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예술경영] 284호는 특집 ‘강원도 문화예술 지형도를 그리다’ 두 번째 시간이다. 지난 275호에 이어, 이번에는 강원도 문화예술 현안 핵심에 서있는 주요 기관 및 단체들의 이슈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강원도 예술경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이슈]강원도 핵심 문화예술사업을 이끄는 기관들의 현안과 과제/[칼럼] 강원도립극단 첫 해를 보내며/[현장+人] 김도영 평창문화예술재단 상임이사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자본가가 거액의 돈을 내놓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례의 말로는 항상 비극적이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정당화하는 수단, 그래서 출자된 거액의 돈은 항상 사회의 이목을 끄는 일회성 문화행사나 단기적 예술 지원으로 그치기 마련이었고, 자금이 떨어지면 곧바로 ‘지원 끝’이라는 일방적 통보가 날라왔다.

재단법인 평창문화예술재단은 지난해 축산경영인 김도영 대표의 철학과 자본 출자로 탄생한 지역문화재단이다. 현재 재단은 군내 문화예술 활성화는 물론, 평창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개최하기 위한 지역 기반 조성 마련에 분주하다. 개인 자본금을 공기관인 문화재단 조성에 출자했다는 사실은 감동적이지만, ‘김도영’이라는 이름은 아직 예술경영계에서 낯선 이름이다. 그렇기에 [Weekly@예술경영] 편집팀은 궁금했다. ‘예술경영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축산경영인이 어떻게 평창문화재단 출범을 위해 거액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자금이 풍족한 자본가가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개념으로 단순 출자를 한 것 아닐까?’라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김 이사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머릿속엔 지역 봉사의 개념을 뛰어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통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 체험이 뚜렷하게 각인돼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나름의 경험을 통해 지역문화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예술경영 마인드를 오랫동안 배양해온 예술경영인이었다.

강원도에서의 세컨드 라이프

편집팀 월간지 [미트 저널] 기자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다.

김도영 건국대 축산학과를 다녔다. 91년 10월경 창간 준비해서, 다음해 3월에 잡지를 발간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사무실에 입사해 창간 작업하고 월간지를 30권 정도 만들었다. 발행주체는 개인이었는데, 농림부 공무원 하시던 분이었다. 현재 미트저널은 축산 분야 전문지로서 계속 발간 중이다.

그 이후론 축산업에 종사했다. 대형마트에 가면 소시지, OO 포크 이런 게 있지 않나? 나의 사업은 제품의 제조, 가공, 유통, 계열화 사업이다. 돼지 사육 장소, 사료, 정돈 방법 등에 대한 규정 마련부터 조합원 회원 농가로부터 돼지를 받아다 가공하는 작업까지 한다. 단순 유통 사업이라 보긴 어렵고, 모든 공정을 통합(Intergration)하는 계열화 사업이라 보면 된다. 계열화는 각 사업주체들이 맡아서 하는데, 사료는 사료, 돼지는 돼지 등 키우는 사람들이 조합 형태로 모여서 한다. 최종산물은 돼지고기지만, 조합에는 씨돼지만 기르는 주체도 있다. 기술 집약도가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85학번이다. 2002년까지 서울에 있었고, 그때 집만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으로 이사했다. 초중고는 강릉에서 다녔지만, 진부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200년 동안 조상들이 살던 곳이다. 초등학교 때 강릉으로 전학을 갔고, 서울로 대학을 갔다.

편집팀 축산업 경영인 출신이 예술경영계에 몸 담게 된 것이 낯설어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경영’이라는 공통분모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김도영 2002년에 강원도로 터전을 이전한 것이 삶의 터닝포인트였다. 당시 사업 매출액이 연간 500-600억으로 가장 수익이 잘 나고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돈에만 매달려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2000년대 초 전후로 해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내 인생 전(前)막이 사업을 해서 경제적 상황을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후엔 나에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가치 있는 것이 뭔지 모르니 ‘일단 돈을 떠나보자’ 하고 결심했다. 사업할 땐 일 년에 일주일도 안 쉬고 미친 듯이 일했는데, 강원도에 와선 딱 하루만 일했다. 그리고 강릉대학교 경영학과에 편입해 학교를 다녔다. 무엇을 해야 나에게 가치 있고, 내가 즐거울 수 있는가를 찾는 작업에 5-6년이 걸렸다.

