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 10주년을 맞은 서울아트마켓의 올해 주제는 ‘아시아 공연예술의 창 – A Window to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in Asia’로, 특히 ‘포커스세션’에서는 아시아 권역에서도 중국을 주빈국으로 하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공연예술계의 현황을 파악하고 교류 방안 등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아트마켓의 협력 행사로 열린 2014 한-중 문화예술포럼에서는 중국 문화예술 분야 정책 기조와 현장의 사례 발제가 이어졌는데, 이 포럼의 개최 협력 파트너이자 50명이 넘는 중국 측 방문단의 대표격인 중국공연예술협회(中国演出行业协会)의 주커닝 부회장을 만나 포럼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커닝 부회장은 베이징의 수도사범대학에서 문화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화학을 전공하고 9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화학 교사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문화대혁명 후기 수많은 지식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주 부회장 역시 산서성(山西省)의 한 농촌으로 하방(下放)을 당했는데, 1977년 대학 입시가 회복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문학이나 예술 분야가 아닌 화학을 선택하며 겨우 고향인 베이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된 산서성의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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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교사로 근무하던 중 상부의 지시에 따라 문화부로 이동하여 문화시장사(文化市场司) 연출처(演出处)에서 십여 년간 근무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콘텐츠산업실과 예술국에 해당한다. 최근 젊은 세대와 달리 기존의 중국 문화예술계 종사자들, 특히 행정이나 기획 분야는 이렇듯 상관없는 분야의 종사자들이 발령을 받고 부임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왔기 때문에 이 경우가 특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주 부회장은 오랜 시간 일해온 문화부를 떠나 현재 중국공연예술협회를 이끌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중국의 체제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 중국공연예술협회의 경우 법률적으로는 민간 조직이나 소위 ‘정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민간 협회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연예술협회의 중국 내 위상

협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규모에 대해 물었을 때 주 부회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를 하였는데, 우선 회원수로 보았을 때는 중국 전역 1만여 개의 공연장과 기획사 등이 가입되어 있으며, 급으로 보았을 때는 26개 성(省)과 시(市)의 공연예술협회(演出行业协会)를 아우르는 국가 급 기구가 바로 이 중국공연예술협회라 할 수 있다. 이 숫자에 비해 놀라운 것은 협회의 직원이 열 명 남짓하다는 것인데, 직원 한 명이 몇 가지의 사업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 업무량이 아주 많은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각 지역의 공연예술협회와의 업무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 둘의 관계는 상하수직적인 것은 아니고 수평적 협력 관계이다. 예를 들어, 아래에 소개할 자격 인증 제도나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경우 전반적 지침은 중앙의 중국공연예술협회에서 만들고, 실제 시험의 실시는 각 지역의 공연예술협회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수합된 결과에 따라 인증서를 발급하는 것은 다시 중국공연예술협회에서 담당하는 식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정책 방향이나 집행 과정에서 정부와 회원사 간 갈등이 있기도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이러한 민간 조직은 정부가 문화예술뿐 아니라 전체 사회를 관리하는 방식의 하나로, 행정 수단이 아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서비스의 형태로 구현된 또 다른 관리 체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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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커닝 부회장은 ‘영업성연출관리조례’, 즉 상업성공연관리조례의 제정에도 초기부터 관여했고 다수의 공연시장관리정책 수립에도 참여했는데, 이러한 관련 분야 법규를 제정할 때 중국 문화부에서는 공연예술협회를 통하여 업계의 수렴된 의견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듣는 것은 듣는 것이고, 중국의 경우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거시적인 문화 정책 방향을 정부가 주도하고 새로운 정책들 또한 아직까지는 일방적 하달의 형식이기 때문에 실제 수렴된 의견이 많이 반영되거나 영향을 미치는 단계는 아니라고 의외의 솔직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협회가 정책 입안과 관련한 민간과 정부 간의 소통 창구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 주력 사업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우선 중국에서는 3인 이상의 공연기획사나 에이전시 등을 설립할 때 반드시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이 3인 이상의 구성원들 역시 인증된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연예술협회에서는 바로 이 자격을 인증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전문 인력에 대한 교육프로그램과 자격시험 실시, 증서 발급 등의 전 과정을 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인력에 관한 인증뿐 아니라 현재 우후죽순으로 건립되고 있는 중국 전역의 공연장들에 대한 기본 조사와 평가 역시 협회에서 주관하는데, 그런 연유로 주커닝 부회장은 전국극장표준화기술위원회 부비서장도 겸직하고 있다.

