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포스터(사진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포스터(사진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전진수


충청북도 제천이라는 도시를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많지 않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가 있긴 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이다. 물론 이 소설의 주무대는 봉평이지만 제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하룻밤 인연을 맺고 헤어진 분이의 아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동이를 만나 동행을 하는데 그의 이야기를 통해 (분이인 것으로 추정되는) 동이 어머니가 지금 있는 곳이 제천이라 허생원은 대화 장을 향하던 발걸음을 포기하고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향하게 된다. 즉, 오랜 그리움의 대상이 존재할 수도 있는 공간으로서 제천이라는 지명이 몇 번 등장한다. 이런 머나먼, 그것도 직접적이지 않은 기억이 제천이라는 곳에 대한 나의 인상의 전부였는데 그것을 바꿔 준 것이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그것이다. 장르영화의 역사로 치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보다 앞서 1997년에 시작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있고, 이후 서울환경영화제(2004),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2013) 등이 생겼다. 20여년 기간 동안 장르영화제가 다양해졌지만 유럽에서 여름이면 자연과 어우러져 예술을 즐기는 형태의 축제는 제천영화제가 유일한 것으로 이제는 제천=영화제=여름밤의 낭만 등의 등식을 각인시켜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원스(Once), 2006>,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 2011> 등의 화제작으로 많은 영화음악 등을 히트시키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가 있다. 지난 8월14일 올해로 10회를 맞이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Jecheon International Music&Film Festival, JIMFF) 개막식을 찾아 그 주인공을 만났다.

음악 장르영화의 시작

황보유미 한국에서 두 개의 메이저 장르영화제가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와 제천영화제이다. 첫 출발부터가 장르영화제에 대한 고민을 안고 출발했나?


전진수 전주영화제에서 일을 하다가 제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때 게스트로 온 것이 인연이 돼 2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에 참여를 시작했다. 당시 청풍리조트, 국민연금관리공단, 제천시와 의견을 모아서 영화제를 하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장르영화제가 아니고 일반영화제로 가려했으나, 제천에는 영화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일반영화제로 시작하면 다른 영화제와 변별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체코 프라하의 음악다큐영화제에 나와 인연이 있는 관계자가 있었는데, 그를 통해 ‘음악영화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컨셉 영화제로 가자는 취지로 2회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음악 쪽 전문가가 아닌 일반영화제 전문 프로그래머였다. 1회는 일반영화제로 시작했으나 갑자기 음악영화제로 컨셉이 바뀐 셈이다. 그래서 1회 영화제는 어찌 치르긴 했으나, 변화가 요구됐고 이에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가 바뀌게 되었다. 조성우(영화 <봄날은 간다> 음악감독)감독과의 인연으로 프로그래머로 추천받아 일하게 됐다.

황보유미 10년간 규모도 많이 커졌고, 영화와 공연이 결합된 형식의 영화제가 안착됐다.

전진수 처음에는 영화제의 전체 영화편수가 47편이었는데 지금은 87편이다. 100편이 넘은 적도 있었다. 작년에 관객이 3만명이 왔는데 수도권 관객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영화제 초기만 해도 ‘음악영화’라는 장르나 개념이 생소했으므로,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영화 <원스>를 2007년 3회 개막작으로 했었던 것이 영화제의 정체성과 관심을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에서 음악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당시 <원스>는 국내 최초 상영이었다. <서칭 포 슈가맨(2012)>도 아주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좋은 영화제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공연과 영화제가 함께 하는 독특한 형태로 정착되었다. 1회는 두서없었다. 그러나 2회부터 ‘원 섬머 나잇(One Summer Night)처럼 주제와 모양새를 갖춘 공연 기획들이 생겼다. 덕분에 수도권의 젊은 관객들이 영화제에 많이 유입되었다.

황보유미 제천시민들의 참여는 많이 이뤄지는지?

