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이 대학의 성과를 측정하는 우선순위로 거론되며 취업률이 저조한 학과들이 통폐합되고 있다. 성과 중시 경쟁논리가 기업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적용되며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이다. 예술학과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예술학과의 취업 실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14년 발행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대학 취업률은 인문 45.5%, 예체능 41.4%, 대학원 취업률은 인문 42.9%, 예체능 34.6%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건강보험DB를 바탕으로 산출한 것으로, 특수화된 전공 학과를 다른 학과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모든 성과가 수치로 측정되어 나열되는 사회에서 예술 전공 졸업생들의 입지가 날로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게다가 부당한 대우와 노동 착취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열정페이’ 논란이 가세하며 ‘청년 예술가의 일자리 문제’가 예술계의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공부했던 호주의 예술 정책을 주된 예로 들며, 학교, 정부, 기업과 예술경영인들이 청년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색해 보겠다.

"형 꿈이 4대 보험이었어?", "응"

요즘 젊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예술대학 졸업자들이 실제적으로 4대 보험 적용을 받는 곳에 ‘취업’하는 것이 과연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일인지. 아이러니한 짧은 대화가 청년 예술가들의 현실을 반증한다.

대학은 고등교육의 산실이다. 고등교육에는 ‘자립’을 위한 교육도 포함되어야 한다. 취업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당당히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에 나가기 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전공자들이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무 중심의 대학 교과과정이 필요하다.

실용주의적 교과, 시장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과정 필요

예를 들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이하 UNSW)’의 예술대(Faculty of Art & Design)에서는 각 예술 분야별 실기와 이론 수업 이외에 현장에서 바로 접목 가능한 교과과정을 개설·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교양 과목(Elective Course)으로 편성되어 관련 전공 학부, 석사,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모두 신청 가능하다. 홍보와 마케팅(Marketing and Promotion), 예술과 문화정책(Arts and Cultural Policy), 인턴십(Internship) 등이 그것이다.

‘홍보와 마케팅’ 수업에서는 호주문화재단(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에 기금을 신청하는 과제와 블로그를 개설하여 자신의 작품이나 단체를 홍보하는 과제를 통해 기획서와 효과적인 작품 홍보 방안에 대해 스스로 모색하게 한다. ‘예술과 문화 정책’의 경우 호주와 세계의 문화·예술 보호, 증진 법에 대해 다루며, 특히 저작권 관련 실무적 지식 습득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운다. 인턴십은 최소 240시간을 학교와 연계되어 있거나 교수가 추천해주는 현장에서 활동하여야 한다. 인턴십을 위해 교수와의 진로 상담이 일차적으로 진행되고 인턴십 기관을 정하면서 졸업 후 진출 분야에 대해 설계한다.

예술대학의 커리큘럼도 이처럼 순수예술의 실기와 이론 외에 경영대학 수업과 같이 실용주의적 교과와 시장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증설되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가 예술전공 학생들의 ‘자립’을 도와 졸업 전 충분히 사회 진출 이후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일 것이다.

▲ UNSW 학생들의 작품활동 모습

입직,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국가 지원제도 확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는 문화예술 단체 및 예술인을 지원하는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외에도 정부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청년 예술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입직, 신진 예술가의 지속 성장이 가능한 역량 개발 지원제도의 증설이 절실하다.

호주에는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 이하 호주예술위)가 있다. 호주예술위 역시 예술가들의 작품 개발, 전시, 공연, 투어를 할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금전적 지원 규모 차이를 떠나 사업 목적과 방향의 차이이다. 호주예술위의 사업을 보면 입직, 신진 예술가에 대한 배려와 예술가의 역량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015년 호주예술위는 10개의 지원사업을 발표했다. 호주예술위 사업 5개, 국가사업 5개이다

호주예술위의 총 5개의 사업 중 개인과 그룹, 단체의 작품 활동 지원사업을 제외한 3개(75%)는 예술가의 지속 성장 가능한 역량개발사업으로 볼 수 있다. 예술장학금은 일반 예술가와 입직, 신진 예술가(For Established and Early career artists)를 분류하여 지원하고 있다. 입직, 신진 예술가의 예술장학금 신청 조건은 ‘한 번 이상의 작품 활동’을 마친 자이다. 역량개발지원금은 전문 기술을 개발하거나 레지던시, 멘토링, 워크숍 참여비 등으로 사용 가능하고 쇼케이스, 아트마켓 참석 비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예술 단체 6년 펀딩은 예술 단체가 스스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다잡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수련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 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립성이 어려운 예술 단체의 든든한 지원사업임이 틀림없다.


