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극 <산울림>(2010)의 시작 장면 (통일신보 캡쳐)

북한의 공연 단체와 제작 환경

북한의 공연예술은 가극, 연극, 무용, 음악, 교예, 인형극, 대중가요 등 장르 예술과 음악무용 종합 공연,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등 장르 복합적 대공연이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연은 20여 개의 중앙예술단체와 10여 개의 지방예술단체에서 담당한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0)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국립연극단, 평양인형극단, 국립교향악단, 공훈국가합창단, 국립교예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조선인민군협주단,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등 중앙예술단체는 각각 평양에 있는 전용공연장을 기반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함경남도예술단, 개성시예술단 등 11개의 시·도 예술단 역시 각 지역 전용공연장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여성 밴드인 모란봉악단이 등장하여 대중가요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란봉악단 공연(2014) 장면 (노동신문 캡처)

▲ 모란봉악단 공연(2014) 장면 (노동신문 캡처)


그런데 북한의 공연 단체는 대부분은 국가 기관이거나 국가 통제에 의해 활동이 이루어지는 국영회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민간단체로서 공연 단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공연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 작품의 창작에서 관객의 수용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개인 예술가나 개별 예술 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북한 공연예술계의 전반적 특성을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극장경영’이라든가 ‘예술경영’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이승엽, 2001)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공연예술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자산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활발하게 제작과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 4월 4.25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모란봉악단의 평양 공연이나 국립연극단의 경희극 <산울림>(2010)과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2011) 전국 순회공연에서는 적극적인 홍보와 모객 활동을 통해 ‘관람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예를 들어 경희극 <산울림>의 경우 2010년 한 해에만 180회 공연에 21만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고, 2012년 12월엔 500회 공연에 40만 명 관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조선신보, 2012)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네 번이나 직접 관람했다고 하는 또 다른 기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당국의 철저한 지도와 통제 아래 공연예술의 제작과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의 ‘관람 열풍’은 우리와 같은 ‘상업적 대박’과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북한 공연예술은 창작에서 수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당의 통제를 받는 ‘정치적인 활동’에 해당한다. 공연예술의 제작과 유통 또한 마찬가지다.

공연 작품의 창작과 무대화 과정

북한 공연예술은 창작가에 의해 작품 창작이 선행된 후 연출가의 지휘 아래 배우들이 출연하는 무대화 과정을 거쳐 공연 작품을 완성하고, 그 다음 공연 선전과 관람표 판매가 이루어진다. 가장 커다란 특징은 제작과 유통이 분리되어 진행된다는 점이다. 작품 제작은 각 예술단체와 공연장에서 이루어지고, 그 유통은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라는 기구를 통해 통일적으로 진행한다. 영화로 치면 제작사는 여러 곳인데, 배급사는 한 곳에서 독점하는 구조인 셈이다. 북한 공연예술에서는 제작 과정과 유통 과정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창작 과정과 제작 과정도 구분되어 있다. 또한 단순히 과정이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창작이 제작에 선행(先行)하도록 되어 있다. 연극을 예로 들면 극작가 중심으로 희곡 창작이 선행된 이후, 그 완성된 희곡을 연출가 중심으로 배우나 스태프의 지원 속에 ‘희곡의 무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희곡 중심주의’는 김정일의 문건 「연극예술에 대하여」(1988)가 제2장 ‘극문학’에 이어 제3장 ‘연극무대형상’의 순서로 구성된 데서도 드러난다.(박영정, 2007) 극문학 창작이 선행된 후 그를 토대로 무대형상화 작업을 진행하여 한 편 공연 작품이 완성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북한 연극의 무대화 과정

▲ 북한 연극의 무대화 과정


이처럼 북한 공연예술에서 ‘창작 선행의 원칙’이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 초 작품 심의 체계의 정비를 통해 제도화된다. 1971년 2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문화성에 ‘작품국가심의위원회’가 설치되고, 이후 북한 영화와 무대예술 작품들은 모두 이 기구를 통해 심의를 받은 작품만 제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문예출판사, 1989) 북한이 작품국가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궁극적 목적은 작품 창작에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정확하게 구현하도록 하자는 데 있다. 더욱이 그 방법에 있어서도 심의위원회가 단순히 도장만 찍어주는 ‘재판놀음’이 아니라 ‘집체적 지혜’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창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작품국가심의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은 북한 공연예술이 시작되는 길목에 해당하는 작품의 창작 단계에서부터 당의 정책적 통제를 받도록 일원화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일단 작품 선정이 이루어지면, 각 예술 단체에서는 연출가를 중심으로 한 무대화 과정이 ‘속도전’의 방법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예술단에 전용공연장이 있고, 그 공연장은 장르 특성에 맞는 극장 건축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프로듀싱 시어터(producing theatre)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대화 과정에서 ‘속도전’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단체의 작품 공연 외에 외국 예술단의 초청 공연이나 북한 단체의 해외 공연은 조선예술교류협회(회장 동경수)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과 같은 특별 공연은 별도의 조직으로 아리랑 국가준비위원회(책임연출 김금룡)가 만들어져 기획이 이루어진다.

