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동에 새 둥지를 튼 김달진미술자료박문관 전경

▲ 새 둥지를 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경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KAAA, Korea Art Archive Association)가 창립 1주년을 맞이했다. 1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지난 11월 정기 심포지엄에서는 “문화 자원 아카이브를 활용한 경제적 가치 창출 모색”이라는 주제로 각 분과에서 1년 동안 추진해온 사업 성과와 향후 활동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미술계에서 아트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의 역할과 문제의식, 향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김달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을 찾았다. 인터뷰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자료 이관작업을 마치고, 종로구 홍지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아카이브란 무엇인가?

황정인 최근 아카이브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관심이 아주 높아졌고 작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의 발족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내딛은 의미 있는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아카이브에 대한 열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하다.

김달진 아카이브 열기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 다원주의로 인해 주도적이고 특정한 사조가 형성되기 어려운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작가와 큐레이터가 창작 활동을 펼치기 위한 근간으로 아카이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아카이브를 통해서 그 시대의 상황과 작품 창작에 대한 과정을 돌아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작가와 작품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아카이브는 전시의 깊이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몇몇 인쇄 자료나 서적 등을 가져다 놓고 아카이브 전시라고 칭하는 잘못된 사례도 존재하는데, 이것이 국내 미술계에 아카이브에 대한 잘못된 개념과 병적인 열풍을 조성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된다.

아카이브 자료를 전시할 때, 어떠한 맥락에서 전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아카이브형(形)전시와 아카이브 전시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진행한 “한국 미술 공모전의 역사”(2014)는 아카이브 전시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각종 공모전 도록과 팸플릿, 포스터, 상장, 상패, 사진, 위촉장, 보도 기사 등을 통해 국내 미술 공모전의 변화와 맥락을 당시의 사건과 이슈를 정리하여 보여주었다. 흔히들 일반적인 자료와 아카이브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카이브라는 것은 유일성, 원본성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오래된 자료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건을 적합한 증거 자료를 통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담론을 생산하고 학술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김달진 회장이 수십 년 동안 수집한 팸플릿, 포스터, 사진, 보도 기사 등이 작가별 파일로 만들어져 보관되고 있는 모습(왼쪽)과 단행본, 도록 등 서적을 보관하는 자료실(오른쪽)

▲ 김달진 회장이 수십 년 동안 수집한 팸플릿, 포스터, 사진, 보도 기사 등이 작가별 파일로 만들어져 보관되고 있는 모습(왼쪽)과 단행본, 도록 등 서적을 보관하는 자료실(오른쪽)

기업, 기관과의 매칭에 대한 이상과 현실

황정인 아카이브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은 국내외 미술계의 당면 과제이다. 이 작업은 방법적 측면에서 기술 혹은 전문가 지원 등 다양한 기업 후원 방식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협회에서 기업과 기관의 매칭을 통한 아카이빙 자문 성격의 사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달진 기업과 기관과의 매칭이 가능하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협회 안에서도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아카이브를 엄청난 문화 자원이자 콘텐츠로 바라보지만, 투입과 산출의 관계가 명확해야 하는 기업 측에서 보면 아카이브는 아직까지 생소한 분야이다. 명분만 가지고 일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자료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보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만, 돈이 안 된다고 보는 시각이 문제다. 작품은 투자가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어도 자료는 그렇지 못하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시각예술 기관에서조차 자료 구입비는 전체 예산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작품 구입이나 전시가 우선이 되다보니 아카이브를 구축하는데 한계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아카이빙 자문 사업에 대해서는 국가 규모의 기록 관리 사업이나 대기업 역사관 건립, 신생 문화예술 기관의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자문 등을 생각하고 있다. 다만 협회의 설립 취지와 현재 구성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활동은 협회의 주요 사업보다 하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외부 요청이 있을 경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이다.


황정인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리 발전시킨 해외의 경우 연합적 성격의 협회나 단체가 조직되어 학술 행사 등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반면, 아카이브 기관이나 부서, 전문가가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소수의 아키비스트(archivisit,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전문가)와 전문가가 자발적으로 모여 창립한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는 그 의미가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협회가 담당하고 있는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달진

김달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수행하는 가장 큰 역할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이어주는 플랫폼의 역할일 것이다. 국내에는 아직 문화 예술 기관 아카이브의 전문가 군이 형성되지 못하였고, 현재 전문가로 인정받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 또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요인으로 인해 아카이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문가 군을 늘려나가고, 비록 그 속도가 더디더라도 아카이브 관련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 협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한다.

