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예술경영]277호는 서울아트마켓 1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해외에 진출한 작품과 참여 작가의 경험기를 준비했습니다.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아티스트 및 기획자 여러분들의 길잡이가 되어줄 알짜정보들을 놓치지 마세요!/칼럼/서울아트마켓을 통한 해외진출 경험기 – 음악 분야/서울아트마켓을 통한 해외진출 경험기 – 연극 분야/서울아트마켓을 통한 해외진출 경험기 – 복합 분야/서울아트마켓을 통한 해외진출 경험기 – 무용 분야

김형군이란 이름은 홍대 음악 씬에서는 하드코어를 중심으로 한 레이블 GMC의 대표로 통한다. 최근에는 GMC 소속의 잠비나이와 함께 해외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많은 음악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잠비나이는 이일우(기타, 피리, 태평소),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으로 구성된 밴드로 국악과 록을 극적으로 결합시켜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큰 평가를 받고 있는 팀이다. 잠비나이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김형군의 지원과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또한 그는 하드코어 밴드 마제(Maze)의 보컬리스트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투데이 스팟(TODAYxSPOT)이라는 새로운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그는 GMC 레이블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올해 여름 잠비나이와 함께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그를 만나 그동안의 성과와 하드코어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김학선 유럽 투어를 마치고 얼마 전에 돌아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김형군 한국에 와서 일단 지원 사업에 대한 정산 보고를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그리고 새 앨범 준비를 하고 있고, 또 1집을 리마스터링해 LP로 재발매할 계획이어서 그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아무래도 유럽에선 LP가 여전히 수요가 많으니까 디자인도 바꿔서 재발매할 생각이다.

김학선 귀국해서도 여전히 바쁜 것 같다. 공연도 많이 하고 있고.

김형군 그렇다. 우리가 기획한 공연은 별로 없는데, 투어를 다녀오니까 많이들 불러주셔서 감사하게 무대에 서고 있다.

김학선 투어를 다녀온 뒤 위상이랄까, 이런 부분에서 달라진 점들이 있나?

김형군 섭외는 투어 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많이 늘어났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예전엔 출연료를 주는 대로 받았다면 이제는 선을 세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항상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먼저 (금액을) 제안을 하고 절충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바꿨다. 분위기만.(웃음)


인터뷰

서로에 대한 신뢰와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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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북경 ‘사운드 오브 더 시티(Sound Of The Xity)’ 축제에서 공연중인 잠비나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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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지금까지는 GMC 레이블의 대표였는데, 얼마 전에 잠비나이와 함께 레이블을 나왔고 따로 회사를 만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형군 만들려고 준비 중인데 지금 잠비나이 일정 때문에 빠르게 구체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GMC를 나온 이유는 복합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올해부터 몸이 좀 많이 안 좋아져서 일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GMC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 밴드가 잘되고 그 영향으로 다른 밴드들까지 잘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금 GMC가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때문에 다른 밴드들이 소외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GMC라는 레이블은 물론 사업자가 있는 단체이긴 하지만 하드코어라는 라이프스타일로 모여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다른 직업을 갖고 있고 음악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인데, 잠비나이는 거기에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잠비나이에게 져야 하는 책임이 높아졌고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을 때 두 가지를 다 끌고 간다는 건 양쪽 모두에게 실례가 되고 죄송스러운 일이라는 판단을 했다.

김학선 한편으로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형군 씨가 승부를 걸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김형군 잠비나이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희생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래서 내 인생에 승부를 걸었다기보다는 이제 내가 뭔가 하나를 희생해야 할 차례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창피한 게 나보다 더 큰 희생을 한 멤버도 있었다. (이)일우 같은 경우는 잠비나이 때문에 KBS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정말 좋은 직장을 그만뒀다. 사실 일우가 직장을 그만둘 때부터 나도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이 시작됐다.

김학선 지금까지 김형군이라는 사람은 잠비나이의 매니저 또는 GMC 레이블의 대표로 더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마제'라는 팀에서 보컬을 맡았던 하드코어 음악가이기도 하다.

김형군 마제를 할 때도 특별히 뮤지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난 하드코어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드코어 라이프스타일로 살 사람이니까 그냥 하드코어 밴드를 한 거지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김학선 하드코어는 음악 장르이기도 하지만 삶의 태도를 말하기도 한다. 하드코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김형군 나 역시 처음엔 하드코어를 뉴 메탈 같은 왜곡된 형태로 접했다. 대학생 때는 실제로도 그런 음악을 했었고, 그러다가 마제를 하면서 진짜 하드코어라는 다른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드코어를 알게 되면서 음악이나 사운드보다는 그 사람들이 왜 자기들만이 하드코어라고 하는 건지 궁금했고 관련한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러면서 하드코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하드코어를 알게 되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그전까지 나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때는 학생이어서 학교도 잘 안 가고 그냥 시간을 허비하며 보냈는데 이렇게 해서는 하드코어 음악을 한다 해도 하드코어 밴드가 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내 삶에 책임감을 갖게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언젠가 내 삶을 돌이켜봤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터뷰

새로운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

김학선 처음 GMC 레이블이 만들어지고 이하석 씨가 대표를 맡았다. 그 뒤에 하석 씨가 외국으로 나가고 형군 씨가 대표를 맡게 됐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김형군 하드코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로컬 씬이다. 마제 데뷔 앨범이 나오면서 GMC에 합류를 했는데, 그때 하드코어 음악을 하면서 로컬 씬을 뒷받침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고 싶었다. 당시 하드코어 팬진을 만드는 친구도 있었고, 사진을 찍는 친구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거나 비디오를 찍어주는 형들이 있었고,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거 하나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공연을 기획하고 밴드들을 뒷받침 하는 보이지 않는 잡다한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이하석 대표님께 말씀을 드렸고 마제가 GMC에 합류를 하면서 같이 일을 하게 됐다. 공연이 열릴 때 기획이나 진행은 내가 담당을 했고 음반에 관한 부분은 이하석 대표님이 맡아서 하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표까지 맡게 됐다.