국가사업은 예술 분야별 지방투어 4개(전시, 공연, 콘서트, 축제)와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을 국가정책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 대상자는 예술교육기관에서 최소 3년 이상의 교육을 수료한 졸업자 혹은 졸업예정자로, 졸업 후 3년이 넘지 않아야 한다.

호주예술위의 2015년 총 10개 사업 중 2개가 입직, 신진 예술가를 위한 것이며, 이를 포함한 4개의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예술가들의 지속 성장을 위한 역량 개발 관련 사업이라는 사실이 한국 예술지원사업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은 크다.

메세나 변화흐름을 포착하는
청년 예술가와 예술경영인들의 아이디어 절실

위에서 청년 예술가의 일자리를 위해 학교와 정부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부터는 변화하는 환경에 청년 예술가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예술경영인들이 이를 어떻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논하겠다.

‘문화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이 문화예술에 대한 자금이나 시설 지원을 통해 사회 공헌을 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이 활발해졌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2012년(1602억 720만 원) 대비 9.4%(150억 5100만 원) 증가한 1753억 2300만 원으로 파악됐다. 같은 시기 호주는 약 2200억 원, 프랑스는 약 1조 5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호주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국가의 경제 규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프랑스는 문화 강국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의 메세나 규모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며, 앞으로 형태나 수준을 달리해 한국 메세나의 저변은 무한히 확대될 것이다.

최근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한 이후로 각 기업에서는 앞다투어 예술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금호아시아나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포스코는 전통예술, LG의 경우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아트클래스), 두산은 문화예술캠프(어린이아트스쿨), 현대자동차는 문화예술체험 및 교육(토요아트드라이브), 한화생명은 가족기능회복 프로그램(가족예술캠프) 등이 그것이다.

마케팅 쪽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란 개념이 있다. 기업의 이윤에 사회적 가치를 결부시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메세나의 형태 변화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업은 발 빠르게 이 개념을 도입하여 단순 비용 지출을 통한 사회공헌활동(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그쳤던 메세나의 형태를 공유가치창출의 차원으로 진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즉, 기업이 사회공헌의 형태로 예술가를 단순 지원하기보다는 예술지원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여 이윤을 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투자의 개념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청년 예술가들은 변화하는 환경을 기회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동적인 기업자금 수혜의 자세보다는 능동적으로 기업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이념이나 메세나 활동 성향을 분석하고 자신의 작품과의 연계성이 있는 기업에게 상생의 길을 제안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청년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 과정에서 예술경영인들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청년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 관련, 활동주체에 따라 세 가지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학교는 실기와 이론 중심의 커리큘럼 이외에 실무 중심의 현장성 있는 커리큘럼을 증설하여 예술전공자들이 졸업 후 바로 현장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시급하다. 공공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 지원사업은 입직과 신진 예술가들에게 초점을 맞춰 지원 폭을 확대하여야 하며, 일회성 시연사업보다는 예술가들의 역량 개발 지원사업을 강화하여 청년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지원정책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외에 기업의 메세나 형태가 공유가치창출 활동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여, 청년 예술가와 예술경영인들은 기업의 성향을 파악하고 협업을 제안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의 저변과 기반을 확대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학교와 정부, 기업의 도움 위에 청년 예술가의 능동적인 노력이 더해진다면, 청년 예술가들의 일자리는 확대될 것이다.



참고링크

UNSW 홍보와 마케팅(Marketing and Promotion) 핸드북
UNSW 예술과 문화 정책(Arts and Cultural Policy) 핸드북
UNSW 문화 자산과 법(Cultural Property, Ethics&Law) 핸드북
UNSW 인턴쉽(Internship) 핸드북
UNSW 축제와 비엔날레(Festival and Biennales) 핸드북
UNSW 호주 아트 마켓(The Australian Art Market) 핸드북
UNSW 인턴쉽(Internship) 핸드북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
호주메세나협회(Creative Partnerships Australia)

필자소개_이용관 필자소개
이용관(Elio Lee)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에서 문화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UNSW)’에서 예술행정석사(Master of Art Administration)를 마쳤으며, 창작국악그룹 그림(The 林) 기획팀장, 시드니 ‘버우드 갤러리(Burwood Gallery)’의 헤드 매니저(Head Manager)를 역임하였다. 문화예술 단체의 기획자문, 문화 관련 매체에 기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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