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칼럼에는 평창아라리 구술채록을 하고 있는 악당이반(주) 김영일 대표 인터뷰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음에 둔 남자가 있었는데 오빠가 술기운에 다른 남자에게 중신을 서 안 갈 수가 없어서 시집을 왔지.”

11월 어느 주말 아침에 시작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사는 1940년생 이도화 할머니의 ‘평창아라리 구술채록’ 장면 중 한 구절이다. 곧이어 할머님은 아라리 18번을 말인가 노래인가 싶게 이어 나간다. “육백 마지기 올라갈 때는 오빠 동생 하더니, 육백 마지기 내려올 때는 여보 마누라 하더라.” 이른 아침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가 싶게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강원도 산골의 흔히 있었을 것 같은 오래된, 그리고 애환과 해학이 담긴 삶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평창아라리 보유자 이도화 할머님, 그녀의 몸 안에 그녀가 산 75년의 시간, 우리 역사와 그녀 자신의 삶의 질곡이 체화된 노래가 들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Régis Debray)는 그의 ‘매체학(Mediology) 이론’에서 “기록된 것만이 역사가 될 수 있으며, 그 기록은 기록의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시간의 지속성을 견딜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원시시대에 돌과 같이 견고한 매체에 새긴 그림과 상형문자들은 수만 년의 시간을 견디고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인쇄술의 발명 이후에 종이 매체가 ‘지식의 보급’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돌보다는 가벼운 매체이므로 전파가 쉬운 만큼 사라지기도 쉽다는 것을 중국 진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예가 보여준다. 이후 지금의 인터넷은 가장 휘발성이 강한 매체인 만큼 가장 많은 정보의 생산과 전파가 가능하지만, 쓸모 있는(=역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찾기는 더욱 요원(遙遠)해졌다. 현재의 디지털 매체 환경은 방대한 규모의 정보에 모든 사람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했고, 이것은 그 대규모 데이터를 가리키는 ‘빅데이터’라는 이름을 만들어냈으며, 그중에 쓸모 있는 정보의 선택과 사용을 위해서 ‘큐레이팅’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렇게 선택된 정보의 저장 즉, ‘아카이브’에 대한 이슈가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소리의 기록으로 보자면 MBC 라디오 최상일 PD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89년부터 10여년간 139개 시·군, 90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 1만 8,000여 개의 소리를 담았고, 그 소리들은 CD 100여 개에 담겨 도서관과 대학, 연구기관에 기증됐다. 그리고 민요 해설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백두대간 민속기행』으로 나왔다. 시각예술 분야로 보자면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 불리는 김달진 미술연구소의 김달진 소장이 40여 년간 개인적으로 모은 한국 근현대 미술 자료 중 도서, 도록, 잡지, 학위논문, 팸플릿, 브로슈어 등 2만여 점을 수집했고, 지난여름 이 자료들을 단계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나서서 접근해야 할 아카이브에 대한 문제가 전문 분야의 몇몇 개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국가가 이에 빚을 진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여기 국민 전체가 빚을 지고 있는 악당이반(주) 김영일 대표를 만나 ‘평창아라리’ 소리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도화 할머니로부터 평창아라리 구술채록을 진행 중인 모습

▲ 이도화 할머니로부터 평창아라리 구술채록을 진행 중인 모습

평창문화올림픽의 견인차, 평창아라리

“나에게 ‘소리의 기록’은 진행형이다. ‘사운드 오브 네이처’라고 환경부에서 한국의 자연소리 101선 음반을 제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 즐길 수 있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데, 소수 분량만 찍어서 유관기관이나 관계자끼리 나눠 갖고 마무리되었다. 무슨 행위가 있으면 프로세스를 지나 결과로 이어져야 하는데 항상 행위만 있는 것이 안타깝다. ‘누구랑 어떻게 공유하는가’는 평창에 와서 느낀, 우리나라 무형 가치의 확장에 대해 놓치지 말아야 할 고민의 바탕이다. 결과를 낳지 못하면 인류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담은 그것들을 반드시, 이 세상 바깥에 전달하려는 욕구가 크다.”

