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월드뮤직엑스포 ‘워멕스(WOMEX)’가 지난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개최되었다. 2012년 거문고팩토리, 2013년 숨[suːm]과 잠비나이에 이어 올해는 노름마치가 공식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 282호는 20주년을 맞은 워멕스(WOMEX) 현장에서 만난 세계 음악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워멕스와 월드뮤직 그리고 한국 음악에 대한 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현장+人]벤 멘델슨(Ben Mandelson) WOMEX 창립 이사 /[현장+人]브라힘 엘 마즈네드(Brahim El Mazned) 비자 포 뮤직(Visa for Music) 창립 감독/[현장+人]WOMEX 2014를 찾은 각국 기획자들

※ 이 글은 워멕스(WOMEX) 기간 동안 필자와 만나서 짧은 인터뷰를 했던 인사들의 코멘트를 각색하여 정리하였습니다. 해외인사들의 인터뷰 경우 되도록 필자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해석하여 옮겼음을 알려드립니다.

평소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워멕스

이번 개최 도시(Host City)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는 순례자의 길로 매우 유명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그 이름에 비하여 규모는 작은 도시였다.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나에게 방문 사유를 물었고, 내가 워멕스 참가 차 왔다고 했더니, 웃으며 "You are late"라고 답할 정도의 도시 규모랄까?

벌써 6년 전부터 워멕스에 참가하고 있는 나에겐, 이제 행사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익숙함이 있다. 분주하게 운영되는 부스들, 약속 시간에 맞추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처음 온 모양인지 얼떨떨한 얼굴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이에서 워멕스 친구들을 가장 빨리 그리고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시나 흡연 구역(Smoking Zone)이다. (사실 이번 워멕스는 흡연 구역이 너무 여러군데 있어서 좀 혼란스러웠다) 도착하자마자 들른 이곳에는 역시나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있다. 그중 일부는 매년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고, 또 몇몇은 서로 매년 보고 있지만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그냥 서먹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문득 표면적으로 보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마켓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매년 여기에 모여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페낭 아일랜드 재즈페스티벌(Penang Island Jazz Festival) 디렉터 폴 어거스틴(Paul Augustin), 스웨덴의 프로모터이자 작은 마을인 런드(Lund)에서 런드 뮤직 페어(Lund Music Fair)를 하고 있는 루이스 미첼(Louis Mitchell)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런드 뮤직 페스티벌 디렉터 루이스 미첼(왼쪽 사진)과 페낭 아일랜드 재즈페스티벌 디렉터 폴 어거스틴(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모습

관계 맺기의 중요성

루이스 나는 거의 워멕스의 초창기 때부터 참가해 왔지. 실제로 아시아에서 온 너는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 행사는 유럽에서 같은 부류의 음악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쉽고 적은 비용으로 관계자들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시작 할 수 있는 곳이야.

내 생각에 워멕스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는데 한 가지는 '관계'야. 여기에는 정말 여러 가지 종류의 관계들이 있거든. 다양한 목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결국 이것은 단순한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사소한 관계라도 무시할 수 없고, 참가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관계들은 좀 더 다중적이고 다층적으로 변하거든 그래서 매년 올 때마다 더 바빠지고 할 일이 많아진다고 해야 할까?

다른 한 가지는 교육적 측면인데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게. 우리 아버지는 피아니스트였는데 나는 그 피아노가 너무 재미없고 어려워서 치기 싫었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말하시는 대신 아침에 한 시간씩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셨어. 어떤 날은 아주 아름다운 곡을, 또 어떤 날은 아주 신나는 곡으로. 그렇게 몇 주가 흐른 후 난 피아노가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기 않았고, 내가 아버지에께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어. 여기가 바로 그런 지점인 것 같아. 실제로 뮤직 비즈니스라는 것이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메일과 전화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재미있거나 하지 않거든. 하지만 여기 와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함께 즐겁게 시간들을 보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재미있게 일을 하게 돼. 여기를 둘러봐 봐. 여기에서는 아무도 심각한 표정으로 일하지 않거든. 근데 폴 자네는 멀리 말레이시아에서 여기까지 왜 이렇게 오는 거야?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페스티벌 디렉터인 폴 어거스틴은 유럽 시장에 무언가 내다 파는 것이 아니라, 페스티벌에 필요한 아티스트 섭외의 목적이 대부분인데, 월드뮤직도 아니고 재즈 페스티벌의 디렉터인 그가 여기에 있는 것에 나도 좀 의아해하고 있었다.

내가 재즈페스티벌을 하고 있지만 장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재즈와 월드음악은 장르적 특성상 같은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비슷하기도 하고요. 마케도니아의 올리버 벨로페타(Oliver Belopeta) 형도 재즈 페스티벌(Skopje Jazz Festival)월드 뮤직 페스티벌(OFFest)을 함께 하고 있고, 슬로베니아의 보그단 베니거(Bogdan Benigar)도 재즈 페스티벌(Ljubliana Jazz Festival)월드 뮤직 페스티벌(Druga Godba)을 만들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많은 예를 찾을 수 있죠. 이게 또 재즈의 전체적인 경향이기도 한데 각 나라의 재즈 연주자들이 결국엔 재즈라는 그릇에 자기 나라 고유의 정서를 담고 싶어 하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모두 월드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한국도 보면 요즘 재즈와 전통이 서로 잘 맞물려 있는 밴드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도 그런 쪽으로 많이 지원을 하는 것 같고요.