중국공연예술협회의 역할 변화 – 심의평가 인증제도 구축

이처럼 협회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배경으로는 정부 관리 모델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로는 이전에는 모든 공연이 사전 심의를 받아야만 했지만 현재는 상당 부분 축소, 취소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필자는 바로 작년에만 해도 정치적 내용(중국 국내가 아닌 해외 정세 역시 포함된다.)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공연이 출국 직전 취소되는 경험을 하였는데, 앞으로의 방향을 그렇게 정하고 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주 부회장이 밝힌 완전한 심의 철폐의 실행안은 다소 시간을 요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심의제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역시 전적으로 시장의 흐름에만 맡길 수는 없고 일종의 관리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모델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 부회장의 이야기였다. 같은 맥락에서 공연 단체나 공연장, 유관 기구는 일종의 신용도에 대한 평가와 인증을 받게 되고, 신뢰 평가 시스템 구축이나 평가 방식 마련, 인증 절차의 시행 등을 민간을 표방한 협회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격과 권리는 역시 민간에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고 중국 정부에서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커닝 부회장이 몸담았던 문화부 문화산업사 연출처에서는 이 평가와 인증을 협회에 위탁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회원의 업무수행 역량, 과거에 수행한 공연의 실적, 그리고 국가의 법률과 규칙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지 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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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증은 중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 교류를 위해서도 필요한데, 향후 해외의 공연예술단체나 기관에서 중국과 합작을 위해 파트너를 모색할 때 공연예술협회를 통해 이 파트너가 과연 신뢰할 만한지, 어떠한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해왔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준비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번 서울아트마켓과 한중문화예술포럼에서도 역시 중국과의 교류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장 많이 나왔는데,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체결한 합작의향서의 한 조항에도 위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구축되면 한국 공연예술인들의 중국 진출과 합작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협회의 계획에 의하면 늦어도 내년 안으로는 이 인증 절차가 우선 중국 내 공연기획사들을 대상으로 시험 가동될 것이며, 추후 각급 공연장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공연예술협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측면에서 협회가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 물었을 때, 주 부회장은 앞서 언급한 신용 관리의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공연 작품의 수출에 대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두 가지를 들었다. 이전에는 국제 교류에 있어 외교부 산하의 대외연락국에서 각 권역별(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유럽 등)로 관리를 했으나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이후 외교부의 공연 관련 국제 교류 업무 역시 통합 후 공연예술협회에 위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 투어 시 문화부 보고와 심사를 거치는 과정 역시 없애고 협회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다. 그나마 이러한 신고 제도 역시 국가의 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아직도 이런저런 까다로운 규제와 절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실제로 집행할 만한 조직이나 인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절도죄 처벌에 관한 법률은 있으되 잡으러 다닐 형사가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와 변화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전체적으로는 이전의 감독과 처벌 위주 정책에서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커져가는 추세라고 주 부회장은 소개하였다.

최근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국의 대형 실경산수 공연 인상시리즈에 대한 그의 언급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인상류싼지에, 인상리장 등 초기 작품들은 새로운 공연 형식과 미학을 보여주며 공연관광 콘텐츠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아류들이 생겨나면서 질적 저하는 물론이고 전체 인상시리즈 브랜드에까지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지방 관료들의 경쟁적인 실적 쌓기의 일환으로 공연장 건립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나, 대형 실경 공연에 예산이 남발되는 현상 등에 대해서 문화부에서 일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공연예술협회에서 최근 다각도로 예산 집행과 사후 평가에 대한 관리 방안을 정부와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안이 문화부와 세무국의 업무 영역이 겹치는 관계로 구체적 실행에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공립 공연예술 단체의 법인화, 공연장의 민영화 등 최근 10년간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공연예술계 역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예술 창작과 유통, 그리고 이미 커져버린 시장과 인민 대중의 문화 소비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다. 주커닝 부회장의 말처럼 현 시점에서 전체 공연예술산업의 발전과 국제적 협업의 확대를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개입과 감독을 줄여나가고 새로운 정책 법규와 실제 집행 과정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적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간 미비했던 효과적 지원 제도를 수립하고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와 같이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서 중국공연예술협회가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촬영_천윤기, 박창현(Chad Park)

필자사진_천재현 필자소개
장혜원은 중국 중앙희극학원 연출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의 현대 희곡을 번역하고, 베이징, 홍콩, 마카오 등지의 페스티벌에 다양한 장르의 한국 작품을 소개하였다. 베세토 연극제 위원과 베이징 청년연극제 국제교류 프로그래머를 맡아 중화권과의 공연예술 교류에 힘쓰고 있다. 이메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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