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극장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자리는 무대와 객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은 문화소비의 매개공간을 넘어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이자 사회적 소통 장치로 변신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고양문화재단 월간 「아람누리」와 공동기획으로 공동기획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극장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케네디센터의 '모든 이들을 위한 공연 (Performing Arts for Everyone: P.A.F.E.)'프로젝트 예산의 90%는 기업과 개인의 후원이나 협찬으로 충당된다. 아무리 미국의 공연예술계가 사회의 활발한 기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공연단체들의 교육프로그램들은 돈을 쓰기만 하는 사업이 아니라 사실은 그 단체의 펀드레이징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데, 케네디 센터 역시 P.A.F.E.를 통해 적극적이고 꾸준한 펀드레이징을 해나가고 있다.

미국의 공연예술 시장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욕을 이야기한다. 뉴욕의 링컨센터, 카네기홀은 마치 우리나라의 공연장 이름을 듣는 듯 친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국의 수도는 엄연히 뉴욕이 아닌 워싱턴DC 이다. 그리고 그곳에 케네디센터(The Kennedy Center)가 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미국의 공연장들이나 공연단체들이 교육활동(Outreach activities, 혹은 Community engagement)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티켓을 구입해 공연장을 찾아오는 공연장 안의 관객들이 아닌 ‘공연장 밖의’ 사람들이 금전적인 제약 없이 그들의 공연을 접하게 하려는 이러한 교육활동은, 장기적인 마케팅의 관점에서 미래의 관객을 개발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전통적으로 미국 공연예술계를 지탱해온 힘인 박애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활동에 있어 케네디센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케네디센터는 1971년 개관한 이래로 현재 매년 약 2천 회의 공연을 기획하고 2백만 명의 관객이 찾는 미국 최대 규모의 공연장 중 하나지만 단순히 많은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활동 역시 엄청난 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국립’ 공연장 케네디센터

밀레니엄 스테이지는 대부분 케네디 센터의 중앙 로비에서 열리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가끔 야외로 장소를 옮기기도 한다. 사진은 2006년 9월 케네디 센터의 연례 오픈 하우스 아츠 페스티벌(Open House Arts Festival)의 일부로 특별 편성되었던 밀레니엄 스테이지 프로그램으로 낸시 그리피스(Nanci Griffith)가 남쪽 광장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photo by MARK BUENAFLOR)지난 1997년 겨울, 케네디센터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연 (Performing Arts for Everyone: P.A.F.E.)’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케네디센터는 국가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공연은 모든 미국인과 공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 P.A.F.E. 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P.A.F.E. 하에서 운영되는 세 가지 프로그램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워싱턴 문화연맹(Cultural Alliance of Greater Washington)과 협력하여 도심에 티켓플레이스(TicketPlace)라는 할인티켓 판매소를 설치, 워싱턴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티켓을 반값에 판매한다. ‘Pay-What-You-Can’ 티켓 프로그램은 케네디센터 기획 공연과 센터의 상주 공연단체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티켓을 관객이 원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P.A.F.E. 프로젝트의 중심은 매일 저녁 6시 케네디센터의 중앙 로비에서 열리는 ‘밀레니엄 스테이지’라고 할 수 있다. 매 공연마다 500여 명 정도의 관객이 찾아오고 작년 한 해 동안 관람객이 무려 15만 명에 달했다.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관객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선착순 입장이 원칙이긴 하지만 공연이 열리는 곳까지 올 수만 있다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 케네디센터를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웹사이트의 동영상서비스를 통해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공연들을 무료로, 그것도 지난 공연들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지구상에서 인터넷선이 닿는 곳이라면 누구나 이 공연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사명감을 안고 있는 국립공연장이라고 해도 무료 공연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다는 것은 프로그래밍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십년이 넘는 동안 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온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1997년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처음 탄생시킨 이래 현재까지 P.A.F.E.의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가스 로스(Garth Ross)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개인과 기업 기부금, 협찬으로 연간 예산의 90%를 조달

Sufjan Stevens와 Casey Foubert 가 밀레니엄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모습.(photo by MARGOT SCHULMAN)
우선 재원조성에 대해 가스 로스는 이렇게 답했다.

“P.A.F.E.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예산은 일 년에 160만 달러(한화 약 21억 원) 정도이고 페스티벌을 여는 해에는 20~30만 달러 정도가 증가한다. 전체 예산 중 60% 정도는 기업 협찬이나 개인재단 또는 기업재단에서 지원을 받고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30% 정도, 그리고 정부에서 10% 정도를 지원받는다. 밀레니엄 스테이지 자체 예산은 1백만 달러 정도다.”

