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저작권 - <친정엄마> 사건을 보며

저작권의 피고(波高)가 공연계를 넘실댄다. 저작권은 예술가의 권리이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연 현장의 돈 씀씀이가 법률가를 부양하기에는 힘에 부쳐 제대로 법정에서 싸운 사례가 흔치는 않았다. <난타>가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시대, 예술이 산업이 되는 시대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창조경제를 모토로 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산업도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 연예산업(entertainment business)의 기치를 내건 영국, 미국의 문화산업과 각축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법적 분쟁의 규모도 괄목할 만하고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친정엄마> 사건은 예술계에서 저작권법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2014.12.11. 선고 2012도16066 판결).

방송작가 K의 수필집 『친정엄마』는 이야기가 짠하기로 소문이 났다. 공연제작사가 『친정엄마』를 연극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K 작가는 공연제작사와 극본 집필계약을 했다.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제작사는 K 작가의 양해를 받고 다른 방송작가 M을 투입하였다. 그래서 연극 <친정엄마> 포스터에는 ‘극본 K, 각색 M’으로 표기되었다. 연극이 성공하자 뮤지컬 제작사가 K 작가와 접촉하였고, K 작가는 연극의 최종 극본을 사용하여 뮤지컬 극본을 완성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뮤지컬 제작사가 작가 M을 버려두고 K 작가와만 뮤지컬 각색계약을 한 것이다. 당연히 최종 극본 중 작가 M의 창작분이 뮤지컬 극본에 포함되었다. K 작가는 방송작가로서 훨씬 후배인 작가 M을 보조작가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판결문에 나타난 작업 형태를 보아도 K 작가가 집필을 주도한 점은 명백하다. 방송업계에서 보조작가는 작가의 보조자(assistant)일 뿐 ‘작가’가 아니다. 크레딧 표기도 전혀 다르다. 작가는 도입부에 ‘작가 OOO’라고 정지된 프레임으로 뚜렷이 부각되지만 ‘보조작가’ 이름은 엔딩 롤에서 다른 스텝들과 함께 후루룩 말려 올라가면 끝이다. 그런데, 작가 M은 K 작가가 자신을 빼고 혼자 뮤지컬에 참여하자 연극 최종극본에 대한 자신의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함께 형사고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K 작가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형사책임은 부정하였다. 형사법원의 판결문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이라도 반대하는 경우 그 반대자의 창작 기여정도 등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저작권 침해행위로서 형사처분한다면 공동저작물의 이용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자칫 공동저작물이 사장될 위험”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저작물을 각자의 기여분대로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경우 이를 ‘공동저작물’이라 한다. K 작가의 연극 극본에 작가 M이 덧칠을 해서 연극 극본의 최종판을 만들었으니, K 작가의 기여분과 작가 M의 기여분이 뒤섞여 개별적으로 이용될 수 없는 관계에 있고 따라서 최종판은 공동저작물이 된다. 공동저작물을 이용허락(license)할 기회에 공동저작자 중 누구인가가 이용허락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를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 법원은 그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 족하다고 보았다.

저작권법의 목적은 ‘문화의 향상발전’에 있다

▲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저작권, 저작인접권, 저작인격권에 대해 강의하는 필자 모습

저작권법의 목적은 ‘문화의 향상발전’에 있다. 문화의 향상발전을 이끄는 두 축은 ‘저작권자의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도모’이다(저작권법 제1조). ‘권리의 보호’와 ‘이용의 도모’는 상충하는 이해관계이다. 권리를 확대하면 이용은 위축이 되고 이용을 확대하면 권리를 자제하여야 한다. 그래서 권리와 이용 사이의 균형이 저작권 정책의 최대 과제가 된다.

우리 저작권법은, 일본의 영향으로 저작권 침해를 망라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입법례이다. 미국은 1,000불 이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싱가포르나 호주는 침해가 심각한 경우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한다. 1,000불을 기준으로 한 미국의 경우에도 실제로 ‘개인’의 저작권 침해를 검찰이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거악(巨惡)을 상대하여야 할 검사가 사소한 저작권 분쟁 정도에 공소권을 발동할 의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망라적 형사처벌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라는 새로운 제도도 만들고 ‘고소장 각하’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피해액 100만 원 이상만 처벌하자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상정되었다. 이른바 저작권 침해의 非범죄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저작자가 저작물을 세상에 내 놓았을 때는 이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작물 자체도 이용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원작(original)으로 한 새로운 저작물 - 2차적저작물 - 이 만들어 질 필요도 있다. 문화의 향상발전은 저작물의 왕성한 이용을 전제로 한다. 침해가 악의적이고 상습적이 아닌 한, 그래서 권리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기지 않는 한, 문화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분쟁은 민사적으로 정리되는 것이 알맞다. <친정엄마> 사건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을 연 지 10년이 가까워 온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목표를 잡은 교육․컨설팅 사업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믿는다. 성실하고 열정이 넘치는 스태프가 역량 있는 컨설턴트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을 운용하였다. 재벌기업의 계열 공연장이,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단이 도움을 청할 때는 뻔뻔스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수혜자가 느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강생의 태도도 대단히 진지하다. 컨설팅 질문도 점점 구체적으로 진화 중이다. 문제가 생기면 (재)예술경영지원센터를 이용하자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변호사로 20년 넘게 활동한 후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로 옮기자마자 로스쿨의 리걸 클리닉 센터(Legal Clinic Center)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이에 MOU를 체결하였다. 예술 현장의 어려움을 로스쿨 학생들에게 직접 느끼게 하면서 해결방안을 고민해 보자는 의미였다. 임상교육이라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비영리 공연단체가 필경 변호사로 성장할 젊은 학생들과 일찍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오래 이어가면서 쉽게 법률적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내심의 기대도 있었다. 덕분에 학생들이 일찍 예술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엔터테인먼트법학회도 만들었고, 다른 로스쿨 학생들과 연합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활동에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다. 이사로서, 컨설턴트로서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에 감사한다. 스태프들의 노력과 수고를 맞춤하게 설명할 표현을 찾지 못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2015년에도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새로운 사업, 심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홍보하고 그 목적에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필자소개_홍승기 필자소개
홍승기는 인하대학교 로스쿨 전임교수로 리컬 클리닉 센터장을 맡고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예술경영 컨설팅 법률 분야의 전임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며, 저서 『시네마법정』(2003, 생각의 나무), 역서 『치열한 법정』(2009, 청림출판)을 펴냈다. 논문으로는 「저작권 중재의 수용」(계간 《저작권》 2010년 여름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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