공연 작품의 유통과 관람 조직

공연 작품이 창작되어 공연장에서 무대화되는 제작 과정은 전적으로 개별 예술 단체의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공연의 홍보와 마케팅은 별도의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 공연예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별 예술단 및 공연장 단위로 제작과 유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2년 11월 김정일에 의해 중앙예술보급사가 설치되면서 이 기관에서 모든 공연에 대한 홍보와 매표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중앙예술보급사는 2012년 6월 김정은에 의해 국가예술공연운영국으로 개명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조선중앙텔레비전, 2012) 북한에서 공연 유통은 ‘주체적 예술 보급’이라는 관점에서 당의 통일적 지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 창작에서 국가심의위원회에 대응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중앙예술보급사가 국가예술공연운영국으로 개명 (《조선중앙텔레비전》 캡처)

▲ 2012년 중앙예술보급사가 국가예술공연운영국으로 개명 (《조선중앙텔레비전》 캡처)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관중인 공연 대본들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관중인 가극 <홍루몽>의 대본

▲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관중인 공연 대본들과 가극 <홍루몽>의 대본 (조선중앙텔레비전 캡처)

국가예술공연운영국에서는 각 공연장의 공연 작품 편성 사업, 공연 작품에 대한 홍보 사업, 공연 관람표의 판매 사업만이 아니라 공연 관련 자료 관리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각 공연장의 공연 프로그램 편성은 국가예술공연운영국 공연편성과에서 중앙과 지방의 예술 단체들과 협의하여 일별, 주별, 월별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공연장 공연 프로그램의 편성까지도 국가예술공연운영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공연 홍보 방법으로는 거리 선전화(포스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한 홍보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상업적 공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과의 경쟁이 없으므로 객관적인 정보 제공의 성격에 머물러 있다. 관람표 판매는 국가예술공연운영국 지구보급소에서 이루어진다. 지구보급소는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데, 평양에는 중구, 동대원, 서성, 선교, 평천, 모란봉, 보통강, 만경대, 낙랑구 등 1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즉, 북한 공연장에는 매표소가 없기 때문에 사전에 구입한 관람표 없이 공연장에서 현매(現買)를 하려다가는 자칫 공연을 못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무료든 유료든 중앙예술보급사에 의해 관람표의 ‘사전 판매’가 이루어지므로 공연장에서는 마치 ‘조직 동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공연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 차게 된다. 관람표 판매 대상은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상 단체 관람을 조직(일종의 관객 동원)하는 일이 많지만, 개별 판매도 이루어진다. 최근 모란봉악단 라이브 콘서트와 같이 ‘인기’ 있는 공연은 티켓 구입을 위해 치열한 경합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개별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노동신문, 2014.3.25./27) 관람표의 디자인 및 인쇄, ‘공연 종목’(공연 내용 안내 팸플릿)의 디자인 및 인쇄도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담당하고 있다. 공연 자료 관리 사업은 공연된 극 대본들과 음악 총보, 무용 표기화된 무용 작품들과 무대 원화들을 수집, 등록하고 보관, 관리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 시 사용되었던 공연 종목, 주요 의상과 소품들의 보존 관리도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피바다극단의 가극 <홍루몽>, 국립연극단의 경희극 <산울림> 등 1950~60년대 공연 작품을 재공연하는 데에도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존하고 있던 공연 자료들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조선중앙텔레비전, 2012)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존하고 있는 공연 팸플릿과 의상보관실 (조선중앙텔레비전 캡처)

▲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이 보존하고 있는 공연 팸플릿과 의상보관실 (조선중앙텔레비전 캡처)


이렇게 보면 북한에서 공연예술 제작과 유통은 모두 국가 시스템에 의해 통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개별 예술 단체에서 작품의 창작과 무대 연출을 담당한다면, 국가예술공연운영국에서 프로그램 편성과 홍보, 관람표 판매 및 보급, 자료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가예술공연운영국은 우리나라의 공연기획 대행사와 예술자료원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일적 시스템은 이미 선정된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북한식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하고, 공연예술에 대한 국가 관리를 효율화하는 데는 매우 용이하지만, 개별 예술 단체의 창조적 다양성을 희생하는 조건 위에 작동된다는 점에서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제공_필자



참고자료

-「경희극 <산울림> 500회 공연, 40여만 명이 관람」, ([조선신보], 2012.10.5.)
-「모란봉악단공연 관람열풍으로 수도 평양이 흥성인다」, ([노동신문], 2014.3.25.)
-「모란봉악단공연 련일 성황리에 진행, 더욱 고조되는 관람열풍」, ([노동신문』, 2014.3.27.])
- 문예출판사, 『예술의 영재 14-예술의 개화』, (평양: 문예출판사, 1989)
- 박영정, 『북한 연극/희곡의 분석과 전망』, (서울: 연극과인간, 2007)
- 방송 프로그램, 「우리식 예술보급체계에 새겨진 불멸의 령도-국가예술공연운영국」, (조선중앙텔레비전, 2012.11.7.).
- 이승엽, 『극장경영과 공연제작』, (서울: 역사넷, 2001)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북한 문화․체육시설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0)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북한 예술단체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필자소개_박영정 필자소개
박영정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997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치진의 연극비평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한국연극사 관련 저서와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그 연장선에서 북한 연극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치진 연극론의 사적 전개』(태학사), 『북한 연극/희곡의 분석과 전망』(연극과 인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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