전문 아키비스트 양성이 아카이브의 미래를 좌우한다

황정인 아트 아카이브를 이야기 할 때, 아키비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청년 인턴, 학예 인력, 에듀케이터, 미술품 해설사 등 미술관 전문 인력에 대한 지원 사업이 진행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향후 아키비스트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볼 때, 그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실행된다면 기관과 인력 측면에서 각각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달진 아키비스트에 대한 지원에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한 모든 부서의 공감대 형성이다. 기록과 자료의 생산은 주로 학예팀이나 홍보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부서의 지원 없이는 아키비스트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아카이브 구축에 대한 기관장의 의지와 개별 기관에 맞는 업무 매뉴얼 작성 등의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아키비스트를 준비하는 개인은 기록학과 미술사에 대한 전문적인 소양을 기반으로 본인이 종사할 기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각 기관의 설립 취지를 지키면서 활동 범위를 확대해나가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로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실무자인 아키비스트는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기록 매체와 웹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아카이브가 기관 내부 자료로만 활용되거나 전시 종료 후 아키비스트가 맡는 마무리 업무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에 큐레이터가 기관에서 자리를 잡아갔던 것처럼, 이제는 각 미술관에 아키비스트를 직제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협회에서는 많은 기관으로부터 아카이브 관련 자문이나 인력과 운영 지원 요청을 받기도 했다.

아카이브 관리에 있어서는 표준화 문제가 시급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국가자료공동목록시스템(KOLIS-NET)을 통해 전국 공공 도서관 소장 자료에 대한 통합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도서관 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아트 아카이브에도 이와 같은 통합적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아카이브 관리 프로그램 AMS(Archive Management System, 이하 AMS)를 기반으로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는데, 협회에서는 지금 이를 배포하여 표준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아키비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미술계에서 AMS 프로그램의 상용화를 통한 아카이브 운영, 관리의 표준화는 가히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트 아카이브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과 지원을 토대로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를 풀어나간다면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국가 기관에는 법적으로 기록 관리자의 채용 규정이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미술 기관의 아키비스트 채용 문제도 정부의 정책과 운영 지원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의 미래

황정인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해외 교류 차원에서 관심을 두고 보는 협회나 단체가 있는지 궁금하다. 해외 기관과 국제 교류 계획이 있는가?

김달진 우선 영국의 미술도서관협회(ARLIS UK & Ireland: the Art Libraries Society)의 아트 아카이브 위원회(Art Archive Committee)와 교류를 생각하고 있다. 이 협회는 1969년 발족해 1995년부터 아트 아카이브 위원회를 두고 있는 단체이다.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학술 분과에서는 내년 상반기 중 이곳에서 출간한 연구서를 번역, 출판할 계획이며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협회의 내실을 갖추면서 해외 교류를 점차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가까운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 Asia Art Archives), 일본 아트 도큐멘테이션 학회(Japan Art Documentation Society)와의 교류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영일 대표는 우리 소리의 본질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황정인 지난 11월 24일에 있었던 정기 심포지엄 자료집에는 앞으로의 장기 활동 계획이 수록되어 있다. 각 분과별 사업 계획이 향후 15년간 단계별로 추진된다면, 2030년에 한국 미술 현장의 아카이브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김달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는 국내 전문가들의 플랫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첫걸음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과별로 제시된 사업 계획이 15년에 걸쳐 단계별로 진행된다면 2030년에는 국제 무대에서 아카이브를 통해 한국 미술계를 대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제 미술계에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창작자와 개별 기관이 항구적인 아카이브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본다. 이런 아카이브에 대한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면 작품의 진위 문제, 작가들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발간, 우리 미술의 독창성 확보 등에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촬영_김제덕

황정인 필자소개
황정인은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2003-2009)했으며, 현재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온라인 큐레이토리얼 리서치 플랫폼 《미팅룸》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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