이렇게 큰 예산의 90%가 기업과 개인의 후원과 협찬으로 충당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미국의 공연예술계가 사회의 활발한 기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 공연단체들의 교육프로그램들이 돈을 쓰기만 하는 사업이 아니라 사실은 그 단체의 펀드레이징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케네디센터 역시 P.A.F.E. 를 통해 적극적이고 꾸준한 펀드레이징을 해나간다는 것이 놀랍지만은 않다.

“다른 단체들의 교육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P.A.F.E. 역시 케네디센터 전체의 펀드레이징에 아주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많은 개인 기부자들, 재단들과 기업들은 무료 공연이나 제작비가 적게 드는 공연들을 지원하고 싶어 하는데 밀레니엄 스테이지는 일회성이 아닌 일 년 내내 매일같이 운영되는 무료 공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을 거꾸로 활용해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일 년 내내 꾸준히 펀드레이징을 해나갈 수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개인후원자들과 더불어 기업과 Fannie Mae 재단이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예산을 대부분 지원해주고 있다.”


“새로운 관객과 기존의 관객은 모두 중요하다”

밀레니엄 스테이지는 음악공연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을 무대에 올린다. 사진은 1940년대 풍의 무용공연과 Count Basie Orchestra가 밀레니엄 스테이지에서 함께 공연하는 모습(photo by CAROL PRATT)
국립공연장이라는 특성상 케네디센터는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주 관객층을 공연장이 위치한 워싱턴DC 시민들로 한정하지 않는다. 워싱턴DC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예술가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워싱턴DC 시민들뿐만 아니라 이 도시를 방문하는 모든 미국인들이 금전적인 제약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서 미국의 국립공연장으로서 세계의 예술가들에게도 무대를 제공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미국인들과 동등한 무료 공연 관람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이 밀레니엄 스테이지가 지난 십여 년 간 일관되게 내걸고 있는 기치이다.

현재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찾는 관객들 중 대다수는 백인이다. 흑인관객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무료 공연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무료공연의 존재를 잠재 관객층에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공연을 보기 위해 케네디센터에 찾아오기까지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케네디센터 역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존재를 알리고 다가가기 위해 “지역신문 광고는 물론 각 국가의 대사관이나 대학들과 연계한 공연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공동프로모션을 기획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관객’을 유치하는 것만이 케네디 센터가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밀레니엄 스테이지가 목표로 하고 있는 관객들이 기존에 금전적, 지역적인 이유로 케네디센터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들, 다시 말해 ‘새로운 관객들’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관객들을 유치하고 우리의 관객층을 넓혀나가는 것만이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목적이 아니다. 기존에 케네디 센터를 찾아오던 관객들 역시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타겟 관객층이다.”

바비 맥퍼린이 밀레니엄 스테이지에서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photo by CAROL PRATT)
밀레니엄 스테이지의 프로그래밍은 바로 이 두 번째 타겟 관객층과 밀착되어 있다.

“케네디센터는 무척 폭넓은 장르의 공연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케네디센터의 기존 관객들은 한데 묶어 정의할 수 없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고 이미 케네디센터에서 새로운 공연예술을 접하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또 다른 새로운 형식의 공연예술과 예술가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관객들에게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통해 케네디센터의 정규 무대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공연들이나 전국 각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실력 있고 참신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것은 새로운 관객들을 유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밀레니엄 스테이지가 목표로 하는 관객층은 기존의 관객들과 새로운 관객들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케네디센터, 그 중심에 선 밀레니엄 스테이지

케네디센터가 연중 기획하는 공연들은 페스티벌이나 재즈에서부터 현대무용과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그 다양한 공연들을 보러오는 다양한 사람들이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통해 더 새롭고 혁신적인 공연예술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밀레니엄 스테이지를 통해 처음 케네디센터를 찾아 공연을 접하는 새로운 관객들이 있다.

국립이라는 사명감 아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케네디센터. 그곳의 중심에 밀레니엄 스테이지가 있다.


류보리

필자소개
류보리는 대학에서 바이올린과 경영학을 공부한 후 통영국제음악제 등을 거쳐 뉴욕대학에서 공연예술경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뉴욕필하모닉의 교육/마케팅부서에 재직 중이자 음악자람(www.musicgrows.or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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