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 어린이들은 ‘어린이가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세상의 가혹한 경쟁 논리가 아이들에게 당연한 적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려면 노는 것을 참아야 한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술은 지금 아이들의 멍든 마음을 치유해 달라는 다급한 요청을 받고 있다. 5월마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행사와 프로그램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이에 대한 지원 또한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움직임에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부재한다. 바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와 ‘지속적 발전 가능한 어린이 예술 환경’의 구축이다.


한국 최초의 어린이 미술관 헬로우뮤지움을 운영하는 김이삭 관장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이 두 키워드에 집중해왔다. 그녀의 관심사는 규모와 수익보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작지만,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예술을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이정표다. 이로부터 나온 헬로뮤지움의 성과와 콘텐츠 기획력은 이미 검증이 완료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이를 계속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이삭 관장과의 인터뷰는 이런 궁금증을 토대로 진행됐다. 비영리를 추구하지만 지원에 묶이지 않는 안정적 재원 마련과 관객 개발 노하우, 공간의 철학을 구현하되 더 많은 어린이들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 진행 중인 준비를 《Weekly@예술경영》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마치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주는 ‘엄마의 마음’으로 말이다.

어린이도 어른만큼 잘 알고 있다

안태훈 헬로우뮤지움이 충무아트홀과 손잡고 ‘아트 디스커버리’라는 미술체험전을 시작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 아트 디스커버리 진행 모습(사진 제공: 헬로우뮤지움, 클릭시 사진 확대)

김이삭 성공적이다.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8월까지 체험전이 진행된다. 현재 충무아트홀과 롱런파트너를 유지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충무아트홀이 유지하고 있는 고객층과 헬로우뮤지움이라는 브랜드 그리고 아트 디스커버리라는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룬 것 같다.


안태훈 충무아트홀이 유지하고 있는 고객층과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보는 것인가?


김이삭 시각예술은 유료 관객 점유율이나 관객 충성도가 연극 및 뮤지컬에 비해 낮다. 반면, 충무아트홀의 유료 관객 점유율은 매우 높다. 뮤지컬 공연을 기반으로 형성된 20~30대 여성 관객층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 고객층은 어린이 자녀를 둔 부모 혹은 예비 엄마들이기도 하다.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고객층이 안정적으로 형성된 상황에서, 그 고객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관심사를 헬로우뮤지움의 프로그램이 충족시켜준 것이다. 거기에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체험에 참여하는 모습까지 합쳐져 고객들은 큰 만족을 표현했다. 5월이라는 기간의 특수가 아닌, 지속적 관심이 이어질 수 있는 기획이 된 것이다.


안태훈 일반적인 예술 콘텐츠와 달리, 어린이들을 위한 콘텐츠는 고객이 되는 부모와 콘텐츠를 향유할 아이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만큼 관객 개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 더 세밀하게 세워져야 하는데. 그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이삭 전략은 명확하다. 콘텐츠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되, 마케팅은 부모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의사 결정권이 대부분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객을 설정할 때 ‘생애 전 연령층’이 우리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현재의 문화적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2014년 4월에 웹진 [현장+人]코너에서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이 한 말씀이 지금 트렌드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의 양방향성을 통해,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는 전문 지식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따라서 이제 기획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쉽게 알려줘야지'라고 접근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오늘의 관객도 예술가나 기획자들만큼 잘 알고 있다는 자세, 그래서 “관객이 알고 있는 것,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다가가 들어야겠다”라는 소통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 헬로우뮤지움 입구(왼쪽)와 전시 공간(사진제공: 헬로우뮤지움, 클릭시 사진 확대)

가야할 방향으로 가는 걸음은 힘들지만 천천히

안태훈 그런 의미에서 ‘작지만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예술 향유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는 공간 철학과 그 성과는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지방을 비롯해 좀 더 많은 지역의 아이들이 이런 향유 기회를 받도록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점점 커지고 있다


