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듯 직업 아닌 직업 같은: 직업과 생업, 직장과 현장

1) 청년문화기획자가 행복한 도시, 광주를 만들기 위한 심포지엄 중(2014. 3. 27), 광주일보 2014. 3. 30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의사라는 말을 하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아는 것처럼 문화기획자도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1)

문화예술기획 혹은 경영자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이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부모님은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그래도 쟤가 뭐 바깥에서 굶지는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신단다. 그렇다면 예술경영자는 누구인가?

기획자, 매개자, 플래너, 제작자, 매니저, 프로듀서, 프로모터, 마케터, 프로그래머, 코디네이터, 프레젠터 등등 예술경영인들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직접적인 창작 활동 이외의 다양한 일들은 모두 예술경영자의 몫이다.

예술경영자는 일이 넘쳐난다. 일은 많이 하는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경제적으로는 더욱 힘들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생업으로 삼기 힘들다. 문화예술은 생업이 안되다 보니, 문화예술인 스스로 직업인으로서의 역할, 자세, 비전 등이 제대로 생길 리가 만무하다. 직업과 생업의 철저한 분리, 대부분의 예술인, 예술경영인들의 요원한 숙제이다.

직업에 대한 현실이 이러하니 직장에 대한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예술 단체들이 일반적인 직장으로서의 기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시 직장으로서의 역할, 자세, 비전 등을 제대고 갖추기 어렵다.

문화예술계에 현장은 있어도 직장은 없다. 생업을 책임져 주지 않는 예술 단체가 ‘직장’으로서 기능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나의 산업(혹은 생업생태계)가 원활하게 구성되기 위해서는 이런 직장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관계망으로 얽혀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는 직장의 개념이 희박하다 보니 좀처럼 산업의 형태로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무언가 계속 어긋나고 맞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예술경영 짱짱맨!

그렇다고 예술경영자의 비전은 없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예술경영자는 문화 매개자로서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대중과 문화예술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서고 있으며 활동 영역 부문도 놀랄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초창기 때는 주로 공연, 전시, 축제, 영화, 음반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도시, 공간, 공동체 기획 등 창의적인 문화프로그램을 기획·설계·분석·평가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영역은 물론 커뮤니티 기획과 같은 새롭게 확장되는 공공성의 영역도 예술경영자들의 활동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법적으로도 예술경영자들의 활동에 대해 보장을 받게 되는데 올해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의 개정을 통해 ‘문화인력’이란 용어로 처음 표기되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인력 양성의 기반을 조성해야하는 시책을 추진하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작년에 발효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나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인문학진흥법」 등 법률에 기반을 둔 사업들도 넓은 의미에서 예술경영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한다. 이런 정책적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문화정책은 ‘예술(지원) 영역에서 공간과 생활 영역’으로, ‘전문가 영역에서 교육과 체험, 보편적 서비스 영역’으로, ‘일방적 후원 영역에서 마케팅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특히 개발이 아닌 인간 중심의 지역 발전, 도시 재생 등의 어젠다를 만들어낼 때 문화예술은 빠질 수 없는 영역이 되었으며, 이는 모두 지역 내 예술경영자들의 역할로 부상될 것이다.

도대체 일할 사람이 없다! vs 도대체 일할 곳이 없다!

예술현장에서는 경영 인력을 구하는 곳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특히 기획·홍보·마케팅·매니지먼트 등 전문 분야별로 인력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인력을 공급받기란 쉽지가 않다. 단체에 맞는 인력을 뽑는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 어지간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들고, 특히 일정 정도의 업무 수준을 갖춘 인력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석 매진보다도 어렵다.

막상 인력을 뽑는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근속 연수는 짧고 이직률은 그 어느 직종보다 높은 편이다. 문화예술 단체 대부분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과 과중한 업무 탓에 인력들은 조금만 경험을 쌓은 다음 국·공립기관에 취업을 하려고 한다.

예술경영자를 희망하고자 하는 인력들도 늘고 있다. 예술경영과 관련된 학과가 개설된 학교를 찾기란 어렵지 않으며, 각 지역의 문화재단을 비롯한 발 빠른 공공 기관과 일반 예술 단체에서도 예술경영과 관련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 단체가 취업에 대한, 혹은 자신들의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한 정보를 얻기란 상당히 힘들다. 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예측 불허와 그것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와 장(場)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히 지방에서는) 무언가 하고 싶어도 못하고 어디로 가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미래라고? 그렇다면 결국 내 손으로 할 수밖에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 지역의 문화재단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에서는 문화예술 경영인력 양성 과정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까지 전문적인 보고서나 연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런 예술경영인력 양성의 경우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 이수에서만 그치는 경우가 많고, 막상 현장과 연결되더라도 인력들의 근무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이 않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직까지 예술경영인력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현장과 교육에 대한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단체 내부에서 인력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작품하기도 바쁜데 이런 것 저런 것 언제 다 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체와 예술경영자들 스스로 가장 강력한 미래에 대한 투자인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 스스로가 잠재 인력들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와 방법이 중요한데, 인디053의 경우에는 아컬스(Art+Culture+Study의 준말)라고 하는 대학생문화기획토론모임을 만들어 5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문화예술경영에 대해서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자기들 스스로 정한 주제에 대해 함께 발제하고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이다. 인디053은 주최를 하지만 학생들을 만나게만 해주고 진행부터 운영까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하게 놔둔다. 이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면서 현재 예술경영지원자들에 대한 욕구와 트렌드도 함께 알게 되고 예술경영인력에 대한 소비 패턴도 나름 조사할 수 있다. 또한 이제는 졸업생들도 생겨나면서 그들이 사업파트너이자 후원자가 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문화재단 직원들이 지향할 4가지 인재상

▲ 인디053의 아컬스 모집 포스터와 수료식 모습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 예술경영자

앞으로 우리 사회는 ‘공간과 생활 영역의 창조’, ‘보편적 시민을 위한 다양한 예술 서비스의 제공’, ‘마케팅 활동을 통한 예술과 지역, 사회, 집단의 부가가치 강화’ 등이 매우 중시되는 사회로 변모할 것이고 서서히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예술가보다 기획력과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갖춘 집단이 더욱 필요하다. 이런 예술경영인력 집단들은 계획과 실천은 물론, 코디네이팅과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까지 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영역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예술 단체들과 예술경영자들도 단순히 자신들의 작품 활동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다양한 창작자, 소비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꾸준히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펼쳐지는 장을 통해서 다양한 잠재 인력들을 만나고 길러낼 수 있는 실력들을 단체 스스로가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노하우들이 예술경영인력들에게 그대로 녹아들어 가야 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인력양성을 위해서 각 예술 단체들이 작더라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단체들끼리 연대해서 실질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공공 기관들이 직접 나서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을 뛰어넘어 의지와 능력을 가진 예술 단체들과 함께 협력하여 보다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을 중심으로 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문화예술 단체 및 교육기관들이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 내고 또 연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향해 있고, 예술경영자 역시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가 2014년 11월 20일(목)에 열린 '예술경영아카데미 LINK <문화예술 기획경영 인력 양성 심포지엄 :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당장 꿈꿀 수 있는 미래>'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사진 제공_필자

프로필사진_이창원 필자소개
이창원은 1980년 대구에서 태어나 인디053 대표로 문화예술을 통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총괄기획을 비롯해 음반제작, 공연, 축제, 전시, 마을만들기, 공공문화프로젝트 등을 기획하면서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고 문화적인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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