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발표한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보장 지원’에 대한 신규 사업 계획은 예술영화 상영 스크린 확대, 관객의 최소관람 기회 보장, 예술영화 개봉 지원 편수 확대, 지원금 증액 효과를 골자로 한다. 핵심은 영화 다양성 확보에 있어 주요한 거점이었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방식의 변화다. 연간 상영일 50% 이상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대해 지원하던 방식에서, 연간 총 26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선회함으로써 예술영화전용관들에 새로운 운영 모델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Weekly@예술경영》 296호는 전국의 대표적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진들과의 대담을 통해 사업 개편 쟁점과 공간 운영 전략을 들어보고, 프랑스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은 어떤 논의를 통해 탄생되어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2012년에 개관한 강릉 ‘신영극장’과 금년에 개관한 대구 ‘오오극장’의 사례를 통해 지역 예술영화전용관들의 현실과 이를 위한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본다. [특집] 좌담_예술영화전용관의 과거, 현재, 미래/[칼럼] 프랑스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 및 운영 정책 현황/[이.상.공간] 강릉 '신영극장', 대구 '오오극장'

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을 처음 상영한 것에서 시작했다. 말하자면, 파리는 영화 탄생의 수도였다. 파리에서 영화가 대중적으로 공개된 이후 전 세계로 상영이 시작해 상설적인 영화관이 만들어진 것이 1905년의 일이었으니, 영화관의 탄생 또한 이미 11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다양화 등 사회적 요인의 변화로 영화관의 모습은 계속 변화해왔고, 세기말에 시작되어 이제는 보편화된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영화의 도시, 예술의 도시라는 파리의 영화관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파리의 영화관에 여전히 주목하는 것은 산업뿐만이 아니라 영화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관객들과 영화관에 대한 정부의 공적 지원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예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영화 애호가를 일컫는 파리의 시네필(Cinephile)이 등장한 것이 무성영화가 활력을 갖고 있던 1920년대 초 무렵이다. 이들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시네클럽을 조직했고, 파리 시내에 만 명이 넘는 회원 수를 보유한 시네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936년에는 미술관이나 도서관과 같은 성격의 영화 박물관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ematheque Française)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예술영화관의 탄생 또한 1950년대 이래로 본격화됐는데, 이는 새로운 프랑스 영화의 탄생을 알린 누벨바그 세대의 출현과 맥을 같이 한다. 1955년에 상업영화관에 대항하는 프랑스 예술 및 실험 협회 AFCAE(Association Française des Cinema d’Art et d’Essai)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예술 및 실험극장(Cinema d’art et d’essai)이라 부르는 프랑스식 예술영화관들의 모임이다.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실험적 가치를 지닌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들이다.

대략 천여 개의 극장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 영화관의 절반에 해당된다. 프랑스 관객의 15%가 예술영화관을 찾고 있다. 이 극장들은 주로 미국 상업영화를 제외한 영화들, 새로움과 탐구의 특성을 가진 작품들, 프랑스에 잘 소개되지 않은 나라의 인간의 삶이 잘 반영된 작품들, 예술 및 역사적 관심이 투영된 영화들, 고전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한다. 이 추상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들을 대략 100여 명의 감독, 제작자, 배급업자, 독립극장업자, 문화 관련자 등의 선정위원이 매달 두 번의 회합에서 결정한다. 논란이 있을 법도 한데, 일반적으로 이들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만큼 예술적 판단에 신뢰가 깊은 편이다. 영화 예술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영화관 생태계 비교

프랑스의 영화관은 크게 두 가지 분류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극장 스크린 수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 유형의 극장들이 있다. 첫째, 한 개의 스크린을 가진 단관형, 3관 이하의 분할형, 그 이상의 멀티플렉스 혹은 복합형 극장이 있다. 멀티플렉스는 대부분 대형 흥행 회사가 운영하고 있고, 3관 이하의 극장들은 중소 흥행관의 경영으로, 단관형의 경우는 주로 레퍼토리 형식의 상영을 하는 예술영화관들이다. 이러한 예술영화관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이 카르티에라탱(Quartier Latin) 지구인데, 1960년대부터 예술계 영화관이 이곳에서 유행을 선도했다.

다른 분류 체계는 한 해 관객 수에 따른 것으로, 이 또한 세 가지 유형의 극장이 있다. 첫째, 연 관객 수 8만 이하의 작은 영화관, 8만에서 45만 사이의 중급 영화관, 45만 명 이상이 찾는 대형 영화관이 있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 이하 CNC)의 분류에 따르면, 작은 영화관은 전체 극장의 76%를, 대형 영화관은 12.9%를, 중급 영화관은 11.1%에 달한다. 물론, 프랑스 관객의 많은 이들이 가는 곳은 대부분 멀티플렉스의 큰 영화관들이다. 2013년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현재 5,588개의 스크린에, 2,025개의 극장이 있는데, 이 중 188개관이 멀티플렉스이다. 프랑스 극장의 9.3%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체 스크린의 38.9%, 좌석의 40.8%, 관객의 59.6%를 차지한다.

