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하우스매니저라는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극장에 도입하면 안 되나요?”

이렇게 외치던 그가 현재 국립극장에서 30여 년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그는 바로, 국내 하우스매니저 1호 김명수이다.

하우스매니저란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제외한 프론트 오브 하우스(Front Of House, 객석 혹은 관객 담당 업무) 공간에 대한 관리와 서비스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공연 시 무대감독과 유기적으로 공연 진행을 하는 사람이다.

하우스매니저라는 이름이 아직 생소한 1987년 국립중앙극장에 입사, 최고의 공연을 위해 치열한 전쟁이 이루어지는 공연장에서, 관객을 위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1인, 그래서 지금은 국내 하우스매니저의 정착과 영역 구축에 큰 기여를 한 김명수 하우스매니저에게 후배들이 묻는다.

하우스매니저를 직업 삼기로 마음먹다

1. 하우스매니저로서 30여 년 이상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극장에서 일하면서 약 8개월 정도 기획자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지방 공연도 다니면서 극장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꼈지만, 얼마 후 하우스매니저가 내 적성에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뮤지컬 공연 단체가 티켓 기부를 해주셔서, 매회 공연에 불우 청소년들이나 문화 소외 계층의 시민들을 초청하여 문화 향유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문화 바우처니, 문화 나눔이니, 여러 가지 이름으로 티켓 나눔을 통한 문화복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그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너무나 행복해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이 일이 내 천직이고, 공연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2. 가장 인상적인 고객은 어떤 분이었나?

마당극이나 악극을 공연할 때는 연세가 많은 분들이 주로 공연장을 찾아오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인 것 같다. 특히 당시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공연 두세 시간 전에 미리 와서, 집에서 가지고 온 떡이나 막걸리 등을 로비 한 켠에 꺼내 놓고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들어 보면 동네의 어르신들끼리 자녀 자랑이며, 누구네 집 경조사며, 오랜만에 나들이 오신 기쁨을 음식을 드시며 나누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간혹 어떤 때는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떡 한 조각 주시는 분도 계셨고, 공연이 끝나고 가실 때 꼭 손잡아 주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요즘이야 공연장 예절이 보편화되어 공연장에서 이런 광경을 쉽게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조금이라도 음주를 했다면 입장이 거절되는 게 일반 상식에 속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그냥 통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따뜻하고 그리운 풍경이다.

하우스매니저의 고충, 현실 그리고 전망

2005년도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하우스매니저 일을 몇 년 하다 보니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공연계에 하우스매니저에 대한 인식도 전무하고, 어떤 지침서나 선배도 없이 일을 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 아르코예술극장 김영신 매니저가 주축이 되어 세종문화회관 전윤선 매니저, 예술의전당 양우제 매니저, LG아트센터 이선옥 매니저 그리고 필자까지 5명이 모여 하우스매니저를 알리는 하우스매니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때 김명수 하우스매니저를 알게 되었고, 우리에게도 대선배가 계시다는 것에 많은 위안과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김명수 매니저는 늘 겸손한 모습으로 후배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후배들을 가장 크게 격려했고, 누구보다 하우스매니저라는 직업이 세상에 알려지고 전문화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3. ‘진상 고객’이라는 용어가 회자될 만큼 까다롭고 인정사정없는(?) 고객들로부터 어려움을 겪는데, 하우스매니저로서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이런 뉴스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허용할지 정해 놓고 일하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조금 지나치게 요구를 해서 문제가 되긴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고객도 알아줄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4. 현재 하우스매니저 직업에 대한 인식과 향후 비전은 어떻게 보는가?

외국에서는 1950년 이후 하우스매니저라는 직업이 활성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국립극장에서 하우스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최초 공채라는 형식으로 하우스매니저를 채용한 건 1999년 예술의전당이 처음이었다. 이후 LG아트센터가 개관하면서 하우스매니저를 채용하였고,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하우스매니저를 채용하는 극장이 늘어 갔다. 하지만 각자의 공연장에서 업무를 진행하기에 급급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교육에 힘쓸 여력은 전혀 없었다. 그나마 2005년 이후 뜻있는 하우스매니저들이 모여 지금의 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향후에는, 외국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광의의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이고,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 언어도 배우고, 공연기획, 홍보, 마케팅, 그 외 공연 전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하우스매니저라는 위치가 자리 잡게 되리라 생각한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의 하우스매니저는 극장 경영의 핵심 인력으로서 모든 파트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극장의 성격이나 하우스매니저의 성향에 따라 객석감독, , 로비매니저, (협의의) 하우스매니저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는 외국의 경우처럼 극장 전반의 경영에 책임을 지고 각 분야를 총괄하는 영역까지 확대하기를 바란다.

▲ 김명수 하우스매니저는 전국 각지의 공연장을 다니며 하우스매니저 교육을 하고 있다

하우스매니저는 넉넉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

5. 하우스매니저로서 꼭 갖추어야 될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연코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하우스매니저 채용 시 면접에서 영어나 스펙, 그 외 외모 등을 비중 있게 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하우스매니저라는 일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공동 작업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직업이다. 남과 서로 어우러져 같이 융화되어 순조롭게 팀워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는 인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6. 하우스매니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예전에 비해 하우스매니저를 채용하는 극장도 늘어났고, 업무의 전문성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지만, 국립극장처럼 공공극장으로서 공무원의 형태로 근무하는 하우스매니저는 그리 많지 않다. 일하는 강도나 내용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근무 조건을 감수해야 가능한 직업이 하우스매니저일 수 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직업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하우스매니저들은 공연을 사랑하고 극장을 떠나서는 안 되겠기에 이 일을 하고 있다.

혹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환상이 아닌, 진심으로 공연을 사랑하고 공연장을 사랑하며 공연이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면 하우스매니저만큼 매력적인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기다린다면, 세상이 알아줄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필자소개_김경래 필자소개
김경래는 하우스매니저협회 부회장, 문예진흥원과 백암아트홀에서 하우스매니저로 근무하였고, 다수의 하우스매니저 교육과 공연장 및 대학에서 서비스 강의를 진행하였다. 지금은 프로듀서와 홍보 일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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