악당이반(주)의 ‘즐기는 이’로서의 ‘악당(樂黨)’ 혹은 ‘무모함을 즐기되 의지를 관철시키는 이’로서의 ‘악동(惡童)’적 행보야 공연예술계에서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사업체의 운영자로서, 뻔히 경영 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 확실한 현실에서도, 무형적 자산에 대한 김 대표의 역사적 사명감을 보면 과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과제를 대신해 맡은 듯하여 편치 않은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왜하필 ‘평창아라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아라리는 채록되는 것들이 전부 시민극의 재료다. 가깝게는 만 3년 3개월 남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것이다. 아라리 콘텐츠의 점진적 개발을 통해, 평창 고유의 민속 유·무형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내어 문화올림픽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한다. 올림픽이라면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다들 모양을 내려고 한다. 경제인이 모양을 내려는 건 ‘난 돈만 버는 수전노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메세나를 자처하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지역에서 일어날 행사에 이 지역인들의 문화콘텐츠를 살려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라리 시민극을 위한 재료들을 모으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흔히 아리랑 하면 강원도 정선 지방에 전승되는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을 본류로 기억하는데 이것이 지역에서는 ‘아라리’ 또는 ‘아라리타령’이라고도 불린다.

“우리가 얘기하는 ‘아리랑’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없다.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실도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 경상도 쪽에서 한양으로 오려면 육로로 반드시 넘어야 하는 길목이 추풍령이나 문경새재인데 그 아래 언덕이 ‘아리령’이다. 어떤 사학자들은 ‘아리령’을 넘는 게 힘들어서 ‘아리랑’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구절이 있지 않나. 그런데 또 아리랑에 대해 뭘 좀 안다는 사람은 거품 물고 아니라고 한다. 거기다 몰아주기 싫거든. 여기 동네에서도 ‘아리랑’이 강원도에서 시작해 물을 따라 내려가 서울로 갔다가 경복궁 창건 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목수와 사람들이 거기서 듣게 된 토속민요 ‘아라리’를 자기들이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서 퍼트리게 되었고, 결국 전국으로 퍼져 토속민요 ‘아리랑’이 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말하자면 다들 각자 막대기 하나씩 들고 있다. 그런데 그걸 맞춰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초부터 남도민요에 ‘아리랑’은 없었다. ‘진도아리랑’이 이순신 장군 때부터 불린 것 같지만 조선 후기 때부터였다. 약 150년이나 되었을까. 이곳의 토속 민요인 ‘평창아라리’라는 것도 이 동네 평창군에서 그렇게 불리길 바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정선아리랑에 대적해야 할 대상이라는 설정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평창읍에 가서 ‘아라리 불러보세요’ 하면 아무도 못 한다. 그래서 ‘미탄아라리’가 맞다. 이걸 평창아라리라 부르는 것 자체도 정치적인 설정이다. 정선군은 매년 10억 이상의 예산을 아리랑에 배정하는 반면 평창군은 그 몇십분의 일도 배정 안하면서 그와 동등한 평가를 바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아라리’를 부르는 어르신들 모습

▲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아라리’를 부르는 어르신들 모습

우리 소리의 원형을 찾아서

“처음엔 완성된 소리들이 있지 않나? 5대 판소리 말이다. 소리꾼 박동진의 <예수가>, 정순임의 <유관순가>를 들으면서 우리 소린 살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5년째 될 때 ‘산조’라는 걸 만나면서 우리 소리 영역이 이렇게 넓다는 것을 느꼈고, 왕들의 음악, 가곡 등 흥미진진한 것들을 더욱더 알게 됐다.”