전진수 올림픽처럼 국제 이벤트가 영화제기간과 겹칠 때는 힘들다. 예를 들면 지역 세금이 많이 투자되는 전주영화제는 항상 지역민들의 말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화제를 ‘쓸데없는 짓거리’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수도권 관객이 많이 모여야 지역 경제는 활성화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민들은 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지역민들의 문화적 소양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한가한 도시에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역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면 ‘제천에서 하는 유일한 국제행사’라는 인식이 점점 커져서 지역민들에게 좋은 인식이 커질 것이고 아울러 의림지, 중앙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지역민과의 접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황보유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 해 예산은?

전진수 대략 16~17억 정도 된다. 제천시, 충청북도, 그리고 국비로 재원을 마련한다. 여기에 스폰서와 티켓판매수익이 생긴다. 국비는 2억 5천정도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국비로 30억을 받는다고 들었다.

황보유미 티켓수익은?

전진수 사실 영화제라고 하는 것은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금년의 경우 87편 영화를 상영하는데, 외국영화가 60편이라고 치면 상영료, 저작권, 트래픽(택배비), 감독초청비용 등이 든다. 관객이 꽉 찬다 해도 마이너스다. 하지만 일반 상업영화가 아니라 예술성이 강한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으므로, 거기서 영화제의 존재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황보유미 올해 영화제는 음악적으로는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뒀는가?

전진수 영화제 스페셜로 간혹 포인트를 둘 때도 있다. 한때 보사노바에 심취해서 그쪽 영화를 집중 소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포인트는 없다. 한 섹션정도는 그런 포인트를 둬서 소개하기도 하지만, 음악장르를 떠나 영화적 완성도를 중요시한다.

황보유미 이번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를 추천한다면?

전진수 <왈츠 포 모니카(Waltz for Monica)>를 추천한다. 모니카 제틀런드라(Monica Zetterlund)는 스웨덴 재즈 보컬이 있는데, 20~30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그분 음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제틀런드의 전기 영화가 나와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_어떤 광기>도 추천한다. 지휘자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115명 단원들을 데리고 매년 부활절마다 유라시아 투어를 다닌다. 이 영화는 음악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적 맥락도 함께 녹아있다. 단순히 음악만 좋다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줄거리와 감동이 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음악만 들었을 때는 모르지만, 영화에서 주인공 시스토 로드리게즈(Sixto Rodriguesz)가 욕심 없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을 함께 감상하면 관객이 느끼는 정서는 완전히 달라진다.

▲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왈츠 포 모니카, Waltz for Monica>와 <발레리 게르기예프-어떤광기, Gergiev – A Certain Madness>. (사진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왈츠 포 모니카, Waltz for Monica〉〈발레리 게르기예프-어떤광기, Gergiev – A Certain Madness〉 (사진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황보유미 프로그래머로 지내면서 수많은 영화제를 다닐텐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제가 있다면?

전진수 정기적으로 칸느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를 간다. 거기에 필름마켓이 있다. 참가하면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많이 보면 하루에 7편도 가능하다. 가을에는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바르셀로나 음악다큐멘터리 영화제도 자주 간다. 벨기에 겐트(Ghent)에서하는 겐트영화제가 인상적이었다. 겐트 대학이 매우 오래됐는데, 그 대학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졸업생들이 음악영화를 모아 축제를 만든게 영화제의 시작이다. 영화제 기간동안 150편 정도가 상영된다. 음악 영화는 15편 정도다. 겐트영화제는 공연 프로그램이 아주 좋다. 매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음악가들을 불러 공연을 많이 한다. 가브리엘 야레(Gabriel Tared), 잉글리시 페이션트(English Patient), 구스타보 산티올라(Gustavo Santaolalla) 등이 와서 직접 연주한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좋았는데 요즘 잘 못 간다.

