의 행보, 특히 &lsquo;삼국유사 프로젝트&rsquo; 같은 경우, 국립극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연극 무대가 문학적 텍스트를 잃어가고, 파편화된 정서 속에서 인내하는 힘도 잃고, 시각적이고 자극적인 것만 양산하고 있는 지금, 인문학적 깊이를 우리 것에서 찾아보겠다는 시도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립극단이기 때문에 연극계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길 원하는 기대치가 있다. 앞으로의 국립극단 역시 같은 맥락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윤철 그렇다. 삼국유사 프로젝트 같은 경우 분명 국립극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당연히 민간에서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문제는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만들다 보니, 역사를 현재 우리 이야기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시간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하반기에 5편을 해야 하는데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작품이 준비되는 시간에 하겠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작품의 가능성을 보고 완성해야 한다. 연극은 오래 발견하면서 만들어내야 한다.

최윤우국립극단의 기본 방향은 무엇인가?

김윤철 나 역시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강하다. 그래서 계획하고 있는 것이 근현대 명작희곡을 다시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거나 했지만 아쉬웠던 작품을 시리즈로 해보고 싶다. 한국연극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 미 발견된 작품, 그러나 현대적 시의성이 있는 작품, 새로운 시각에서 오늘날 우리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개발하고 싶다. 또 하나, 연극의 핵심은 배우다. 연극의 강점은 관객들이 살아 있는 배우를 보는 것이다. 배우를 중심으로 한 연극을 통해 연극의 본원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최윤우 그간 발표된 것을 보면 신진예술가 발굴, 창작극, 고전/현대극, 레퍼토리 확립 등 굵직한 이슈들이 많다. 원만한 진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김윤철 한편으로는 창작극도 개발해야 하고, 고전도 찾아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인 텍스트를 놓고 한국화, 현대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30%는 고전에서, 30%는 한국 현대작가를 포함해 근현대극을 발굴하고, 20%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 한국 연극은 항상 세계를 뒤따라갔는데 앞으로는 선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실험연극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다. 나머지 20%는 청소년 연극이다. 그게 앞으로의 큰 축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외국 연출가를 초빙해서 공연을 올릴 계획도 있다.

최윤우 국립극단에서 공연됐던 <보이체크>의 경우를 보면 해외 연출가와의 협업이 긍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윤철 사실 소통의 문제다. 그동안 해외 연출가와의 공동작업에서 국내 협력연출은 통역의 기능만 하고, 배우와의 교량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우리말과 정서에 대한 부분, 연출의 의도를 서로 이해해야 한다. 연출의 콘셉트와 배우들이 서로 길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통역이 아닌, 연출자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연출가의 협업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윤우 단원제는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출범할 때부터 논의돼 왔다. 연극계 안팎에서조차 분분했고, 손진책 감독 역시 시즌단원제를 계획했었지만 실현은 못했다. 올해는 상반기 안에 시즌단원제의 초석이 마련된다. 사실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오디션 시스템을 확대하면서 연극의 오디션 무대가 커졌다. 특히 배우들에게는. 물론 작품의 메인 배우들은 이미 정해진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그래도 경력과 나이에 따라서 일정 정도의 보수가 정해지고, 평가가 좋으면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 부분에서 국립극단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방향과 원칙은 무엇인가?

김윤철 최초 국립극단의 방향성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할 때 나 역시 국립극단은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명의 단원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오디션 시스템을 통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연출가가 자기 배우들을 데리고 와서 공연하는 것 같다. 결국 민간극단이 국립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하는 것처럼 됐다. 지금 역시 예산과 규정의 문제가 있어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우선은 25명 정도를 단기계약으로 뽑을 생각이다. 이 안에서 배우들이 경쟁해서 살아남는 구도로 갈 것이다. 25명의 단원으로 모든 작품을 다 할 수 없다. 손진책 감독은 국립극단을 버려진 땅에서 찾는 땅으로 바꿨다. 이제는 와서 행복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을 생산해내는 공방이 돼야 한다. 편당 제작비를 더 투자하고, 연습기간을 길게 가지면서 수준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할 것이다. 상당 부분은 오디션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시스템은 열려있다고 보면 된다. 단원제로 방어벽을 치는 게 아니라, 중심을 잡고 가는 한편 개방적인 오디션으로 정체성을 확립해 갈 생각이다.

사진_2014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공연된 <맥베스>와 <노래하는 샤일록>

▲2014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공연된 <맥베스>와 <노래하는 샤일록>


최윤우 국립극단의 3년 레퍼토리를 만들고 가겠다는 계획이 있다. 그 속에 셰익스피어 450주년 시리즈도 있고, 광복 70주년 등 시대적인 흐름에 부합하는 주제가 있는 것 같다. 시대적인 이슈와 시의적인 이슈는 다를 수 있다. 앞서 연극은 동시대의 시의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주제가 올해, 내년에 있을 시의적절한 동시대의 이슈를 담을 수 있는 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김윤철 일종의 기획이다. 3년을 생각해 봤을 때 중심은 &lsquo;해방&rsquo;에 있다. 이것이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 물질, 욕망, 이기심 등등 이 시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수많은 가치와 개념들의 해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해방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자기 응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걸 얻어낸 사람만이 해방이 될 것이고 그 이후 새로운 도전이 가능할 것이다.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국립극단 레퍼토리의 핵심이다.

좋은 연극은 어디서나 환영 받는다

사진_김윤철 감독

김윤철 예술감독이 마지막에 전한 말이다. 그렇다. 그것이 퍼포먼스든, 무언극이든, 다큐멘터리극이든, 고전극이든, 현대극이든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형식의 다름이지, 연극의 완성도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관객과 소통하고 함께 즐기며, 사유할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한다는 절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제도나 시스템도 이와 같다. 궁극적으로 조력하는 역할이 될 뿐, 목적은 아니다. 국립극단은 60년의 역사를 품고 새로운 3년을 보냈고, 이제 다시 첫걸음을 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논쟁 역시 (급한 불은 꺼졌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그 논쟁의 이유는 좋은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립극단의 존재 가치에 대한 당위성으로 시작됐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예의주시하며 같이 걷는 일이다. 비판과 그에 따른 수용, 협업과 격려가 국립극단의 또 다른 가치를 생산해낼 것이다.

좋은 연극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관객이 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땅에 관객들이 모여들었고, 틀을 깨는 시도가 이어졌던 서계동 국립극단, 그곳이 김윤철 예술감독의 바람처럼 행복감을 주고 자부심을 느끼는 공간으로 재편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윤철/김윤철은 (재)국립극단 예술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학과 교수, 국제연극평론가협회(IATC) 회장, IATC 인터넷 전문지 [Critical Stages] 편집장 맡고 있다. 국립예술자료원 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 초대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95년 제1회 올해의 연극평론가상, 2005년 여석기 연극평론가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는왜 지금 추학의 시대로 가는가?』, 『혼돈과 혼종의 경계에서』, 『동시대 미국희곡분석』1~2, 『역서로는 연극개론』, 『산 연기』가 있다.
필자사진_ 양길호 필자소개
최윤우는 연극평론가로, 웹진 [연극in] 편집장을 맡고 있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팀장과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을 역임했으며, 공연 관련 매체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