그렇게 신나게 다녔는데 15년쯤 전국 각지를 다니고, 음반을 70종 이상 만들고 나니 김영일 대표는 ‘이것의 본령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찾고 이론가들을 만나 2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서 결국 우리의 뿌리 민요와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김영일 대표는 우리 소리의 본질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 김영일 대표는 우리 소리의 본질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또 각지의 토속 민요, 상주 모심기,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이렇게 만나다 보니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간 민요의 근본을 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 본령은 만나 보지도 못한 것이다. 다행히도 《뿌리 깊은 나무》, 중앙일보, 신나라레코드 등에서 나온 앨범들을 듣고, 정선장까지 들어가봤다. 그런데, 정선장에서 소리를 들어보고 너무 실망했다. 소리가 변형된 것이다. 민속장 중 성남의 모란장을 제외하고 여기보다 더 큰 장은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히브리어나 고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영어 배우는 사람과 상관없이 언어의 본질을 향한 고공비행을 하는 것 아니겠나? 이처럼 우리 소리 심연의 코어(core)도 토속 민요라고 본다. 그래서 그 원점을 찾아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곳이 여기, 미탄이다. 6년 전 이곳에 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김 대표는 2009년도에 미탄면 마을회관 앞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라리를 하는 걸 듣고는 심장이 멎는 것처럼, 그 뒤에 아무것도 안 들렸다고 한다. 그분들은 김 대표가 ‘뿌리 깊은 나무’에서 들었던 소리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아니, 그 몸 안에 그 소리들이 그대로 체화돼 담겨 있었다. 여기서 김영일 대표 아카이빙 작업의 본령인 ‘미탄아라리’ 기록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이야기를 깊이 들어갔다.

김영일 대표

“아라리보존협회 분들은 진짜 아라리를 어떻게 부르는지 아나? 진짜 아라리는 노래가 아니라 ‘토설(吐說)’이다. 여기 와서 3번 정도 들었다. ‘으허어 버러어 마하아어허…’ 이러고 끝난다. 가사가 들리는데 자기 목청대로, 자기 방식대로 그대로 살려내니 그 사람의 건강 상태, 호흡, 말하는 태도에 따라 설(說)이 쏟아진다. 진짜 미탄아라리에서도 초기 원형은 그렇게 생겼더라. 5대 판소리 꽁무니나 따라다니면서 ‘~의 이면을 그리다’ 이랬으면 어떻게 됐겠나? 나한테 안 들렸을테고, 추상적인 작업으로 갔을 것이다. 해가 떴을 때 물체의 빛깔을 보기도 하고, 또 그 그림자도 살펴봐야 진정한 입체가 보이지, 완전히 하얀 것만 보면 되겠나? 그 두 개의 틈이 생길 때, 거기서부터 깊이라는 것이 생기는 거다. 병에 들어가기 전의 물소리를 듣는 거다. 그걸 병에 담을 때 정선 병에 담으면 정선아라리가 되고 미탄 표주박에 담으면 미탄아라리가 되는 것뿐이지 뭐가 다르겠는가? 다만, 그것의 원형이 무엇인지 상세히 밝혀 민족 모두가, 세상이 알 필요가 있지 않나. 아리랑이 진정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면.”

세계 최첨단 기술을 대한민국 제일 깜깜한 동네 미탄에서

악당이반이 DSD256파일(Direct Stream Digital, 고음질 디지털 오디오 기록 방식)을 ‘메이드인코리아’표 하드웨어에 담을 수 있는 데 민속음악 아카이브로는 세계 1등이 됐다고 한다.

“컴퓨터가 좋다고 재밌는 게임이 거기 들어 있진 않다. 개발해서 심어야 한다. 좋은 컴퓨터로 돌리니 그에 부흥하는 시스템라이징을 해서 쓸 수 있는 거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같은 데서 시놉시스 하나를 개발하는 데 2천 8백억을 썼다. 아일랜드 쪽에 살던 예전 부족이 쓰던 얼음 망치와 같은 도구의 이름을 그대로 쓴다. 그 이름을 알면 구석기시대 아이스맨이 썼던 창의 이름을 아는 거다. 그렇게 세뇌당하면 번복하기 어렵다. 그 신화를 가져와서 그리스로마신화를 넘어설 수 있다. 그 게임을 통한 내용의 종속이 민족과 시간을 넘어서 이루어진다. 그런 것의 기본 소스(source)가 되는 이야길 우린 정말 많이 가지고 있고,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국고를 받아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일 년 내내 ‘특별전’만 한다. 장군만 있으면 군대가 되나? 병사도 있어야지. 우리 삶의 기반이 되었던 민족의 이야기가 우리 콘텐츠 안에는 무너져 있다. 어디로 가고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만 미탄에서 끝을 보고 싶다. 전 세계 최고 하이엔드(High End)의 기술 실현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깜깜한 동네 중 하나인 미탄에서.”

사진 제공_악당이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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