실제로 폴 어거스틴은 자신의 페스티벌에 매년 한국 재즈나 전통음악 팀을 초청하고 있으며,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제작하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다운로드 가능)’ 음반들 전부 소장하고 즐겨 듣는 친한파 해외 인사 중의 한 명이다.

계명국 올해는 말레이시아도 부스를 크게 차리고 나왔던데요?

사실 말레이시아가 여기에 참가한 목적은 좀 다릅니다. 다른 부스들처럼 음악을 프로모션하러 나왔다기보다는 전적으로 말레이시아 관광 홍보를 위해 나온 거죠. 근데 여기가 음악 관련 행사이다 보니 그 전면에 말레이시아의 음악 축제를 내세워서 관심을 유도하고 그것을 말레이시아 방문으로 연계시키는 그런 목적입니다. (머쓱 웃음) 말레이시아의 경우 관광이 가장 큰 산업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축제들도 그런 요소들과 함께 진행하지 않으면 지원과 관심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페낭 아일랜드 재즈 페스티벌도 아시다시피 페낭 해변의 리조트들을 중심으로 축제가 이루어지고, 레인 포레스트 월드뮤직페스티벌도 민속촌 같은 곳에서 열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오늘은 한국에 가서 점심 먹을까요? 하하하

워멕스 내내 각 국가관에서는 이렇게 돌아가며 다양한 파티가 있기 때문에, 사실 넉살과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3일 내내 여기저기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한국 부스에서 리셉션이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곳의 모든 파티가 그렇듯 참가자들은 정확히 세 가지 부류가 있다. 개최 측과 친밀도가 아주 높아서 함께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과 그러한 것을 부러운 혹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자신도 그러한 관계를 맺길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네트워킹이고 뭐고 끼니를 때우러 온 사람들.

▲ 워멕스 한국 부스를 찾는 참가자들 모습

워멕스 초보자에게 필요한 덕목들

계명국 올해는 한국 부스 리셉션에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근데 저도 처음에는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게 정말 어색했었는데... 이제 막 워멕스에 참가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러한 네트워킹이 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어요. 김민경 씨는 처음에 워멕스 올 때 어땠어요?

김민경 전 2005년에 처음 참가했어요. 그때는 정말 워멕스 전체에 동양 사람이라고는 저와 같이 왔던 김유정 씨(현 예술경영지원센터 직원, 당시 들소리 스태프)만 있었던 것 같아요. 전 그 첫해에 정말 완전히 깨지고 갔었어요. 솔직히 충격이었죠.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왔는데, 누구에게 어떤 말을 걸어야 할지, 일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예 모르겠더라고요.

김민경 감독은 현재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과 APaMM을 맡고 있으며 나와는 매년 워멕스를 함께 참가하는 워멕스 친구(WOMEX Friend)이다.

계명국 개인적으로 워멕스 참가 초반의 멘붕 현상이 이해는 되지만, 워멕스 베테랑 김민경 감독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전 잘 상상은 가지 않네요. 하하하. 이제 한국에서도 더 많은 연주자와 기획자들이 워멕스에 참가하게 될 텐데, 미리 꼭 준비해야 할 한 가지를 꼽으신다면 무얼까요?

김민경 아 어렵네요. 하지만 한 가지를 꼽는다면 저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먼저 연락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저 그들의 사이로 들어가는 그런 용기요. 사실 첫해에 제가 저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것이었어요. 여기서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저는 ‘고군분투(Struggle)’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마 워멕스 초보자들에게 이곳은 마치 지옥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매니저나 정부의 도움 없이 혼자 일을 만들어 보려는 연주자들은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끈질기게 근성을 보여준다면 분명히 기회는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페스티벌 디렉터로서 정말 헤드라이너급의 빅 네임이 아니고서는 어차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연주자들을 무대에 세우게 됩니다. 이런 경우 (연주 실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끈질기게 연락하고 요청을 해오는 아티스트가 그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걸 수 있는 ‘붙임성’은 물론, 이목을 끌기 위해 ‘소리도 지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의 후배 참가자에게 큰 결과물을 내기 위해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올해 공식 쇼케이스에 선정된 노름마치의 김주홍 형님께서 멋들어진 서예 솜씨로 써서 벽에 걸어두신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판사판"... 아. 대박..."이판사판"이 있었지... 그래, 앞으로 난 워멕스를 찾는 후배들에게 "이판사판"의 자세로 참여하라고 해야겠구나. 포르투갈에서 온 Fernando는 여기서 자기 극장까지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워멕스 뒷풀이를 자기네 동네 가서 하자고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잘 아는 사람들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상관없다. 영어를 잘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까지 극장 주소를 적어주며 꼭 들르라고 난리다. 이놈도 "이판사판"이구나.

내가 내년에 워멕스에 다시 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분주하지만 따뜻하고, 복잡하지만 의미 있는 이곳에 나는 다시 오고 싶다. 그리고 내년에도 또 이렇게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는 그들과 이런 똑같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우리 자신 모두가 'WOMEX' 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나는 비흡연자(Non Smoker)이다.

사진촬영_[Weekly@예술경영]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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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국 필자소개
계명국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에서 근무했으며, 2007년부터 (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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