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ONEDAY FESTIVAL 포스터

▲ 2014 ONEDAY FESTIVAL 포스터
(사진제공: 더하우스콘서트 홈페이지)

지난해 여름,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진 특별한 ‘공연장 습격 사건’을 기억하는가. 2013년 7월 12일, 연주자 300여 명이 ‘원데이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한날한시, 전국 38개 도시, 65개 장소에서 약 1만여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예 회관부터 갤러리, 카페,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울려 퍼진 클래식 음악, 국악, 재즈, 월드 뮤직 등은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특별한 하루를 선사했다.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서,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듣는 음악은 연주자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갓 피어난, 신선하고도 생생한 음악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마룻바닥 음악회’인 ';하우스콘서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름, 한·중·일로 그 규모를 확대해 사건(?)을 꾸미고 있는 ‘하우스콘서트’의 박창수를 만났다.

증명의 역사

“과연 가능한가요?”
하우스콘서트가 탄생한 이래, 박창수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시선이자 물음이다. 여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늘 동일했다.
“네, 보여드리겠습니다.”

2002년 7월 12일, 연희동 가정집에서 처음 시작한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는 올해로 12년, 그간 1,500여 명의 연주자들이 참여하며 400회를 넘겼다. 이것은 곧 ‘증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막대한 예산 없이도 공연이 탄생할 수 있고, 좁은 마룻바닥에서도 관객과 연주자 모두가 만족하는 무대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의 ‘증명’ 말이다. 증명의 과정은 외롭고 처절했다. 흑자보다는 적자가, 다수보다는 소수가 빈번했다. 우려에 의문을 더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처럼 ‘무(모)한 도전’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박창수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면서 이윤 추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가 가진 돈이 많아서 그렇다는 오해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전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에 관심이 있어요. 이윤 추구와는 거리가 멀고, 경제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죠.”

하우스콘서트의 공연 관람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2만 원이다. 입장료의 절반은 연주자들의 개런티로, 나머지는 하우스콘서트 운영을 위한 비용으로 쓰인다. “금액이 너무 저렴한 것 아니냐”라는 의견에 3만 원으로 올려 볼까 고민도 했지만, 공연에 대한 가치 판단은 관객 몫에 돌리기로 했다. 입장료를 자율적으로 지불할 수 있게 모금함을 앞에 두었지만, 나중에 셈을 해보면 기본 입장료의 합과 큰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몇몇 개인들의 자발적인 후원은 있었지만, 기업의 스폰서십은 거절하곤 했다. ‘조건’이 문제였다. “진심으로 필요한 일에는, 조건이 붙을 수 없다”라는 것이 변함없는 그의 생각이다. 반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진 부분도 있다.

“요즘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연주자들의 연락이 많아졌어요. 몇 년 전 지방에서 열리는 하우스콘서트를 제안했을 때, 거리도 멀고 개런티는 적거나 아예 없고, 관객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자원해서 가겠다고 말해요. 관객과 만나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싶고, 또 알게 된 거죠. 당장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던 연주자들이 하우스콘서트를 믿고, 마음과 시간을 기꺼이 내놓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연주자들의 믿음이 처음 가시화된 것이 2012년 일주일간 21개 도시 23개 극장에서 100개의 공연이 열린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당시 박창수의 시선은 연주자, 그리고 전국에 자리한 지역 공연장을 향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아요. 이러한 상황과 달리 전국에 중극장 이상 규모의 공연장이 400여 곳 가량 존재하지만, 공연 가동률은 50퍼센트도 채 안 되는 곳들도 상당하죠. 연주자와 공연장을 매치하고, 관객과의 접점을 늘려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터에 하우스콘서트 10주년인 2012년을 기점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죠.”

박창수가 1년에 5천 개 공연을 올리겠다고 처음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웃었다. 명확한 근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년에 5천 개 공연을 만들기에 앞서, 1주일에 100개 공연이 가능한 일임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첫 페스티벌을 시작했고, 이듬해 2013년에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65개의 공연을 올리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이어 갔다.

페스티벌 역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하우스콘서트 형식처럼 관객들을 무대 위로 올린 뒤 바닥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게 만들었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관객이 흡수하는 음악의 농도는 짙어졌다. 이전까지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그게 뭐다냐”라고 외치는 사람일지라도 가장 순수한 예술의 본질 그 자체에 매료되어 돌아갔다.

402회 하우스콘서트(바로크 컴퍼니, 6월 27(금)) 공연모습

▲ 402회 하우스콘서트(바로크 컴퍼니, 6월 27(금)) 공연 모습 (사진출처_하우스콘서트 홈페이지)

사람의 의식은 기초 문화가 바꾼다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이래 계속되는 적자에 관해 이야기하던 박창수는 스스로를 두고 예술 경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평했다. 동시에 하우스콘서트, ‘원데이페스티벌’이 사업적인 마인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새로운 것 하나를 제시하고 그것을 끌어가는 것이 제 역할이에요. 사람들이 쫓아올 수 있을 만큼만 조금 앞서서 제시하면 남들도 그것을 따라가는 데에 그리 어려워하지 않아요. 그 과정에서 고생을 자처하는 것도 있지만, 작곡가로서의 기질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전체를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고, 세부적으로 구조화하는 과정. 1년 단위, 10년 단위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요소며 연주자들을 더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박창수에게 하우스콘서트는 하나의 작품과 마찬가지다. 구조를 고민하며 곡을 써내려가듯, 개개의 하우스콘서트 공연들도 구조와 흐름 속에서 배치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박창수와의 대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키워드 중 하나는 ‘기초 문화’였다. 사회가 발전하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권리에 대한 개념은 높아진 반면, 책임에 대한 의식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권리는 그저 이기심에 불과하다. 박창수는 이것이 어느 영역만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의식 수준, 안목이 높아져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박창수와 김선영의 인터뷰 모습

“많은 사람들이 정치나 경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람의 의식은 문화가 바꾸는 것이죠. 기초 예술이 발전하고, 기초 문화가 탄탄해야 의식이 바뀌고 사람과 사회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시대에는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대중 예술과, 그 자체로 역사성과 고유함을 갖는 순수예술이 존재해요. 두 역할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순수예술, 기초 문화가 인정받고 근간에 제대로 자리 잡아야, 그것을 기반으로 대중 예술이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죠. 바흐의 음악이 없었다면 케이팝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겁니다.”

기초 문화가 다음 세대와 미래의 발전을 위한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국민들의 전반적인 문화 의식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곧 하우스콘서트의 중요한 역할이자 목적이며, 박창수가 하우스콘서트를 지속해 나가는 이유이다.

지난해까지 연주자와 국내 공연장 매치 및 활성화에 역점을 뒀던 박창수는 올해 그 시선을 한국, 중국, 일본으로 확대했다. 7월 12일 세 국가에서 총 94개 공연이 동시에 열리는 이번 ‘원데이페스티벌’은 예술을 매개로 무대와 객석 사이를 좁히고, 국가 간의 이념과 문화 차이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 그 하나만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길고도 복잡한 역사적 경험 안에 얽혀 있어요. 같은 문화적 기반을 가졌지만 지금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죠. 이제는 경계를 넘어 서로의 것을 나누면서 각각의 문화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공동체적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토대를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번 페스티벌의 방향성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의미 있는 변화가 될 것입니다.”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김선영 필자소개
김선영은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월간 [객석]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무대와 공연 뒤에 얽힌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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