김학선 잠비나이와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김형군 2010년에 상상마당 레이블마켓 행사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사운드나 여러 이유로 거기에 GMC의 밴드를 세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일우가 자기가 새로 친구들과 만든 프로젝트가 있다면서 그 팀이 공연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음악을 들어보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이일우란 뮤지션에 대한 신뢰로 공연을 하자고 했다. 당시엔 잠비나이가 지금과는 좀 다른 성격의 음악을 했다. 좀 더 앰비언스했고 호흡이 긴 곡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곡들이었는데 그 자리에 모인 100명, 150명 정도 되는 관객들이 숨소리조차도 안 내고 공연에 집중하는 걸 보게 됐다. 나는 공연 진행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정말 조심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그때 이 팀은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만큼의 가능성은 아니었지만 뭔가 다를 걸 만들어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학선 잠비나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기에 맞게 쫙 잘 풀린 것 같다.

김형군 그렇다. 모든 요건이 다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이 이 모든 과정이 시작된 첫 단추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가 처음 잠비나이를 만들면서 농담처럼 "언젠가 우리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같은 데 한 번 나가보자"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보미가 "우리 워멕스(WOMEX, the World Music Expo) 가면 안 돼요?" 하길래 한 번 찾아보니까 일단 항공료 문제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그래서 항공료를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이 뭐가 있나 알아보고 '팜스 초이스'를 알게 됐다. 사실 무지하게도 난 주로 홍대 주변에서 있었기 때문에 예술경영지원센터나 서울아트마켓 같은 걸 잘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도 잘 몰랐고, 나에게 필요한 건 비행기 표였다.(웃음) 감사하게 팜스 초이스에 선정이 돼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도 받게 되고 부스도 들어가고 하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됐다. 그런 마켓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처음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얼마나 많은 해외 인사들이 오는지도 몰랐고 그분들이 공연을 보러 와서 그게 다음 해의 사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전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다. 그렇게 서울아트마켓을 통해서 2013년의 해외 공연들을 준비하게 됐고, 에이팜(APaMM, Asian Pacific Music Meeting)의 존재도 알게 됐다.


인터뷰

나는 뮤지션이 아니다

김학선 여름 두 달 동안 유럽 투어를 다녀왔다.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는데 그 성과를 말해준다면.

김형군 일단 우리를 초청해준 디렉터들로부터 정말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관객들의 평도 아주 좋았고 머천다이즈의 판매량도 굉장했다. 내 입장에서 가장 고무적이었던 건, 밴드들이 보통 첫 번째 장기 투어를 진행할 때는 적자가 나기 마련인데 어쨌든 우리는 적자가 나지 않았다는 거다. 우리 에이전트의 말을 빌리자면, 적자 나지 않았고 엄청난 평가가 나왔고 내년을 기약하는 게 더 많아졌다. 해외 마켓에서 우리를 초청해준 페스티벌 디렉터들을 먼저 만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었다. 그 말이 공수표가 아니게 돼서 무척 즐거웠다.

김학선 다시 세계 투어를 가져야 할 텐데, 뮤지션으로서의 꿈은 이제 완전히 접은 건가?

김형군 아까도 말했지만 나 스스로를 뮤지션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금도 투데이 스팟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 하고는 있지만 그건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라이프스타일의 하나다. 사실 올해 초에 마제는 재결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그 사이에 멤버 한 명은 아이를 출산해서 어느 정도 키웠고, 다른 멤버들도 직장이나 이런 문제들이 다 정리가 돼서 마제를 다시 하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내가 안 하겠다고 했다. 그때 이미 나는 투데이 스팟을 시작한 상태였고, 마제가 친구들이 모여 시작한 밴드였다면 이번에는 그런 관계가 아닌 밴드를 해보고 싶었다.

김학선 10년 뒤 잠비나이와 형군 씨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김형군 있다. 두 가지 모습이 있는데, 잠비나이가 내가 필요 없을 만큼 잘 되는 것과 나랑 같이 잘 되는 것 두 가지를 같이 상상한다.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이렇게 아티스트를 봐주고 하는 작업은 잠비나이가 나에겐 마지막이다. 잠비나이가 내가 필요 없을 만큼 잘된다면 나는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나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게임하는 것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이 정말 많다.(웃음)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참고기사 보기
[The APRO]_ Who&Work, 잠비나이
[The APRO]_ 축제/마켓, 중국 북경 ‘사운드 오브 더 시티(Sound Of The Xity)’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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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人]
김형군 The tell-Tale Heart 대표, 잠비나이 디렉터



필자사진_김학선 필자소개
김학선은 인터넷 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웹진 '가슴' 편집인, 한겨레신문 대중음악 담당 객원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EBS '스페이스 공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웹진 '보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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