관동대 무역학 학부에 편입해서 또다시 학교에 다니고, 강원도립대에서 레저스포츠 쪽도 공부했다. 하다 보니 이것도 내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트도 배우고 해상스포츠도 했다. 이쪽 분야의 일을 하면 인생이 즐거울 것 같았다. 그리고 편입해서 이것저것 접해보는 과정 또한 즐거웠다. 그러던 중 한불문화교류협회를 통해서 아트페어를 보고 온 것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스탄불, 파리아트페어도 가보고, 잘츠부르크 뮤직페스티벌에 가서 듣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강릉에 작은 커피숍을 열었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40명 정도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연극 관람 및 박물관 구경 가는 것을 7년 정도 후원했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실내악 중심 클래식 공연을 한 달에 한 번씩 했다.(현재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평창스노우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이민우 감독과 인연이 싹트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나는 창작이 안 되니까, 예술을 향유하면서 아티스트를 도와주는 방법 속에서 내 역할을 찾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관련 책을 보니, 해외 유명 미대나 음악학교에서 우리나라 출신 젊은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둬도, 국제사회에서 좋은 음악가, 미술가로 성장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악, 미술 쪽은 유대인들이 세계시장에 많이 있어서 유리하다. 왜냐하면 창작뿐만 아니라 창작가를 길러내는 시스템도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데서 나의 역할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중앙대에서 예술경영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됐다.

▲ 평창문화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평창스노우 오케스트라’ 연습 현장 모습

좋아서 한다

편집팀 문화재단 설립은 일차적으로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강원도에서, 이와 관련한 지원이 과거에는 없었던 것인가?

김도영 지원받는 방법도 몰랐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학 들어갈 때까지 연극 한 편 본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지역에서 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예술이 바로 연극이었는데도 말이다.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대학 1학년 때 친구들하고 술을 먹는데, 치기 어림이 올라와서인지 친구들에게 ‘나 연극 본 적 있다고’ 큰소리 땅땅 쳤다. 근데 거짓말이지 않나? 금세 들통이 났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기억이 아직도 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그래, 고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자. 내려가서 여건이 되는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여건이 되는 한 1년에 1억 정도는 뜻있게 사용하자 해서 장학금 기부 같은 일을 해왔다. 못한 적도 있지만 비슷하게라도 해왔다. 강릉에서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몇몇 분의 추천으로 강릉문화재단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문화 행정, 경영 등 아티스트들의 배후에서 해줘야 할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계올림픽 때문에 이사를 맡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동계올림픽은 결정도 안 돼 있었고, 그 전까지 유치에 대해서도 지역민들은 부정적으로 봤다. 그런데 유치가 된 거다.

올림픽 유치가 됐으니 이를 잘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강릉도 좋아하는 도시고 평창도 좋아하는 도시인데, 강원도 문화재의 50%가 강릉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강릉은 문화자원이 아주 풍부한 곳이다. 알게 모르게 강릉 출신 시인이나 예술가도 많고, 바다가 좋고 산이 좋아서 도시에서 내려오신 분들도 상당하다. 파악이 안 될 뿐이다. 전통문화도 그렇고, 문화자원이 풍부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까지 강원도라 하면 곧 강릉을 말했다. ‘강원도에 사람 살만한 곳’ 하면 명주였고, 명주 땅이라 하면 지금의 강릉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강릉에 문화재가 많게 된 것이다.


편집팀 아무래도 연고가 강릉이라면, 그곳에서 시작하는 게 더 편했을 텐데 왜 평창으로 왔나?