이 수치를 같은 해 한국과 비교해보면 초라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2,184개의 스크린 중 멀티플렉스 스크린이 2,072개로 94.8%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다양성 영화관(저예산 영화, 독립 영화, 예술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49개(이 중 예술영화전용관은 24개)에 불과하다. 이들 대다수(33개)가 또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수가 프랑스에서 38.9%에 불과한 반면 한국이 94.8%인 것은 관객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는 멀티플렉스에 대한 규제가 있고 한국은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 한정해서 보자면(2013년 파리 시 통계) 전체 374개의 스크린 중에 150개의 스크린이 민간 독립영화관으로, 이 중 89개가 예술영화관들이다. 매주 500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1년에 2천 7백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다. 서울의 스크린 수가 파리보다 많은 460여 개인 반면, 예술영화관의 스크린 수는 파리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은 17개관이다. 서울의 한 해 관객이 파리보다 2배 이상 많은 5천 6백만 명이라 할 때, 예술영화관의 스크린 수가 파리와 비교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민간 영화관들, 대체로 단관 극장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리 한 극장에 벽에 있는 랑글루아 그림. 극장주는 랑글루아가 유령이 되어 자기 극장에 영화를 보러와주길 바랐다고 한다&#13;&#10;

▲ 파리의 한 극장 벽에 있는 랑글루아 그림. 극장주는 랑글루아가 유령이 되어 자기 극장에 영화를 보러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놓았다고 한다

작은 영화관들의 문화적 가치 인정

이러한 수치들은 물론 프랑스와 한국, 파리와 서울의 문화적 환경의 차이를 분명하게 고려해야만 의미 있는 비교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프랑스가 이런 영화관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작은 영화관들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실행하는 것이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되는 1946년에 창설된 CNC다. CNC는 프랑스 문화부 직할 조직으로 방송국, 비디오 매출, 영화관의 매출 각각 5.5%, 2%, 11%를 징수해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CNC는 영화 제작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목적 외에도 영화 홍보, 관객 개발과 영화 유산의 보존과 고양에 정책의 우선권을 두고 있다.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원은 크게 자동지원(Soutien Automatique)과 선별지원(Soutien Selectif)을 두고 있는데, 전자는 극장에 대한 직접 지원이고 후자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별히 디지털로의 전환에 드는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CNC의 역할이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영화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영화 진흥에이전트(l’Agence pour le Développement Régional du Cinéma)가 만들어진 것이 이미 1983년의 일이다. ADRC는 전 국민이 영화 문화를 평등하게 향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에 근거해 CNC의 지원하에 지역의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촉진하는 활동을 한다. 지역에서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면서 지역의 영화관이 일제히 폐관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사태를 개선하고, 소규모 영화관의 노후화를 혁신하기 위해, 그리고 예술영화의 원활한 지역 배급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창설 초기부터 ADRC는 지방의 노후한 영화관의 개축과 영화관 건축에 관한 컨설턴트를 주요 목적으로 했으며, 동시에 1999년부터는 지역에 고전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프린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의 상영회를 위해 감독이나 평론가를 파견하는 지원도 하고 있다. 지방의 영화관 활성화, 지방에서의 수요 발굴에 역점을 두어 영화관에 대한 투자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난해 낡은 시설과 관객 수가 적다는 이유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역 예술영화관에 지원을 중단한 것과 대조를 보인다.

파리 시 또한 CNC 이상으로 파리 시민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영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파리의 모든 구에 적어도 영화관 한 개관 이상이 있을 수 있도록 장려하거나, 파리 시민의 문화적 향유권을 위해 독립예술영화관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데, 2002년 이래로 40개의 영화관이 파리 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원금은 낡은 극장의 현대화, 리노베이션(로비, 좌석 등)에 쓰이기도 하는데, 2010년부터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들 극장의 디지털 장비 전환에 지원을 하고 있다. 여름에는 파리 시가 주최하는 ‘파리 시네마’ 영화제가 열리고, 아이들을 위한 ‘나의 첫 번째 페스티벌’이 개최되는가 하면, 한여름의 야외 상영이나 극장에 갈 수 없는 병원에 있는 아이들과 감옥의 수감자들을 위한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 행사도 열리고 있다.

프랑스의 영화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각으로 영화를, 영화관을 보고 있는가이다. 좋은 영화를 계속 상영하는 전통적이고 개성적인 영화관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영화를 문화와 예술로서 인식하는 관객들, 그리고 영화가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고 지원에 최선을 다하는 공적 기관, 이들이 프랑스의 영화 문화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진제공_필자

김성욱 필자소개
김성욱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면서 영화 평론가로 글을 쓰고 학교에서 영화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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