자연이 한 축인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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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유미 제천얘기로 돌아가겠다. 영화제가 지역경제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전진수 지역경제활성화는 시청관계자에게 묻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웃음) 그것보다는 제천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외지에서 온 관객들이 호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정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 ‘영화’음식인데, 제천의 음식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1등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보석 같은 곳이 많다. 두부요리, 고기요리, 바다생선 횟집까지 맛있다. 각 음식점 사장님들의 맛에 대한 고집이 느껴질 정도다. 이들은 직업적 사명감이 매우 투철하다. 발효요리, 약채 음식도 굉장한 수준이다. 전주도 대단하지만, 지역적으로 너무 개발이 이뤄져 맛집이 없어졌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그게 맞겠지만, 지역고유의 특색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런 제천의 숨은 지점들을 영화제를 통해 제천을 방문한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이 지역경제활성화의 시작점 아닐까?

사진_간송미술관8/간송미술관3

▲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모습



황보유미 영화제와 함께 영화음악아카데미도 진행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교육 진행이 되나?

전진수 2회 때 일을 시작 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성우와 의기투합하여 영화음악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교육기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사들을 섭외해 영화제 기간에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초기엔 내가 직접 다 도맡아 했다. 교육생들은 세명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실습도 하고, 근처 미디어센터에서 단편영화에 음악을 입혀보기도 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이 아카데미가 계속 잘되려면, 아카데미 수료생들이 취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취업도 많이 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어시스턴트가 필수인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시스턴트로서 영화 음악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주로 영화제에 온 강사들이 많이 데려가는 편이다. 반응이 좋다. 조를 짜서 실습을 하는데, 1등을 한 조는 부산영화제 AFA(연출지망생들을 위한 아카데미)에 보내서 같이 협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에는 영상에 음악을 입히는 작업만 했다면, AFA에 가서는 영화 제작 처음부터 완성단계까지 모든 작업에 참여하면서 프로덕션 과정을 체험한다. 부산의 규모는 엄청나다. 예산이 많으니까 그렇지 않겠나.

황보유미 영화제가 생산해낸 파급력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진수 영화제 규모가 큰 건 전혀 의미 없다. 제천시는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규모가 크면 빨리 망한다. 나는 축제의 수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제, 언젠가는 없어질 수도 있다.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말이다. 실제로 영화제를 폐지하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던 시장이 당선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 영화제는 이어져오고 있지만 말이다. 축제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 다만 없어질 때 없어지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아 그때 제천 좋았지” 라는 소리는 들어야겠지 않는가?

황보유미 10회까지 영화제가 이어지면서, 양적·질적으로 축제가 성장해왔다. 지금 시점에서 향후 영화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전진수 희망사항은 제천에 극장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극장이 하나 더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부분은 영화제나 제천시가 할 수 없다. 일단 제천 인구가 늘어야 한다. 그래야 영화관이 더 생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커피를 예로 들면, 영화제 2회, 3회 때는 제천에 커피 파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근처에 커피콩을 볶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프로그래머로서 목표가 있다면 외국 아티스트 공연 횟수를 더 늘려서 공연의 질을 더욱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부산영화제처럼 예산이 많은 것이 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 수준에서 25~30억 정도 까지만 지원을 받는다면, 지금보다 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 정도까지만 됐으면 좋겠다.

황보유미 해외에서 바라보는 제천영화제의 위상은?

전진수 굉장히 좋다. 예산 문제 때문에 해외게스트를 많이 초청하지 못하지만, 음악영화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상영편수나 공연프로그램을 보면 말이다. 구로자와 아키라를 초청했었는데, 영화제뿐만 아니라 혼자 새벽에 산책하며 너무 좋아했다. 영화제도 영화제지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자연이 한 몫 한다. 우리나라 영화인들도 너무 좋아해서 영화제 때 방을 달라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김영일/김영일은 1993년 사진전문 출판사 ‘도서출판 일’을 창립해 40여 종의 사진집을 발간했으며, 2003년 영상전문 법인회사 ‘그루비주얼’을 창립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전통소리 공연, 녹음, 공연장 건립 등 7년간의 준비를 통해 2005년에는 음반/영상 전문회사 ‘악당이반(주)’을 창립했다. 1,400여 개 국악음원 마스터를 제작했으며, 78종의 우리음악음반을 제작해 국내외로 유통하고 있다.
사진_황보유미 필자소개
황보유미_[Weekly@예술경영]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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