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신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안애순이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2000년대 공연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접했던 안무가 안애순의 작품들과 그가 활동했던 축제들, 공연장 안팎에서의 모습이 지나갔다.

무용가 안애순에 대한 기억은 <찰나>(2004)로 시작한다. 시댄스(SIDance) 작으로 한국-캐나다를 오가며 안애순은 국제교류에서 안무가와 무용수를 호환하는 장단점들을 함양했다. 그 국제 감각이 공연계 외부로 드러났던 건,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느 해외 안무가 관련 관객 미팅 때였다. 기성 안무가가 관객 위치와 동일 선상에서 동료에게 질문하는 모습도 재밌었지만 탈권위적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즈음,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2003)에서 주연 문소리의 극중 무용수 배역을 트레이닝하고 그 모습이 언뜻 스크린에 비치던 것도 안애순이었다. 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는 의지라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던 작품은 <백색 소음>(2007)이었다.

의상 디자이너 임선옥과의 협업이 말 그대로 동시대적이었다.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acute;jart)-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의 협업이나 파리 오페라 발레(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작에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가 개입하는 과정과 강도를 안애순-임선옥 모델이 한국에선 선구적으로 실험했다. 존 애덤스(John Adams)의 현대음악을 장식이 아니라 동작의 근본 원리로 쓴 작품도 기억난다.

그래서 처음 신임 국립현대무용단 인사가 정해졌을 때, 안애순이 갖춘 안무적 색채와 역량, 한국공연예술센터-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이끈 행정력 이외에 그녀가 국립현대무용단에 기여할 수 있는 독자적 재능으로, 현대음악을 잡아내는 감수성과 의상 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 춤의 대중성 제고와 국제교류에 대한 경험과 식견에 기대를 걸었다. 안애순이 국립현대무용단에 부임하고 지난해 8월 취임 기자 간담회가 개최됐고 임기 3년간의 마스터플랜이 제시됐다. 민간 무용단 시절부터 품어온 포부도 보였고, 한정된 예산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인지 검증이 요구되는 내용도 있었다. 취임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그동안의 공과를 살피고 향후 계획을 듣기 위해 6월 3일 안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후 1년

한정호 취임사에서 컨템퍼러리의 재미를 대중이 즐기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방법이 무엇인가.

안애순 예술감독 프로필사진

▲ 안애순 예술감독

안애순 흥행을 위한 기술적인 노력 이외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제작되는 작품들의 예술적 퀄리티가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제작 조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그래서 전문 인력이 참가하는 학술팀을 만들어 작품에 대한 배경과 담론을 생성하는 제작 단원제를 실시 중이다. 무대감독이나 현장 스태프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테크니션도 따로 두었다. 학술과 제작에서 전문성과 분업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시스템화이며 퀄리티와 직결된다.

한정호 역시 취임사에서 언급한 과제로 학술 연구, 관객 개발, 인큐베이팅과 함께 레지던시의 개념이 나온다. 레지던시가 무엇인가?

안애순 전용 극장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덕션을 수행하는 개념을 뜻한다. 공간은 없지만 6개월에서 1년 전에 제작 인원을 뽑아 앞서 말한 시스템에 넣는 것이다. 내년을 위해 올해 11월에 2명, 내년 상반기에 2명을 뽑을 것이다. 앞으로는 연초에 한해 스케줄을 확인하고 관람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니아가 참가하는 쇼케이스를 통해 피드백을 받으려고 한다.

한정호 취임 후 인상적이었던 것은 티켓 전석 15,000원 제를 바꾼 것이다. 예산과 규모에 맞는 관람료 책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관객-시장 분석은 잘 되고 있는가?

안애순 아직까진 LG아트센터의 해외 무용 공연을 찾는 관객들이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을 찾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용단이 위치한 예술의전당 회원 관객들과 클래식 중심의 수요층이 현대무용에 관심을 갖는 움직임은 몸으로 느낀다.

한정호 국립단체 특성상 정부 유관 부처에 올해의 실적을 계량화, 수치화하는 작업이 필수다.

안애순 감독으로 재직한 지 1년이 안됐지만 취임 초기에는 무용단 주변에서 관객의 확대에 대해 비관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꽤 계셨다. 그렇지만 인상된 공연으로 매진이 되고 2회 공연이 아니라 장기 공연도 하고 대극장 공연도 수행하면서 국내외 유통의 길도 넓어지고 있다. 유료 관객뿐 아니라 유통을 통한 저변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현대무용의 자기성찰과 정체성 탐구

2014년 안애순 예술감독 신작 <이미아직> 공연 모습

▲ 2014년 안애순 예술감독 신작 <이미아직> 공연 모습

한정호 2015년의 제작 편수는 얼마로 계획하고 있는가?

안애순 정기 공연 4편, 기획 공연 5편. 총 9편이 레지던시 작품이 될 것이다.

한정호 안애순의 신작은 재임 기간 동안 몇 편이 제작되는가?

안애순 1년에 한 번만 올리고자 한다.

한정호 그렇다면 외부 안무가를 고를 때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안애순 안무가가 갖춘 컨템퍼러리성이 무엇인가를 볼 것이다. 오랫동안 세계의 컨템퍼러리 경향을 주목했다. 우리 현대무용계는 모던 댄스와 컨템퍼러리 사이에서 흔들려왔고 지금은 우리 스스로를 진단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것을 반영해서 우리 형식으로 내놓을 사람, 기존의 모던 댄스 스타일과 형식에서 벗어난 안무가를 찾는다. 현대무용이 춤성, 몸성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 시대의 미학과 동시대의 가치를 무용가가 가진 수단으로 발언해야 된다.