김이삭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하나는 지속성이다. ‘많은 관객 유치를 우선순위에 두는 콘텐츠 기획’은 이제 더 이상 주효하지 않는다. 제한적이고 한시적이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수안보 와이키키’라는 곳이 있다. 과거에는 최고의 휴양지였지만,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버려진 도시다. 좋은 물이 있음에도 시설 관리나 서비스 마인드가 없으니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같은 원리다. 지속성은 단순히 콘텐츠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여가 시간을 존중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두 번째는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혜택이 필요한 지역의 정체성과 독창성이 겸비된 콘텐츠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헬로우뮤지움은 현재 다섯 군데에 미술관을 더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작은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7월에 개관하는 공간이다. 사실 금호동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보면 ‘낯선 동네’다. 하지만, 서울에서 문화적 혜택이 부족한 곳,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수요가 존재하는 곳이 금호동이었다. 지역 특징을 조사해보니 금호동이 서울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달동네, 김구 선생 주택과 백범학원이 있는 곳임을 알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토박이 어르신들께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지역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화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를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 부모 그리고 지역민 전체가 의미 있는 예술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공간은 강남에 있지만, 요즘은 계속 이곳 금호동에서 살고 있다.


안태훈 안정적 재원 마련보다, 의미 있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철학은 어떻게 세우게 된 것인가?


김이삭 처음 어린이 미술관을 만들 때 세운 기조는 ‘실험과 검증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8년간 운영하면서 그 성과들을 확인해왔고, 이제는 공간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이사를 준비 중이다. 그동안 헬로우뮤지움이 기획하고 운영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참여해주셨던 고객들께서 모두 전폭적인 만족을 보여주셨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항상 예매가 완료됐다. 그렇게 재원은 안정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예술 향유 기회는 오히려 제한되는 셈이었다. 그건 내가 이 공간을 만들 때 처음 세운 신념에도 반(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간을 벗어나, 미술관 밖으로 가는 순회형 전시를 더욱 많이 기획했다. 2만 명을 목표로 한 기획에 5만 명이 오고, 5만 명을 예상한 기획에 11만 명이 왔다. 지역에서 이런 기회를 더 갈급해하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명확히 보이고 있었다.

‘붐업’에 흔들려선 안 된다

안태훈 헬로우뮤지움이 기획/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상당히 많은 예술가 및 교육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나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원활한 협업은 한 사람만의 역량이 아닌, 곧 공간에 소속돼 있는 직원들의 역량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김이삭 먼저, 공간의 철학과 성과를 존중해주는 아티스트들과 교육전문가들께서 오히려 콘텐츠를 제안해오고 있어 감사드릴 따름이다.

2007년 개관 이후로, 헬로우뮤지움을 거쳐갔던 많은 직원들이 예술 현장의 다양한 영역에서 기획자나 공간운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리더로서, 직원들이 개발에 참여하고 운영을 담당했던 프로그램 크레디트는 당연히 직원들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커리어가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의 책임감이 매우 강한 편이다. 현재 헬로우뮤지움은 기획팀과 교육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두 팀이 아주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실을 직원들이 체감하고 똘똘 뭉쳐 움직여주고 있다.


안태훈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 현장에 있으면서 지켜봐 온 ‘한국의 어린이 예술 교육’ 정책의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문제가 있다면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이삭 피부로 와 닿을 만큼, 그 변화가 격변이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어린이 예술 교육에 대한 정책이 한창 올라오다가, 2009년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그 풀이 급격하게 꺾였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공립 기관들을 중심으로 공간 조성과 프로그램 개발 지원금이 전폭적으로 투입됐었다. 그렇게 조성된 공간들,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을까?

많은 곳에 컨설팅을 다니면서 발견한 문제점은 기관들이 사업을 지속·발전시켜 나갈 전문가도 계획도 없이, 단순 ‘붐업’에 함몰되어 사업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최초에 일을 수행하던 담당자도 지금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성과 지상주의,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이다. 당시 추진하던 일들이 어떻게 시작하여 마무리가 됐는지 기록한 자료들이 없거나 매우 빈약한 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반복·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

만약 대자본이 필요한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만들면 된다. 문제는 이를 어린이 예술을 비롯한 예술 전체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려 하는 것이다. 공적 자본 투입이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중규모, 소규모의 민간 예술 공간, 기획자들이 필요한 곳에 가서 터를 닦아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지역에 조성된 상태에서,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지원이 활성화돼야 어린이 예술 환경이 튼튼해진다. 헬로우뮤지움이 추진하고 있는 움직임도 이런 생각에 기초한 것들이다.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안태훈 필자소개
전 《Weekly@예술경영》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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