김도영 사실 강릉에서 역할 찾는 것이 더 쉬웠다. 초중고를 거기서 나왔을 뿐더러, 이미 난 지역에서 알려진 사람이었다. 문화재단 이사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평창에서 역할을 찾으면 강릉이 더 자극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문화사업, 특히 청소년 대상 문화 사업 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6-7년 전만 해도, 청소년 문화체험으로 예술의전당에 <나비부인> 보러 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사람들이 참 많이 신청했다. 보호자 동의서도 받고 보험도 가입해서 안전하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님이 애들 학원에 보내야 된다고 그런 활동들에 애들을 보내지 않는다. 대학로에 <지하철1호선> 보러 간다고 하면, 마치 우범지대 가는 것처럼 봤다. 이게 지역의 현실이다. 그 정도였다.

근거지를 평창으로 옮기면서 접었지만, 강릉에서 청소년 체험프로그램 마지막으로 할 때는 공짜에 도시락까지 다 주는데도 40명 모으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강릉시향이 문화회관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면 거의 매진이다. 특이한 현상이지 않나? 평창만 해도 클래식 행사하면 사람을 동원하기 바쁘다. 그런데 강릉은 다르다. 클래식 듣는 여건이 정말 좋아졌다. 아티스트들이 조금만 더 활동하면 금세 좋아질 것 같다.


편집팀 앞에서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 개인 커피숍에서 한 클래식 공연이 예술경영을 향한 열정의 기폭제가 된 것 같다. 어떤 공연 기획이었으며, 아티스트들의 반응은 어땠나?

김도영 커피숍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공연하면 금방 매진이다. 5-60명 관객이 온다. 마이크를 안 쓰는 살아있는 악기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이 요즘 조금씩 생겼다. 거창한 전시성 행사보다, 이런 작은 행사들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문화가 형성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건이 되면, 보여주기식의 큰 행사가 아니라, 50-60명이 매일 꾸준하게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 피아노 하나 소프라노 한 명이면 되니까 말이다. 육성과 마이크 소리는 정말 다르다.

또한 공연했던 아티스트들이 아주 좋아한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데서 공연하면 ‘나는 떠들고 관객은 그냥 앉아 있는’ 그 수준인데, 50-60명 앞에 두고 해보니까 관객과 눈이 다 마주치고 숨소리까지 다 들리지 않겠는가. 소프라노가 발성을 위해 가슴을 확장하는 느낌까지 전달받으니까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 그 느낌을 아티스트들도 아니까 좋아한다. 주로 아티스트들이 서울에서 오는데, 그 분들께 수고비로 많이 드려봐야 30만원이다. 왕복 교통비 빼면 올 게 못 되는데, 그래도 오겠다는 분들이 엄청 많다. 그 분위기가 좋아서 말이다. 지금 50회 정도 공연했다. 매달 공연하면서 중간에 그림 전시도 좀 하고. 그 그림에 대한 해석을 음악적으로도 풀어보고. 우리 공간이니까 거창한 게 필요 없다.

관객은 누구나 올 수 있다. 만 원 내고 커피 한잔과 쿠키를 즐기면서 말이다. 커피 값에 공연관람료 오천 원이 더해지는 셈이다. 그리고 그 시간엔 카페 운영을 안 한다. 손님들께 문자 보내면 거의 고정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까페에서 시작한 작은 음악회가, 지금은 대여섯 군데서 열린다.

평창문화재단의 현재와 미래

편집팀 재단설립 초기라 일하기 위한 여건이 녹록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김도영 평창문화예술재단 설립 자체에 대한 제안은 내가 했다. 어쨌든 올림픽이란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니 시급하다고 말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대략 12조가 투입된다. 그중 9조 정도가 도로시설 확충이고 나머지 3조 정도가 경기장 등 제반 시설 건설이다. 대략 1개월간 전 세계에서 가장 집중되는 지역이 되는 셈인데, 투입 대비 성과는 어떨지 일단 차치하더라도, 최대한 이 기회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건은 좋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이다.