한정호 국립현대무용단의 안무가는 항상 한국인이어야 된다는 것인가?

안애순 국립, 내셔널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라는 시점과 지역성이 중요하다. 1년에 한 번 해외 안무가를 초청해서 소통하는 기회를 갖기 때문에 국내 안무가 비중이 높을 것이다.

한정호 해외 안무가를 선발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감독의 안목인가 기관의 역량인가?

안애순 예정된 6명의 이탈리아 안무가와의 교류는 기존 네트워크를 사용했다. 2016년에는 크리스티앙 리초(Christian Rizzo)를 초청할 계획이다. 검증된 저명 안무가를 보고 싶은 관객의 욕구와 흥행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을 고려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한정호 무용수를 볼 때는 무엇을 중시하는가?

안애순 일단 무용수와 안무가의 스타일 매칭이 중요하다. 몸성으로 교육된 무용수들이 많은데 표현과 형식은 연습 과정을 통해 교정, 발전될 수 있다. 선발의 최우선 기준은 독특한 자기 언어가 있느냐이다. 안무적 상상력이 탁월하거나 이야기를 끌어내서 표현으로 이어나가는 지적인 무용수를 선호한다.

한정호 해외 교류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있는 페스티벌이 있다면?

안애순 플랜을 만드는 중이다. 계약으로 성사되어야 알릴 수 있는 점을 양해 바란다.

한정호 기존의 안애순 작품인가, 신작인가?

안애순 신작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한정호 페스티벌 측은 신작 퀄리티를 어떻게 믿게 됐는가?

안애순 그동안의 안애순 작풍(作風)을 잘 알고 국립의 이름에 신뢰를 갖는, 둘 다의 이유일 것이다. <이미아직>, <불쌍>, <11분>, <춤이말하다>가 국내외 유통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며 일단은 <이미아직>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파리 샤이오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에서 2015년 말 현지 공연이 예정됐다.

<블쌍 2014> 공연 모습

▲ <블쌍 2014> 공연 모습

한국적 컨템퍼러리 구축을 위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역할

<11분 2014> 공연 모습

▲ <11분 2014> 공연 모습

한정호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무용단의 해외 진출작이 한국적인 컨템퍼러리라는 점이 중복되고 목표로 하는 축제, 극장 등이 겹치는 등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안애순 국립 단체는 발레단과 무용단, 현대무용단 모두 컨템퍼러리를 수행하고 있다. 그것이 의무이다. 비평과 행정에서 컨템퍼러리에 대해 정확한 관점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춤의 메소드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어떤 형식으로 끌어내고 뽑아내는지를 고민하면 될 뿐 그것이 뒤섞인다고 우려하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

한정호 무용단에 학술팀을 설치한 배경은 무엇인가.

안애순 작품의 전이나 후에 이 시대의 담론을 생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공연은 일시적인데 기록과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시간을 기록하고 그것을 타인과 후세가 봐야한다. 인문학과 미술, 음악 전문가들과 컨템퍼러리를 토론하고 우리를 진단하고 싶었다.

한정호 기록의 중요성에서 영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애순 공교롭게 예술의전당에서 교육용 예산을 들여 외부 상영 등을 목표로 국립 현대무용단의 작품을 촬영하고 지방에 배포할 것이다. 영상보다 전시에 지금은 비중을 두고 있다. 여러 맥락에서 몸을 탐구하고 초기 컨템퍼러리에는 어떤 운동이 있었는지 연구하려고 한다.

한정호 공연계 밖에선 <댄싱9>이라는 프로가 춤에 대한 이슈를 만들었다. 어떻게 봤는가?

안애순 본 적은 없고 한 번 잠깐 봤다. 문외한에게 친근감과 호기심을 일으키고 공연장에 오기까지,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거기엔 여러 장르의 춤이 있는데 그것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는 대회와 상금 제도이다. 자기 춤을 즐기기 위해선 어느 무대에 나가도 되지만 발언하고자 하는 것과 무관한 것을 기량 자랑하기 위해 나가는 건 다른 일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정반대 흐름이다. 하지만 안무자들이 돈이라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동요한다. 이해하고 싶지만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2013년 송년 기획 <춤이말하다> 공연 모습

▲ 2013년 송년 기획 <춤이말하다> 공연 모습

한정호 선발된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는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가능한가.

안애순 그래서 2~3개월 단위보다 한 번 뽑으면 11개월을 함께 가려고 한다. 예산과 관련된 문제여서 많이 고생스럽다. 의지를 갖고 풀고자 한다.

한정호 지금 세계의 주류 컨템퍼러리는 무엇인가?

안애순 유럽은 오랫동안 개념을 붙잡고 있다가 통합과 해체를 선호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이 나오진 않는다. 많이 지쳤지만 형식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대회에서의 춤이 아니라 유럽이 이끌어온 컨템퍼러리에 인문학적 가치를 더해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풍토를 아시아에서 찾는 흐름이 보인다. 여러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컨템퍼러리에 초점을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필자사진_한정호 필자소개
한정호는 [월간 객석]에서 무용&middot;클래식 기자를 역임하고 국립무용단 자문위원을 거쳤다.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홍보, 기획 업무를 담당했고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서 일했다. 현재 영국에서 [월간 객석], 중앙일보, 중앙SUNDAY 필자, 옴부즈맨으로 활동 중이다. LG글로벌 챌린저 문화 예술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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