편집팀 하지만 평창문화재단이 평창동계올림픽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지 않나?

김도영 문화예술 '산업'이라는 게 중요하다. 경계성과 연관돼 있다. 지금까지는 자연환경이 강원도의 장점이었지만,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자연환경은 여기보다 좋은 곳이 많기에 장점이라 딱히 부를 수도 없다. 자연환경에 더해서 관광객들의 욕구를 채워줄만한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게 문화예술이라 생각했다. 연간 2천만 대 이상의 차가 영동고속도로를 지나간다. 오대산도 연간 이백만 명이 들어온다. 그런데 유형문화재는 그 자리에 존재하는 고정물이므로, 사람들은 그 하드웨어를 보고 가는 정도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콘텐츠라는 무형의 작품을 입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역할을 함에 있어서 동계올림픽이 기회일 수도 있고, 커다란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권 인사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 좀 힘들긴 하다. 시장, 군수, 군 의원들이 많이 도와주시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서 밑바닥부터 풀어나가는 게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빨리 풀리는 편이다. 군으로부터 적립금도 조금 확보했고, 다른 재단과 달리 기초단체 눈치를 심각하게 보면서 움직이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편집팀 그렇다면 평창만의 문화 정체성은 어떻게 수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김도영 문화예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국내외 관광객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황경산 산악놀이도 장예모의 인상 프로젝트 같은 형태로 개발이 가능하다. <인상서호>를 예로 들면, 출연자들 모두가 지역민이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산악놀이를 집체극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다. 둔전평농악이라고 있는데, 우리 군에선 대단하게 생각한다. 평창아라리, 아우라지도 있지만 문제는 이웃 정선 아라리에 비해 워낙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정선은 아리랑으로 특화시킨 게 많은데, 평창에는 별로 없다. 정체성이라는 말을 하기엔... 지금 단계는 마치 백지에서 한참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뭐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편집팀 앞으로 재단이 중심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도영 근본적으로는 문화예술과 이 지역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재단이 문화예술인들과의 지자체의 매개적 역할을 해야 하며, 평창군이라는 지역성에 기초한 예술 토양을 다져나가는 작업 등이 우선돼야 한다. 혹시 지자체 문화담당 과장·계장들의 평균 근무연한이 얼마인지 아는가? 1년이다. 문화관광과가 핵심부서가 아니다. 과에 발령 받는 실무자들은, 발령 받자 마자 '빨리 다른 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훌륭한 공무원 분들을 만나 일 좀 해보려 하면, 담당자가 금세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문화예술 사업 정착이 담보될 수 있겠나?

따라서 문화예술재단이 아예 문화예술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전담하고, 행정은 공무원이 행정관으로 와서 일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런 전환이 필요하고, 또 전환될 거라고 본다. 현 방식으로는, 문화예술사업에 수많은 예산이 쓰인다 해도 제대로 집행할 수가 없다. 추가예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예산의 효율적 집행 부분이 우선이다. 이 지역만 해도 예산만 200억이 잡혀있다.

▲ 평창스노우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중인 김도영 이사 모습

문화예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편집팀 자주 부서가 바뀌니까 노하우도 집약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비단 평창군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경영인으로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

김도영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 모르겠다. 일단 문화는 포괄적이라 본다. 예술이란 것이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과 유리된 고귀함이 아니라, 대중 안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사람의 피와 살이 바탕을 이루는 근본적 가치 속에서, 예술의 가치 또한 움직인다. 솔직히 말하면 아티스트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로 규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트라는 말 자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재된 게 82년이었다. 예술 이전에 아트의 정의는 기술이며, 아티스트는 기술자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엄성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만,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수단으로서 아티스트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사람들 속에 녹아들고, 행복하고, 즐거워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문화예술의 존재 이유이다. 이것이 예술경영인으로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진 제공_평창문화예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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